유전자변형이란 말은 많은 소비자를 겁먹게 한다. 그럼에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른바 ‘크리스퍼(유전자가위) 작물’의 시장 판매를 허용하려 한다. 해충과 기후변화에 저항력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업체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수십억달러의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

필리프 베트게 Philip Bethge <슈피겔> 기자
 

▲ 독일의 화학·제약 기업 바이엘 쪽은 80억 인구, 기후변화 같은 전세계적 위협을 고려할 때 유전자 편집은 포기할 수 없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바이엘이 지원하는 미국 농장의 모습. 바이엘 누리집

검정배줄벼룩잎벌레에게는 양복바지와 넥타이, 깃 달린 상의를 갖춰 입은 강적이 있다. 바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위원들이다. 집행위원회 위원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과 주변 인물들의 의견이 관철된다면, 유럽에서는 곧 유전자 기술에 관한 새 법안이 시행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이 진파란색 해충은 앞으로 먹이를 풍족하게 찾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 벌레는 유럽 유채꽃 경작업자들의 골칫거리다. 독일 니더작센주 아인베크에 자리잡은 세계적인 종자회사 KWS의 연구원 스베냐 베니슈는 이렇게 강변한다. “곤충이 초기에 작물을 다 먹어버리면 수확을 하나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농업곤충학자인 베니슈는 추위에 강한 유채 종자를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곤충이 식물을 다 먹어버리는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종자 배양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비밀 병기가 있다. 다름 아닌 유전공학이다.
베니슈는 KWS의 한 온실에서 연구한다. 올이 촘촘한 거즈 아래에서 유채가 싹을 틔우고 있다. 유채잎 위에는 검정배줄벼룩잎벌레들이 앉아 있다. 잎에 여기저기 뚫린 구멍은 이 딱정벌레의 먹성이 보통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곤충의 해가 훨씬 적은 유채잎도 몇몇 보인다. 바로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유전자가위로 “유전자 편집을 거친” 종자다.
 

▲ 세계적인 독일의 종자회사 KWK가 실험실에서 사탕무와 옥수수의 형질전환을 연구하고 있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KWS 같은 종자회사의 새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KSW 누리집

2024년 봄 법안 확정될 듯
이 유채 실험에는 큰 기대가 걸려 있다. 유럽 국가 내에서는 그간 유전자변형식품(GMO)의 상업적 재배에 관한 규제가 심해 사실상 금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2023년 7월 초 EU 집행위원회가 크리스퍼-캐스9 같은 ‘유전체신기술’(NGT·New Genomic Techniques)로 생산하는 작물의 ‘규제 완화’를 제안했다. NGT라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약자가 탄생했다. 집행위의 이 제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EU 국가 안에서는 특정 조건만 갖추면 NGT 작물을 더는 GMO로 간주하지 않게 된다. 2024년 봄까지 EU 회원국 간에 이 법안이 최종적으로 확정될 수도 있다.
유전체신기술인데 GMO는 아니다? 그러면 라벨만 바꿔 단 것인가? 아니면 사기일까? EU의 이 계획이 통과된다면 KWS 같은 종자회사를 비롯해 이 업계의 4대 기업인 바이엘(Bayer), 코르테바(Corteva), 바스프(BASF), 신젠타(Syngenta)에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수십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편집은 새로운 핵심 기술”이라고 바이엘의 수석로비스트 마티아스 베르닝거는 말한다. “지구에 사는 80억 인구와 기후변화 같은 전세계적 위협을 고려할 때 유전자 편집은 포기할 수 없는 기술이다.”
반면 유전자 편집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은 이 기술이 농업의 산업화를 더욱 심화해 자연, 농부, 소비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유럽의회 의원인 유기농업 농부 마르틴 호이슬링(독일 녹색당 소속)이 대표적이다. “이 분야의 회사들은 여러 해 전부터 경이로운 특성을 지닌 작물을 생산할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그런 작물을 재배하는 곳에서 ‘슈퍼 잡초’가 생겨나고 농약 사용도 몇 배로 늘어나는 게 현실이다.”
베르닝거와 호이슬링은 수십 년 동안 격렬하게 이어진 논쟁의 대척점에 있다. 이제 이들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세계관 논쟁’이 됐다. 호이슬링 같은 정치인들은 그린피스, 지구의벗 같은 비정부기구(NGO)와 일하면서 GMO를 ‘악의 전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레나테 퀴나스트 농업부 장관의 정무차관이던 베르닝거 같은 로비스트들은 이 기술의 장점을 마르고 닳도록 찬양한다.
바이엘 쪽에는 이 사안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바이엘은 5년 전 유전공학 분야의 거물인 몬샌토(Monsanto)를 인수한 뒤, 끊임없이 이런저런 법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몬샌토 살충제 글리포세이트(Glyphosate)의 개인 사용자 수천 명이 미국에서 이 회사를 고소했다. 이들은 화학물질로 암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바이엘은 합의금으로 약 100억유로를 지급했는데, 아직도 추가 지급액 60억유로 정도가 남았다.
그럼에도 베르닝거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우리는 유럽에서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단계를 놓쳐서는 안 된다. EU의 그린딜도 이런 기술 없이는 실행이 불가능하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을까? EU에서 새 유전 기술에 기회를 줘서 경제적 파국을 미리 막는 게 의미 있을까? 아니면 호이슬링이 말하듯 유럽은 유전공학을 사용하지 않는 길로 발을 들여놓는 게 더 나을까?
이 논쟁을 객관적으로 다루기 위해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이 종자회사 KWS다. “미래 씨앗을 뿌리다”라는 글귀가 이 회사 건물 앞 주황색 간판에 쓰여 있다. 1856년 이곳에 자리잡은 ‘클라인반츠레벤(Kleinwanzleben) 종자 재배장’은 이제 연매출액 20억유로 정도 되는 세계적 대기업이 됐다.
KWS에서 규제 업무 책임자로 일하는 아냐 마츠크는 이날 종자 사업이 직면한 어려움을 설명했다. “작물 종자 사업은 지난 20년간 해마다 1~2%씩 수확량을 늘리는 데 기여했다. 이런 성공이 없었다면 전세계 농경지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총 2억150만헥타르(ha) 이상 더 늘어나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년도 수확량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작물은 날마다 곰팡이와 곤충, 바이러스 등의 공격을 받는다. 잡초는 빛과 영양분을 놓고 재배작물과 씨름한다. 수십 년 전부터 농부들은 주로 화학약품을 써서 작물을 보호해왔는데, 이 농약들은 환경을 파괴한다. 최근에는 EU가 곤충 제거에 효과적인 네오니코티노이데(Neonicotinoide)의 사용을 금지했다. 자연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지만 유럽의 농부에게는 큰 문제다.
 

▲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절단한 디엔에이(DNA)를 형상화한 그림. 유튜브 갈무리

농부들 더욱 압박
농부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점점 늘고 있다. EU의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Farm to Folk Strategy)은 2030년까지 비료와 살충제 사용을 줄일 뿐 아니라 생물다양성도 더욱 잘 보호할 것을 요구한다. 독일 베를린의 연구단체 ‘식량과 농업을 위한 훔볼트 포럼’(HFFA)에 따르면, 새 품종이 개발되지 않으면 생산량이 24%가량 감소하리라고 농부들은 예상한다.
게다가 기후도 수시로 변화함으로써 재배조건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할 수 없다. 수확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더 강력한 작물이 필요한데 새 품종을 조속히 개발해야 한다. 이는 오로지 유전자 편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마츠크는 이야기한다.
이 기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KWS의 ‘유전자 편집 실험실’에서 일하는 생명공학자 데이비드 빌라로보스가 시현해준다. 현미경 아래에는 사탕무의 세포물질이 놓여 있다. 빌라로보스는 유전자가위를 구성하는 요소를 담은 액체를 사탕무 세포 표본 위로 떨어뜨린다. 유전자가위는 세포 안에서 조립된 뒤 미리 정해놓은 표적 부위의 디엔에이(DNA)를 잘라낸다. 손상된 세포는 복구 작업으로 대응한다. 이 과정에서 사탕무 유전물질의 일부가 손실되거나 대체될 수 있다. 이렇게 변형된 세포가 묘목으로 자라면, 목표했던 특성을 정말 지닌 식물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새 품종을 탄생시킨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유전자가위는 재래식 배양법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이를 가능케 한다. “품종 하나를 개발하는 데 대체로 10~12년이 걸린다. 이 신기술을 사용하면 배양의 전 과정이 완료되기까지 20~30%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이 신기술은 유전공학인가 아닌가? 유럽사법재판소(ECJ)는 2018년 ‘유전공학’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업체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 판결에 따르면 NGT 작물도 비용과 시간 부담이 큰 승인 절차를 거쳐야 판매 허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EU 집행위가 이 규정을 완화할 계획이다. 위험 평가와 상품 표시는 유전자가 20곳 이상 변형된 경우, 또는 다른 작물이나 박테리아에서 추출한 외부 유전물질이 유입된 경우에만 의무 조항이 된다는 것이다.
종합 제초제 클리포세이트의 해를 입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바이엘의 라운드업레디(RoundupReady) 옥수수, 또는 해충에 저향력을 지닌 ‘Bt작물’ 같은 전형적인 GMO는 여전히 엄격한 규제 대상이다. 이 식물들에는 박테리아 유전자가 주입됐다. 그러나 앞으로는 유전자가위를 사용해 자체의 유전자 안에서만 변형된 경우, 그 작물은 다른 승인 절차를 밟는다. EU는 ‘이러한 작물 변형은 고전적 번식을 통해서도 생성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따라서 이 작물들은 보통 품종과 동일하게 취급돼야 하고, 다른 GMO와 달리 EU 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KWS의 아냐 마츠크는 유전자 편집 작물을 재래식으로 키운 식물과 비교해보면 “결과가 동일하게 나온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그 작물이 어떤 방법으로 생겨났는지 확인할 수 없게 된다.”
새로 제정되는 EU의 유전자 규제는 농작물의 특성을 평가할 뿐이지, 생산과정을 살피는 게 아니다. 이는 비판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기술이 야기하는 상상 가능한 모든 위험을 미리 평가해야 한다는 EU 환경 정책의 기본 원칙, 즉 예방 원칙을 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 예방 원칙이 꼭 필요할까? 옥수수의 모든 과학적 기준을 충족하면 그냥 옥수수 자체로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생겨난 과정과 상관없이 말이다.
규제 완화를 하지 않으면 유럽의 농부들은 손해를 입는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그 손실이 무엇인지는 외국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과 롤리 사이에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esearch Triangle Park)라는 지역이 있다. 수많은 바이오테크 기업이 둥지를 튼 곳이다.
 

▲ 바이엘의 수석로비스트 마티아스 베르닝거는 유럽이 유전자 편집 기술 단계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바이엘 누리집

▲ 유럽의회 의원인 유기농 농부 마르틴 호이슬링은 유전자 편집 기술이 농업의 산업화를 더욱 심화해 자연, 농부, 소비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신젠타그룹의 실험실
이 지역의 데이비스 드라이브 9번지, 우아한 유리 외관의 복층 콘크리트 건물에 신젠타그룹이 자리잡고 있다. 신젠타는 전세계 100여 개국에 지사를 둔 종자·작물 보호 대기업으로 연간 매출액이 300억달러가 넘는다. 이 기업의 바이오 연구원인 팀 켈리허가 회사 내부에 있는 ‘형질전환 실험실’(Transformation Laboratory)을 안내해준다. 그는 기존 유전자 편집 속도를 확 높이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질병 저항력을 특히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다.
대두녹병(Soybean Rust)은 그런 작물 질병 중 하나다. 이 병은 곰팡이로 발생하며, 과거 몇 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최대 25억달러의 농작물 손실을 초래했다. 이 병에 저항성이 있는 야생 대두 품종이 몇 가지 있는데, 저항성을 생성하는 유전자 일부는 이미 발견됐다. 다만 이들을 고성능 품종으로 바꾸는 마지막 단계는 기존 교배 방법으로는 완성할 수 없다. 켈리허는 고속 유전자가위로 이를 조속히 달성하기를 기대한다. 이 연구가 성공하면 앞으로 수 톤(t)의 곰팡이 독소를 줄일 수 있고, 이는 농업과 환경에 큰 혜택을 줄 것이다. ‘EU는 이 혜택을 놓치려는가’라는 주장은 매우 유혹적으로 들린다.

ⓒ Der Spiegel 2024년 제1호
Superpflanze oder Öko-Albtraum?
번역 장현숙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