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베트게 Philip Bethge <슈피겔> 기자
 

▲ 미국 캔자스주 정크션시티 근처에 있는 신젠타의 연구농장에서 낮은 기온에 강한 밀 종자를 생산하기 위해 영상 7도에 맞춘 날씨 속에서 이종교배 밀 새싹을 재배하고 있다. REUTERS

“엄격한 규제가 계속 유지되면 유럽 농부들은 더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게 될 위험이 있다.” 신젠타에서 종자 승인과 안전성을 담당하는 찰스 백스터는 말한다. 이미 유전자변형식품(GMO)을 재배하는 농부들은 GMO를 재배하지 않는 경쟁 농부보다 더 저렴하게 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농부를 향한 압력이 계속 커지고 있다. 중국은 작물 유전공학의 세계로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신젠타는 그 전략의 일부일 뿐이다. 중국 국영기업 켐차이나(ChemChina)는 2016년 이 회사를 430억달러에 인수했다. “중국은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유전자변형을 한 상업용 작물 재배가 임박했다”고 백스터는 지적한다. 중국은 대두와 옥수수의 수입 의존도를 줄이려 한다. 유전체신기술(NGT) 작물의 판매 절차도 쉬워질 것이라고 한다.
새 유전자 기술을 적용한 작물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유럽연합(EU) 차원의 공동 프로젝트 ‘SAGE’(유전자 편집을 통한 유럽의 지속가능 농업)에는 80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됐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의 프로젝트가 중국에 속했고 미국, 일본, 한국이 뒤를 잇고 있다. 유전공학자들의 상상력은 무한히 펼쳐진다.

 

▲ 스타트업 페어와이즈의 사장 톰 애덤스는 유전자가위 기법으로 건강한 식단을 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페어와이즈 누리집

페어와이즈의 야심
신젠타의 연구센터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스타트업(신생기업) 페어와이즈(Fairwise)가 있다. 이 회사의 사장인 톰 애덤스는 몬샌토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현재 그는 NGT 기술을 적용한 농업 혁신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애덤스는 먼저 지난날 업계의 실수부터 인정하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전공학이 초창기에는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엄격한 법률도 원인이 됐다고 덧붙인다. “산업을 과도하게 규제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 혁신이 제한된다.”
종자회사가 고전적인 유전공학 품종을 개발해 시장에 출시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이는 대기업에만, 그리고 이 기업이 전세계적으로 매우 넓은 지역에서 재배되는 식물을 취급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유전적으로 ‘벌레와 잡초’에 면역이 있는 옥수수와 콩은 업계에서 지금까지 거의 유일하게 흑자를 내온 품종이다.
이제 애덤스는 페어와이즈로 그런 상황을 바꾸려 한다. 그는 NGT 작물이 “소비자에게 직접 도달해 모든 사람이 마침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한다. 페어와이즈 제품은 ‘더 건강한’ 식단을 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소비자에게 ‘피부에 와닿는’ 경제적 이익을 줄 것이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띨지 이 회사의 온실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다. 페어와이즈 연구팀이 갈색겨자의 잎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갈색겨자잎은 영양가가 풍부하지만 고추냉이와 비슷할 정도로 맵다. 접시 위에 놓인 변형되지 않은 잎사귀 맛을 한번 보면, 잎에 포함된 겨자유 때문에 금세 눈물이 솟는다. 이에 비해 그 옆에 놓인 페어와이즈가 개발한 겨자잎은 맛이 부드럽다.
“우리 연구팀이 겨자잎의 매운맛을 제거했다.” 애덤스는 전문가들이 유전자가위를 사용해 17개 유전자 기능을 중지시켰는데 기존 육종법으로는 몇 년이 걸렸을 변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맛이 부드러워진 이 겨자잎이 시장에서 히트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겨자잎은 2024년 말에 ‘컨셔스 그린스’(Conscious Greens)라는 브랜드로 최초로 문을 여는 이 회사의 가게들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페어와이즈 연구소에서는 가시가 없는 덩굴에서 자라는 씨 없는 흙딸기가 생산된다. 유전자 편집자들은 씨 없는 앵두도 만들 계획이다. 페어와이즈는 바이엘과 협력해 줄기가 짧아진 옥수수도 개발했는데 기존 옥수수보다 수확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페어와이즈 연구원들은 옥수수자루에 달리는 알갱이 수도 개당 20% 정도 늘리는 데 성공했다. 애덤스는 이로써 “토지나 물을 더 사용하지 않고도 수확량이 증가할 것”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맞춤형 식품’. 농업·식품 업계가 소비자에게 약속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최적화된’ 농작물이 독일 시장에도 곧 모습을 보일까? 유럽의회 의원인 마르틴 호이슬링은 이런 작물을 “디자인한 작물”이라고 부른다.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키 작은 옥수수, 매운맛을 제거한 겨자잎, 혈압 강하 효과가 있는 토마토….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냐?”고 호이슬링 의원은 묻는다.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등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제 기여할 수 있는 유전자변형 품종이 시장에 나온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업계의 약속은 전부 “자기들의 이익만을 염두에 둔 희망적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역설한다.
독일 녹색당원인 호이슬링은 소비자의 선택 자유도 우려한다. EU 집행위원회는 NGT 작물이 함유된 제품에는 이 사실을 알리는 라벨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제안했다. 이는 이미 식품 소매업체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식품업계 대표들(슈퍼마켓 체인 레베(REWE)와 스파(SPAR)도 여기 들어 있다)은 공개서한을 내어 많은 소비자가 유전자변형에 “매우 반대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소비자에게 완전한 선택의 자유를 계속 부여하고 싶다.” 따라서 EU 규정은 공급망 전 과정에 걸쳐 NGT의 “철저한 표기와 빈틈없는 추적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기농 분야도 근심에 차 있기는 마찬가지다. 독일에서는 매년 150억유로 이상의 유기농 제품이 거래된다. 그러나 NGT 종자가 모든 곳에서 유통된다면 더는 유럽에서 무농약 농업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독일 ‘유기농식품 생산자연맹’ 등은 우려한다.
종자 업계의 의견은 정반대편에 있다. 바이엘의 수석로비스트 마티아스 베르닝거는 “우리는 당연히 유전자변형 종자 여부를 표시할 것”이라면서 유기농 업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은 유기농업에 위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회다.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식물이 있다면, 유기농업 농부들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황산구리 같은 살충제를 더 적게 쓸 테니 말이다.”
녹색당원이기도 한 베르닝거는 유기농 업계가 어느 지점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들의 일관성 없는 행태를 비난한다. 예를 들어 재배작물의 배아에 화학물질을 주입하면, 돌연변이 생성으로 육종의 새로운 유전적 변이가 이뤄진다. 이 돌연변이 유발은 수십 년 동안 식물 육종에 사용한 방법이다.
유럽사법재판소도 2018년 판결에서 이 돌연변이 유발 절차를 유전공학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과거 수십 년 동안 사용됐다는 이유로 엄격한 규제에서는 제외했는데, 유기농업 부문에도 이 예외가 적용된다. “여기에 이중 잣대가 쓰인다”고 베르닝거는 지적했다. “같은 돌연변이 유발인데 왜 유기농업에서는 괜찮고, 유전자 편집을 하면 안 된다는 거냐. 왜 그런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
 

▲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전자변형식품(GMO)과 달리 이른바 ‘크리스퍼(유전자가위) 작물’의 시장 판매를 허용하려 한다. 2014년 3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민들이 GMO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REUTERS

양 진영 모두 발언 수위 낮춰야
유럽에서 벌어진 로비 전쟁이 어떤 결말을 낳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명확히 밝혀져야 할 의문점이 몇 가지 남았는데, 그것은 결국 돈에 관한 일들이다. 예를 들어 바이엘은 2022년 농업 분야의 연구·개발에 약 26억유로(약 3조7천억원)를 지출했다. 따라서 업계는 당연히 바이엘이 이 돈으로 일부 유전자 기술과 종자에 관한 특허를 취득했으리라고 추정한다. 비판자들은 그렇게 되면 농부들이 바이엘에 새로운 의존관계로 편입되고 소규모 종자 생산업체들은 축출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다. 또한 기업이야 전세계 식량 문제에 도움을 주겠다는 진심 어린 주장을 한다고 쳐도, 누구보다도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와 북반구 저위도의 개발도상국들)의 농부들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기후변화 영향을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받는 이 지역을 위해 새 품종을 개발한다는 게 전혀 효과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양쪽이 모두 수사적 발언 수위를 좀 낮추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를테면 업계는 두 번째 유전공학 혁명의 미래에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지 않는 게 좋다. 반면에 유전공학 비판론자는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뒤섞어 말하기를 중지해야 한다. “크리스퍼는 식물 육종에 필요한 강력한 새 도구다”라고 페어와이즈의 사장인 애덤스는 말한다. 그 이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이하도 아니다.

ⓒ Der Spiegel 2024년 제1호
Superpflanze oder Öko-Albtraum?
번역 장현숙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