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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우리만의 콘텐츠’ 만들고 싶었다
[김창금의 스포츠 비즈니스] 장상진 와우매니지먼트 대표 겸 PBA 부총재 인터뷰
[167호] 2024년 03월 01일 (금) 김창금 kimck@hani.co.kr

 

김창금 <한겨레> 선임기자
 

   
▲ 프로당구 피비에이(PBA) 산파역을 맡은 장상진 와우매니지먼트 대표 겸 PBA 부총재는 ‘전세계에 없는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겨레>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겨레 김창금 선임기자


스포츠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기록만이 아니다. 스타마케팅을 하는 스포츠 에이전시 시장도 비슷하다. 유망주와 계약하고 그를 관리하고 성공시키면 ‘잭팟’이 터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몸값이 올라간 선수는 떠나기 일쑤다. 중계권 확보로 대박을 쳐도 5~10년뿐이다. 새로운 입찰 시점엔 경쟁 구도가 달라진다. 금액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재입찰은 불가능하다. 고객이나 콘텐츠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전력 전심을 다하지만, 높이 뜰수록 오히려 재계약은 어려워진다. 에이전시의 딜레마다.
악순환을 탈피하는 활로는 없을까? 이 질문 속에 전례 없는 도전이 시작됐고, 한국에서 기원한 스포츠 콘텐츠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인 프로당구 피비에이(PBA)가 탄생했다. 산파역을 맡은 장상진 와우매니지먼트 대표 겸 PBA 부총재는 “남의 콘텐츠만 만들어줘서는 우리 회사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만의 콘텐츠가 필요했다. 세계 유일의 ‘스리(3)쿠션’ 프로리그인 PBA는 콘텐츠 IP를 에이전시가 확보한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3쿠션 당구 프로리그
2019년 PBA 출범 이후 5년간의 성과는 돋보인다. PBA가 등장한 뒤 당구의 이미지는 과거와 달리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바뀌었다. 비주류 스포츠, 심지어 ‘잡기’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정상 스포츠’로 자리를 굳혔다. 시즌 개인 투어 10개 대회, 단체전인 팀리그 9개팀 창단으로 당구인들은 사상 처음으로 ‘직업선수’(프로페셔널)가 됐다.
장상진 대표는 “유망한 선수가 프로 무대에 집중하기 위해 당구장 알바를 그만뒀다고 말할 때, 당구장 사장님들이 PBA가 있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업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마케팅은 과학이고, 심리학이며 때로 예술이다. 시장잠재력이 큰 당구의 프로화는 이전에도 몇 차례 시도됐지만 PBA만이 뿌리를 내렸다. 장상진 대표는 조사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프로당구의 성공 조건으로 경기장, 선수, 미디어, 스폰서, 마케팅회사 등 5가지를 뽑아냈다고 밝혔다. 당구장이 전국에 2만여 개 있고, 한국은 3쿠션 부문에서 세계적인 강국이다. 화려한 플레이가 이뤄지고, 화면에 스폰서 로고가 집중 노출되는 등 미디어와 스폰서 친화적인 종목이다.
초기 8개 구단을 동반자라는 인식으로 하나로 묶어낸 바탕에는 ‘영업의 귀재’인 장상진 대표의 친화력이 있다. 그는 “에이전시와 후원사의 관계는 제로섬이 아닌 ‘윈윈’이다. 다 같이 잘될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했고, PBA는 5년간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희진 피델리티매니지먼트그룹(FMG) 대표, 김영진 PBA 전무 등 내로라하는 전문가도 합류했다.
룰 변경부터 경기장 세팅, 스포츠 복장 도입까지 창조적 파괴가 이뤄졌다. ‘색깔’ 마케팅도 그 가운데 하나다. 장 대표는 “크라운해태는 자주색, 블루원리조트는 청색, TS샴푸는 녹색, 웰컴저축은행은 적색 등 팀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다. 후원사 주최 대회에서는 당구 테이블 천의 색깔까지 맞춰서 진행했다. 처음엔 직원들이 반발했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정교하고 세심한 브랜드 강화 작업에 시장은 반응했다. 개인전, 단체전 등 PBA 경기의 유튜브 시청자 접속은 1만~2만 명에 이른다. 빅경기에서는 국외 접속자를 포함하면 5만 명까지 치솟을 때도 있다. 와우매니지먼트가 보유한 빌리어즈TV와 골프&PBA를 비롯해 케이블채널까지 5개 방송사의 중계가 이어지면서, 스포츠 종목별 시청자 도달률에서 당구는 상위권에 자리를 잡았다. 연간 80억~90억원, 5년간 430억원이 들어간 스포츠 문화 상품의 가성비는 어떤 종목보다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 대표는 “PBA의 브랜드 가치는 초기에 제로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고유한 콘텐츠 IP를 보유해 사업 확장도 가능하다. 3쿠션 인기가 높은 베트남에서 2024년 투어 대회를 조직하는 것도 한 사례다. 인구 규모가 큰데다 국내 금융·제조 기업도 많이 진출해 있어, 베트남은 PBA 세계화 전략의 시험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2024년 하반기에 베트남 투어가 열린다. 국내 선수가 참여할 기회가 늘고, 장기적으로 PBA 성장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PBA 브랜드는 열악한 국내 마이너 스포츠 종목의 사업모델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중소 아마추어 종목 단체는 자체 예산이나 기획력 부족으로 프로화를 꿈꾸기 어렵다. 프로화를 시도하더라도 방송을 비롯해 필수 구성 자원을 결합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장 대표는 “마이너 종목이라고 하지만 프로화가 안 돼서 그렇다. 기존 프로 종목 못지않게 성장할 수 있는 종목은 있다”고 주장한다.

제주 해녀도 프로화
기발한 발상으로 평생 고객(클라이언트)의 이익을 대변해온 그의 다음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제주 해녀 프로화인 점도 눈길을 끈다. 세계문화유산인 제주 해녀문화를 떠받치는 해녀를 마을별 팀으로 조직해 경쟁 이벤트를 만드는 등 리그처럼 운영한다는 것이다. 해녀 수가 갈수록 주는 상황에서 고정급을 받는 일자리를 만드는 효과도 있다. 장상진 대표는 “마을마다 약 15명씩 팀을 만들고, 10개팀 정도가 리그를 구성하면 해산물 채취 경쟁을 상품화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관심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에게 삶의 철칙은 ‘같이 살자’이다. 골프대회를 주관할 때 많은 하청·외주 업체가 입찰에 들어오는데, 그는 계약을 이행하면 관계를 지속한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또다시 경쟁입찰을 하지 않는다. 10대 소녀 박인비와 인연을 맺은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도전 과정에서도 치밀하게 지원하고, 은퇴 뒤 활동 설계까지 큰 그림 속에 관리하는 것은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는 윈윈 자세에서 나온다.
사업 감각과 긍정적 마인드, 멀티태스킹 능력,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절박감은 장 대표를 움직인 동력원이다. 독자적인 스포츠 콘텐츠 IP를 확보한 것은 그의 전략가적 면모를 보여준다. 대기업 지배 세상에서 자본력 한계 등 열악한 처지에 놓인 국내 대행사들에 PBA 성공 사례는 한번쯤 생각할 거리를 준다. “전세계에 없는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자”는 꿈이 실제 이뤄졌기 때문이다.

* 1993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했고, 1999년부터 스포츠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스포츠저널리즘 연구로 한국체육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저서 <한국 스포츠 미디어 담론구조의 변화>(글누림)는 2022년 세종도서로 선정됐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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