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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성불평등 시대 에코페미니즘에 길을 묻다
[ENVIRONMENT] 프랑스에 부는 에코페미니즘 바람
[166호] 2024년 02월 01일 (목) 나이리 나아페티앙 economyinsight@hani.co.kr

 
에코페미니즘은 환경과 여성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자연과 여성에 대한 지배가 남성우월론적 체계를 낳고 그것이 환경파괴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로 여기며 사회·경제 불평등에 주목한다. 그 결과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그중 많은 공동체는 자급자족 생태주의를 실천한다. 에코페미니즘이 탄생한 배경과 프랑스 에코페미니즘이 발전한 과정을 알아본다.


나이리 나아페티앙 Naïri Nahapétia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린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 에펠탑 부근에서 여성환경운동가들이 시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에코페미니즘은 이때를 기점으로 관심이 급속도로 커졌다. REUTERS


에코페미니즘에 관해 쏟아지는 글을 보면 에코페미니즘이 순풍을 맞은 듯하다.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사람이 ‘나는 에코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다. 인도의 작가이자 활동가 반다나 시바와 프랑스의 환경주의자 하원의원 상드린 루소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단체가 에코페미니즘을 표방한다.
에코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에코페미니즘은 “하나로 결합한 흐름”이 아니라 “성운, 은하”라고 책 <에코페미니스트 되기>를 쓴 프랑스 철학자 잔 뷔르가르 구탈은 설명한다. 그래서 에코페미니즘‘들’이라고 복수로 얘기해야 한다.
에코페미니즘은 1970년대 탄생한 지식운동이자 실천운동이다. 에코페미니즘 개념을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은 이 운동의 선구자 중 하나인 프랑수아즈 도본이다. 그는 1974년 책 <페미니즘, 아니면 죽음>에서 신석기시대 인간의 농지 지배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지배 사이에 유사성을 발견한다. 자연과 여성에 대한 지배가 ‘남성우월론적’ 생산주의 체계를 낳고, 그 결과가 환경파괴로 이어졌다고 얘기한다. 도본은 새로운 체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평등하고 자연친화적이고 탈성장하는 체계다.

영미권에서 출발
당시 도본의 책은 프랑스에서 별 관심을 얻지 못했다. 프랑스 북서부 피니스테르주 플로고프 원전 설치 반대운동 등 1975~1981년 반핵운동이 주로 여성을 중심으로 벌어졌지만, 그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에코페미니즘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는,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보편주의 페미니즘이 주류 사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보편주의 페미니즘은 에코페미니즘이 여성성을 본질화한다고 봤다. 잔 뷔르가르 구탈은 “시몬 보부아르(20세기 프랑스 실존주의 소설가·사상가) 이후 페미니즘이 세계관과 여성관을 해체하려 노력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증명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에코페미니즘은 영미권 나라에서 크게 발전했다. 근본적 투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1981년 잉글랜드 남부 버크셔 그린햄커먼 공군기지에서 핵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이 벌어졌다. 여성 수천 명이 모여 팔짱을 끼고 기지 철조망을 에워쌌다. 운동은 며칠 이어졌다. 이 운동을 계기로 여성캠프가 결성됐다. 그린햄커먼 기지에서 핵미사일이 마지막으로 발사된 건 1991년이었다. 하지만 캠프는 2000년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부지에 시위 기념물을 세워도 좋다는 승인을 얻은 해였다.
미국에서도 여성들은 활발하게 뭉쳤다. 함께 모여 반군사주의, 반핵 행진에 나서고 농업공동체에 참여했다.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에서 원전 사고가 터졌다. 이를 본 여성들은 1980년 11월 ‘여성과 지구상의 삶’(Woman and Life on Earth)을 설립해, ‘여성 펜타곤(미국 국방부 청사)’ 행동을 벌였다. 워싱턴시 근교의 국방부 본부를 에워싸는 시위였다. 단체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레즈비언 공동체도 동성애를 혐오하는 세상에서 벗어나려 1970~1980년대 오리건주에서 자리잡고 활동을 시작했다.
에코페미니즘 운동은 남쪽 나라에서도 이어졌다. 산림파괴 반대운동이 대표적이다. 1972년 인도 레니마을 여성들은 벌목을 저지하려 나무 주위로 ‘인간 사슬’을 만들었다. 이 활동은 ‘칩코(Chipko)운동’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칩코는 힌두어로 ‘껴안다’라는 뜻이다. 반다나 시바는 1974년 칩코운동에 참여하면서 에코페미니스즘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칩코운동은 이후 수많은 성공을 거뒀다. 브라질 농민인권단체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이 생명다양성을 지키려 여성의 전통 노동을 지지하는 행동에도 에코페미니즘 메시지가 담겼다.

   
▲ 원전 설치 반대운동 등 1970~1980년대 반핵운동은 주로 여성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파라과이의 에코페미니즘 운동가들이 아순시온 시내에서 핵무기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2015년 찾아온 변화
몇 년 전부터 프랑스에서 에코페미니즘을 향한 관심이 커졌다. 구탈은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린 2015년이 변곡점이었다고 말한다. 시대의 징조일까. 같은 해 출판사 캉부라키스가 <마녀들>이라는 제목의 페미니즘 총서를 발간했다. 이듬해에는 철학자 에밀리 아슈의 기획으로 에코페미니즘 문집 <리클레임>을 냈다. 2019년 9월에는 반핵 페미니스트 단체 ‘원자폭탄들’이 프랑스 동부 뷔르에서 핵폐기물 매장에 반대하는 행동을 벌였다. 축제 분위기로 진행된 이 행사에는 여성, 인터섹스(Intersex·간성,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성 혹은 잠재성을 모두 갖고 태어난 사람), 논바이너리(Non-binary·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가진 사람), 트랜스젠더(성전환자)가 참여했다.
1970~1980년대 에코페미니즘 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공동체도 여럿 생겨나고 있다. 존재 자체로 자본주의, 가부장제, 이성애 규범 모델을 거부한다. 그중 많은 공동체는 자급자족 생태주의를 실천한다. 그것이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삶을 거의 송두리째 바꿨다”. 아이를 기르는 일부터 짝을 찾고 음식을 먹고 자신을 돌보고 정치 참여를 생각하는 일까지 살아가는 방식이 전부 변했다고 프랑스 사회학자 준비에브 프뤼보스트는 책 <정치적 일상>에서 분석한다.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주 르미네르부아에서 활동하는 한 에코페미니즘 단체는 안주하지 않는 삶과 급진적 행동주의를 표방한다. 세 활동가 나탈리, 카틀린, 카린은 가부장제 폐지, 성역할, 페미니즘 역사를 둘러싼 논의를 오래전부터 이끌어왔다. 여기서, 지금 당장 투쟁을 계속하는 것이 목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개개인의 사생활-정치생활 공간에서 싸운다.
이 단체는 2023년 7월 ‘지식 되찾기’ 세미나를 열고 아질라네 마을의 옛 수도원을 새로 고치는 데 힘을 모았다. 주민협회가 관리하던 수도원으로, 단체 회원들은 매달 그곳에서 모였다. 리모델링 공사에는 여성 26명이 참여했다. 구탈도 그중 하나다. 그는 “1층에서 작업할 때 창밖으로 마을 남자들이 지나다니는 게 보인다. 우리에게 ‘공사를 못 끝낼 거다’라고 하거나 충고하는 남자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다. 우리에게 행동하는 힘이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단체는 옛 기술의 가치를 되살리고 자본주의에서 해방하려 노력한다. 2023년 7월 단체 회원들은 모직물 아틀리에(작업교실)를 열었다. 모직물 역사에 관한 콘퍼런스를 열어, 모직이 점차 합성섬유로 대체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또, 양농장을 운영하는 마을 주민에게 양털을 받아 함께 카펫을 짰다. (몸 돌보기, 춤, 호신술 등) 몸으로 하는 활동 교실뿐 아니라 창작·지식 활동을 하는 수업도 연다. “여러 대중교육 방식을 많이 시도한다”고 카트린은 설명했다. 단체 안에서 회원들은 철저히 동등한 관계를 맺는다.

마녀 혹은 마르크스주의자
프랑스 남부 나르본시 말베지 산업단지에 있는 오라노 말베지 우라늄 가공공장에서 여성노동자 채용공고를 내자, 단체는 공장 견학날에 원전 위험성을 알리는 시위를 벌였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들 중에는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카트린) 단체는 오라노 공장의 ‘페미니즘 워싱’(위장 페미니즘)을 고발하는 토론회도 열었다.
도시에도 에코페미니스트라고 외치는 ‘마녀들’이 무수히 많다. 그들이 하는 활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영성 탐구’다. 타로점을 보고 요가를 수련한다. 이를 두고 에코페미니즘을 가장한 소비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2020년 독일 최대 언론사 ‘후베르트 부르다 미디어’가 창간한 잡지 <뉴 위치>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반들반들한 광택지에 천연재료 상품, 요가수업, 코칭 등 추천 목록이 인쇄됐다. 프랑스 사회학자 안나 베라르가 “신자유주의적 행복 탐구”라고 정의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고 구탈은 강조한다. 미국인 에코페미니스트 스타호크 같은 ‘마녀들’은 “채집이나 약초 활용 등 옛 기술 익히기”에도 관심이 많다. 마녀들에게 “합리주의와 과학주의는 가부장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에코페미니즘 활동은 수많은 책에서 영감을 얻어 발전했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와 모나 숄레의 <마녀>가 대표적이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기술과 권력관계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2023년 작고한 독일 에코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마리아 미즈는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로 여기며 자본주의 가부장제가 낳은 경제불평등에 주목했다. 수많은 에코페미니즘 공동체가 무정부주의(아나키즘) 전통을 따른다. 그런 단체는 “정당을 비롯한 제도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구탈은 설명한다.
그래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본질주의 흔적이 있다. 2015년 창간한 통합생태(Integral Ecology) 잡지 <리미트>가 대표적이다. 잡지를 창간한 가톨릭 청년의 일부는 보수단체 ‘모두를 위한 시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외제니 바스티에를 비롯한 대표 활동가들은 2017년 10월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의 페미니즘은 에코페미니즘”이라고 밝혔다. 덕분에 프랑수아즈 도본이 다시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에코페미니즘을 표방하는 환경단체 ‘제로 웨이스트 프랑스’의 대변인 샤를로트 술라리는 말했다. “천기저귀에서 여성 예찬까지, 여성이 ‘타고난’ 환경보호자면서 돌봄노동 적임자라는 탈정치 생태주의가 여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그런 일을 막으려면 강력한 의지가 담긴 공공정책이 필요하다. 환경과 여권을 위해.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3년 12월호(제442호)
Que veut dire être écoféministe?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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