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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미디어 왕국에서 동생 제치고 후계자 낙점
[PEOPLE] 래클런 머독- ① 루퍼트 머독의 마지막 희망
[165호] 2024년 01월 01일 (월) 마르크 피츠케 economyinsight@hani.co.kr

 
한때 루퍼트 머독은 큰아들 래클런에게 굴욕감을 안기기도 했지만,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언론기업을 그에게 물려주려 한다. 이는 한 왕조의 종말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마르크 피츠케 Marc Pitzke <슈피겔> 기자
 

   
▲ 미디어 제국을 물려받은 래클런 머독은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알려졌다. REUTERS

잔해는 아직도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2001년 9월11일 테러가 일어나고 며칠 뒤, 세 남자가 통제된 로어맨해튼(맨해튼 남쪽 지역) 죽음의 지대로 들어섰다. 세 남자는 루퍼트 머독, 그의 큰아들 래클런, 머독 소유인 <뉴욕포스트>의 편집장 콜 앨런이었다. 그들은 테러가 일어난 중심지에서 한 시간 이상을 보냈고, 잿더미와 잔해를 타고 넘었다. 이후 그들은 북쪽으로 1마일(약 1.6㎞) 떨어진, 소호에 있는 머독의 집 부엌에 앉아 보드카에 취했다. 앨런은 후일 “끔찍한 것 이상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이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라고 떠올렸다.
세계무역센터 폐허 현장을 방문한 일은 머독 가족과 그들 소유 언론사에 여러모로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이들은 9·11 테러 이후 정치 격변기를 이용해 초창기 <폭스뉴스>를 우파 보수주의의 사이비 애국주의 선전 기관으로 만들었다. <폭스뉴스>가 없었다면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영국에서 오랫동안 악명을 떨쳤던 머독 가문은 미국에서도 가장 강력한 미디어 왕국으로 자리잡았다.
9·11 테러는 다음 머독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바로 세계무역센터의 폐허 속에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던 아들 래클런 머독(Lachlan Murdoch·53)이 주인공이다. 머독의 전기작가인 패디 매닝은 “이 순간은 <폭스뉴스>의 부상뿐만 아니라 래클런 머독의 부상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래클런 머독의 부상
당시 30살이던 래클런은 다른 다섯 형제보다 아버지와 제일 가까웠다. 가족끼리 의견이 충돌하고 서로에게 등 돌린 적이 있었음에도, 대중은 머독의 자녀 중 누가 나이 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언론 왕국의 수장에 오를지 추측해보고는 했다. 92살이 된 루퍼트는 2023년 9월 말이 돼서야 장남 래클런에게 물려주겠다고 결정했다.
래클런은 최근까지 머독 가문의 TV 기업인 <폭스뉴스> 경영을 맡고 있었다. 2023년 11월15일, 그는 뉴스코퍼레이션(뉴스코프)과 더불어 미디어 제국의 나머지 부분을 공식적으로 넘겨받았다. 지난 회계연도에 250억달러 매출을 올린 미디어 제국 전체에는 <폭스뉴스>와 <뉴욕포스트> 외에 <월스트리트저널>, 영국의 <더타임스>, 타블로이드지 <선>, 출판사 하퍼콜린스, 29개의 미국 지역 방송사, 그리고 가족의 옛 고향인 호주에서 가장 큰 신문사가 속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언론 가문의 세대교체는 미국의 정치적 전환점과 맞물려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치열한 차기 대선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우파의 선동, 허위 정보, 여론조작의 영향도 점점 커지고 있다. 따라서 차세대 머독이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그가 자신의 방송사·신문사와 관련해 어떤 계획이 있는지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 중요한 문제다.
“루퍼트 머독은 마지막 거물이었다”고 전기작가인 매닝은 말한다. 정치적이든, 회사 경영이든, 혼자서 모든 것을 통제하던 마지막 인물이라는 것이다. 래클런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아들”이었는데 혼자 힘으로 투자사업을 해서 막대한 자산을 모으기도 했다. 현재 그는 애써봤자 별로 인정도 못 받는 임무를 맡은 것인데, 그가 정말 이 자리(후계자)를 원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 자리를 두고 오랫동안 한 살 아래 동생 제임스와 싸워왔는데도 말이다.
머독의 ‘악의 제국’은 무너지고 있다. 그동안 지었던 원죄가 업보로 돌아오는 듯하다. 정치적 극단주의는 독자를 떨어져나가게 하고, 디지털화는 사업모델을 위협하며, 법정 싸움은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창립자와의 이별은 모든 것을 하나로 단결시켰던 정신도 사라지게 할 것이다.
 

   
▲ 루퍼트 머독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언론기업을 그의 큰아들 래클런 머독에게 물려주려 한다. 이는 한 왕조의 종말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REUTERS


수수께끼 같은 인물
탐사작가이자 머독 전문가인 마이클 울프는 이제 막 취임한 래클런을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한다. 울프는 래클런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래클런은 거의 인터뷰하지 않는다. 매닝도 인터뷰하지 못했다. 2022년 발간한 344쪽 분량의 래클런 전기 <후계자>(The Successor)는 주인공과의 대화 없이 출판됐다. 새로 등장한 강력한 머독에 대해 사람들은 그저 피상적으로만 짐작할 뿐이다. 그의 문신, 과거에 했던 뾰족뾰족한 헤어스타일, 오랜 친구들(니콜 키드먼, 톰 크루즈, 배즈 루어먼)을 통해서 말이다. 래클런은 예의 바르고 모험을 즐기는 성격으로 알려졌고, 파티는 좋아하지 않으며 1억5천만달러짜리 슈퍼 요트를 타고 여행하는 것을 더 즐긴다고 한다.
래클런은 과연 머독 가문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는 종말의 시작일까? 가문을 지켜야 하는 젊은 세대는 오래전부터 서로 싸우고만 있다. 루퍼트가 죽는다면, 회사 지분은 서로 싸우는 자녀들에게 분배될 것이다. 그들이 래클런을 수장 자리에 그냥 놔둘지는 알 수 없다. 이는 반은 허구인, 미국 HBO 드라마 <석세션>(Succession)의 내용이기도 하다.
2023년 5월 비극으로 막을 내린 이 풍자극은 나이 든 미디어 거물과 그의 탐욕스러운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다. 머독 가문은 유사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퍼트는 래클런의 새어머니이자 네 번째 전처인 제리 홀에게 전자우편으로 이혼을 통보한 뒤, 이혼합의서에 따라 제리 홀이 <석세션> 제작팀에 실제 머독의 생활과 관련한 아이디어 제공을 금지했다고 한다.
<석세션>은 주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드라마에서 래클런은 적어도 지리적으로 이 두 곳과 거리를 두고 싶어 했다. 영국 윔블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그는 2021년부터 지구 반대편인 호주 시드니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루퍼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래클런은 평온하게 항해하고 작살로 물고기를 잡으며 등반하고 가와사키 오토바이를 타고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다.
“호주는 래클런이 가장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라고 래클런 인생의 ‘양면성’을 지적해온 볼프는 말했다. 아버지나 아버지 회사와 가까워지려 노력하면서도, 사업적으로나 공간적으로는 거리를 두려는 것이 양면성이다. 그는 시드니 근처의 고급 빌라부터 로스앤젤레스의 1억5천만달러짜리 부동산, 맨해튼 미드타운의 아메리카스애비뉴 빌딩에 있는 회사 본사에 이르기까지 대륙을 오가며 폭스의 사업을 관리해왔다. 그는 종종 시차 때문에 한밤중에 전화한다.
요트, 개인 제트기, 저택 등 머독가의 자산은 170억달러(약 23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 (호화스로운) 자산은 머독의 언론사 대부분이 만들어내는 공포 포퓰리즘이 건설노동자, 철강노동자, 택시기사들에게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아버지처럼 래클런은 자신의 부가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한다. 34억달러로 추정되는 자산을 가진 그는 미국과 호주에서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래클런은 셔츠 차림으로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1976년 래클런이 5살이었을 때, 아버지 루퍼트는 타블로이드지 <뉴욕포스트>를 사들였다. 래클런은 아침에 막 인쇄된 신문의 배달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종종 그는 아버지와 아침을 먹거나 신문을 읽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밤에는 루퍼트가 유명한 저녁 식사 손님들과 전략을 짜는 것을 듣곤 했다.
래클런은 뉴욕의 보수적인 ‘트리니티 사립학교’에 다녔고, 명문 프린스턴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의 졸업 논문은 이마누엘 칸트에 관한 것으로 ‘자유와 도덕’ 사이의 대립을 다뤘다.
 

   
▲ 루퍼트 머독이 자신의 미디어 제국에서 은퇴하고 장남에게 물려준다고 발표한 2023년 9월21일, 미국 뉴욕의 뉴스코퍼레이션 본사 건물 앞에서 방송사들이 이 소식을 중계하고 있다. REUTERS


아버지와 불화
그의 교수였던 비어트리스 롱게스는 2019년 인터뷰에서 “래클런은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미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롱게스는 많은 학생이 나중에 “경제적으로 최고 위치에 도달하면 학창 시절의 고귀한 생각을 잊어버린다”고 덧붙였다. 롱게스는 <슈피겔> 인터뷰에서 “래클런에 대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그 생각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래클런은 시드니에서 일을 시작했고, 뉴욕에서 뉴스코프의 상임이사가 됐다. 그의 지원으로 <뉴욕포스트>는 시끄럽고 선정적이지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신문이 됐다. 이에 비하면, 더 진보적인 경쟁사 <뉴욕데일리뉴스>는 기도책처럼 느껴졌다. 래클런은 <폭스뉴스>의 성장을 도왔고, 후계자로서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 당시 동생 제임스는 주로 음악 레이블과 아시아 지역의 TV 위성 사업에 집중했고,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런던에서 TV 및 영화 제작사 샤인(Shine)을 설립했다.
아버지 루퍼트는 자신이 지명한 후계자를 깎아내리기를 좋아했다. 공식 석상에서든 사생활에서든 말이다. 아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고 래클런은 탐사작가인 볼프에게 말하기도 했다. 이런 말은 <석세션>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래클런은 아버지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 뒤 사임했다. 루퍼트가 아들 편을 들지 않고, 자꾸만 뉴스코프와 <폭스뉴스>의 괴팍한 최고경영자인 피터 처닌과 로저 에일스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2005년 래클런은 호주로 돌아가 머독가와 관련 없는 투자회사를 세웠다. 이 불화는 몇 년간 계속됐다.
이렇게 되자 정리된 듯 보였던 후계 문제가 갑자기 혼란에 빠졌다. 동생 제임스가 갑작스레 일순위가 됐다. 하지만 진보적 성향과 기후보호 및 민주당을 지지하는 태도 때문에 그는 회사 문화와 맞지 않아 보였다. 제임스는 우파 타블로이드 신문인 <뉴스오브더월드>를 비롯한 영국 언론을 맡아 시험대에 올랐다. 당시 <뉴스오브더월드>는 대규모 뇌물 수수와 해킹 스캔들에 휘말려 제임스가 구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노동당 의원은 “머독은 자신이 범죄조직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역사상 최초의 마피아 보스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뉴스오브더월드>는 폐간됐고, 제임스가 후계자가 될 전망은 흐려졌다.
기울어가는 회사를 세우기 위해 제임스 대신 래클런이 ‘비상임 공동회장’으로 미국에 돌아왔다. 화가 나서 떠난 지 9년 만이었다. 루퍼트가 돌아와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알려졌다. 매닝은 이것을 <석세션>의 한 장면을 들어 표현했다. “나는 위협적인 인물이 필요해. 양심이라곤 없는 못된 놈 말이야. 바로 네가 필요하다”라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탕자가 돌아왔다
루퍼트는 제임스에 대한 언급 없이 “래클런은 뉴스코프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제임스는 할리우드로 돌아가 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21세기폭스를 맡았다. 언론들은 ‘탕자(래클런)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기사 제목을 뽑았다.
2018년 루퍼트는 21세기폭스를 디즈니에 710억달러에 매각했다. 이는 수익성이 높은 거래였지만 가족 내부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때까지 21세기폭스 경영을 맡은 제임스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2020년에는 공식적으로 “편집 방향에 대한 의견 불일치”를 이유로 뉴스코프에서 유지하던 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래클런의 앞을 막는 것은 없어졌지만, 그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유산은 절반으로 줄었고, <폭스뉴스>의 선정적인 과잉 보도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민주주의를 향한 위협이 커지고 있다.

ⓒ Der Spiegel 2023년 제48호
Vaters letzte Hoffnung
번역 이상익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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