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키셀 Lukas Kissel 울리케 크뇌펠 Ulrike Knöfel <슈피겔> 기자
 

▲ 스페인 바르셀로나 일부 지역에서는 주택 블록을 3×3으로 결합한 ‘슈퍼블록’을 만들어 블록 안에서는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교차로를 놀이터, 녹지공간, 광장으로 만들었다. 바르셀로나 시정부 누리집

도시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의 사례를 찾을 때, 도시학자들은 주로 독일 밖에 있는 도시를 떠올린다. 예를 들어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있다. 바르셀로나는 자동차가 많던 도시가 얼마나 쉽게 자동차가 적은 더 인간적인 도시로 변모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동차가 많았을 때 그곳의 고통은 컸다. 유난히 많은 자동차가 유난히 녹지가 적은 도시를 달리면서 유난히 많은 배기가스를 내뿜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의 산트안토니 시장 인근에서 살바도르 루에다(70)와 만났다. 회색 수염을 기르고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루에다는 1980년대 시의회에서 일했다. 당시 그는 소음 공해 연구를 했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호평받는 ‘슈퍼블록’(Superblock)이라는 획기적인 구상을 개발했다.
카탈루냐어로 ‘수페릴’(Superille)이라 부르는 이 최소 구역단위는 주택 블록을 3×3으로 결합해 구성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면 이 구역 내부가 교통제한 지대가 된다. 루에다는 엄지와 검지로 정사각형을 만들어 보였다. 차량은 반드시 슈퍼블록 외곽의 도로를 이용해 우회해야 하고, 동시에 외곽 도로에서는 버스 운행을 더 자주 해 차량 정체를 방지한다. 슈퍼블록 내부는 일방통행 도로로 바뀌며, 자동차와 배달차는 시속 10㎞ 또는 20㎞로만 주행할 수 있다. 이전에 교차로였던 곳은 놀이터, 녹지공간, 광장으로 만든다.
 

▲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시장은 2014년 취임 이후 도시의‘생태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달고 시장이 무인 대여 공유자전거 벨리브(Velib)를 타고 있다. REUTERS

슈퍼블록, 획기적 구상
바르셀로나는 발전과 정체를 동시에 겪는 곳이기도 하다. 루에다에 따르면 100㎢ 부지에 500개 슈퍼블록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도시에서 5곳만 슈퍼블록이 실현됐다. 에이샴플레 지구에도 새로운 녹색 축과 광장이 추가될 예정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슈퍼블록 설치가 지지부진하지만) 다른 나라의 도시들은 루에다의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슈퍼그래츨’(Supergrätzl), 콜롬비아 보고타의 ‘바리오스 비탈레스’(Barrios Vitales),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파크 블록’(Park Block) 등이 그 예다. 베를린도 이에 발맞춰 여러 지역을 재설계하려 한다.
루에다는 여러 도시에서 그의 아이디어를 따라 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한 블록의 최대 가장자리 길이를 400m로 하라고 그는 조언한다. “그래야만 블록을 걸어 한 바퀴 도는 시간이 차로 한 바퀴 도는 시간과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이날 슈퍼블록의 아버지는 우리를 그의 도시 낙원 중 한 곳으로 데려가며 꽤 만족스러워했다. 심지어 한 오토바이가 표지를 무시하고 불법으로 광장을 가로지를 때조차 그는 웃음으로 넘겼다.
루에다가 ‘생태학적 도시주의’라고 이르는 콘셉트에는 ‘15분 거리의 도시’라는 개념이 들어 있다. 자기가 사는 블록 안에서 사람에게 필요하고 삶을 가치 있게 하는 모든 것, 즉 상가나 주점, 카페, 운동시설 등에 걸어서 쉽게 갈 수 있어 주민들이 굳이 차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게 한다는 것이다.
루에다의 아이디어와 같은 좋은 비전은 철거 굴착기가 없이도 가능하다. 스웨덴에 거주하는 영국인 건축가로 <소프트 시티>(Soft City)의 저자인 데이비드 심도 온건하지만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나무 몇 그루 심고 벤치 몇 개만 더 설치해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심은 동시에 인간·자연·교통 간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도시계획이 사람을 놓치고 있다”고 불평한다. 이 영국인 건축가는 “주차된 차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심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도시녹화를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중부 유럽 도시에서도 여름은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덥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 연구에 따르면 나무가 있는 거리는 식물을 충분히 심지 않은 거리보다 최대 12도까지 더 시원하다고 한다. 반면 자동차는 주차돼 있을 때조차 도시를 더 뜨겁게 만든다. “자동차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주차하면 더 뜨거워진다. 주택가 도로에 자동차가 가득 세워져 있으면 난방장치를 추가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미래를 위한 건축’(Architects 4 Future)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는 함부르크 출신의 유디트 누르만(34)은 말한다.
특히 누르만을 포함해 젊은 도시계획가들은 진짜 녹색식물을 사용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도시 정글을 만들고 싶어 한다. 아스팔트로 덮인 땅은 걷어내고, 건물 외벽을 녹화하고 나무를 더 많이 심어야 한다. “우리 도시는 아직 다가올 미래에 대비돼 있지 않다”고 누르만은 말한다.
아스팔트로 차폐된 대지를 녹지공간으로 바꾸면 폭우가 내릴 때 대량의 빗물이 더 잘 빠져나간다. 2023년 여름만 해도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지하실이 침수됐고, 카셀에서는 거리 전체가 물에 잠겼으며, 프랑크푸르트의 남부역이 침수됐다. 함부르크는 중앙역이 움푹 팬 곳에 있다. 이곳도 금세 빗물이 차는 것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독일에서 대지가 가장 많이 차폐된 도시는 루트비히스하펜이고 그다음은 만하임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곳에서 도시 안에 더 많은 녹지를 만들어야 하고, 더 많은 자동차가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는 사람들이 다시 도시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즐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영국 건축가 심의 설명에 따르면 20세기는 ‘실내인’이라는 특정 종을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따듯한 물, 그다음에는 세탁기, 그리고 어느 순간에 에스프레소머신과 홈시어터가 생겼다.” 하지만 심은 마음속 깊이 무언가 빠진 것이 있다고 느꼈다. “바로 사람과의 접촉, 감각적인 경험, 밖에 있는 것”이다. 사실 아주 간단하다. 심은 도시를 계획하거나 재계획할 때 휴가를 보낼 장소를 기준으로 하자고 제안한다.
갈리시아의 폰테베드라는 도시계획가에게 모범사례로 꼽힌다. 인구 8만 명의 도시 중심부는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대부분 차 없는 거리로 조성됐다. 20년 전 도심 재설계가 시작됐고, 단순히 차량 통행을 금지하는 것 이상의 일이 이뤄졌다. 도시계획가들은 해가 진 뒤 아늑한 안정감을 주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많은 조명을 사용했다.
세계 대도시들도 일상 속에서 주민들을 위한 휴가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폰테베드라의 시도에서 배울 수 있다. 파리에서는 2013년 센강변 거리의 특정 구간에서 차량 통행이 금지됐다. 2014년 안 이달고 시장이 취임한 뒤 이런 관점에서 더 많은 조처를 했고, 현재 센강변의 교통이 통제되는 지역은 레저 천국으로 여겨진다. 세계에서 유명한 쇼핑 거리 중 하나인 샹젤리제도 방문객들의 쇼핑을 장려하기 위해 ‘특별한 정원’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2021년 발표에 따르면 리모델링에는 2억6500만유로(약 3756억원)가 든다. 또한 파리의 ‘생태적 변화’ 구상을 목적으로 도시에 나무 17만 그루를 새로 심는 등 더 많은 약속이 이어졌다.
 

▲ 슈퍼블록의 기본 개념. 주택 블록을 3×3으로 결합해 구성하고, 이 구역 내부에선 교통을 제한하며 ‘15분 도보생활권’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바르셀로나 건축 도보여행’ 누리집

샹젤리제 거리도 ‘특별한 정원’으로
많은 사람이 녹화와 전체적인 재창조를 좋아하지만 당연히 프랑스 인구의 16% 이상이 사는 수도권의 모든 사람이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야당 정치인과 주민은 시장이 녹색 유토피아 정책으로 도심만 업그레이드하고 고층 주택단지가 있는 교외 지역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물론 운전자 로비 단체도 불만을 토로한다. 프랑스 운전자협회 ‘4천만 운전자’의 피에르 샤세레는 격렬한 반대자다. 이달고 시장이 파리에서 속도를 30㎞로 제한하는 캠페인을 벌였을 때, 그는 “시민을 서로 적대하게 만드는 기괴하고 어리석은 조치”라고 비난했다.
독일 하노버의 오나이 시장도 이런 유형의 비난에 익숙하다. 그러나 그는 단지 변화의 시작점에 섰을 뿐이다. 그가 계속 나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은 바르셀로나·파리·폰테베드라와 같은 긍정적 사례뿐만 아니라, 그가 끊임없이 지나치는 도시의 우울한 장소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그는 하노버 중앙역 뒤편에 서서 거대한 기둥 위에 세워진 4차선 라슈플라츠 고가도로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 도로는 1970년에 개통됐다.
자동차 소음이 너무 커서 오나이 시장은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고가도로는 부담스러운 유산이다.” 자동차와 사랑에 빠진 한 시대를 기념하는 긴 회색 콘크리트 건축물은 어떻게 무자비한 장벽처럼 주변 주거 지역과 도심을 분리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 Der Spiegel 2023년 제42호
Utopie im Quadrat
번역 황수경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