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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먹거리로 든든한 사회안전망 구축
[LIFE] 프랑스에 퍼진 먹거리 실험
[165호] 2024년 01월 01일 (월) 마리옹 페리에 economyinsight@hani.co.kr

 
새로운 형태의 지속 가능한 먹거리 연대가 프랑스 전역에서 생겨난다. 연대하는 모습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목표는 하나다. 식품 분야에서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다.


마리옹 페리에 Marion Perrier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물가가 많이 오르면서 질 좋은 먹거리를 사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프랑스 전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지속 가능한 먹거리 연대가 생겨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한 식료품점에서 고객이 채소를 살펴보고 있다. REUTERS


프랑스 남부 도시 몽펠리에. 얼마 안 있으면 이곳에서 ‘공동 먹거리 기금’ 실험이 1주년을 맞는다. 나이와 소득이 다양한 주민 약 350명이 저마다 형편에 맞게 돈을 내고 100유로(약 14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받는다. 이 화폐는 시민 47명으로 구성된 의회와 협정을 맺은 식료품점(일반 식료품점, 유기농 가게, 협동조합 슈퍼마켓, 생산자 직판매장)에서 쓸 수 있다. 실험은 시민단체 협회인 ‘먹거리 대지’와 몽펠리에시, 몽펠리에광역시의 후원을 받아 2024년 여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비슷한 사업이 프랑스 곳곳에서 보글보글 끓는다. 프랑스 남서부 지롱드 지역에서는 먹거리 지역 기금 실험이 2024년 봄에 시작된다. 지롱드 지역의 도시 또는 시골에 사는 주민 400명이 실험에 참여한다. 사회연대경제, 사회적노동, 공공교육, 연구개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모임인 ‘아클리마 악시옹’과 보르도시, 지롱드 의회가 실험을 지원한다. 이미 시작한 실험도 있다. 친환경 전환을 위해 행동하는 시민단체 ‘크레파크’는 보르도대학 학생 150명을 뽑아 매달 100유로 상당의 지롱드 지역화폐 ‘젬’(gemme·소금돌)을 나눠준다. 실험 참가비는 10유로지만 원하면 더 내도 된다. 지역화폐는 협력 가게에서 쓸 수 있다. 지롱드 지역은 먹거리 연대를 주제로 한 토론회와 요리수업도 연다. 이를 위해 공공과 민간이 총 20만유로(약 2억8천만원)를 후원한다.

먹거리 연대 필요성
더 먼저 시작한 사업은 가던 길을 계속 간다. 프랑스 남부에 있는 마을 디외르피에서는 카미유 페랭 식품탄성력 위원장과 유기농채소 재배 농민인 마티외 숑이 2021년 특별한 장터를 생각해냈다. 장터에서 파는 작물은 가격표가 세 개씩 붙어 있다. 생산자 소득을 보장해주는 ‘공정’ 가격, ‘열린’ 가격(공정 가격의 65%), ‘연대’ 가격(공정 가격의 125%)이다. 지역 농부 16명이 판매처 세 곳에서 작물을 팔고 낸 수익을 공평하게 나눠 가진다. 몇 달 뒤에는 장터 사업을 접고 몽펠리에시에서 한 것처럼 공동 먹거리 기금을 만들 계획이다.
물가가 많이 오르면서 질 좋은 먹거리를 사기 어려워졌다. 먹거리 취약계층이 급속히 늘었다. 프랑스 생활수준연구기관(CREDOC)이 프랑스 국민에게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소 식사를 충분히 하지 못한다’고 답한 사람의 비중이 2022년 7월 12%에서 11월 16%로 늘었다. 2023년 여론조사기업 입소스와 프랑스 대중구호단체(SPF)가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3%가 ‘과일과 채소를 매일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역 공동기금 사업은 기존 먹거리 지원 모델의 기능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기존 모델은 과잉 생산한 농산물을 처리하고 음식물 낭비를 피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 먹거리 지원 모델은 초산업화한 농식품 체제를 보증하는 구실을 한다.” 몽펠리에 공동 먹거리 기금에 참여하는 사회학자 폴린 슈레의 지적이다. 1980년대 구호 목적으로 만든 지금의 먹거리 지원 모델은 지원 대상자를 기부금에 의존하게 한다. 대상자가 어떤 식품을 받을지 결정할 권리도 주지 않는다.
2023년 5월 정부가 만든 ‘지속가능 먹거리 지원 기금’은 지원 대상자에게 배분하는 식품의 맛과 영양을 보장하고 식품의 환경영향을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번 정부 사업 역시 “기존 방식을 깨는 게 아니라 이를 새롭게 단장하는 것에 가깝다”고 프랑스 국립식량·환경연구소(INRAE)에서 경영학을 연구하는 도미니크 파튀렐은 지적한다. 그는 시민단체 ‘먹거리 민주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 지역사회 실험에서 품는 꿈은 그보다 훨씬 크다. 바로 먹거리 사회안전망을 짓는 것이다. 사회보험의 한 줄기로 누구나 몸에 좋고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식품보험카드에 매달 일정액을 넣어주고 이를 협력 매장에서 쓸 수 있게 한다. 먹거리 사회안전망 만들기는 여러 해 동안 시민단체(농업·농촌진흥사업센터, 국경없는엔지니어, 노동망, 농부총연합 등) 연합에서 지지받고 있다.
 

   
▲ 프랑스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지속 가능한 먹거리 실험‘장인’들은 먹거리 사회안전망이 무엇인지, 그것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를 함께 꾸준히 고민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브르타뉴의 한 농장을 방문해 채소를 선물받고 있다. REUTERS

보편성, 재정 독립성, 민주성
이들이 함께 먹거리 사회안전망을 떠받치는 세 축을 세웠다. 첫째는 보편성이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수혜자에게 낙인찍는 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다. 앙젤 드랑사르 ‘지역화폐 발전을 위한 시민단체’ 소속 위원의 설명이다. 이 단체는 2022년부터 프랑스 중부 퓌드돔 지역에서 먹거리 연대를 실험하고 있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하는 실험은 보편성이 없다. 참여 인원이 한정됐다. 그래서 배경이 서로 다른 참여자를 모집하려 한다.
두 번째 축은 재정 독립성이다. 먹거리 사회안전망을 위한 사회보험료를 신설하는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축과 마찬가지로 관련 법률을 개정하지 않고 실현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개인 참가비로 부족한 돈을 민간과 공공이 주는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그러한 재정적 한계에도 지역 실험에서 배운 점이 많다. 몽펠리에시에서는 사업 참가자가 ‘회비’(1~200유로)를 자유롭게 정한다. 소득수준에 따른 적정액을 참가자에게 알려준다. 그렇게 모인 참가비는 공동기금 예산의 6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재단이 주는 지원금으로 보전한다. 폴린 슈레는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재정 지원에 참여시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직원들을 공동기금에 가입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축은 민주성이다. 사업 참가자의 민주적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실마리는 1946~1967년 사회보험기금에서 얻을 수 있다. 사회보험기금 집행위원회는 노동자 대표가 전체 의석수의 75%를 차지했다. 하지만 당시에 집행위는 어떤 방식으로 노동자 대표의 참여를 받을지 정하지 않았다.
시민단체 연합은 “제비뽑기, 의결권, 민간업체와 직업인 대표 선정 등 모든 방안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먹거리 사회안전망은 20년 로컬푸드(신토불이) 역사와 결을 같이한다. 로컬푸드가 2000년대 발전하면서 남긴 교훈이 있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과 그 음식이 생산되는 방식 사이의 연결고리를 회복하는 일이 민주적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라고 도미니크 파튀렐은 말했다. 지역사회가 먹거리 사회안전망에서 강조하려는 점이다.
프랑스 남동부 마을 카드네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오마키’는 다양한 배경의 마을 주민 스무 명으로 협의회를 구성했다. 주민협의회는 먹거리 시스템을 논의하고 전문가들과 교류했다. 그 과정에서 제기된 먹거리 쟁점을 토대로 공동의 가치를 세웠다. 그렇게 하기까지 꼬박 6개월이 걸렸다. 협의회는 이후 지역사회에 ‘바람직한 먹거리 미래’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먹거리 협력 조건(자연과 건강 지키기, 생산 단위 규모)을 마련하기로 했다. 주민들이 꿈꾸는 먹거리 시스템을 하루빨리 이루자는 취지였다.
먹거리 사회안전망은 농식품 시스템을 바꾸는 지렛대이기도 하다. 주민협의회는 식료품 상인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판매 상품에 따라 지원 수준을 달리하기로 했다. 마치 건강보험에서 약값을 환급해주는 방식과 비슷하다. 손님이 협력 조건에 완전히 맞는 상품을 사면 가격의 100%를, 일부만 맞는 상품은 가격의 30%를 손님에게 환급해주기로 했다. 오마키는 또 2023년 말까지 주민 35명과 공동기금을 마련했다. 에리크 고티에 오마키 대표는 “공동기금의 다섯 자리는 처음 단체에 가입한 회원에게 남겨둘 것이다. 형편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다. 나머지 자리는 전부 비회원 마을 주민의 몫이다. 새 인물로 단체 일을 새롭게 꾸리려 한다”고 말했다.

섬세하게 실험해야
프랑스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먹거리 실험 ‘장인’들은 먹거리 사회안전망이 무엇인지, 그것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를 함께 꾸준히 고민한다. “실험은 우리가 지지하는 사회모델이 이런 모습이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 사회모델이 더 큰 무대에서 자리잡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장뤼크 클레이즈 지롱드 데파르망(행정구역) 의장은 말했다.
지역사회 모델이 전국으로 확대되려면 법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로선 계획에 없는 일이다. 게다가 먹거리 사회안전망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서두르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카미유 페랭은 “법을 급하게 만들면 먹거리 사회안전망이 ‘식료품 수표’ 등으로 전락해 대형 유통업체에서 쓰일 우려가 있다. 대형 유통업체만 높은 수요를 감당할 수 있어서다. 먹거리 사회안전망은 모두에게 먹거리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장치”라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 지금 필요한 것은 ‘실험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그런 법률이 있으면 지역 사업이 더 발전하리라고 기대한다. ‘장기실업자 제로(0) 지역’(지자체가 공급이 부족한 부문의 회사를 세워서 장기실업자만 고용하는 사업)이 전국 각지에서 생겨난 것도 이를 지지하는 법률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업을 추진한 지자체는 정부 재정에 더 기대게 됐다. 그래도 그럴 가치가 있었다. 다양한 실험이 더 많이 이뤄지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 정부-지자체 간 힘의 균형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먹거리 사회안전망이 자리잡느냐는 정부 결정에 달렸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3년 11월호(제440호)
Pour un droit à l’alimentation durable, ils jouent la carte vitale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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