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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신흥재벌, 자산 은닉 시민권 받아 유럽 활보도
[FOCUS] 검은돈 넘치는 키프로스- ① 최고의 은신처
[165호] 2024년 01월 01일 (월) 니콜라이 안토니아디스 economyinsight@hani.co.kr

 
키프로스는 러시아 억만장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들의 부를 숨기고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 조사 결과는 이 작은 나라가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손아귀에 얼마나 넘어갔는지 보여준다. ‘키프로스 기밀’(Cyprus Confidential)은 <슈피겔>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동 진행한 조사로, 키프로스 금융서비스 업체의 내부 문서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많은 데이터는 익명으로 <슈피겔>에 전달됐다.


니콜라이 안토니아디스 Nikolai Antoniadis 등 <슈피겔> 기자
 

   
▲ 러시아 부유층들은 키프로스의 도움을 받아 자산을 은닉하고 증식한다. 특히 키프로스 남부 항구도시 리마솔은 이들의 은신처이자 휴양지이다. REUTERS


이 시기에 모스크바의 날씨와 분위기는 우울하다. 이에 비해 키프로스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온화한 26°C의 11월 초, 키프로스 남부 항구도시 리마솔의 산책로에 지중해의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부서진다. 그림 같은 레스토랑에서는 얼음처럼 차가운 보드카가 소금에 절인 청어와 함께 나온다. 도시의 공원에는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로 푸시킨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거의 고향같이 편안한 곳이다. 전쟁과 블라디미르 푸틴의 경찰국가, 그리고 부유한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의 일정마저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 고향과 다를 뿐이다.
계속 확장하는 선착장도 빼놓을 수 없다. 거의 모든 슈퍼 요트가 이곳에 정박할 수 있다. 하지만 순백의 배를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촬영하고 싶은 사람은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몇 주 전 험상궂은 경비원으로부터 처음에는 카메라를 내놓으라는 요청을 받은 뒤, 이어서 항구를 가로질러 도망가야 했던 스웨덴의 TV 방송 제작진처럼 말이다.
스웨덴 기자들은 <슈피겔>과 마찬가지로 6개월 동안 러시아가 지배하는 유럽연합(EU) 국가 키프로스의 그림자경제를 면밀히 조사한 국제저널리스트팀의 일원이다. 이 조사는 어떻게 러시아 부유층이 키프로스의 도움을 받아 자산을 은닉하고 증식하는지 보여준다. EU 회원국인 키프로스가 ‘동방(러시아)의 더러운 돈’에, 즉 로만 아브라모비치(전 영국 프리미어리그 소속 첼시 구단주) 같은 올리가르히, 에너지 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 같은 푸틴의 측근들에게 얼마나 의존하는지도 보여준다.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 9천㎢의 바위와 숲, 120만 명이 사는 키프로스는 사실 개선을 약속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키프로스 은행들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객 유치에 전문화하기 시작했다. 2004년 EU에 가입한 키프로스는 유럽과 러시아 간 금융거래의 중심지가 됐다. 일부 사업모델은 러시아 억만장자들의 탈세와 자금세탁을 돕는다. 심지어 EU 여권을 만들어주는 것으로도 추정된다.
 

   
▲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키프로스에 재산을 은닉하고 증식하는 대표적 인물로 알려졌다. 아브라모비치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소속 첼시 구단주이던 2021년 5월 첼시와 선더랜드의 축구 경기가 시작되기 전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EU로 가는 황금 여권
수년간 키프로스는 투자 대가로 시민권을 팔았다. EU로 문을 열어주는 ‘황금 여권’이다. 여행의 자유도 당연히 포함됐다. 검은돈이 키프로스의 유령회사를 거쳐 물밀듯이 흘러들었다. 한때 키프로스 은행 예금의 절반가량이 부유한 러시아인의 돈이었다.
사실 ‘추운 나라’에서 오는 큰돈을 향한 키프로스의 이러한 구애는 일찌감치 멈춰야 했다. EU는 몇 년 전 조약 위반 소송을 시작해 조사관을 파견했고, 미국의 제재 감독기관도 경고했다. 이에 키프로스는 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조사는 이 섬나라가 거의, 또는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키프로스는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거의 없고 외국의 부에 크게 의존한다. 어쩌면 그것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일 수도 있다.
키프로스 그림자경제의 중심부에서 유출된 문서 수십만 건은 유령회사, 숨겨진 자금 흐름, 검은돈 계좌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깊이 들여다보게 해줬다. 1.3테라바이트의 데이터에는 약 650개의 키프로스 기업과 EU·미국의 제재를 받는 약 100명의 러시아인 재산이 포함됐다. 이 문서들은 올리가르히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숨겨진 사업을 조명한다. 축구 사업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금전거래, 약 10억유로(약 1조4천억원) 상당의 예술작품 이전, 2만4천% 이상의 수익을 거둔 푸틴 충성파와의 투자 거래 등이 그것이다.
또한 친러시아적인 한 사업가가 하필이면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발전소를 어떻게 재정적으로 통제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러시아의 최대 민간 상업은행인 알파은행의 전 총재 표트르 아벤, 석유 거래업자 겐나디 팀첸코,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 전에 독일 바이에른의 테게른제호수에 자주 머물렀던 올리가르히 알리셰르 우스마노프 소유의 회사 비밀 거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누가 이 의심스러운 사업가들을 돕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세계에서 큰 회계컨설팅기업 중 하나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도 그중 하나다. 2022년부터 ‘PwC 키프로스’의 러시아인 고객 39명이 제재 명단에 올랐다. 각국 정부에서 정치적 이유로 더 이상 거래를 허용하지 않는 이들의 목록이다. 그중에는 러시아 최고 갑부일 것으로 추정되는 알렉세이 모르다쇼프도 있다. 한때 300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했던 그는 독일 하노버에 본사를 둔 대형 여행사 투이(TUI)의 대주주다.
‘키프로스 기밀’ 문서로 이제 모르다쇼프가 자신의 투이 주식을 어떻게 제재에서 보호하려 했는지 자세히 추적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공격이 시작된 직후, 그는 키프로스 유령회사를 거쳐 아내에게 투이 지분을 넘기려 했다. 그러나 이 일은 잘 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분은 이전되지 않았다. 투이 대변인은 “모르다쇼프가 투이의 지분을 (간접적으로) 계속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주식 소유로 어떤 이익도 얻을 수 없다고 확인했다. 모르다쇼프는 제재 위반 사실을 부인했다.
결과적으로 키프로스 정부와 EU는 많은 어려운 질문에 부딪힌다. 전쟁 중에도 러시아의 은행 역할을 자처하는 EU 국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그림자경제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리고 많은 키프로스인이 그것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리스 데마시는 운전대를 잡고 섬의 서쪽 끝에 있는 주거 지역 캡세인트조지를 향해 빠르게 질주했다. 데마시가 격분해 말하는 동안 자동차는 도로 위를 덜컹거리며 달렸다. 그는 캡세인트조지를 경멸한다. 벽이 하얗게 빛나고 거대한 창문이 지중해를 향해 나 있는 고급 주택이 늘어선 이 지역은 러시아 억만장자들의 식민지로 여겨진다. “이 단지에는 제재받아야 할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 데마시가 정착촌을 둘러보며 분노를 터뜨렸다. 대부분은 러시아인임에도 키프로스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경고의 말을 했다. “키프로스는 위험에 처했다. 우리 사회는 위험에 처했다.”
흰 턱수염을 가진 50대 중반의 데마시도 러시아 출신으로, 예전에는 건축업자였다. 그는 러시아를 영원히 떠나고 싶었지만 러시아가 그를 따라다닌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가 이 지중해의 섬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걱정된다. “러시아인이 키프로스에 올 때 러시아 부패, 러시아 조직범죄, 러시아 비밀정보 요원을 데리고 왔다. 나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 러시아 최고 갑부로 알려진 알렉세이 모르다쇼프의 개인 요트 ‘노르트’(Nord)가 2022년 10월 홍콩에 정박해 있다. REUTERS

키프로스는 위험에 처했다
그래서 데마시는 블로그 ‘키프로스 데일리 뉴스’(Cyprus Daily News)를 운영하며 ‘러시아의 비우호적 활동’을 알리고 있다. 러시아와 키프로스의 관계에 관한 그의 장광설은 그를 섬에서 논란이 많은 인물로 만들었다. 러시아를 향한 그의 많은 비난이 지금까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그의 말 중 일부는 ‘키프로스 기밀’ 문서로 입증됐다. 예를 들어 캡세인트조지는 러시아의 슈퍼리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은신처라는 주장이다.
유출된 데이터에는 대지면적 약 1400㎡에 수영장이 있는 캡세인트조지의 저택을 400만유로(약 57억원) 넘는 가격에 구매한 부동산 계약이 포함됐다. 구매 대금은 알렉산더 사모노프의 아내 이리나 사모노바가 냈다. 알렉산더 사모노프는 러시아 소매 체인인 코페이카(Kopeika)의 공동창업자이자 미국의 제재를 받는 우랄시프(Uralsib) 은행의 총재였다. 부동산 계약 직전에 국외 회사를 통해 모네의 그림을 소더비 경매에 올려 거의 1천만달러(약 131억원)에 팔았던 이 부부에게는 좋은 거래였다. 그리고 문서에 따르면 사모노프 부부는 저택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하는 동시에 키프로스 시민권을 얻으려 노력했다.
드미트리 클류예프(56)도 2009년에 유령회사를 거쳐 캡세인트조지의 저택을 샀다. 클류예프는 러시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다. 공무원들은 범죄자들과 함께 약 2억3천만달러를 훔쳐 복잡한 유령회사 네트워크를 거쳐 국외로 빼돌렸다.
키프로스와 러시아의 관계는 긴밀하고 오래됐으며 냉전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지중해 동부의 키프로스는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 섬은 300년 동안 오스만제국에 속했고 나중에는 영국 식민지가 됐다. 섬나라는 1960년에 독립했지만 그때부터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 주민이 분열했다. 오늘날까지 키프로스는 분단된 섬으로 남았다.
많은 그리스계 키프로스인은 갈등이 좀 있지만 러시아를 동맹국으로 본다. 한편으로는 정교회 기독교도로서 문화적·종교적 근접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이 비상상황에서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튀르키예의 편에 설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이런 연대가 결실을 보았다. 많은 러시아인이 갑자기 부자가 됐고 그들의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어 했다. 키프로스는 그들에게 이상적 조건을 제공했다. 유리한 이중과세방지협약이나 좋은 날씨 등 합법적인 것도 있고, 복잡한 회사 구조를 통해 탈세와 돈세탁에 도움을 주는 키프로스의 금융서비스 업계처럼 의심스러운 요소도 있다. 한 전직 키프로스 중앙은행 총재는 “러시아와 올리가르히의 필요를 충족해주면서 부를 축적하는 데 만족하는 지배 엘리트가 국가를 장악했다”고 말했다. 격동의 1990년대 후반에는 모스크바 사람의 절반이 리마솔의 고급 부티크에 모인 것처럼 보인 시절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리마솔을 리마솔그라드(Limassolgrad)라고 불렀다.
키프로스가 EU에 가입한 2004년부터 섬나라는 더 엄격한 규정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키프로스가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나라가 됐다. 그때부터 올리가르히들은 키프로스를 EU로 가는 손쉬운 뒷문으로 여겼다.
이미 10여 년 전에 <슈피겔>은 독일연방정보국이 키프로스를 얼마나 비판적으로 보는지 보도했다. 정보요원들에 따르면 키프로스인들은 모든 것에 서명하고 많은 것을 약속했지만 거의 지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유한 러시아인이 쉽고 빠르게 키프로스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돈세탁이 더 쉬워졌다.

키프로스의 EU 가입이 부채질
2012년 초, 독일 정보당국은 올리가르히 약 80명이 이런 방식으로 EU 전역에서 정착의 자유를 얻은 것으로 추정했다. 그 대가로 당시 그들은 각각 1천만유로를 키프로스에 투자했다. 나중에는 심지어 200만유로, 즉 캡세인트조지에 작은 주택 한 채만 구입해도 ‘황금 여권’을 살 수 있었다. 2020년까지 외국인 투자자 7천 명 이상이 키프로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수년 동안 이 행태를 방치했다. 2019년에야 EU 당국은 “EU 회원이 아닌 국가의 조직범죄 단체가 경제에 침투하고 있다”면서 키프로스·몰타·불가리아에서 발급한 황금 여권이 “돈세탁, 부패, 탈세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검은돈이 산처럼 쌓이는 섬에서는 여전히 러시아 자금에 집중하며 안주하는 비굴한 금융산업이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비밀주의를 원하는 슈퍼리치들이 있다.
이 수상한 올리가르히 금융세계를 더 깊이 파고들면 여러 대륙에 퍼져 있는 유령회사들의 미로에 압도당하는데, 이 미로는 항상 다시 키프로스로 이어진다.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별도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코트다쥐르에 있는 저택(매입가 1억유로 이상), 16m 요트 ‘이클립스’(Eclipse, 5억5천만유로 추정), 첼시 축구클럽(2억유로 미만) 등을 관리하는 회사다.
아브라모비치는 원래 석유·가스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던 사람으로, 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후 그는 보리스 옐친과의 인맥을 이용해 소련 붕괴의 혼란 속에서 국영석유회사이던 시브네프트(Sibneft)의 주식을 실제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매입했다. 나중에 그는 상당수 단순 석유 노동자에게 냉장고나 자동차를 주는 대신, 그들의 주식을 넘겨달라고 설득했다. 시브네프트가 마침내 수억달러의 배당금을 지급하게 됐을 때,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아브라모비치는 부자가 됐다.

ⓒ Der Spiegel 2023년 제47호
Eine Insel mit Geldbergen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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