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네 벤코(René Benko)는 불과 몇 년 만에 수십억달러 규모의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그의 제국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공사현장에선 공사가 중단됐고, 은행은 그와 새로운 거래를 꺼린다. 또한 그에게 투자했던 사람들은 이 억만장자를 무력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부동산 기업인 시그나그룹의 지주회사 시그나홀딩은 최근 오스트리아 빈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팀 바르츠 Tim Bartz 등 <슈피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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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스트리아의 최대 부동산 재벌 레네벤코는 불과 몇 년 만에 수십억달러 규모의 제국을 건설했지만 무리한 차입경영과 고금리 앞에 결국 파산을 신청하며 무너졌다. REUTERS |
독일 함부르크의 중심 지역인 함부르크하펜시티, 엘프탑(Elbtower)이 될 건물의 골조가 이 지역 가장자리에 거인의 해골처럼 우뚝 솟아 있다. 주변에는 크레인이 여러 대 서 있지만 작동하는 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노란색 조끼를 입은 몇몇 사람만이 건물 골조 안에서 걸어다닐 뿐이다. 유럽에서 큰 건설현장 중 하나였는데 이젠 죽어버린 듯하다.
회색 컨테이너 입구에 서 있는 남자는 자신이 감독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젠 할 일이 없어 그냥 앉아 있을 뿐이란다. 다른 노동자들은? 대부분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여기 남은 사람들은 그저 좀 치우는 일을 할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냐고 묻자 그는 모르겠다고, “안타깝게도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도시의 미래가 모습을 드러내려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11월의 우울로 뒤덮여 있다. 엘프탑은 당시 함부르크 시장이던 올라프 숄츠 총리가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구상한 것으로 64층, 245m 높이로 계획했다. 독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로 지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가? 작업은 연기됐을 뿐인가? 아니면 개조, 철거, 심지어 폐허가 될 위험이 있을까? 건설회사 루프(Lupp)는 최근 공사 중지를 선언했고, 함부르크 시정부 차원에서 이 건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도시개발본부장 카렌 파인은 긴급 대책 방안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돌려보고 있다. 이 사태의 원인은 이 사업을 수주한 레네 벤코(46)와 그의 부동산회사 시그나(Signa)그룹이 더 이상 비용을 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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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네 벤코의 말에 속아 독일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동안 갈레리아백화점을 구하기 위해 7억유로나 되는 납세자 의 돈을 벤코에게 기부했지만, 결국 백화점은 두 번째 파산을 겪었다. 독일 베를린 알렉산더광장에 있는 갈레리아백화점 앞을 2022년 11월1일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REUTERS |
멈춰 선 크레인
상황은 복잡하다. 시그나의 크레인이 멈춰 서고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은 함부르크에서만이 아니다. 벤코의 매니저 중 한 명이 말한 바에 따르면 벤코는 뒤셀도르프, 베를린, 뮌헨, 슈투트가르트 등 사방에서 “전반적으로 지급을 중단했다”고 한다. 내부 자료에 따르면 시그나의 지주회사에서만 2022년 5억유로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2023년이라고 해서 상황이 별로 나아졌을 것 같지 않다. 벤코가 몇 달 전부터 여러 건물을 돈으로 바꾸려는 등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했음에도 그룹 전체의 적자는 수십억유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사내 회사인 시그나개발(Signa Development)에서도 자금이 돌지 않아 문제라고 한다.
게다가 벤코는 막대한 빚 부담에 짓눌리고 있다. 그의 200억유로(약 28조4천억원) 규모의 제국은 대부분 빚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2022년 말 지주회사만 해도 은행·보험사에 20억유로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그중 상당 부분인 13억유로가 2023년 말까지 상환해야 하는 부채였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수십 개의 회사와 종속회사, 종속의 종속회사가 서로 소유하고, 자금을 빌려주고, 신용을 보증했다.
또한 공식·비공식 투자자가 있고, 적극적 혹은 조용한 파트너도 있다. 대출과 채권, 차용증서와 배당금, 메자닌금융(자본과 부채의 중간적 성격이 있는 재원)과 우선주 등에서 나오는 모든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벤코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금과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오래된 빚을 새로운 빚으로 갚는, 이 위험한 게임은 팬데믹 이후에는 통하지 않는다. 이 오스트리아인 벤코와 그가 구사하는 가히 초인적 부동산 투자술을 향한 신뢰는 사라졌다. 은행들은 그와의 새로운 거래를 꺼리고 민간투자자들도 실망한 나머지 외면한다. 더는 아무도 벤코에게 새로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자금이 딸리다보니 급여 지급이 지연되고, 배당금도 거의 지급되지 않았다.
10월31일 화요일에야 지주회사의 대다수 주주들은 당면한 재난의 전체 규모를 파악했다. 이날 오후 억만장자 주주들은 처음으로 벤코 없이 화상통화로 모였다. 시그나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는 ‘린트&슈프륑글리’(Lindt & Sprüngli)의 회장 에른스트 타너, 슈트라바크(Strabag) 대주주 한스 페터 하젤슈타이너, 커피머신 기업가 아르투어 오이크슈터, 프레스나프(Fressnapf) 창립자 토르스텐 퇼러, 부유한 남미 물류 왕조 아르두이니(Arduini) 소속 기업인 등이었다. 일찍이 슈퍼마켓 슐레커(Schlecker)와 갈레리아(Galeria) 백화점 그룹의 파산을 관리했던 아른트 가이비츠도 참가했다. 가이비츠는 오랫동안 벤코에게 조언해왔다. 투자자들은 이제 그가 시그나 통제권을 완전히 위임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투자자들은 거의 고전적 딜레마에 빠졌다. 벤코의 모래성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많은 돈을 잃었음에도 계속 자금을 투입해야 할까? 신규 자금도 아마 바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투자를 철회해야 할까? 그러면 벤코의 사업은 훨씬 더 빨리 무너져내려, 거기에 투자한 수억유로가 즉시 날아갈 것이다.
투자자들은 “극도로 흥분했다”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전했다. 벤코는 그동안 그들에게 ‘동화처럼 지어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벤코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한 것이 분명하다.” 수년 동안 그는 투자자 대부분을 직접 만나 화려한 수사로, 그리고 멋진 이야기로 매혹하며 실제 상황을 교묘하게 숨겼다. 예를 들어 그는 시그나 자회사의 일부 투자자에게 배당금은 위기 극복을 위한 투자에 필요하기에 안타깝게도 모두 취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다른 투자자들에게는 배당금이 지급됐다.
주주들은 이제 시그나의 복잡한 구조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부채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다. 어떤 건물이 어떻게 저당 잡혀 있는가? 시그나의 지분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여전히 벤코의 소유인가? 혹시 다단계 사기의 피해를 본 것은 아닌가? 무엇보다 시그나가 생존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1천만유로가 언급되더니, 그다음에 5천만유로가 언급됐다. 어떤 사람은 현재 4억유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고, 또 다른 이는 “수십억유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거인이 비틀거릴 때, 그 움직임은 처음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눈에 띈다. 티핑포인트(작은 변화가 쌓여 갑자기 큰 변화를 초래하는 상태)를 넘어서면 상황은 빠르게 진전된다. 자기 자신과 소지품을 제때 안전하게 대피시키지 못한 사람은 추락에 휩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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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11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시그나홀딩의 본사 건물에 회사 로고가 걸려 있다. REUTERS |
영업 연수생에서 부동산 거물로
벤코의 시그나 프로젝트는 항상 경쟁사보다 한 단계 더 크고, 더 모험적이며, 더 대담했다. 학교를 중퇴한 그는 불과 몇 년 만에 금융중개회사 AWD의 영업 연수생에서 부동산 거물로 성장했다. 사람들이 우표를 모으듯, 벤코는 ‘전리품’을 수집했다. 예를 들면 그는 가장 먼저 오스트리아 빈 시내 중심가에 명품 쇼핑 거리인 골데네스콰르티어(Goldenes Quartier)를 건설했다. 독일 백화점 카르슈타트(Kartstadt)와 카우프호프(Kaufhof)를 합병하고, 영국 런던 백화점의 상징인 셀프리지(Selfridges)를 인수해 유럽 최고의 백화점그룹이라는 환상을 품었다.
2020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슈피겔>이 빈에서 처음 벤코를 몇 시간 동안 만났을 때, 이 억만장자는 모든 우려를 불식했다. “이자를 갚기에 현재 경상이익이 너무 적지 않은가요?” “건물 매각으로 충당할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 가치가 너무 높게 책정되지 않았나요?” 결론적으로 그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대상들에서 “고유한 가치”를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은행가와 부자들은 그와 그의 이야기를 기꺼이 믿었다. 그들은 큰 부동산 포커 게임에서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다. 벤코는 그들을 자신의 요트로 초대해 카나페와 샴페인을 즐기거나, 사냥터 또는 성 같은 산악 저택에 초대하는 등 그들을 매료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독일 정부조차 벤코의 매력에 속아 넘어가 코로나19 위기 동안 갈레리아 백화점을 구하기 위해 7억유로나 되는 납세자의 돈을 기부했다. 투명성, 담보, 인적 참여 측면에서 그에 걸맞은 높은 요구조건을 걸지 않았다. 그 결과 이 백화점그룹은 이제 두 번째 파산을 겪었고, 경제부가 이를 갈며 인정한 것처럼 납세자의 돈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벤코는 뻔뻔스럽게 2022년 주정부에 2억유로를 추가 요청했다. 물론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현재 하나 확실한 점은, 한 대주주가 말했듯이 “벤코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그나그룹에 뭔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고, 오랫동안 문제가 지속돼왔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전 경영컨설턴트인 롤랜드 버거는 이미 비상탈출을 택했다. 중요한 포트폴리오 자산이 포함된 시그나의 프라임 사업부를 매각할 수 있는 옵션을 행사했다. 지주회사의 지분 4.5%를 보유한 퇼러도 벤코에게 자신의 퇴진을 통보했다. 퇼러는 벤코에게 압력을 가하고 싶었지만, 벤코는 단지 수신을 간단히 확인하는 것으로 그쳤다고 퇼러가 동료 주주들에게 전했다.
화요일 저녁 투자자들 회의가 끝났을 때, 그들은 모두 벤코의 쇼가 끝나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한 투자자는 “모든 투자자의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시그나는 현재의 소유주가 권력을 넘겨주고 파산 관리인인 가이비츠가 총체적으로 위임받아야만 새 자본을 수혈받을 수 있다. 가이비츠의 임무는 완전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벤코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벤코 자신은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에서 오랫동안 그에게 붙어다닌 수식어 ‘분더부치’(Wunderwuzzi·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자를 뜻하는데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통용)는 사라진 것으로 보이다. 벤코는 투자자나 <슈피겔>의 연락도 받지 않았고, 여러 의혹에 대한 문의에 답변을 남기지 않았다. 오랫동안 벤코와 함께 길을 걸어온 동료가 보기에 모든 것이 파산 가능성으로 향했다.
정치인에게 튄 불똥
파산은 벤코와 그의 투자자들에게만 재앙이 되는 것이 아니다. 도시개발 프로젝트의 상당 부분을 벤코의 손에 맡긴, 즉 정치적 미래를 벤코에게 맡긴 시장들에게도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에서 시그나는 시청의 승인을 받아 중심 시가지 쿠어퓌르슈텐담과 알렉산더광장의 거의 절반을 갈아엎었다. 뮌헨에서 벤코의 건설현장은 중앙역부터 알텐아카데미까지 도심 깊숙이 펼쳐져 있다.
함부르크에서는 이미 엘프탑 사태 이후 페터 첸처(사회민주당) 시장을 비롯한 함부르크 시정부에 불편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좌파당의 원내 사무총장인 하이케 수드만은 함부르크 시정부가 “벤코에 관한 모든 경고를 무시했다”고 비난한다. 같은 사민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함부르크 시정부는 벤코의 사업모델을 믿을 만큼 순진했다”고 전 함부르크주 사민당 대표이자 현재 시의회 예산위원회 위원장인 마티아스 페테르젠은 지적했다.
첸처 시장은 계약 당시 벤코와 협상을 유리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시 당국은 “시가 어떤 재정 부담도 지지 않을 것”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취소되면 민간투자자들이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으므로,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건설 활동 재개를 위한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Der Spiegel 2023년 제45호
Wunderwuzzi am Abgrund
번역 최현덕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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