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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에 부채감 있지만 중동 거대시장 의식 살얼음
[ISSUE]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난감한 독일 기업
[164호] 2023년 12월 01일 (금) 막스 헤글러 economyinsight@hani.co.kr

 
막스 헤글러 Max Hägler 등 <차이트>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인질로 잡아 납치한 민간인들의 얼굴이 2023년 11월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셋의 담장에 붙어 있다. REUTERS


독일 기업들은 이스라엘에 연대감을 표명하면서도 아랍권 시장과 기업 내 불화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에스에이피(SAP)의 크리스티안 클라인 최고경영자(CEO)가 대표적 사례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유대인을 대상으로 테러를 가한 직후의 월요일(2023년 10월9일), 클라인 CEO는 비즈니스 전문 소셜미디어 플랫폼 링크드인에 “우리는 지난 며칠간 무고한 죽음에 깊은 분노를 느끼며 관련된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적었다. 그는 “SAP는 힘든 시기에 이스라엘 직원과 가족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냥 짧은 두 문장에 불과하지만 소프트웨어 대기업 SAP의 홍보대변인이 두 문장을 얼마나 다듬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기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 짧은 두 문장에도 반박 댓글이 빗발쳤다. 심지어 본명을 밝힌 한 사업가는 “중동과 아랍권 국가의 모든 SAP 사용자가 프로그램 이용을 중단할 때가 됐다”고 썼다. 클라인 CEO의 글은 구구절절 옳지만, 다만 “이야기의 다른 면, 즉 팔레스타인 관점이 완전히 누락됐다”고 지적한 댓글도 있었다. 클라인 CEO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침을 날린 댓글도 보였다.
 

   
▲ 크리스티안 클라인 에스아페(SAP) 최고경영자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직후 희생자를 애도하는 글을 링크드인에 올렸다가 반박 댓글이 이어지자 일주일 만에 댓글 기능을 중단했다. 크리스티안 클라인 링크드인 갈무리


문구 하나에도 신경 곤두세워
독일 발도르프의 SAP 본사는 CEO의 링크드인 글에 비방 댓글이 이어지자 일주일 만에 댓글 기능을 중단했다. SAP는 CEO의 글이 정치적 논쟁에 휘말려 원래 애도의 뜻은 퇴색되고 기업 이미지에 피해가 가리라 우려했을 것이다.
적잖은 독일 기업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공식 입장을 어떻게 취할지를 놓고 곤혹스러워한다. 클라인 CEO의 SAP도 예외가 아니었다. <차이트> 취재진과 인터뷰한 글로벌 대기업 임원, 이사, 직장평의회 대표들도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는 이슈로, 이에 관한 공식 입장이 야기할 후폭풍의 두려움이 독일 기업을 사로잡았다.
독일인에게는 유대인 편에 서야 한다는 윤리적 의무감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객, 비즈니스 파트너, 투자자, 직원 등 여러 방향에서 불어올 역풍도 우려스럽다. 독일 대기업 임원들은 10년 혹은 20년 전과 비교해 비즈니스가 정치적으로 된 것에는 적응했다. 기후위기 대응, 미국의 관세장벽, 중국과의 비즈니스, 코로나19 백신 등의 이슈에서 기업이 공식적 입장을 취하라는 압박을 줄곧 받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입장을 정하고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기업들의 사회적 활동을 지원하는 비영리 컨설팅업체 피네오(Phineo)의 아넬리 벨러는 “기업들이 무척 불안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전한다. 현재 수많은 기업의 고민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다. 적잖은 독일 기업이 이스라엘을 향한 역사적 부채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업이 유대인의 강제부역이나 유대인에게서 넘겨받은 자산 등 나치 정권 아래서 톡톡히 수혜를 입었다. 콘티넨탈, 바스프(BASF), 프로이덴베르크(Freudenberg),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도이체방크 등 독일의 대표 기업이 그 사례다. 하지만 기업들의 과거사 청산은 대부분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그리고 현재 유대인은 자국 이스라엘에서 생존 위협을 느끼고, 독일 전국의 거리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독일은 여기에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지 않을까?
독일자동차산업협회 힐데가르트 뮐러 협회장은 이 문제를 거침없이 언급하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최근 자동차업체 임원들에게 전체 전자우편을 보내는 계기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호소한다. 뮐러는 <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하마스의 야만적 테러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혹 행위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테러조직 하마스와는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자신을 방어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상황은 독일 기업과 임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생존권과 관련해 국가이성(Reason of State)은 독일 사회를 아우르며, 재계도 사회의 일원으로 이에 포함된다고 2008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가 분명하게 표현했다.”
이것에는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뮐러 회장은 지적한다. 유대인의 안전을 위해 연대가 중요하고, 독일 기업 임원은 전세계 직원과 대화하며 이스라엘 유대인을 향한 지지를 호소하고 지원해야 한다. 즉, 독일 기업과 임원은 책임감을 가지고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 (홀로코스트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러-우크라 전쟁보다 복잡다단
독일 재계에서 이 정도로 분명한 메시지를 내는 것은 드물다. 물론 협회장 직함이 아무래도 기업 대표보다는 공개 발언의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단체장들이나 독일 대기업들이 이스라엘과 유대인에게 특별한 책임감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민간기업이 과거사를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훨씬 복잡다단한 이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많은 독일 기업이 사내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게양했다. 그렇다면 독일 기업들이 지금 이스라엘 국기를 게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경제연구소에서 윤리연구를 맡는 도미니크 엔슈테는 독일 기업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래도 ‘넘을 수 있는 산’이었다고 말한다. 러시아 시장 철수는 정치권에서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또 어차피 독일 기업도 러시아에서 비즈니스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업들이 우크라이나에 연대감을 표시한다고 잃을 것이 거의 없었다.
반면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혹은 팔레스타인에 연대감을 느끼는 이슬람 국가들의 거대 시장을 고려한다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고려할 것이 많은 복잡다단한 사안이다. 그리고 독일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보다 아랍 국가 출신 노동자가 훨씬 많다.
그 여파는 베를린의 노이쾰른에서 시작해 공장, 사무실, 구내식당에까지 피부로 느껴진다. 전사적 차원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한 독일 대기업 임원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기업이 대분열을 겪는다”고 말했다. 요즘 독일 기업은 최신 국제 정세(이스라엘-하마스 전쟁)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공식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에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매출액이 수십억유로에 이르는 한 소비재 제조업체는 “미국 지사의 유대인 직원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한다. 아랍 직원들은 당연히 그 정반대의 입장을 요구한다.” 한 글로벌 물류 대기업 경영진은 하마스 테러에 충격받았다며 피해자들과 마음으로 함께하겠다고 온라인에 적었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 있는 지사의 직원들이 경영진의 글을 신랄하게 비판하자, 해당 기업은 자사 직원들의 댓글을 삭제했다. 한 대형 교통업체의 야유회에서 인턴들이 팔레스타인 지지를 두고 주먹다짐하기도 했다. 인턴들이 처음에는 날 선 말을 주고받다가 감정이 격해지면서 손찌검이 오갔다고 직원평의회 대표는 전한다.
독일 대기업들의 글로벌 비즈니스는 직원 간 대립으로 이어졌다. 카타르가 대표 사례다. 카타르는 테러조직 하마스의 우군이자 재정지원국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독일은 카타르와 밀접한 경제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카타르는 도이체방크, 폴크스바겐, 지멘스, 해운회사 하파크로이트 등 독일의 수많은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하파크로이트는 유대인에 의해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했다. 하파크로이트를 글로벌 최대 해운업체로 만든 알베르트 발린은 유대인 이민 가정 출신이다. 현재 카타르는 하파크로이트의 지분 12.3%를 보유하고 있다. 하파크로이트가 지금까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파크로이트 대변인은 “폭력과 전쟁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짧은 멘트를 제외하고는 어떤 논평도 일절 내지 않았다.
경제윤리학자 엔슈테는 하파크로이트의 소극적 입장이 전혀 놀랍지 않다고 말한다. “상장 대기업의 CEO는 직원과 주주 양쪽 모두에게 성실의 의무를 지고 있다.” 투자자가 투자를 철회하거나 중동 수주가 사라지면 이는 금방 일자리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족기업의 상황은 다소 낫다. 가족기업은 주주들의 압박을 받지 않고 더 자유롭게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 기계제작업체 트럼프(TRUMPF)가 대표 사례다. “이스라엘 영토에서 벌어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혹 행위는 역사적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니콜라 라이빙거카뮐러(<차이트> 발행위원 겸) 트럼프 CEO는 말한다. “이 역사적 터닝포인트는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높은 윤리적 기준을 지닌 경제계에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얼마나 복잡다단한지는 노조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독일서비스노동조합(Ver.di)은 인스타그램에서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표명했는데 이에 달린 비방성 댓글을 모두 삭제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한 입장 표명은 중동에서의 전쟁을 놓고 회원들과 의견을 주고받기 위함이 아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독일 노조들은 10월22일 일요일 대형 전시장 ‘메세 프랑크푸르트 홀 11’에서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성명문을 놓고 진땀을 흘렸다.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지도부 400명 이상이 ‘노조의 날’에 참석했다. 작금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노조의 날 행사에서 처음에는 최우선 의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이 공식 행사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부터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금속노조의 주요 의제가 돼버렸다. 하베크 장관은 노조가 독일 민주주의를 위해, 특히 지금 아주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 나치 정권 아래서 톡톡히 수혜를 입은 콘티넨탈, 바스프(BASF), 프로이덴베르크(Freudenberg),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등 독일의 대표 기업들은 이스라엘에 역사적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 있는 바스프 본부에 회사 로고가 그려진 깃발이 걸려 있다. REUTERS


노조도 입장 표명 진통
하베크 장관이 인사말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자 지멘스와 티센크루프 감독이사회 이사인 위르겐 케르너, 예르크 호프만, 크리스티아네 베너 등 금속노조 지도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노조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 초기에는 이스라엘이 주로 언급됐다가, 저녁 무렵 여러 차례 수정 작업을 거쳐 확정된 성명문 최종안에는 팔레스타인 영토도 군데군데 언급됐다. 하지만 독일 내 유대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이날 토론은 투명하게 이뤄졌고 수많은 기업 임원 차원에서 나온 어떤 성명문보다 명확했다.
도이체포스트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아직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도이체포스트 직원들은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 있으며, 이 중에는 경영진이 항상 안부를 염려해야 하는 직원도 있다. 독일 기업 처지에서는 아무리 의도가 좋은 발언이라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직원 누군가에게는 해가 될 수 있다. 올라 켈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CEO는 링크드인에 이스라엘 연대 발언을 올렸고, 이는 크리스티안 클라인 SAP CEO의 연대 발언과 동일한 파장을 낳았다. 연대 발언에 달린 비방성 댓글 10여 개가 결국 삭제됐다.
이런 이유로 일간지의 이스라엘 연대문 단체광고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한 홍보업체의 문의 전화에 적잖은 독일 기업이 반색했다는 후문이다. 일간지 단체광고의 메시지는 “독일에는 애초 유대인 혐오가 발을 디딜 수 없어야 한다”였다. 알리안츠, 아우디, 메트로, 찰란도, SAP 등 100여 개 기업이 이스라엘에 연대감을 표명하면서도 홀로 도드라질 필요가 없는 단체광고를 좋은 해결책으로 평가했다.

ⓒ Die Zeit 2023년 제45호
Wenn jedes Wort zu Streit führt: Wie die Wirtschaft um Haltung ringt zum Krieg in Israel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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