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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단백질 ‘창조’, 질병 치료
[COVER STORY] ‘챗지피티 신약’ 열전- ④ 미국 단백질디자인연구소
[163호] 2023년 11월 01일 (수) 요한 그롤레 economyinsight@hani.co.kr

 
초소형 로봇, 바이오컴퓨터, 암치료법, 기후위기 대응 등 미국 시애틀의 단백질디자인연구소가 대담하다고 생각하는 비전은 없다. 합성단백질로 인류가 직면한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요한 그롤레 Johann Grolle <슈피겔> 기자

   
▲ 단백질디자인연구소 책임자인 데이비드 베이커는 전세계적으로 ‘단백질로 창조한 새로운 세계’와 동의어로 통한다. 미국 단백질디자인연구소 누리집

알렉시 쿠르베는 기계공학자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기계는 소금 알갱이의 10만분의 1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단 몇 개의 분자로 모터, 로터(회전자), 윈치(무거운 물건을 높은 곳으로 들어 올리거나 끌어당기는 기계), 펌프를 조립한다. 이 작업은 30년 전 레고블록을 가지고 놀던 시절과 비슷하다고 쿠르베는 말한다. 다만 지금 쿠르베는 컴퓨터 화면에서 공작을 한다. 화면에는 막대기, 핀, 피스톤, 날개, 고리, 깔때기 모양의 분자 조각들이 가득 흩어져 있다. 그는 마우스로 이 분자 조각을 모든 방향으로 돌리고 회전할 수 있다.
쿠르베는 여덟 개 가닥으로 땋은 듯한 축(Axis)을 만들었다. 이 축은 회전하는 고리로 둘러싸여 있고, 회전고리에서는 4개의 날개가 튀어나와 있다. 생화학자인 쿠르베는 이 구조를 먼저 컴퓨터에서 설계한 다음, 박테리아가 개별 부품을 생산하도록 한다. 이들은 결합해 스스로 로터로 조립되도록 설계한 단백질이다. 마지막으로 쿠르베는 전자현미경으로 자신이 만든 단백질 구조의 모양이 컴퓨터 설계와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그는 곧 로터에 구동장치를 장착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빛을 이용하거나 유기연료를 추가하면 로터를 구동할 수 있다. 발명가는 이 ‘기계’의 용도를 곧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말하자면, 이 기계를 사용해 체내의 항암제를 종양으로 직접 운반할 수 있다. 이 로터는 시작에 불과하다. 언젠가는 훨씬 더 복잡한 기계를 만들 것이라며 쿠르베는 “아무리 복잡한 기계도 결국 단순한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한다.

100명 이상의 공학자들
쿠르베는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의 단백질디자인연구소(Institute for Protein Design)에서 일한다. 그는 이곳에서 공통의 비전으로 뭉친 100명 이상의 열정적 공학자 중 한 명이다. 그들은 단백질을 ‘미래의 물질’로 만들고 싶다.
연구원들은 각자 화면 앞에 나란히 앉아 있고 전면 유리 뒤로 실험대, 흡입 후드, 인큐베이터가 보인다. 그사이를 작은 남자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헤드셋으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헝클어진 머리에 헐렁한 셔츠를 입은 그를 커피머신 수리공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이 사람이 바로 연구소 책임자인 데이비드 베이커다. 그의 이름은 전세계적으로 ‘단백질로 창조한 새로운 세계’와 동의어로 통한다.
단백질은 생명의 진정한 일꾼이다. 자연의 분자 그룹 중에서 주인공이 있다면 단연 단백질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디엔에이(DNA)가 슈퍼스타 역할을 하지만, 사실 단백질의 다양성과 풍부함에 비하면 단조로워 보인다. 인간, 식물, 곰팡이, 박테리아 할 것 없이 생명체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은 단백질 작용에 기인한다. 단백질은 인체 세포를 탄력 있게 만들고 거미줄에 탄성을 부여한다. 망막에서 빛을 포착하고 정자에 이동성을 부여한다. 음식을 소화하고 조직에 산소를 공급한다. 단백질이 없으면 생명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의 상상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진화 과정에서 수조 개의 단백질 분자가 생성됐고, 각 분자는 서로 다른 특성이 있다. 이 다양성도 이론적으로 가능한 가짓수에 비하면 미미하다. 진화를 통해 시험된 적이 없는, 가능한 단백질 수는 엄청나게 많다. 이는 우주의 원자 수를 훨씬 초과한다.
생물학자들은 자연의 무한한 혁신의 힘을 활용하는 것을 오랫동안 꿈꿔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 천연 단백질을 변형하는 데 그쳤다. 단백질의 특성을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긴 분자 사슬의 연결고리 중 몇 개를 교체하는 것이 전부였다.
베이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려 한다. 그의 실험실에서 지금까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베이커는 자신의 목표가 거의 달성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제 우리는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고 선언했다. 두 협력자가 베이커를 돕는다.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구팀이고, 다른 하나는 최신형 인공지능(AI)이다.
베이커의 연구팀은 유명하다. 120명의 단백질 화학자, 분자생물학자, 면역학자, 생물물리학자, 컴퓨터과학자 그리고 AI 전문가가 그의 감독하에 연구한다. 전세계 어느 연구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연구그룹이다. 이들은 현재 열광적으로 연구한다. AI에 단백질 언어를 가르치는 데 성공했다. 챗지피티(ChatGPT)가 새로운 텍스트를 생성하는 것처럼, 베이커 연구실의 AI는 새로운 단백질을 생성한다. 컴퓨터의 창의력이 넘쳐나 사람들은 그 모든 창작물을 생산하고 테스트할 수 없을 정도다.
자연이 새로운 단백질로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베이커의 연구팀은 합성단백질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연구원들은 각자 자신만의 과제를 설정했다. 어떤 사람은 오래 지속하는 환경 독소를 분해하는 효소를 개발하려 하고, 다른 사람은 기후친화적인 시멘트를 생산할 계획이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박테리아 세포로 바이오컴퓨터를 만들려 한다.
네이선 에니스트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연료로 전력을 생산하는 연구를 한다. 에니스트의 목표는 어떤 식물보다 더 효율적으로 빛을 연료로 전환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것이다.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그는 단언한다.

   
▲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학의 단백질디자인연구소 연구원들이 연구 결과를 놓고 토론하고 있다. 연구소에는 100명 이상의 열정적 공학자들이 모여 있다. 단백질디자인연구소 누리집

단백질로 이산화탄소 제거
자연광합성은 복잡한 과정이다. 각각 12개 이상의 단백질로 구성된 두 개의 큰 분자복합체, 수백 개의 엽록소 분자, 양성자펌프(생체막을 중심으로 한편에서 다른 편으로 양성자를 옮기는 막단백질), 전자전달계(미토콘드리아 내막에 있는 일련의 단백질로, 단백질과 효소, 전자를 운반한다)가 관여한다. 그럼에도 빛이 화학에너지로 변환되는 효율은 놀라울 정도로 낮다.
에니스트는 수많은 천연 단백질이 있는 식물에서 일어나는 일을 몇 개의 인공 단백질로 달성하고자 한다. 그는 이미 간단한 광합성 시스템을 발견했으며, 이제 컴퓨터의 도움으로 이를 최적화하려 한다. “우리는 진전했다”고 그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베이커 연구실의 다른 구석에는 할리 파일스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그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 해양생물의 석회질 껍질의 성장은 껍질에 내장된 단백질이 제어한다고 파일스는 설명한다. AI의 지원을 받아 그는 이제 자신의 컴퓨터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석회 퇴적을 촉진하는 단백질 분자를 설계한다. 이 단백질을 대량생산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석회석 형태로 저장하는 우아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시애틀 연구소의 대부분 연구자는 의료 응용 분야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의학에서 단백질과 그 결함은 매우 중요하다. 단백질은 감염을 매개하고, 암을 유발하며, 거의 모든 질병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따라서 단백질 연구로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베이커에게 단백질 설계의 잠재력을 입증할 기회였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첫 환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단백질 조작은 초기 단계였다. 베이커의 아이디어는 비전에 불과했다. 이후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라는 새로운 감염병의 병원체가 확인됐다. 불과 몇 주 후, 바이러스 표면의 스파이크(돌기) 단백질이라고 불리는 3차원 구조가 밝혀졌다. 이로써 베이커와 그의 팀은 감염병에 맞서 싸우는 데 노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몇 달 만에 베이커 연구소에 코로나 병원체와 맞서 싸우는 데 사용할 인공 단백질 무기고가 만들어졌다. 베이커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인간 세포와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는 분자를 개발했고, 바이러스 입자에 결합하자마자 빛이 나는 바이오센서를 사용해 코로나 테스트 방법을 만들어냈다. 또한 그들은 다른 백신보다 더 강력한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나노입자를 설계했다.
코로나19의 경우 이 모든 혁신을 임상실험으로 발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베이커는 다음번 감염병 대유행이 발생하면 몇 주 안에 단백질 의약품을 약국에 공급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베이커는 “단백질 설계가 이렇게 즉각적으로 실질적인 이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다”면서 팬데믹은 그에게 전환점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베이커 연구소의 많은 실험실 자리가 팬데믹으로 비어 있는 동안, 낯선 존재가 그의 연구 분야에 슬며시 들어왔다. AI다. 코로나19 전에도 베이커는 과학계 슈퍼스타였다. 적어도 2012년 시애틀에 연구소를 설립한 이래 그는 아직 초기 단계인 단백질 설계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결정적 요인은 베이커 연구소가 개발한 소프트웨어 ‘로제타’(Rosetta)였다. 로제타는 단백질의 3차원 모양을 알아낼 수 있는 신뢰성 높은 소프트웨어다. 베이커는 누구나 인터넷으로 이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돌파구였다. 로제타는 점점 성장하던 단백질 디자이너 커뮤니티가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포럼이 됐고, 베이커는 이 포럼의 사회자가 됐다.
2020년 11월 상황이 급변했다. 구조생물학(생물의 생명활동에 필요한 물질의 구조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학문) 국제경연대회에서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의 소프트웨어인 ‘알파폴드’(AlphaFold, 단백질 구조 파악 AI)가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베이커의 프로그램을 이겼을 뿐 아니라 압도했다. 알파폴드는 전례 없는 정밀도로 수백만 개의 천연 단백질 구조를 확인했다.
베이커에게는 쓰라린 경험이었다. 단백질 구조 분야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소수의 컴퓨터광이 베이커와 그의 세계 수준의 연구진으로부터 ‘쇼’를 훔쳐가버린 것이다. 단백질 디자인의 미래 세계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AI라는 점이 단번에 명확해졌다. 그러나 베이커는 싸우지도 않은 채 전쟁터에서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알파폴드는 천연 단백질의 구조를 확인하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새로운 분자를 설계하는 데 약점을 보였다. 이 부분에서 베이커는 구글 직원보다 더 잘하고 싶었다.

새 단백질 설계 도구 ‘RF디퓨전’
AI 발전이 그에게 도움이 됐다. 생성형 AI는 기존 AI와 마찬가지로 방대한 양의 학습 데이터에서 규칙과 패턴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이 규칙을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다. 챗지피티는 한 번도 작성되지 않은 텍스트를, 미드저니(Midjourney)는 한 번도 촬영되지 않은 사진을 생성한다.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 진화한 적이 없는 단백질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눈 깜짝할 사이에 생성형 AI는 단백질의 문법을 완벽하게 학습했다. 챗지피티가 에세이, 편지, 시를 생산하는 방법과 유사하게 베이커의 소프트웨어 ‘RF디퓨전’(RFdiffusion)은 새로운 단백질 분자를 발명한다. 이 소프트웨어는 이제 최고의 인간 전문가보다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이 3차원 구조로 접히는 과정)의 많은 규칙을 더 잘 이해하는 것 같다.
베이커의 연구실은 단순한 과학 연구실 이상이다. 이곳은 기업의 산실이기도 하다. 모든 박사과정 학생은 학문적 경력 추구나 본인 회사 설립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그의 학생들이 다루는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는 사업 가능성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미 18개의 회사가 시애틀의 연구소에서 탄생했다. 이들은 10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베이커는 확신한다. 그는 자신이 ‘영구혁명’의 진원지에 있음을 자각했다. “이미 로제타가 혁명을 의미했고, AI가 다른 혁명을 불러왔다. 그리고 다음 혁명이 현재 만들어지고 있다.”

ⓒ Der Spiegel 2023년 제38호
Werkstoff der Zukunft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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