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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이직 부추기는 다혈질에 괴팍한 상사
[FOCUS] 직장 갑질- ① 우리 사장은 사이코
[163호] 2023년 11월 01일 (수) 플로리안 곤테크 economyinsight@hani.co.kr

 
불쾌하게 구는 상사, 무거운 사무실 분위기, 유독한 기업문화…. 회사 직원들이 불행하다고 느끼게끔 운영되는 기업이 너무도 많다. 이런 경우 경제적 피해가 엄청나지만, 이 불행을 겪는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무실의 안 좋은 문화를 해독할 방법이 있을까.


플로리안 곤테크 Florian Gontek 등 <슈피겔> 기자

   
 

찬장에 정리된 커피잔들에 눈이 갔을 때, 티모(49·성은 ‘T’로 익명화하기로 한다)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회사 로고가 찍힌 찻잔 면이 제대로 한쪽을 향하지 않으면 사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장은 찻잔을 정리한 사원에게 동영상을 보내, ‘잔들은 이렇게 세워놓아야 한다’고 주입했다. 구체적으로 “회사 로고가 앞쪽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직원 T는 말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독일 서부에 자리한 어느 광고대행업체의 사장이다. 사장의 분노가 폭발하는 건 비단 사기 찻잔이 잘못 정리됐을 경우만이 아니었다. 사무실에 운동화 신고 출근 금지, 보라색 계통 복장 금지, 음식 냄새를 철저히 삼갈 것 등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열거한 그의 목록은 길었다. 사장의 분노 폭발에서, 그리고 공개 석상에서 퍼부어지는 그의 닦달에서 안전한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는 퇴근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근무 중 지시 사항은 가혹한 어투로 전달됐다. 위계질서의 맨 꼭대기에 있는 사장은 그런 방식을 원했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너나없이 모욕당하는 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한 T는 “내가 작성한 서류에서 글자 하나가 잘못 찍힌 문장이 발견되기라도 하면, 일에 100% 전념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그런 사소한 일로도 사장은 직원들에게 경고장을 보내는가 하면, 근무성적표에 이 사항을 적어넣겠다고 위협했다. 설령 그 협박이 실제 행해지지 않더라도, 이로 인해 사원들은 늘 겁에 질려 있었다.

   
▲ 다혈질이고 파렴치한 직장 상사는 번아웃의 원인이 되고 이직을 부추긴다. 독일 베를린의 출근길 지하철 모습. REUTERS

협박에, 닦달에 우울증
이 불안이 결국 한도를 넘어 스트레스로 변했다. 언제 또 사장이 폭발할까, 안절부절못하는 상태가 됐다. T는 이를 “언제라도 불시에 수모를 당할 수 있다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위장병이 생겼고, 수시로 진땀이 솟았다. 우울증 증상에 시달려 급기야 병가를 냈다. 의사는 T에게 심리치료를 권했고, 권고를 받아들여 T는 6주 동안 심신증 전문 병원에서 요양치료를 받았다. 그러고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T는 영상전화로 이 이야기를 했다. 검은색 후드스웨터를 입고 반테 안경을 쓴 그는 이마가 벗겨져 있었다. 이야기하는 동안 T는 깊이 호흡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그는 자막에 자기의 성이 나타나기를 원치 않았다. 다혈질인 과거의 자기 사장과 영원히 하나로 엮여 언급되는 게 싫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를 견디지 못해 직장을 내던지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굴욕을 느끼게 하는 조직생활이 싫다는 것이다. 그들의 직장을 지배하는 것은 건강한 리더십 문화에 일견식도 없는 위계구조다. 그러다보면 최악의 경우 병이 들 수 있다. 직장 바깥의 세상은 점차 조심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소수자의 이익 보호 개선과 상호 존중을 기치로 내걸면서 말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 안에서 여전히 ‘재수 없는’ 문화가 살아 있는 게 분명하다.
글로벌 컨설팅 전문회사 매킨지(McKinsey)가 2022년 발표한 국제적 연구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네 사람 중 한 명은 직장에서 상사의 유독한 행동에 자주 노출된다고 대답했다. 다혈질 상사나 건강하지 못한 근무 분위기는 번아웃(소진)의 원인이자, 많은 직장인이 회사를 떠나고 싶게 하는 최대 원인으로 꼽힌다. 컨설팅·여론조사 회사인 갤럽은 최근 설문조사에서 ‘정서적 욕구가 직장에서 간과되거나 무시된다고 느끼는 직원’들은 직장과의 유대감을 적게 느낀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 직장에 정서적 유대감을 많이 가지는 직원 수가 놀랍게도 2012년 이래 최저치를 보인다고 마르코 닝크 갤럽 리서치 팀장은 지적했다.
이 현상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반에서 나타난다. 전세계 10개 지역을 종합·분석한 결과에서 유럽은 맨 아래쪽 자리를 차지했다. 직업이 의미 있고 자신이 속한 팀과 회사에 유대감을 느끼는 사람의 전세계 평균은 23%에 이르는 데 비해, 유럽은 겨우 13%를 기록했다. 동시에 마음속으로 이미 현재 다니는 직장에 사표를 냈다고 말하는 직장인은 전세계적으로 18%까지 증가했다.
닝크는 이런 현상의 이유를 ‘장기적 위기 모드’(코로나19, 기후변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적으로 연속되는 재난 –편집자)에서 찾는다. “경영자들은 현재 무엇보다 위기 대처에 신경 쓰다보니 직원 문제는 그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직업세계가 좀더 친화적인 장소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신호도 요즘 많이 나타난다. 기업들은 ‘새로운 직장 개념’(New-Work-Concepts)을 표방하면서 다채로운 만남의 장소를 기업 복도에 배치하고 있다. 독일에서 노동자 4분의 1은 재택근무를 하는데, 이 규모는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전의 두 배다. 소규모 기술기업들은 직원들이 긴 주말을 원한다면서 ‘주 4일 근무’를 제안한다.
Z세대(1995~2009년 출생)는 취업 면접 시험에서 이미 ‘워크-라이프 밸런스’(일과 삶의 균형) 관련 질문을 하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회는 요즘 필사적으로 전문인력을 수소문한다. 지금처럼 정원이 채워지지 않은 빈 일자리가 많은 적은 역사상 없었다. 요즘은 사원을 구하는 사장, 그리고 일단 발견한 사원을 회사에 잡아두려는 사장이라면 누구나 노력해야 하는 시대다.
그러나 사원의 욕구를 세심하게 살피는 신개념의 직장 저편 그늘에선 아직도 유독한 기업문화가 번창하고, 어떤 분야도 여기서 완전히 안전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리고 사장과 직원 간 위상 차이가 클수록, 자칭 천재라는 꼭대기 인물에 대한 종속성이 심할수록, 굴러떨어질 나락도 그만큼 더 깊어진다.
전문가들은 존중하지 않음, 배타성, 비윤리성, 잔인, 모욕 이 다섯 가지를 경영자의 ‘5대 유독성 행동’의 특성으로 꼽는다. 누가 이런 회사에서 근무하려 할까? 닝크는 “많은 사람이 사장 때문에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 그러지 않은 사람은, 몸은 직장에 머물지만 내면에서는 아예 직장에 관한 신경을 끊는다. 이른바 ‘조용한 사직’이라는 이 현상은 유독한 직장이 초래한 결과다.
직원의 저조한 근무 참여도는 8조8천억달러(약 1경1천조원)의 손해를 세계경제에 끼친다고 갤럽 조사는 보고했다. 갤럽 최고경영자(CEO) 존 클리프턴은 “경영을 잘 못하면 고객이 줄고 수익이 감소할 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고통이 된다”고 말한다. “자기가 증오하는 직업을 갖는 것이 실업자로 사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직장생활에서 발아한 부정적 정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의 가정에까지 뻗쳐 가족관계에 부담을 준다. “직장생활이 영 유쾌하지 못한데 개인의 생활이 유쾌할 가능성은 작다.”

   
▲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직원들을 상대할 때 괴팍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 회장이 2023년 6월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바 테크놀로지 콘퍼런스’(Viva Technology Conference)에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REUTERS

유독한 직장과 조용한 사직
놀랍게도 책임자들이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직원과 경영자의 인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경영자는 직원이 직장에서 편안히 느끼는 정도를 직원이 평가하는 것보다 22%나 높게 생각했다. 그들에게 문제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맹점이야말로 문제의 일부다.
‘유독성’이란 말이 ‘남성성’이란 단어와 결합해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직원의 직장생활을 지옥으로 만드는 이가 늘 남성인 것은 아니다. 조직발전 전문가 제임스 캐넌은 “폭력에는 갖가지 형태와 크기가 있고, 폭군 역시 성별과 관계없이 양쪽에 다 있다”고 말한다. 그는 건강하지 못한 기업문화를 야기하는 요소를 해부한 책을 냈다. 기업문화에서는 리더의 성격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 이른바 ‘어둠의 3요소’(나르시시즘·마키아벨리즘·사이코패스)야말로 고전적 위계질서에서 리더의 지위 상승을 가능케 해준 특성이라고 캐넌은 지적한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어느 해 겨울, 제설 작업을 담당한 회사의 직원들이 절망한 나머지 시의 인권사무소에 제소한 적이 있다. 그 회사 사장이 직원을 세 범주로 나눠, 각각 다른 로고가 등에 붙은 근무복을 입고 작업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스마일 로고의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은 커피와 에너지음료를 무상으로 받고 회사 차량을 사적으로 쓸 수 있었다. 별 표시나 늑대 표시를 단 작업복의 직원은 사장실 출입이 금지됐다. 그리고 고객이 회사 서비스에 불평하면 해당 직원은 감봉 처리가 됐다.
다혈질 경영자들의 이야기도 많이 전해 내려온다. 전 폴크스바겐 사장 마르틴 빈터코른 같은 사람이 한 예다. 볼프스부르크(폴크스바겐 본부가 있는 도시)에 공포문화를 정착시킨 그는, 품질 광신자이자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마이크로매니저로 정평이 나 있었다. 머리카락만큼만 틈이 생겨도 직접 자를 들고 측정하지 않고는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신상품을 소개하는 행사장, 그가 둘러보는 박람회장에서는 법정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만족스럽지 못한 제품을 보면 그는 회사의 노련한 기술자를 마치 머리 둔한 초등학생 다루듯, 그것도 청중 앞에서 힐난했다. 언젠가는 전시된 자동차 좌석의 품질을 못마땅해한 그가 단숨에 좌석을 칼로 베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빈터코른은 폴크스바겐의 디젤차 배기가스 스캔들로 고소된 최고의 유명 인사다.
스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음악의 천재’로 불린다. 그도 자신의 오케스트라 음악가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경멸, 모욕, 심지어 신체적 폭력까지 가한 것으로 그는 비난받았다. 독일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 태생의 이 지휘자는 신체적 폭행을 부인하면서 자신이 “라틴아메리카적 기질을 약간 지녔다”고 언급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참을성이 없어지고, 관객 때문에 화나는 일도 가끔 있었다는 것이다.

   
▲ 스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음악의 천재로 불리지만 자신의 오케스트라 음악가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바렌보임이 2023년 4월21일 자신에게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주는 행사에 참석했다. REUTERS

 

   
▲ 전 폴크스바겐 사장 마르틴 빈터코른은 사내 공포 문화를 정착시킨 것으로 악명이 높다. 결국 그는 폴크스바겐의 디젤차 배기가스 스캔들로 하차했다. 빈터코론이 2017년 1월19일 독일 배기가스 조작 관련 청문회에 참석한 모습. REUTERS

폭군을 받쳐주는 기업문화
파렴치한 경영자 유형은 오늘날에도 완강하게 존재감을 과시한다. 관광객을 우주로 쏘아 올리거나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시도에는 자만심도 한몫한다. 기술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도 직원들을 상대할 때 이런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의 테슬라 공장에 (사내 정보 유출을 막는다며) ‘보안 정보 조사관’이라는 수석조사관 채용 공고를 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2년 10월 트위터를 인수한 뒤, 머스크는 전 직원의 절반을 해고했다. 해고되지 않으려면 “극도로 힘든 일도 하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 결국 많은 직원이 회사를 떠나 한때는 기업 존속이 우려되기도 했다.
기업 전체를 초토화하는 게 폭군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힘을 행사하게 해주는 주변 환경이 받쳐줄 때만 가능하다. 기업주의 유독한 행동을 강화하고 보상해주며 그런 방식으로 성공에 이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문화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현재 독일에는 기업주의 유독한 행위를 제재하는 법이 없다. 부적절한 행동이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라 해도 미국에서처럼 기업이 수백만달러의 벌금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집단소송도 금지됐다.
성질 고약한 리더가 물어야 할 벌금은 기껏해야 몇천유로 정도다. 이에 비해 피해자가 떠안는 위험은 크다. 피해자는 고용주를 상대로 수년에 걸친 소송을 끌어가야 한다.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미하엘 풀로트가 의뢰인들에게 ‘상사의 악행을 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회사를 떠나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요즘 고용시장 동향은 노동자가 새 직장을 찾기 수월하다.” 가해자가 그 자리에 계속 남아 독을 방출하도록 놔두라는 말이다.

ⓒ Der Spiegel 2023년 제36호
Hilfe, mein Chef ist ein Psycho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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