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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재능 아닌 부모 사회적 자본 탓
[SPECIAL REPORT] 돈·재능 아닌 부모 사회적 자본 탓
[163호] 2023년 11월 01일 (수) 카를라 노이하우스 economyinsight@hani.co.kr

 
무너진 자수성가 신화 꿈도 희망도 사라진다
출신 배경과 무관하게 재능과 성실함, 그리고 야망만으로 사회적 계층 사다리를 뛰어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다리를 올라가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고 아주 예외적으로 극소수만 성공한다. 학력, 재력, 인맥, 지식이 충분한 집안의 자녀는 자신을 끊임없이 밀어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지녔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가정에 재정적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는 ‘개천에서 용 나는’ 데 충분하지 않으며 국가 차원의 조기교육, 멘토 시스템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_편집자

카를라 노이하우스 Carla Neuhaus
안카트린 네치크 Ann-Kathrin Nezik
<차이트> 기자

   
▲ 어린 시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진단받은 신생기업 ‘익스프레스 슈토이어’의 최고경영자 막시밀리안 람프스도르프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근성으로 어려움을 극복했지만 대다수 가정은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다. 익스프레스 슈토이어 누리집


독일에서는 출생 배경이 여전히 커리어 기회를 결정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사람의 사회적 상승을 도울 방법은 많다.

막시밀리안 람프스도르프(28)는 엄청난 액수를 말할 때도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그의 기업은 성장을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 그래서 람프스도르프는 잠시 뒤 투자자와 회의 일정이 잡혀 있다. 스타트업(신생기업) 세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정이다. 은색 반지를 낀 금발의 그는 “내 일을 사랑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말한다. <차이트> 취재진은 람프스도르프가 독일 베를린의 한 초밥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투자자들이 그에게 투자를 결정할 만큼 믿음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람프스도르프는 그의 세대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을 이뤘다. 그는 23살 때 스타트업 ‘익스프레스 슈토이어’(Express Steuer)를 창업해 고객들의 세금신고 업무를 지원한다. 그가 투자받은 금액만 3천만유로(약 430억원)가 넘는다. 람프스도르프가 이 정도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의 본명은 막시밀리안 코르넬리우스 레온세 그라프 람프스도르프 프라이헤어 폰데어 벵게(Maximilian Cornelius Leonce Graf Lambsdorff Freiherr von der Wenge)다. 그는 함부르크 서부의 부유한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람프스도르프의 아버지는 와인 매장 여러 곳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지역 정치인이었다. 그는 오랜 전통의 귀족 가문 출신이다. 그의 가문은 군부와 기업인 등 저명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최근 주러시아 독일대사로 부임한 자유민주당 정치인 출신 알렉산더 그라프 람프스도르프도 그의 가문 출신이다.

   
▲ 막시밀리안 람프스도르프가 창업한 ‘익스프레스 슈토이어’의 사무실. 고객들의 세금신고 업무를 지원한다. 익스프레스 슈토이어 누리집

ADHD 아이가 성공한 배경
람프스도르프의 삶의 여정은 일직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릴 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진단받은 그는 거의 집중하지 못했고, 김나지움(독일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 추천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내가 김나지움에 진학할 수 있도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어머니는 나를 앉혀놓고 함께 단어를 연습했다. 내가 학교를 무사히 마칠 때까지 어머니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람프스도르프는 16살에 캐나다의 한 기숙학교를 다니면서 독일 아비투어(고등학교 졸업시험)에 합격하고, 독일 코블렌츠 인근 팔렌다어에 있는 사립대학인 ‘WHU 오토 바이스하임 경영대학’ 입학시험에도 합격했다. WHU는 독일 차세대 창업자 인큐베이터로 잘 알려진 대학이다. 3만유로가 넘는 학비는 그의 가족이 부담했다.
어린 시절부터 포기를 모르는 부모의 근성과 정성 어린 가족의 돌봄이 없었다면 람프스도르프가 과연 성공적인 기업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 원하고 동기부여가 돼 있다면 과거 어느 때보다 돈을 벌기 쉬운 시대에 사는 행운을 나는 누리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정말 그럴까? 젊은 기업인 람프스도르프가 해낸 일을 누구나 해낼 수 있을까?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독일은 공교육 분야에서 야심 찬 실험을 단행했다. 독일 전국에 대학이 새로 설립됐다. 또한 서민 가정 자녀들이 재정적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것을 막으려 연방교육지원법이 도입됐다. 부모의 배경이나 재력과 상관없이 미래 세대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연방교육지원법의 목표다.
하지만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현재, 공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2023년 4월 뮌헨에 있는 IFO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아비투어를 치르지 않은 부모를 둔 자녀들의 28%만이 김나지움에 진학했다. 반면 양쪽 부모 모두 대졸인 경우, 자녀의 김나지움 진학률은 75%였다. 김나지움처럼 대학 진학률도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고졸 이하 학력인 경우, 자녀들의 4분의 1만이 대학에 진학했다. 이에 비해 대졸 부모 자녀들은 무려 79%가 대학에 들어갔다. 독일에서 부모 학력이 고졸 이하인 경우,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녀의 비율은 2%에 불과했다. 부모가 대졸 이상인 경우 해당 비율은 6%로 껑충 뛰었다.
출신 배경과 무관하게 재능과 성실함 그리고 야망만으로 사회적 계층을 뛰어오를 수도 있다. <차이트> 취재진이 만난 유치원 교사는 대학을 마치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뒤 교수가 됐다. 양목장 주인의 아들은 항공업계에서 경력을 쌓아 에어버스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사다리를 올라가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집안에 학력, 재력, 인맥과 지식이 충분히 있는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다. 부유한 집안 자녀는 자신을 끊임없이 앞으로 밀어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지녔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자산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은 가지지 못한 ‘소리 없는 모터’를 장착한 격이다.

   
▲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4월26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파울나토르프김나지움에서 학생들이 김나지움(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있다. IFO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아비투어를 치르지 않은 부모를 둔 자녀들의 28%만이 김나지움에 진학했다. REUTERS

부유층 자녀의 ‘소리 없는’ 모터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평균소득을 벌기까지 6세대가 소요된다고 한다. 덴마크, 캐나다, 일본에서는 이것이 독일보다 훨씬 짧게 걸린다. 그래서 이 국가들은 독일과 비교해 그만큼 경쟁력을 지녔다. 이 국가들에서는 사회계층 사다리를 오르기 더 쉬움에 따라 개인과 국가 전체의 상황이 더 나을 수밖에 없다. 이 국가들은 더 많은 경제적 성과를 내고 국가 경쟁력도 월등할 수밖에 없다.
전문인력난이 악화할수록 균등한 교육 기회는 그만큼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2023년 5월 독일의 고용연구소 추산치에 따르면, 2060년이면 독일에는 현재 대비 노동인력이 무려 500만 명이나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고용연구소가 여성과 노인이 지금보다 더 많이 오래 일하고, 국외 전문인력을 훨씬 더 많이 확보하리라 가정해 추산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자료에 따르면, 지금도 독일은 전문인력난으로 연간 970억유로를 손해 보고 있다. 이 상황에서 후학 양성을 게을리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이를 “활용하지 않은 잠재력”이라고 이른다.
독일에서 대졸 이상 학력의 부모를 둔 자녀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지닌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균등한 교육 기회는 어느 때보다 시급한 사안이 됐다. 독일 정부는 오랜 줄다리기 끝에 자녀기초수당에 합의했다. 정부는 자녀수당, 자녀특별보조금, 교외체험학습지원금 혹은 음악수업지원금 등 저소득층 가계를 위한 중구난방 현금지원책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자 자녀기초수당을 도입했다. 자녀기초수당은 간편하게 신청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더 많은 부모가 자녀기초수당을 활용하도록 유도해, 더 많은 아이를 빈곤의 늪에서 구하고 저소득층 아이에게 부유층 아이와 균등한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이 자녀기초수당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집안의 배경, 재력, 주거지에 따라 교육의 질이 정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도 “출생 배경이 일상에서의 기회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인들은 저소득층 자녀가 살면서 기회를 적게 가지는 현실 진단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각 가정에 지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지(녹색당 입장), 각종 지원금이 국가 의존도만 심화할지(자유민주당 입장)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학계는 그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막 불평등의 원인을 모색했다”고 IFO경제연구소의 교육경제학자 루트거 뵈스만은 말했다. “단순히 돈 문제는 아님이 분명하다.”
관련 학계의 이런 인식은 상당히 의외고 독일 정부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즉, 저소득층 가정에 재정 지원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자녀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의 소득보다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의미다. 미래 세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자본에는 롤모델과 인내심, 용기 그리고 자존감, 미래 커리어를 위한 자신감 넘치는 태도 등이 있다. 사회적 자본은 오랫동안 간과됐지만 이제 경제학자와 교육학자가 점점 더 중시하는 이른바 ‘소프트 스킬’(타인과 협력하는 능력, 문제해결력, 감정을 조절하는 자기제어 능력, 의사소통 능력, 리더십, 회복탄력성 등)을 가리킨다. 소프트 스킬은 성공적 인생의 핵심이기도 하다.

   
▲ ‘흙수저’ 집안 출신인 독일 베를린경제법학대학의 모니카 휘스만 교수는 자신의 배경을 사람들이 여전히 조금은 눈치챈다고 말한다. 모니카 휘스만 개인 누리집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
베를린경제법학대학의 모니카 휘스만(60) 조직·인사관리·정보관리학 교수는 이 분야의 전문가다. 휘스만 교수 사무실에는 책장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책장에는 <초보자들을 위한 협상의 스킬>이라는 전문 안내서가 꽂혀 있다. 방문에 이름 표지판이 없었다면, 그의 연구실을 평범한 사무직 사무실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 큰 불만이 없다. 천장까지 책장을 설치해 책을 빼곡히 꽂아두는 것은 성향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다독가이자 애독가이지만, 그렇다고 자랑하듯 내보이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고 싶지 않다.” 그는 과거에 책이 천장까지 쌓여 있는 곳을 가면 주눅이 들었다고 했다.
휘스만 교수에게는 언니가 둘 있고, 어머니는 간호사, 아버지는 마사지사였다. 10학년을 마친 뒤 그는 김나지움을 중단하고 유치원교사 직업교육을 받았다. “대졸자를 남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꼰대쯤으로 여겼던 부모님은 내 진로 변경을 아주 흡족해했다.”
휘스만 교수는 20대 후반에 아비투어를 뒤늦게 치렀고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해당 학년에서 최우수 학생이 됐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대학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축돼 있었다.” 강의표에 적힌 시각보다 강의가 15분 늦게 시작하는 것을 몰라 처음에는 강의 시간보다 훨씬 일찍 강의실에 도착하기도 했다. 그는 어느 과목 시험에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독일 극작가·소설가)로부터 리더십과 관련해 무엇을 배울 수 있냐는 문제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교수님은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당연히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작품을 읽어봤으리라 생각하고 그런 문제를 냈다.” 하지만 휘스만 교수는 당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전문직업대학 교수로 임용된 뒤에도 휘스만 교수는 여전히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그는 난생처음 콘퍼런스 연사로 초청받고, 동료 교수들에게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물어보기도 했다. 콘퍼런스 휴식 시간은 더욱 곤혹스러웠다. “나를 제외한 참가자들은 모두 서로 아는 것처럼 보였다. 오로지 나만 아는 사람 하나 없이 고립무원처럼 여겨졌다.” 외부 관계자와 교류하기,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안면 트기 등은 휘스만 교수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일이었다.
영국 사회학자 샘 프리드먼은 고졸 이하 학력의 부모를 둔 자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천장에 부딪힌다는 의미의 신조어 ‘계급천장’(Class Ceiling·출중한 능력을 갖춘 여성들도 최고 자리에 상대적으로 오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유리천장’에서 도출한 개념)을 만들었다. 사회적 자산이 없는 집안 자녀들은 학교 성적이 탁월하고 열정으로 충만해도 계급천장을 극복하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미하엘 하르트만 다름슈타트공과대학 명예교수는 “이들에게는 당당한 자신감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다. “자기 노력으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간 사람은 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과 비교하면 일할 때 쭈뼛거리고 강박증을 보인다.”

ⓒ Die Zeit 2023년 제40호
Der Unsichtbare Vorteil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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