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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환경 달라도 우리는 한팀”
[SPECIAL REPORT] 흙수저 대물림- ③ 베냐민·야니나 린 오토 부부 인터뷰
[163호] 2023년 11월 01일 (수) 카를라 노이하우스 economyinsight@hani.co.kr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유통업체 중 하나인 독일 오토그룹의 상속자 베냐민 오토는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반면 부인 야니나 린 오토는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부부가 자라온 가정환경은 두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카를라 노이하우스 Carla Neuhaus
안카트린 네치크 Ann-Kathrin Nezik
<차이트> 기자
 

   
▲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유통업체 중 하나인 독일 오토그룹의 상속자 베냐민 오토와 부인 야니나 린 오토. 홀리스틱재단 누리집/ 야니크 친케-호리게 촬영

베냐민 오토, 당신 가족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언제 인식하게 됐는가.
베냐민 내가 14살 때 독일 쥘트섬을 산책하면서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함께 설립한 회사 얘기를 들려주던 순간이 아직 기억난다. 그때 우리 집이 다른 집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성장 과정은 어떠했나.
베냐민 비교적 평범했다. 부모님은 우리 남매가 버릇없이 자라지 않도록 무척 신경 썼다. 내 방을 직접 치우고, 쓰레기 버리는 일도 했다.
독일의 가장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한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
베냐민 우리 가족은 함부르크 엘베강 교외의 부유한 거주지에서 큰 정원이 딸린 주택에 살았다. 정원이 실제로 무척 컸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우리 가족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도 경험했다. 동네 남자아이가 생애 첫 자동차로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를 선물받았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런가.
베냐민 아버지는 첫 차로 벤츠 자가용을 선물받는다면 앞으로 더 나아질 잠재력이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물질적인 것은 아버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리얼리티쇼에서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사람들을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봤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을 ‘신흥 부자’라고 불렀다. 나쁜 의도에서 붙인 명칭은 아니고, 이들이 쉽게 돈을 벌어서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의미였다. 부모님은 자신의 재산을 남들에게 굳이 과시할 필요가 없음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베냐민 오토의 아버지 미하엘 오토(80)는 아버지 베르너 오토로부터 오토 통신판매업체를 물려받았고 이후 헤르메스(Hermes) 택배사, 온라인쇼핑 플랫폼 본프릭스(Bonprix), 소매업 매뉴팩툼(Manufactum)을 자회사로 거느린 글로벌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오토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서프로이센에서 함부르크로 피란을 갔다. 당신의 아버지는 당시 두 살이었다. 아버지의 이 경험이 자녀 교육에 영향을 미쳤을까.
베냐민 확실히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우리 남매에게 겸손함과 현실감각을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부모님은 우리 남매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서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줬다. 아버지와의 그린란드 여행은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와 나는 그린란드에서 캠핑하며 낚시도 했다. 아무것도 낚지 못하는 날이면 감자를 먹었다. 그런 여행이 마음에 쏙 들었다. 아버지도 실제 캠핑을 많이 다녔다. 나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고 수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야니나 시아버지가 겸손하고 수수한 분임은 내가 보증할 수 있다. 시부모님은 아직도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닌다.

   
▲ ‘유럽의 아마존’이라는 독일 전자상거래 기업 오토의 누리집.


겸손하고 수수한 아버지
두 사람도 이코노미석을 보통 이용하나.
베냐민 아이들과 여행할 때면 종종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을 타지만, 우리도 기본적으로는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하지만 지난 3년간은 비행기 탈 일이 아예 없었고, 이번 여름에는 독일 북해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걸로도 충분히 행복한 휴가였다.
야니나 린 오토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나.
야니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시골에서 자연과 가깝게, 그리고 현실감각을 배우며 자랐다. 아버지는 정밀기술자였고, 어머니는 테크니컬 디자이너였다. 나는 말을 사랑하는 소녀였다. 부모님은 내가 계속 말을 탈 수 있게 해주려고 했지만 돈 한 푼도 허투루 쓰는 적이 없었다.
베냐민 처가 식구들만큼 화목한 가족은 거의 보지 못했다. 처가 식구들은 서로를 살뜰하게 챙겨준다.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항상 옆을 지켜준다. 우리 가족도 비슷했지만, 아버지는 자주 출장을 다녀야 해서 항상 우리 곁에 있어주지는 못했다.
야니나 부모와 친밀했던 관계를 내 아이들과 그대로 이어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낳고 처음 몇 년간은 유모를 두지 않았다. 영유아기는 전체 인생에서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베냐민 부모님과의 돈독한 관계를 아이들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이어온 아내에게 정말 감사하다. 우리는 아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려 한다. 누구도 우리 관계를 어떻게 할 수 없다.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됐나.
야니나 클럽에서 알게 됐다.
남편이 어떤 가문의 사람인지 알았나.
야니나 몰랐다. 그러는 편이 더 나았던 것 같다. 결혼 뒤 이름으로 내가 누구인지 정의되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
오토 집안과 결혼으로 맺어지는 일을 숙고했는가.
야니나 다행히 나는 그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겐 남편 자체가 중요했다.
당신도 기업인이다. 2011년 함부르크에 비스트로를 개업했다.
야니나 경영학 전공 뒤 식품산업에서 일했다. 식품산업의 제품 생산 방식에 내가 동의할 수 없음을 금방 느꼈다. 부모님이 돈을 조금 모아둔 상태였고 나도 말을 교육해 돈을 벌었던 터라 독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오직 한 번의 기회만 있음을 알았다. 다행히 비스트로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몇 년간 새벽 3시에 일어나 주방에서 일한 적이 많았다.

베냐민 오토는 가족이 운영하는 대기업에서 학생 인턴을 마쳤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베렌베르크은행에서의 직업교육과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의 국제경영 학업을 마친 뒤, 그는 스타트업 몇 곳을 창업했다. 2014년부터 오토그룹에 속하는 온라인 패션쇼핑몰 어바웃유(About You)를 공동창업했다.

베냐민 오토, 당신은 항상 기업인이 되기를 원했나.
베냐민 어떤 면에서는 그랬다. 아버지는 이 문제와 관련해 나를 전혀 압박하지 않았다. ‘네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아버지가 말한 적도 있다.
예술가는 되고 싶지 않았나.
베냐민 그렇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한 친구와 함께 무엇을 팔 수 있는지 고민했다. 훗날 스타트업 업계에서 일하며 프로젝트 구상부터 실행까지 전 과정을 추진해보는 것이 내게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 미하엘 오토는 아버지 베르너 오토로부터 오토 통신판매업체를 물려받았고 이후 헤르메스 택배사, 온라인쇼핑 플랫폼 본프릭스, 소매업 매뉴팩툼을 자회사로 거느린 글로벌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2007년 6월 오토그룹 본사 앞에서 포즈를 취한 미하엘 오토. REUTERS


거대한 아버지의 족적
스타트업을 창업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가족으로부터 초기 자금을 지원받았나.
베냐민 내가 제일 처음 창업한 ‘홈테크놀로지’ 스타트업은 아버지가 일찍이 상속해준 자금으로 충당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다른 이들에게는 없던 재정적 수단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지점부터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 내가 창업한 회사를 2018년에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매각 자금으로 지금 여기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재정적으로 충당했다. 집과 부동산에 부모님의 돈은 단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다.
기업인으로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베냐민 아버지의 족적이 한마디로 거대했다. 당연히 아버지와 나 자신을 비교했고, 아버지 뒤를 이을 수 있는지 스스로 묻기도 했다. 창업자 역량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 내게 너무나도 중요했다.
당신은 오토그룹을 선택했고, 오토그룹에서 현재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로 일한다. 무슨 의미인가.
베냐민 내가 전략을 결정하고 비전을 공동 결정한다. 실제 경영에는 일부만 관여할 뿐이다.
오토그룹 경영진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2015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오토그룹 경영진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한 이유가 있었나.
베냐민 아버지는 내가 자신과 같은 길을 가기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가장 큰 강점인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을 경영진에서는 마음껏 펼칠 수 없음을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니나 나는 남편의 결정을 지지했고, 오토그룹에 최대의 부가가치를 올려주며 당신의 강점을 펼쳐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런 면에서 이전 세대와는 다를 것이다. 모든 일을 함께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리의 모든 계획을 세밀하게 협의한다.
두 분이 함께 홀리스틱재단(Holistic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베냐민 오토그룹 감독위원회에서 아버지와의 협력이 잘 이뤄져, 나는 사회에 무언가를 환원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아내도 나와 같은 비전을 가진 터라 재단을 세우는 데 뜻을 같이했다.
당신 자산의 어느 정도를 재단 설립에 투입했는가.
베냐민 여러 해에 걸쳐 상당한 돈을 투입했다. 우리는 재단 설립과 운영에서 기업가적 원칙을 고수하며 단 1유로도 최대한의 효과를 내도록 투입한다. 지금까지 이렇게 운영한 재단은 거의 없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가.
야니나 우리는 향후 몇 년 동안 함부르크에 ‘라이프 함부르크 캠퍼스’(Life Hamburg Campus)를 구축하려 한다. 중요한 것은 평생학습, 세대를 뛰어넘는 공생, 그리고 전면적인 웰빙이다. 이는 고령자를 위한 프로그래밍 과정일 수도, 학생들이 직접 채소를 재배하는 온실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장에 학교와 어린이집을 세우려 한다.
이는 베냐민 오토의 학창 시절 경험과도 관련이 있는가.
베냐민 그렇다. 나는 대다수 동급생과 다르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심리학과 정신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고, 불교와 명상에도 심취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내 관심사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나는 학교에서 일개 번호에 불과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오토그룹 본사. 위키미디어 코먼스


학교 체제 업데이트 필요
무엇을 다르게 하고 싶었나.
야니나 독일의 현 학교 체제가 미래의 도전을 감당하려면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우리 부부는 확신한다. 사람들에게 평생학습을 위한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이를 위한 초석을 쌓으려 한다. 호기심을 일깨우고 동기부여를 하고 기쁨을 선사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베냐민 공익기관을 위한 앱도 만들고 있다. 공익기관에는 디지털 툴이 부족하다. 그래서 환경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나 자선단체 ‘비바 콘 아구아’(Viva con Agua) 등의 사회기관과 지역 프로젝트의 상호 네트워킹 및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려 한다.
기업인들은 두 사람처럼 자산을 사회적 프로젝트를 위해 사용하거나 세금을 더 많이 낼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부유세에 찬성하는가.
베냐민 찬성하지 않는다. 오토그룹 같은 기업들에 법인세 인상 등으로 부담을 가중한다면 투자 기회를 앗아갈 것이다.
야니나 오토그룹처럼 기업들이 매출의 일정 비율을 사회적 프로젝트에 투자하자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법인세 인상 요구는 부유한 개인들보다는 국가가 돈을 더 공정하게 배분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야니나 당연히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은 프로젝트에 투입될 법인세를 더 많이 내는 것보다는 우리 같은 기업인들이 돈을 더 결과지향적으로 쓴다고 생각한다.
베냐민 정치인들이 한동안 회사를 운영해본다면, 회사 운영 경험에서 큰 도움을 받을 것이다.

ⓒ Die Zeit 2023년 제40호
Ich Hate Ander E Möglichkeiten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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