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기업에 인권침해 행위를 금지하고 환경보호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유럽연합(EU) 이사회 결정이 남았다.

세드리크 발레 Cédric Vallet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3년 6월29일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 지도자들과 만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최근 기업의 윤리경영을 의무화한 법안을 채택했다. REUTERS

2013년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로 공장노동자 1138명이 목숨을 잃었다. 약 10년이 지난 현재 유럽의회(입법기관)가 기업에 ‘안전 의무’를 부여하는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를 넘었다. 유럽의회는 2023년 6월1일 열린 총회에서 2022년 2월 유럽집행위원회가 제안한 법률 초안을 대폭 수정했다. 유럽연합 이사회(회원국 각료가 모인 최고 입법기관)와 수정 법안을 논의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셈이다.
이자벨 쇼만 유럽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은 “대기업의 가치사슬에 걸쳐 있는 희생자를 보호하는 것이 법안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약속한 내용과 다르게 비용 절감을 위해 인권과 환경을 해치는 기업이 여전히 많다. 권고 체제에서 벗어나 의무를 부여해야 할 때다.”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직원이 250명 이상이고, 매출이 4천만유로(약 570억원) 넘는 기업은 인권과 환경을 보호할 의무를 지켜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영업활동이 인권과 환경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파악해 예방하고, 이를 멈추거나 줄여야 한다”. 이 의무는 상품 운송, 저장, 유통, 판매의 가치사슬 전 과정에 적용된다.

기업 책임
기업은 안전 관련 행동지침과 계획, 친환경전환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친환경전환 계획에는 지구온난화를 1.5℃ 상승으로 억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담는다. 또 인권과 환경에 실제 또는 잠재하는 부정적 영향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소하는 방안을 포함한다. 이 계획은 노조를 비롯한 관계기관(비정부기구 등)과 협의해 결정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기업은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첫째는 민사책임이다. 지침서에 명시된 기본권을 침해당하거나 환경오염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유럽재판소에 시정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 권리침해 행위가 먼 나라, 가치사슬 끝에 걸쳐 있는 하청업체에서 벌어져도 마찬가지다.
시민단체들은 권리침해가 발생했을 때 분쟁에 대처할 여건이 마땅치 않은 개인에게 기업 과실을 증명하게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기업이 피해와 관련해 책임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아닌 기업에 증명 책임을 지우는 내용은 유럽의회 법안에 담기지 않았다. 유럽기업정의연합(ECCJ)에서 활동하는 마리옹 뤼팽은 “나머지 내용에 긍정적 측면이 많다. 법원에 쉽게 피해를 호소할 수 있게 보장한다. 그 예로 피해자에 대한 재원 지원이 있다. 또 피해자가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를 대리인으로 지명해 분쟁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자 불만
이번 법안의 적용 대상인 기업은 국가기관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인권과 환경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면 기업은 여러 행정제재를 받을 수 있다. 시장에서 상품을 거둬들이거나 세계 매출액의 최소 5%를 과징금으로 물어야 한다. 경영자단체 ‘비즈니스유럽’은 이 규정이 “순전히 징벌적 성격”만 갖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반대편에서 시민단체는 이 규정의 억제효과를 기대한다.
이 규정이 아니어도 유럽 기업들은 유럽의회가 채택한 법안을 전반적으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눈치다. ‘경영진 의무’와 관련된 조항에 특히 반발이 심하다. 유럽의회는 경영진과 이사들의 급여를 친환경전환 계획 실현에 따라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조항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거세다. 비즈니스유럽의 페드로 올리베라는 “그런 조항을 유럽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경영진은 이미 기후 관련 책임을 다하고 있다. 지켜야 할 환경 관련 규정이 있다. 이번 지침을 보면 마치 하나의 법률로 세상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는 것 같다.”

계속되는 논의
비즈니스유럽은 EU이사회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보인다. EU이사회가 제안한 법안은 유럽의회 법안과 아주 다르다. 이사회와 유럽의회는 견해차를 극복하고 유럽집행위와 함께 합의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법안이 빛을 보고 27개 회원국이 각국 법규로 전환할 수 있다.
유럽 좌파당 소속 마농 오브리 의원은 “3자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을 통한 분쟁해결이나 과징금에 관한 조항, 피해자가 시민단체나 노조를 대리인으로 지명할 수 있는 권리를 둘러싸고 의견 차이를 좁히기 어렵다.” EU이사회는 안전의무 적용 대상을 환경 분야에 한정해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그에 더해 이번 지침에 담길 의무에서 금융산업을 면제해주려 한다. 여러 유럽 매체에서 보도한 내용을 보면 프랑스 정부가 이 요청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유럽의회 선거가 열리는 2024년 6월까지 협의안이 마련되길 바라는 사람이 많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5월31일 총회에서 의사록을 작성한 라라 월터 의원(유럽 사회민주당 소속)은 말했다. “이번 법안은 장래의 무역을 어떻게 보느냐를 결정한다. 권리침해를 당한 피해자뿐 아니라 앞날을 준비하려는 기업에 매우 중요한 법이 될 것이다. 더 정의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3년 7월호(제436호)
Vers un vrai devoir de vigilance des entreprises en Europe
번역 최혜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