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파리온 Georg Fahrion 등 <슈피겔> 기자
 

▲ 독일 1위 및 2위 철강업체 티센크루프와 잘츠기터의 친환경 전환에 정부가 대규모 국가지원금을 쏟아붓는 것에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독일 뒤스부르크에 자리한 티센크루프 공장의 용광로에서 노동자가 작업하고 있다. REUTERS

2023년 7월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부 장관은 뒤스부르크의 철강 대기업 티센크루프를 방문했다. 티센크루프 본사 부지 공사장에서 굴착기들이 한창 바쁘게 작업 중이었다. 헬멧과 보호안경을 착용한 하베크 장관은 ‘1,999,702,295유로30센트’라고 적힌 두꺼운 종이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는 “아주 정확하게 계산한 금액”이라며 웃었다. 1,999,702,295유로30센트는 하베크 장관이 “독일 철강산업을 위한 모범 프로젝트”로 부른 사업에 연방정부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가 지원하는 금액이다.
이 프로젝트는 티센크루프가 뒤스부르크의 용광로 4개 중 하나를 이른바 ‘직접환원’(철광석을 연화·용융이 일어나지 않는 비교적 저온에서 환원해 금속철을 얻는 방법) 공장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고가의 직접환원 공장은 기존 용광로의 석탄이 아닌 천연가스로 철을 생산한다. 그리고 향후 천연가스는 ‘친환경 수소’로 대체해 철을 생산할 계획이다. 티센크루프의 철강 분야 유럽 총괄 최고경영자인 베른하르트 오스부르크는 철강산업이 어떤 산업 분야보다 탄소배출을 더 많이 감축하게 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곳에서 지금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다.”
 

▲ 2023년 7월 티센크루프의 뒤스부르크 공장을 방문한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부 장관(맨 왼쪽)이 ‘1,999,702,295유로30센트’라고 적힌 두꺼운 종이를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들어 보이고 있다. 1,999,702,295유로30센트는 뒤스부르크의 용광로 4개 중 하나를 이른바 ‘직접환원’ 공장으로 전환하도록 연방정부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가 지원하는 금액이다. 티센크루프 누리집

특정 기업만을 위한 혜택
그러나 전망이 밝지 않다. 독일에서 천연가스 가격은 이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저렴한 가격으로 절대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친환경 수소’는 현재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친환경 수소를 만들려면 친환경 전력이 대규모로 필요하다. 스웨덴 스타트업 H2그린스틸(Green Steel)이 친환경 철강을 생산하기 위해 풍력과 수력이 풍부한 스웨덴을 생산기지로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정이다.
독일 1위 및 2위 철강업체 티센크루프와 잘츠기터의 친환경 전환에 정부가 대규모 국가지원금을 쏟아붓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생산방식 때문에 어차피 미래 경쟁력이 없는 산업에 국가가 쓸데없이 지원금을 쏟아붓는 것은 아닐까?
보스턴컨설팅그룹의 기업컨설턴트 니콜레 포크트는 이 질문에 상반된 답을 내놓는다. 포크트는 철강이 자동차산업 등 다른 산업의 기본 식량 구실을 한다고 했다. “현지에 1차산업이 없다면 제조업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포크트는 독일 국내에 직접환원 공장이 생겨나는 것은 일단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래야만 철강업체들은 신규 기술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철강산업은 국가로부터 초기 자본을 지원받을 필요가 있다고 포크트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후 철강 제조 설비는 별개의 문제다.” 그는 친환경 철강 생산비 증대를 지속해서 보조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그것의 추가 비용은 시장이 부담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친환경 철강은 다른 산업부문의 친환경 전환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철강산업 국가보조금이 논란의 대상인 이유는, 철강산업이 계속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 유럽경제연구센터’(ZEW)의 아킴 밤바흐 센터장은 “독일이 강점을 보이는 혁신적인 산업부문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 기업들이 특허권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하는 자동차·화학·기계제작 산업에도 보조금 지급은 중요하다. 하지만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보조금 정책이 생산보다는 연구·개발에 집중돼야 한다.
보조금은 업종 간 재분배를 이끌어낼 수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반도체 생산 등의 업종에 지원금으로 전문인력을 유치한다면, 거꾸로 지금까지 경쟁력 있는 업종에서 전문인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 이런 왜곡 현상을 방지하려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입지 조건이 좋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
분배정책 측면에서도 특정 업종이나 특정 기업이 아닌 모두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좋다. 킬(Kiel)세계경제연구소 글로벌화센터의 홀거 괴르크 소장은 “국민 세금에서 나온 보조금이 개별 기업과 해당 기업 주주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근로소득자와 주식 자산 소유자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 ‘라이프니츠 유럽경제연구센터’(ZEW)의 아킴 밤바흐 센터장은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보조금 정책이 생산보다는 연구·개발에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소외된 스타트업
독일의 태양광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소노모터스(Sono Motors) 설립자들은 2023년 2월 말 결국 백기를 들었다. 라우린 한, 요나 크리스티안스, 나비나 페른슈타이너는 전기자동차 사업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7년 동안 자금을 모았다. 소노모터스는 태양광으로 구동되는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다. 배터리는 태양광전기의 중간 저장고 구실도 할 수 있다.
소노모터스 공동설립자 셋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개인투자자들을 확보했고, 주식시장 상장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잠재적 투자자인 국가는 계속 투자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주식상장 뒤 소노모터스는 스타트업 국가지원금을 주기에는 너무 커졌고, 자동차산업 및 보조프로그램 대상이 되기에는 아직 신생기업이었다.” 소노모터스가 확보한 국가지원금 330만유로(약 47억원)는 원래 확보하려던 지원금의 1%에 불과했다. 태양광 전기차 대량생산을 하기에는 결국 2억유로나 부족했다.
물론 소노모터스가 보조금을 더 받았다고 해도 태양광 구동 전기차의 대량생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니오(Nio) 등 중국의 신흥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국가보조금으로 무사히 넘겼고, 이후 기존 자동차업체를 위협하는 경쟁상대가 된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독일에서도 폴크스바겐이나 메르세데스벤츠 등 기존 자동차업체들이 배터리셀 공장 건설과 전기차 구매 보조금 등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 디젤 차량에 관한 세금혜택은 여기서 논외로 하자.
“강력한 시장 지위를 가진 기업에 보조금이 흘러가고, 이를 통해 규모가 더 작은 경쟁업체나 스타트업이 차별받는 것을 ‘크라우딩아웃 효과’(Crowding-out Effect·구축효과)라고 한다”고 괴르크 소장은 소개했다. 그 결과 독점적 혹은 올리가르히(신흥재벌) 구조가 고착화할 수 있다. 특히 시장 선두주자를 지원하는 것이 국가에는 리스크가 적다.
TSMC 경쟁사들도 반도체 부문에서의 크라우딩아웃 효과를 호소한다. 글로벌파운드리스의 대관·법무 업무 총괄 담당자인인 샘 아자르는 TSMC의 드레스덴 신규 공장 건설 지원이 세계 선두기업의 지배적 권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TSMC는 반도체 세대를 거듭할수록 시장점유율을 확대했고 대만의 저렴한 노동·에너지 비용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하지만 중국 위협이 커지자 다른 대륙에서도 반도체를 생산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전세계 각지에 반도체 공장이 있으면 대만이 중국에 합병되는 경우에도 계속 국외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그래서 TSMC는 미국과 유럽 등 여타 지역에서 지원금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TSMC는 400억달러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 정부와 달리 미국 정부는 보조금 액수를 놓고 여전히 협상 중이다. ‘반도체칩과 과학법’의 예산은 제한됐고, 해당 지원금을 받으려는 기업은 많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모든 반도체 생산을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업계 정보에 따르면 기후전환펀드에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120억유로다. 이미 확정 발표된 공사 프로젝트 지원금이 약 200억유로에 이른다.
 

▲ 독일의 태양광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소노모터스는 애초 기대한 만큼의 정부 보조금을 확보하지 못해 2023년 2월 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정부 보조금은 대기업에 편중되는 경향이 있어 기업 간 양극화를 부른다. 2022년 10월11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전시된 소노모터스의 전기차 시온(Sion). 소노모터스 누리집

IRA 따른 정부 지출·감세 급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21세기 경제 경쟁”에서 강력한 무기다. 실제로 IRA는 자동차, 수소 및 태양광 산업에서 일자리 수천 개를 새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인프라 법규정 패키지인 IRA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신용자본주의(Credit Capitalism)를 강화할 것이라고 경제학자들은 경고한다. 애덤 포즌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신용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지 않고 오로지 재그룹되는 것에 불과한 ‘제로섬’ 상황이 빚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가격 안정 목표와 양립할 수 없는 국가부채의 급증”을 경고했다.
당연히 바이든 대통령은 정반대 상황을 상정하고 IRA를 추진했다. 그가 서명한 IRA 예산은 총 7400억달러 규모로, 3700억달러 정도가 기후변화 대응과 국가 에너지 안보 강화에 사용될 예정이다. IRA는 국가예산 및 물가인상 억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IRA는 현대경제사에서 최대 사기 중 하나다. 기존 보조금의 법규정과 달리 IRA에는 풍력단지, 충전기 혹은 수소저장고 등의 지원금에 한도가 없다. 투자자들이 조건을 준수하기만 하면, 국가가 보조금을 무한대로 지급해야 한다. 또한 상당수 재정지원이 (제3의 기업에) 양도 가능한 세액공제 형태로 이뤄지므로, 투자에 참여하는 산업계 외곽의 기업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IRA에 근거해 수많은 고수익을 내는 미국 기업들이 감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은행들과 싱크탱크들은 IRA에 따른 정부 추가 지출 및 감세 혜택 규모가
1조2천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애초 추정치의 거의 세 배에 이른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정한 IRA는 미국 국가예산 적자 규모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폭증시킬 것이다. 미국 의회 담당 기구의 공식 예상 수치에 따르면 미국은 향후 10년 동안 매년 평균 국내총생산(GDP)의 6.1%를 신규 국가부채 상환에 사용해야 한다. GDP의 6.1%라 함은 과거 심각한 경기침체기에나 언급되던 규모다.
그나마 보수적인 추산치가 그렇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 재정적자가 머지않아 GDP의 11%를 초과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몇 년 뒤에는 미국에서 국가부채 이자 지출이 국방비 지출을 넘어설 수 있다고 한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악몽 같은 국가부채”라고 지칭했다.
글로벌 금융기구들이 너도나도 암울한 미래 전망치를 내놓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보조금 탓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부채는 “단기적으로 상당한 리스크”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은 경고한다. 금리인상은 은행과 기업의 파산 위험을 높이고, 달러화 가치를 강화하며, 글로벌 남반구 채무국들의 압박감을 높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엄청난 도박을 감행했다. 운이 좋으면 바이든 대통령이 제정한 IRA는 상당한 경제성장을 가져와서 미국이 국채를 손쉽게 상환할 수 있다. 반면 신규 하이테크 공장에서 일할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엄청난 규모의 보조금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굴레만 더욱 복잡하게 할 것이다.

실패자 양산할 것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는 바이든 대통령이 원래 지원하려고 했던 계층이 하필 패자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가정, 기업부채를 더는 상환할 능력이 없는 소규모 사업체가 직격탄을 맞아 패자로 전락할 계층이다. “바이든의 새로운 경제질서에서 처음으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글로벌 보조금 경쟁은 수많은 실패자를 양산하게 된다. 글로벌 보조금 경쟁은 경제 슈퍼파워 간의 제로섬게임으로, 후진국을 경쟁에서 밀어내고 불평등을 악화한다. 공격적인 보조금 정책이 경제 분야의 (기업) 입지를 결정하면서, 글로벌 보조금 경쟁은 글로벌 노동분업을 파괴하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에 위험한 조합이다. 지정학적 사건 한 번으로 전세계에 제2의 대공황이 손쉽게 번질 수 있다.

ⓒ Der Spiegel 2023년 제35호
Der Milliarden-Tsunami
번역 김태영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