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원자력 안전 관리 제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방사선방호원자력안전연구소(IRSN)가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프랑스 정부는 원전과 방사선의 위험관리 체계를 완화해 노후 원전 수명을 60년으로 늘리고 생산역량 역시 최대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하지만 원자력 안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반발이 거세 해체를 둘러싸고 논란이 예상된다.


앙투안 드 라비냥 Antoine de Ravigna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앞에 두고 원전 수명을 대거 늘렸다. 2023년 6월13일 프랑스 동부 카테농 원자력발전소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REUTERS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어떠한 사실이 혹은 누군가가 그의 뜻에 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무조건 한다. 필요하면 민주주의 기본원칙도 손본다. 그 모습을 연금개혁 때 확인했다. 현재 원자력 정책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마크롱 대통령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앞에 두고 원전 수명을 대거 늘렸다. 이 위험천만한 도박은 어떤 경제적 이점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도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2월10일 프랑스 북동부 벨포르에서 연설을 통해 원자력 확대로 선로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후 행정부는 ‘배의 키’가 돌아가지 않게 단단히 잡았다. 그러나 ‘선원’ 일부는 배가 암초에 걸릴지 모른다고 경고음을 울린다.
대통령의 고집은 원전과 방사선의 위험관리 체계를 완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명분은 ‘벨포르 목표’ 달성이다. 노후 원전 수명을 60년으로 늘리고 생산역량 역시 최대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최대 생산역량은 전력회사가 정한다. 다만 이 우려스러운 계획을 실행하려면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안전관리 이원체계 위협
2023년 7월19일 마크롱 대통령은 2차 원자력정책회의를 열었다. 원자력정책회의는 대통령과 관계부처 장관이 모여 원자력 정책과 관련한 국정 운영 방향을 정하는 비공개회의다. 이날 회의에서 “재원과 인력을 확대한 독립적인 원전 안전 및 방사능 보호 기구를 출범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이를 위한 법안은 2023년 가을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재원과 인력 확대는 원자력안전청(ASN)과 방사능보호원자력안전연구소(IRSN)의 재원과 인력을 합쳐서 달성한다.
이는 제도의 후퇴나 마찬가지다. 프랑스 원전 관리 체계는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그 후 재앙에 버금가는 사고 수습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갖춰졌다. 2006년 투명성 및 원자력 안전 관련 법률이 제정되면서 관리체계가 지금처럼 강화됐다.
프랑스는 의결과 그에 바탕이 되는 심사 두 역할을 각각의 기관에 완전히 분리해놓았다. 허가, 규제, 관리, 제재 업무는 독립 행정기구인 ASN이 맡는다. ASN에 일부 전문가가 있지만 기술 현안에 관한 독립 심사 의견은 IRSN이 ASN에 전달한다. IRSN은 공공과학연구소로 풍부한 연구역량을 갖췄다. 또 안전관리 현장의 최전방에 있는 원전 운영자와 기술을 교류해 전문성을 강화한다.
원전이 있는 나라 가운데 프랑스처럼 의결기구와 심사기구를 분리한 나라는 몇 없다. 역할과 책임을 확실히 나눈 이원체계는 원자력 안전성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물론 현장에서는 원전 운영자와 의결기구, 심사기구가 계속 대화하며 일한다. 하지만 심사기구가 원전 안전성을 평가할 때는 다른 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어떠한 결정의 파급 효과가 아무리 커도 결정의 책임을 심사기구에 지우지 않아야 한다.
원전이 있는 나라 중 대다수는 의결기구가 의사결정과 심사 역할을 모두 맡는다. 미국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한 기관에 두 역할을 통합한 구조는 각 임무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심사보고서 공개가 자유로운 경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원체계만큼 이들 조건이 잘 지켜지는 구조는 없다. 프랑스는 그런 제도를 해체하려 한다.
 

▲ 원전이 있는 나라 가운데 프랑스처럼 의결기구와 심사기구를 분리한 나라는 몇 없지만, 프랑스 정부는 최근 이를 통합하려 한다. 2022년 12월 프랑스 디에프 인근에 있는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원전 내부 모습. REUTERS

개편 둘러싸고 의회와 대립
2023년 2월3일 원자력정책회의에서 마크롱 정부는 IRSN을 ASN으로 흡수하겠다고 결정했다. 결정에 앞서 자문은 하지 않았다. 장크리스토프 니엘 IRSN 소장은 사흘 뒤에야 그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2월8일 에너지전환부는 성명을 내고 두 기관의 통합 방침을 공식으로 전했다. “점검과 ASN 의결 과정을 유연화해 원자력산업 발전 활동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밖에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정부는 법적 근거 마련을 서둘렀다. IRSN을 ASN으로 흡수한다는 내용을 담은 ‘원자력시설관련법’ 수정안을 2월25~26일 두 차례 걸쳐 제출했다. 새 법안은 벌써 상원을 통과했다. 하원은 이를 아직 승인하지 않았다. 사실 두 기관의 통합은 원자력시설관련법이 다루는 주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조항이다. 이런 식으로 조항 끼워넣기 전략을 쓰면 정부는 심사와 영향평가 절차를 건너뛰고 법률을 개정할 수 있다.
이에 맞서 IRSN 연합노조는 대규모 반대집회를 열었다. 전문가 의견서와 신문기사도 쏟아졌다. 정부 개정안은 3월15일 열린 하원 본회의에서 가까스로 부결됐다. 4월25일 반격을 시작했다. 상원 경제위원회와 과학기술선택평가위원회(과기위·OPECST)가 하원 투표 결과에 반대를 제기했다. 과기위는 정부가 원자력 안전관리 체계 개편을 계속 추진할 경우 개편에 따른 영향을 평가하는 임무를 맡았다.
과기위는 비공개로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 보고서를 7월11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ASN과 IRSN을 하나의 독립기구로 통합하는 방안을 권고한다고 적시했다. 다만 원전의 관리·감독과 안전 심사, 연구에 필요한 인력을 늦어도 2024년부터 대폭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제안한 수정법안 초안은 재정과 인력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다. 마치 두 기구의 통합이 (두 기구의 인적·물적) 자원을 저절로 늘려서 업무량 증가에 대응하리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미 늦었다. 7월19일 원자력정책회의는 과기위 보고서를 바탕으로 2023년 하반기까지 새 법안을 준비하고 사전에 전문가 조언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한 청문회를 8월 조용히 치를 예정이다. 2월 과감하게 펼친 공세에서 실패를 맛본 정부는 이제 형식적 절차를 지키려고 주의한다. 이번에는 하원에 패배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정부는 무엇을 근거로 개편을 주장하는 걸까? 지금의 이원체계가 정확히 어떻게 의사결정 과정과 원자력 개발에 제동을 건다는 걸까? 정부는 이를 이원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삼는다. 빈약한 과기위 보고서는 이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 답을 유추할 만한 자료마저 제시하지 않는다. 과기위와 상원 경제위원회가 각각 2월16일과 3월8일 진행한 베르나르 도로쥐크 원자력안전청 청장의 공청회도 마찬가지다.
2월16일 과기위 청문회에서 장크리스토프 니엘 소장은 “현재 이원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 이점은 베르나르 도로쥐크 청장에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5일 파리에서도 IRSN 연합노조가 학술회를 열었다. 전문가 20명 정도가 참석해 현행 원자력 안전관리 체계를 진단했다. 전문가 진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개편을 지지하는 쪽(정부·원자력안전청·프랑스전력공단 등)이 여태껏 전문가 진단을 하지 않았다. 학술회에 참석한 프랑스전력공단과 국영 원전기업 오라노(Orano)의 경영진(노조 출신)은 현행 체계가 원전 안전관리의 강점인 이유를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두 기관의 경영진은 현행 체계에 개선점이 있지만 전체를 뜯어고칠 필요는 없다고 봤다. ASN은 학술회 초청에 불응했다.
 

▲ 2022년 10월 프랑스 북부 그라블린의 프랑스전력공사(EDF) 원자력발전소에서 노동자총회가 열리고 있다. REUTERS

이원체계 개편의 궁극 목표
인허가 속도에 관한 문제는 이원체계와 관련이 없어 보인다. 7월5일 학술회에서 올리비에 루아조 IRSN 서비스부장은 (노후도가 가장 심한) 900MW (메가와트) 규모의 원전 수명을 기존 40년에서 50년으로 늘리는 일이 얼마나 큰 공사였는지 설명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안전규정이 바뀐 뒤여서 수명 연장에 인력과 재정이 많이 필요해졌다. 루아조 부장은 “원전 수명 연장 관련 업무에서 우리가 가진 자원의 취약성이 부각됐다. 가용인력이 최소 필요인력보다 적었다”고 말했다.
7월11일자 과기위 보고서를 봐도 ASN과 IRSN 통합의 이점이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과기위 역시 보고서에서 “원자력 안전 전문가가 희소하다. (…) 여러 정황을 따져봤을 때 두 기관의 통합이나 개편은 인력과 재원을 늘려야 성공적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2024년 예산안의 초안 또는 개정안에서 원자력 안전 관련 정부 예산이 필요한 만큼 늘어날까? 원자력 안전을 둘러싼 싸움은 앞으로 예산 싸움이 될 것이다. 현실을 직시할 차례다. 상황은 불리해졌다. 의결과 심사 두 역할의 완전한 분리는 이제 끝이 보인다. 시민단체 네가와트(NégaWatt)의 원자력 전문가이자 ASN의 전문가상임단체 위원인 이브 마리냑은 말했다. “‘유연화’ 계획은 규정과 절차를 완화해 대통령이 정한 산업·재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이용될 소지가 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3년 8월호(제437호)
La France dégrade sa sûreté nucléaire
번역 최혜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