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56·Daron Acemoglu)는 부자와 권력자가 어떻게 과학기술 발전의 혜택을 가로채는지 말한다. 이런 일은 중세시대에도 있었고 인공지능(AI) 시대인 현재까지 이어진다. 그는 빅테크 기업들의 권력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쓰모글루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경제학 교수다. 그는 같은 대학 교수인 사이먼 존슨과 함께 새로 저술한 책(<권력과 진보>)에서 인류가 기술 통제와 복지 분배를 두고 오래전부터 투쟁한 것을 설명한다. 여기서 그는 왜 새로운 발명이 인류를 오히려 비참한 지경으로 몰고 간 적이 많았는지, 이런 상황이 왜 곧 또다시 일어날지도 설명한다.


베냐민 비더 Benjamin Bidder <슈피겔> 기자
 

▲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 교수는 빅테크 기업들의 권력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튜브 갈무리

당신은 진보의 역사를 새 버전으로 제시했다. 아주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사는 우리가 신석기시대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AI 논의는 순진한 기술낙관주의로 점철됐다. AI는 모든 것을 더 좋게 해주고,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시간이 흘러 해결되리라고 말이다. 이런 낙관적 이야기에 누가 이의라도 제기하면 인간은 항상 새로운 발명으로 혜택을 입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근거가 있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는 상당히 강력한 주장이기는 하다.
우리가 새 기술로 많은 혜택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아주 오래된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방금 당신이 말한 주장은 틀렸다. 과거부터 기술혁신이 일어나면 그것의 사용을 놓고 항상 갈등이 있었다. 문제는 그 혜택을 받는 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많은 경우 새로운 기술의 통제는 소수 엘리트 손에 달려 있었다. 기술혁신이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 대런 애쓰모글루 MIT 경제학 교수와 같은 대학의 사이먼 존슨 교수가 함께 저술한 <권력과 진보>. 아마존

신기술 풍차, 지주·교회가 통제
그래도 삶의 수준은 계속 향상되지 않았나.
지난 시대 사람보다 잘사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직선적이고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어려움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
중세시대 풍차의 예를 들어보자. 그것은 세상을 뒤흔든 기술이었다. 그러나 농부의 생활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풍차는 지주와 교회의 통제 아래 있었고, 이득은 오직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만이 누가 풍차를 사용해도 되는지 결정할 수 있었다. 경쟁자는 제거됐다. 동시에 유럽의 도처에서 대성당을 포함해 많은 교회가 건립됐다. 이 건축에 전체 경제력의 20%를 썼다.
많은 사람이 그 건축물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가.
나도 그 건축물들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건축물들은 당시 사회로서는 엄청난 비용을 치렀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기근의 위협 속에 최저 수준으로 근근이 생존했다. 대성당은 엘리트들이 자기 부를 과시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이집트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다. 그 건축물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과거에 관한 그림은 사실 왜곡됐다. 그 속에 농민의 고통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이 AI와 무슨 관계가 있나.
빅테크 기업들은 주기적으로 우리에게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고, 정부의 규제 시도가 되레 유일한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 전체가 오늘날 순진한 낙관주의로 이 기술을 바라본다. 불행히도 많은 미국 언론인도 기술산업의 최면에 걸려 도구화됐고, 기술산업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 그들은 기술기업의 선전에 속고 있다.
AI도 이전의 기술과 똑같은 경로를 걸어갈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하나.
AI가 유망한 기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결코 아니다. AI는 정신노동자에게 유용할 수 있다. 단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 기술의 발전 방향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기술을 담아내는 제도적 틀을 숙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번영을 공유하는 데 또다시 실패할 것이다.
당신의 비관주의는 어디서 오는가.
지난 40년 동안 미국에서 대학 졸업장이 없는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줄었다. 감소액은 매년 약 0.5%에 이른다. 이는 상당한 금액이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AI 기술 도입은 이 경향을 강화할 것이다. AI는 어차피 부유한 시민, 고숙련 노동자, 지식노동자 계층에 유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는 경로를 보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제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는 기술이 진보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가.
산업혁명이 시작할 때 최초로 세워진 공장들의 경우 임금이 극도로 낮았고 영국의 생활수준도 급락했다. 얼마 뒤 미국에서도 산업화가 시작됐다. 동일한 기술을 사용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유럽에서 초기의 복잡한 기계를 작동하는 데 필요했던 숙련된 기술자나 전문가가 미국에서는 부족했다. 미국에서는 기계 설계를 다른 접근 방식으로 개발했다. 표준화된 구성 요소를 많이 사용하는 모듈식 구조였다. 이 시스템은 비숙련 노동자도 운영할 수 있었다. 이로써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고 임금도 인상됐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발전을 꾀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사람을 발전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
당신은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비전’ 탓에 ‘진보’를 다르게 읽어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비전은 어떠해야 하는가.
비전이란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킬지,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에 관한 해석이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일련의 믿음에 기초한다. 실리콘밸리의 비전만큼이나 성공적이면서 재앙적인 비전의 사례가 수십 년 동안 많은 경영학 수업에서 가르친 ‘주주가치’라는 개념이다.
 

▲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현재 인공지능(AI)에 관한 논의 가 기술 낙관주의로 가득 차 있다고 경고한다. 2023년 7월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인공지능 콘퍼런스’에서 AI 표지가 보인다. REUTERS

▲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나 빌 게이츠 같은 기술기업인을 ‘산업화 시대의 악명높은 강도’였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에 비유했다. 2022년 6월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바 테크놀로지 콘퍼런스’(Viva Technology Conference)의 메타 부스. REUTERS

주주가치와 AI 개발
경영인은 기업가치를 높이려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에 당신은 동의하지 않는가.
그런 접근 방식을 따르는 기업은 임금은 낮추면서 주주 배당금은 늘린다. 주주가치 개념이 관철되면서 기업 운영 방식에 근본적인 이념 변화를 가져왔다. 이 논리에 따르면 회사 직원은 무엇보다도 비용 발생 요인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기술기업에서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직원을 줄이려는) 주주가치의 논리가 자율적인 기계 지능을 향한 현재의 집착과 연결된다. 인간과 유사한 기계를 만들려는 노력 말이다. 이 비전은 영국의 뛰어난 수학자 앨런 튜링의 연구에 기초한다. 그는 이른바 ‘튜링 테스트’(튜링이 1950년 고안한 AI 판결 테스트로, 실험 대상자가 기계(컴퓨터)와 대화를 나눈 뒤 컴퓨터의 반응과 인간의 반응을 구분할 수 없다면 해당 컴퓨터가 사고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를 만들었다. 이는 모든 AI 엔지니어가 뛰어넘고 싶어 하는 기준이다.
거칠게 얘기하면 이는 인간이 인간과 의사소통을 하는지, 아니면 컴퓨터와 의사소통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지의 문제다.
그렇다. 튜링도 (자신이 고안한 테스트를) ‘흉내 게임’(Imitation Game)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할리우드 과학영화가 기술의 이런 비전에 많은 영향을 준다. 이제 AI가 기술산업의 지배적인 주제가 돼버렸다. 이건 문제다.
인류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인가.
디지털 시대의 초기에는 다른 아이디어도 있었다. 해커를 비롯해 초기의 많은 컴퓨터 기술자들은 직원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분산형 기술을 꿈꿨다. 그들은 사람과 사회를 위해 기술혁신의 이점을 극대화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뒀다. 이 접근 방식은 ‘기계 유용성’(Machine Usefulness)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아이비엠(IBM),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과 같은 회사가 주도권을 잡았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기업들은 디지털 기술을 대중적으로 쓰도록 확산시켰다. 이로써 디지털 기술은 직원에게는 크게 유용하지 않지만, 고용주에게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 기업들은 단순 사무직 작업을 자동화하는 데 기술을 활용했다. 결국 이 기술은 숙련자, 관리직, 대학 졸업자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여기에는 특정 인간관이 드러나는가.
일반적으로 ‘인간은 불완전한 기계’라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에는 이런 주장이 많이 필요하다. 행동과학자인 댄 애리얼리는, 인간은 실수하기 너무 쉬우므로 중요한 업무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지속해서 말했다. 물론 이제 애리얼리의 평판이 나빠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가 ‘정직함’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면서 데이터를 조작해서….
하지만 드문 천재들을 제외하고는 인간은 믿을 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애리얼리의 견해는 실리콘밸리의 세계관에 영향을 줬다. 따라서 이 천재들이 인간의 부족함을 극복할 수 있는 사물, 즉 인간의 작업을 감시하는 기술이나 인간의 일을 대신할 기계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는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인가.
실리콘밸리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경향이 강하다. 인간과 동등한 능력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는 특혜와 이익이 많은 일자리로 보상받는다.
당신은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나 빌 게이츠 같은 기술기업인을 산업화 시대의 악명 높은 강도였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 남작에 견줬다. 혹독한 비교다.
록펠러 같은 사람은 발명의 재능이 상당히 뛰어났다. 록펠러는 당시 혁신의 선두였다. 또한 그는 이윤을 탐하는 독점가였다. 오늘날 많은 기술 남작에게도 그대로 해당하는 지점이다.
당신은 구글이나 그 비슷한 기업들을 해체해야 한다고 권한다. 그렇게 해서 무엇이 나아지는가.
제대로 활용하면 기술혁신은 엄청나게 이로운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술혁신의 친구가 아니다. 그들은 아주 많은 경쟁사를 인수·합병하는 식으로 시장에서 퇴출했다.
정치인은 왜 그들에게 더 강경한 조처를 하지 않는가.
대부분의 정치인은 스스로 눈가리개를 했다. 그들은 불평등이 증가하는 현상을 불가피하거나 괜찮은 일이라 스스로 믿으려 한다. 많은 정치인이 법적 제한이 없는 극단적인 시장근본주의를 선택했다. 그런 자유지상주의 이데올로기는 매력적이다. 신봉자들은 어려운 사회적 타협을 놓고 어떤 논쟁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입장에서 보면 시장에서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이든 좋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장이 작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뿐이다.
 

▲ ‘인간은 믿을 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행동과학자 댄 애리얼리의 견해는 실리콘밸리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민주주의적 기술규제 가능
기업이 가진 혁신의 힘을 빼앗거나 외국으로 떠나게 하지 않으면서도 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중국을 보면 AI를 규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중국 공산당은 성공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규제한다. 여기서 확실히 하고 싶은 점은, 내가 중국식 규제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그렇게 해서 당의 지배력을 확고히 하려 한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규제가 가능하다면 민주주의적 규제도 가능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전환할 수 있을까.
한 가지 결정적인 도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조세체제는 오늘날 인간의 노동에 불리한 쪽으로 일그러졌다. 미국에서 근로소득에 관한 평균적 세율은 25%로 오래전부터 변함없지만, 기계나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는 경우 납세 부담은 지난 30년간 15%에서 5%로 줄었다.
이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술 발전 과정에서 대다수 사람을 배제한다면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다. 사회는 완전히 양극화돼 두 개로 갈라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 Der Spiegel 2023년 제35호
Unsere Zukunft wird dystopisch sein
번역 최현덕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