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네 비간트(51)에게 변화하는 시대는 천금 같은 기회다. 독일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에 있는 렝크(RENK)의 매출을 10억유로 이상 키워 주식상장을 노리는 이 최고경영자(CEO)가 목표를 이룰 가능성은 크다.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슈피겔> 기자
 

▲ 렝크가 군사용 장비만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렝크의 최고경영자 주자네 비간트가 ‘반짝이는 금속’으로 만든 산업용 변속기 옆에 서 있다. 슈피겔>

주자네 비간트는 서둘러 움직였다. 지그재그 걸음으로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 있는 방위산업체 렝크(RENK)의 새로운 조립시설을 가로질러 갔다. 손톱은 녹갈색(국방색)으로 칠했고, 발에는 의무적으로 신어야 하는 안전화를 신었다. 비간트는 대형 사진으로 꾸며놓은 공장 정면의 전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현재 독일에서 많은 이가 관심을 쏟는 전차(탱크)와 대포 사진이 걸려 있다. 레오파르트2 전차, 자주포, 마르더 장갑차 등이 그것이다. 사진 옆에는 HSWL 354, ESM 500, RK 325 등 약어가 적혀 있다.
어떤 무기에 렝크의 변속기가 장착됐는지 손짓으로 설명하던 비간트는 렝크가 방위산업계 ‘숨은 챔피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2년 전부터 이 회사를 맡았다. 사진 속에는 렝크의 HSWL 354 변속기를 장착한 레오파르트2 전차가 있다. 한때 크라우스-마파이 베크만(KMW)과 라인메탈(Rheinmetall)이 제작한 독일 대표 전차다. 프랑스가 만드는 르클레르 전차도 렝크의 ESM 500 변속기를 사용한다. 독일과 프랑스 전차 제조업체는 공동 전차 개발 프로젝트인 주력지상전투시스템(MGCS)의 틀 안에서 협력하지만,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일하기도 한다. 두 나라 모두 사업관계를 맺고 있는 비간트는 “프랑스는 우리를 신뢰한다”고 언급했다.
 

▲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3년 7월12일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숄츠 총리가 2022년 2월27일 하원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방위비 지출 목표를 ‘연간 GDP 2%’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후 무기 부품 시장이 급성장했다. REUTERS

K2 전차에도 렝크 변속기
그는 회사에서 받은 주문을 설명했다. 얼마 전 추가 주문받은 HSWL 284 C 변속기는 우크라이나에 공급할 자주포(PzH 2000)에 들어갈 것이다. HSWL 295는 한국에서 주문이 들어왔는데, 한국이 폴란드에 수출하는 K2 전차에 장착된다. 독일 전차 생산자도 이 계약을 탐냈지만 비간트는 이 상황에 신경 쓰지 않는다. 비간트는 “우리는 주문자를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을 즐겨 한다. 다시 말해 전차 성능을 개선하려는 곳이 세계 어디든, 어떤 전차를 사용하든, 그 안에는 항상 동일한 심장이 들었다는 뜻이다. 바로 렝크의 변속기다. 이 회사는 70개국의 육군과 약 40개국의 해군에 변속기를 납품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국방 정책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한 후, 각국의 군은 재정비 태세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군사비를 늘린다. 이 시대 전환이 방위산업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우크스부르크만큼 잘 보여주는 곳은 없다. 렝크는 주식상장을 바라고, 비간트는 이 기회에 회사의 성장 스토리를 쓰려 한다.
주식상장은 성장 스토리에 중요한 마침표가 될 것이다. 전문적인 틈새시장에서 나온 회사가 어떻게 주식상장을 꿈꾸게 됐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3년 전만 해도 렝크는 눈에 띄는 회사가 아니었다. 렝크는 트럭 제조사인 만(MAN)의 자회사로 꽁꽁 숨어 있었고, 만도 폴크스바겐그룹의 한 부분이었다. 적당히 사업 야망이 있었고 사람들은 당시 상태에 만족했다.
폴크스바겐은 그룹 콘셉트에 맞지 않는 렝크를 떠나보내고 싶었다. 금융투자사(사모펀드)인 트리톤(Triton)이 이에 응했다. 투자자에게 렝크는 전형적인 목표물이었다. 대기업이 목표물에서 손을 떼면, 투자자는 약간의 금융적 곡예를 부리고 야심 찬 성장 목표를 세운 뒤 새로운 경영진을 영입해 다시 매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높은 수익을 올릴 준비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적당한 매니저를 찾던 트리톤은 슈투트가르트 근처 쇠나이히 출신인 주자네 비간트를 낙점했다. 비간트는 방위산업 분야에서 유명했다. 경영학을 공부한 뒤, 티시스템(T-Systems), 다임러, 티센크루프의 선박 제조 부문인 TK마린시스템(TK Marine Systems)에서 경영컨설팅을 맡았다. 이후 조선소 그룹인 저먼네이벌야드(GNY·German Naval Yards)에서 일하던 그를 라인메탈의 사장인 아르민 파퍼거가 브레멘으로 불러들여 이사직을 맡겼다. 그리고 3년 후 비간트는 렝크에 합류했다.
남성이 훨씬 많은 방위산업 분야에서 그는 당장 눈에 띄었다. 한편 사람들이 어릴 적 탱크를 가지고 놀았는지 묻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다(그는 탱크를 가지고 놀지 않았다). 남자 CEO도 이런 질문을 받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여성으로서 이점을 누리기도 했다. “여성이기에 대체로 가장 좋은 테이블에 자리를 배정받는다.” 비간트는 이런 작은 장점을 언급하는 걸 좋아한다.
비간트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렝크를 10억유로(약 1조4천억원) 규모의 회사로 키우는 것이다. 그가 처음 왔을 때 매출은 5억5천만유로였지만, 2022년 8억4900만유로가 됐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주문을 많이 한 덕이었다. 이 중에는 회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주문도 있었다.
방위산업 호황은 렝크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찾아왔다. 렝크는 지난 2년 동안 전차 변속기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렸다. “우리는 공장을 더 짓거나 몇억유로를 투자할 필요도 없이, 바로 생산량을 감당할 수 있었다.” 비간트는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새로운 조립시설을 소개했다. 현재는 1교대로 생산라인을 가동하지만 언제든지 2교대로 운영할 수 있다. 미국과 프랑스에 있는 공장도 증축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 폴란드에 수출하는 한국 K2 전차에도 렝크가 생산한 변속기를 사용한다. 2023년 5월24일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남한강 일대에서 열린 육군 제11기동사단 도하훈련에서 K2 전차가 부교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변속기 제작 대부분 수작업
비간트는 이스라엘에서 수리를 위해 보낸 모래가 낀 변속기를 보여줬다. 이스라엘에서는 탱크를 계속 사용하며, 군은 30%가량 전차 비축량을 유지한다. 이 변속기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2만5천 개의 작은 부품으로 분해될 것이다. 마모되거나 안전상 중요한 부품을 교체하고, 다른 부품들은 세척해 다시 조립한다. 이는 일일이 사람 손으로 이루어진다.
새로운 변속기의 제작도 대부분 수작업이다. 레오파르트와 마르더 등 유형에 따라 다른 공정이 정해졌다. 이러한 생산구조는 정교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렇기에 조립 과정을 표준화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만, 고객이 “매우 소량만” 주문하기 때문에 표준화는 아직 시행할 가치가 없다. 비간트는 다양한 탱크 모델, 무기시스템과 사양이 존재하는 업계 전반을 단순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표준화의 원동력은 군에서 나와야 한다고 언급했다.
숄츠 총리가 향후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뒤 방산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렝크 매출에서 5분의 4가량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는 육상 차량 부품 시장은 향후 5년간 14%, 해군 장비 시장은 8%까지 성장하리라 예상한다. 방위산업 호황은 얼마나 계속될까? 독일은 2026년부터 2% 방위비 증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독일외교정책협회는 전망한다. 다른 유럽 국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업계 계산에 따르면 유럽 나토 회원국은 2028년까지 2천억유로 정도 투자하기 원하는데, GDP의 2%를 군비에 투입하려면 실제로 5천억유로를 투자해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유럽의 정치 상황에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 렝크는 더 국제적으로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 현재 매출의 10%만 독일군에서 나오고, 가장 큰 고객은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미국 국무부다. 비간트는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 시장도 큰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이미 멋진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장기적으로 유럽이 ‘GDP의 2% 국방비 증강 목표’를 달성하면 분명히 많은 이득을 볼 것이다.” 얼마 전 그는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의 대표단과 함께 인도를 방문했다. 인도는 그가 많은 기대를 거는 곳이다. “인도는 발전하고 있다. 성공과 부를 향한 갈망이 있다.”
비간트는 경제·기후보호부가 계획 중인 무기수출 규제 법안을 하베크 장관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을까? 이 법안의 초안은 ‘무기의 최종 목적지 국가를 거부할 수 있는 원칙’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지속적이고 구조적으로 인권을 탄압하거나 민주주의를 심하게 훼손하는 국가”에는 수출을 허가하지 않는다. 그는 일반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독일 정부는 외교 정책의 범위를 불필요하게 줄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례별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제한이 심한 무기수출 규제법은 우리 판매에 손상을 줄 것이다.”
비간트는 선박·산업용 변속기 앞에 도착했다. 반짝이는 금속으로 만든 거대한 장치였다. “아름다운 부품이죠? 이 바퀴도 아름답지 않나요?” 이런 부품은 수준 높은 기술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이다. 지름 3m짜리 터빈은 2~3마이크로미터(μm)의 정확성으로 만들어야 한다. 머리카락이 70μm이니 얼마나 정교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렝크에서 군사용 장비만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용 터보 장비도 생산한다. 노르트스트림1(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을 통해 천연가스를 보냈던 지멘스에너지(Siemens Energy)의 터빈도 렝크의 장비를 사용했다.
 

▲ 한국이 폴란드에 수출하는 K2 전차에 들어가는 HSWL 295 변속기. 렝크 누리집

“우리는 자유에 힘을 실어준다”
비간트는 에너지산업으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싶다. 기후중립적 경제로 재편하는 상황을 두 번째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다. 렝크는 (독일 2위) 철강업체 잘츠기터(Salzgitter AG)가 하는 친환경 철강 생산 프로젝트에 자사 기술을 제공한다. 에너지 전환 시장에서 렝크의 시작은 미미했지만, 매년 80% 이상 성장하고 있다. 현재 에너지시장은 렝크가 민간부문에서 3분의 1을 차지한다.
주식상장에 관해 비간트는 입을 닫는다. 소유주가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서는 빨리 매각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상장은 하나의 옵션이다. 다른 금융투자자나 방산업체에 매각하는 방안도 열려 있다. 2020년 라인메탈은 렝크에 관심을 보였다. 파퍼거 CEO는 야심 찬 성장 계획이 있다. 하지만 비간트는 라인메탈의 인수 제안을 탐탁해하지 않는다. 렝크가 또다시 특정 그룹 아래로 들어가면 여러 사업 기회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장이 그에게도 금전적으로 훨씬 이득이다.
비간트는 악수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렝크가 직접 제작한 메달을 건넸다. 메달에는 호위함과 전차가 새겨 있고 “우리는 자유에 힘을 실어준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 Der Spiegel 2023년 제34호
Frau mit Panzerantrieb
번역 이상익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