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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닥치기 전 선제적 기후이민
[SPECIAL REPORT] 일상 파고든 기후위기- ② 새 고향 찾는 신인류
[162호] 2023년 10월 01일 (일) 프리츠 하베쿠스 economyinsight@hani.co.kr

 

프리츠 하베쿠스 Fritz Habekuss <차이트> 기자

   
▲ 미국 북동부에 자리한 버몬트주는 허리케인이나 폭염이 없어 ‘선제적 기후위기 난민’을 위한 대표적인 안전한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버몬트주 그린마운틴국유림에서 스키를 즐기는 사람. REUTERS


미국 남부의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캐나다 국경 근처 버몬트주의 존슨까지는 2천㎞에 이르는 머나먼 길이다. 사이먼 베드퍼드(35)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모든 것을 정리한 뒤 난생처음 이 긴 여정을 하게 됐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어느 토요일, 베드퍼드는 “예를 들면 조지아주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조지아주로 평생 이주하는 게 상상되느냐?”고 묻는다. 마치 그 자신도 (버몬트주로의 이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린다. 여하튼 그는 지금 어지러이 널린 판자 더미, 사다리, 오래된 자동차 타이어로 된 벽, 태양광 모듈, 케이블이 늘어진 천장 사이에 서 있다.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이 집은 이제 베드퍼드에게 삶의 터전이 됐다.
도시계획가 베드퍼드는 미국 뉴욕주 브롱크스에서 성장했다. 그는 버몬트주로 이주하기 직전 애틀랜타에서 일했다. 그는 고향이자 마지막 살았던 애틀랜타에 특별히 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베드퍼드가 이제 살기로 선택한 존슨은 잔잔하게 출렁거리는 언덕과 관광객에게 메이플시럽을 파는 상점이 즐비한 작은 동네다. 그는 존슨에서 평생을 보내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이곳을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다. 이주 전까지는 존슨을 지도와 도표로만 접했다.

   
▲ 미국 버몬트주는 단풍나무에서 추출하는 메이플시럽으로 유명하다. 이곳 주민이 단풍나무의 수액을 모으기 위한 관을 설치하고 있다. REUTERS

버몬트, 가장 안전한 지역
베드퍼드가 존슨으로 이주하기 전에 봤던 지도와 도표는 미국 지역별 가뭄과 폭염, 대형산불, 그리고 홍수 빈도 통계치에 관한 것이었다. 일종의 미래 예측을 담은 지도와 도표였다. 버몬트주는 이 통계치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둔 지역에 속했다. 베드퍼드의 새로운 고향 존슨이 있는 라모일 카운티는 미국 비영리 인터넷언론 <프로퍼블리카>(ProPublica)가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미국의 가장 안전한 지방자치단체로 꼽히기도 했다.
라모일 카운티는 겨울이 점점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며, 물 부족을 겪지 않는다. 허리케인이나 폭풍우 위험이 있는 해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 대형산불은 드물며, 농업은 온도가 올라가면 손쉬워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기후변화로 오히려 혜택을 보거나, 적어도 다른 지역 거주민보다 고통을 덜 받는다. 베드퍼드는 기후변화로 혜택을 보거나 적어도 고통을 덜 받기 원했는데, 구할 수 있는 관련 자료를 모두 섭렵한 뒤 결국 존슨으로 이주를 결정했다. 그렇게 그는 버몬트주 땅을 샀다.
‘기후이민’이라는 말은 천재지변으로 남반구의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미국 버몬트주로 최근 이주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 전에 스스로 고향을 등지기로 결정한 고연봉 직장의 고학력 중산층이다. 동시에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베드퍼드는 기후위기로 안전한 새로운 고향을 찾는 ‘신인류’를 대표한다. 미국 인구조사국 통계치에 따르면, 2022년 미국에서 천재지변으로 잠시라도 집을 떠나야 했던 사람은 330만 명에 이르렀다. 이 중 40%가량은 일주일 만에 다시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지만, 16%인 50만 명 이상은 집이 영구적으로 파손돼 돌아가지 못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허리케인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맞지 않는다. 천재지변의 직격탄을 맞은 이 중 상당수는 건강이나 장애, 실직 등의 문제가 있거나 흑인과 중남미 사람이다. 특권층은 좋은 지역에 거주하고 좋은 보험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권의 관심도 더 많이 받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국제관계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 추산치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세계 12억 명이 기후변화로 고향을 등질 수 있다고 한다.
동시에 그들이 새로 이주한 곳도 기후위기의 위험 지역일 수 있다고 한다. 전문학술지 <프런티어스인휴먼다이내믹스>(Frontiers in Human Dynamics)에 발표된 버몬트대학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폭염과 허리케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민들이 고향을 등진다. 그런데 이들은 대형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 근처에 다시 새 거처를 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미국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취약한 지역을 꺼린다는 통계치는 아직 없다. 예를 들어 물 부족을 겪는 피닉스(애리조나주)나 라스베이거스(네바다주), 35도 이상의 폭염이 정기적으로 기록되는 올랜도(플로리다주)는 신규 전입자가 점점 늘고 있다.
주자네 클라크와 톰 클라크 부부는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는 소수의 사람에 속한다. 둘 다 기후연구원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독일 베를린 출신의 주자네는 이제 독일어를 많이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와 애리조나주립대학에서도 종종 연구활동을 했다. 애리조나주립대학에서 폭염이 어떻게 발생하고, 도시들이 대기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연구했다. 그의 연구 목표는 물리학을 날씨에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해를 많이 할수록 점점 더 무서워졌다.” 주자네와 톰은 버몬트주 최대 도시 벌링턴의 조용한 교외지역 셸번 자택의 거실에 앉아 있다.
여기로 이사 온 주요 이유가 기후 때문만은 아니라고 클라크 부부는 말한다. “나는 사막을 사랑하고, 애리조나주에 계속 있고 싶었다.” 하지만 톰은 버몬트대학의 연구보고서를 접한 뒤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가 살던 지역의 도시계획을 우연히 봤다. 도시계획에 따르면 경작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건물단지가 들어서는 등 온통 주택 건축 계획만 있었다. 심지어 우리가 항상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곳에도 주택단지가 조성될 계획이었다. 그때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감이 왔다.”
크리스 콜리바 버몬트대학의 공동체개발·응용경제학 교수는 기후위기로 이주를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기후는 천천히 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천재지변은 실제 발생하기 전까지는 추상적인 위험일 수밖에 없다. 실직, 부모 병환, 자녀 진학 등이 대다수 사람에게는 더 위급하고도 우선순위가 앞서는 문제다.” 기후는 부차적 문제일 뿐이라고 한다.
지방정부들도 지금까지는 기후위기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선제적 기후이민은 버몬트주를 비롯한 지방정부들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버몬트주 인구는 64만5천 명으로 적은 편이고 고령화됐다. 필 스콧 버몬트 주지사는 최근 “버몬트주는 인구가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콧 주지사는 이미 2017년에 기후위기의 긍정적 파생 효과를 파악했다. “캘리포니아주나 미국 다른 지역의 대형산불과 물 부족 뉴스를 접하다보면, 버몬트주는 이를 경제적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LA 산불에 이민 결심
클라크 부부는 최근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이웃 소식을 점점 더 많이 듣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민이 버몬트주로 이주하고 있다.” 그중에는 어린 딸과 함께 바로 옆집으로 이사 온 앨릭스 해리슨과 리플리 해리슨 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버몬트주로 이사 오기 전 로스앤젤레스(LA)에 살았다. 앨릭스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대형 마케팅 기업에서 일했는데 전국을 출장 다니며 홍보 캠페인을 맡았다. 하지만 인근에서 대형산불이 나고 짙은 연기로 공기가 나빠져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대체 왜 이러고 사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버몬트주에서 대학을 다닌 리플리는 셸번으로의 이주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해리슨 가족은 클라크 부부 옆집에 산다. 정원에는 붉은색 의자와 그릴 불판이 있다. 새파란 잔디는 짧게 깎였다. 이웃 대부분은 민주당 지지자로, 맞은편에 사는 이웃 한 명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모두 있고, 딸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다. 그래서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다.”
베드퍼드는 자신이 선택한 고향 존슨에서 자급자족과 자원보호의 꿈을 실현하며 살기를 원한다. 그의 집은 1970년대 건축가 마이클 레이놀즈의 설계를 토대로 지었다. ‘어스십2’(Earthship 2·깡통이나 유리병 등 버려진 소재로 만든 수동형 태양광 주택으로, 흙으로 채운 타이어들이 하중을 견디는 벽 구실을 한다)는 단순한 건축 매뉴얼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총체적인 구상이다.
어스십은 전기, 가스, 수도 등의 공공설비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주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수동형 태양광 주택인데 정원과 온실하우스 덕분에 거주자는 외부 수급 상황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베드퍼드의 어스십에서는 모래로 채워진 오래된 타이어가 벽의 구실을 한다. 빗물은 지붕에서 물탱크로 흐른다. 집에는 에어컨이 필요 없다.
베드퍼드에게 새 집은 단순히 저렴하고 지속 가능한 건축 방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라이프 미션’(인생의 사명)을 수행 중이다. “이렇게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나처럼 살아보라고 한번 설득하고 싶다.” 그는 조만간 온실하우스에서 바나나를 재배할 계획이다.
버몬트주 등지로 이주한 기후난민은 ‘미래의 메신저’다. 기후위기로 고향을 등져야 했던 기후난민 수백만 명은 새로운 고향을 찾고 있다. 하지만 버몬트대학의 크리스 콜리바 교수는 버몬트주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버몬트주는 미국에서 백인 인구 비율이 높은 연방주 중 하나다. 전체 주민의 5%만이 비백인이다. 콜리바 교수는 동네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한 흑인 남성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물론 인종 다양성은 버몬트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인종 다양성이 이뤄진다고 해도 이곳 인프라는 다음으로 큰 문제다.”
콜리바 교수는 모든 동네에서 하수도관이 연결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코로나19 대유행기에 수많은 사람이 대도시를 떠나 버몬트주로 왔을 때, 부동산 시장은 바로 포화됐다.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집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신규 주택을 늘리거나 기존 도시 지역의 추가 개발, 인구증가 제한 정책 등의 구상도 있었다. 그렇게 한들 실행에 옮겨지는 구상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또한 실행에 옮긴다고 해도 상수도관, 육아, 교통, 의료 등 모든 것을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형편이 되는 사람들과 더 나은 조건에서 새로운 삶에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만 기후이민을 감행할 수 있었다.

   
▲ 버몬트대학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폭염과 허리케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민들이 고향을 등진다고 한다. 2023년 8월30일 허리케인 ‘이달리아’가 할퀴고 간 플로리다주 호스슈해변의 처참한 모습. REUTERS

새로운 길을 걷는 고단함
그로부터 몇 달 뒤 베드퍼드가 거주하는 존슨에 폭우가 쏟아졌고, 인근 가게의 식료품이 모두 물폭탄에 떠내려갔다. 미국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지자체 라모일 카운티조차 결국 기후위기에서 안전하지 않았다. 언덕에 지은 베드퍼드의 집 어스십은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베드퍼드는 이제 이곳을 떠나기 원한다. 그는 버몬트주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었고, 그사이에 신념이 바뀐 것도 아니다. 기후위기가 점점 악화하는 수십 년 동안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피해와 비교하면, 존슨의 홍수는 진지한 문제에도 끼지 못했다. 다만 “새로운 길을 처음 걷는 사람이 되기란 힘들다”고 한다.

ⓒ Die Zeit 2023년 제36호
Sie fliehen schon mal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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