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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와 중국의 도원결의
[편집장 편지]
[162호] 2023년 10월 01일 (일) 김연기 ykkim@hani.co.kr

 
김연기 편집장

   
 

흔히 ‘황의 법칙’이라고 하면 황창규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을 떠올릴 것입니다. 2002년 황 전 사장은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늘어난다”며 ‘황의 법칙’(Hwang’s Law)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황의 법칙의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을 구동하는 반도체 성능이 2년마다 2배 이상 향상된다”는 ‘황의 법칙’(Huang’s Law)이 AI 시대 반도체산업 성장을 설명할 새 이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는 반도체기업 가운데 처음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황은 공식 자리에 항상 검은색 가죽재킷을 입고 나타나 ‘검은 가죽재킷의 CEO’라고도 불립니다.
요즘 그는 톡톡 튀는 패션 스타일만큼이나 미-중 패권 갈등 속에서 파격적 발언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중국에 반도체를 수출하지 않으면 빅테크는 거대시장(중국)을 잃고 큰 피해를 입는다. 반면 중국은 스스로 반도체를 만들어 기술자립을 이룰 것이다. (미국 정부의 수출제한이) 오히려 빅테크의 손을 묶는 격이다.”(2023년 5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
미-중 갈등을 바라보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불편한 속내를 그가 가감 없이 드러낸 셈입니다. 황뿐만이 아닙니다. 2023년 들어 팀 쿡 애플 CEO를 비롯해 일론 머스크(테슬라), 팻 겔싱어(인텔), 크리스티아노 아몬(퀄컴) 등 빅테크 수장들이 잇따라 대륙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중국 정부의 환대 속에 미국 정부를 향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문하며 황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습니다.
미 정부가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위한 여러 제재를 내놓지만, 매출과 원자재 수급의 상당 비중을 중국에 의존하는 빅테크가 중국과 거리를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기업의 존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으로서도 빅테크 수장들이 내민 손길이 절실할 것입니다. 외국인투자 유입을 통해서라도 꺼져가는 경기의 불씨를 살려보겠다는 처절함이 엿보입니다.
중국 의존 비중이 절대적인 우리 기업은 어떤가요? 2023년 3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중국을 찾았습니다. 여러 빅테크 수장이 적극적 행보를 보인 것과 달리 이들은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잠행하듯 조용히 움직였습니다. 물론 미-중 패권 갈등 와중에 미국 쪽에 쏠린 한국 정부의 외교 방향이 이들의 운신 폭을 좁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중 패권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빅테크들은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에 방점을 둔다는 사실을 우리 기업도 명심해야 합니다. 중국과의 관계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각을 세우지 않으면서 위험 요소를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빅테크가 중국을 필요로 하는 만큼 중국도 빅테크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 지난 6년 가까이 열정과 헌신으로 <이코노미 인사이트>를 이끌어온 박중언 전 편집장이 2023년 9월호(161호)를 끝으로 정년퇴직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마지막 회에서 스스로 밝힌 것처럼 새로운 길로 나서는 박 전 편집장에게 독자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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