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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시대 새로운 성장 해법 찾아야
[CULTURE & BIZ]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 축소 뒤 어떻게 성장했나
[161호] 2023년 09월 01일 (금)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1999년 6월16일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음모 저지 투쟁 선포대회’에서 영화인과 영화학과 교수 등이 스크린쿼터 사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영화관 위기론이 많이 나온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로 영화 제작, 배급, 상영 등이 중단됐다. 보릿고개를 넘기듯 어렵게 코로나19를 넘겼으나 여파는 피할 수 없었다.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열었지만 성적표는 초라했다. 코로나19 이전 제작돼 상영 시기를 놓쳤던 ‘재고 영화’들의 흥행은 부진했다. 이후 기획된 영화들이 본격 등장해 여름 성수기를 기대했지만 이전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영화를 보는 데 익숙해진 관객의 ‘습관’과 싸우는 것이 힘겹다. 관객을 다시 영화관으로 불러내기 위해선 특단의 변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전을 떠올려보면, 한 해에 ‘천만 관객’ 한국영화를 몇 편 쏟아내던 ‘좋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영화가 그런 호황을 누린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처음 절반을 넘은 것이 2001년이었다. 이후 약간의 침체와 반등을 겪은 뒤 2011년에 이르러 안정적으로 50%대를 유지했다.
2001년 한국영화 점유율이 50%를 넘어선 데는 많은 요인이 뒷받침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기업과 벤처투자자들이 영화산업에 진입했고, 대학에서 영화운동을 한 새로운 기획자들이 제작자로 나섰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등장해 공급 기반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든든하게 뒷받침한 것은 스크린쿼터제였다. 1966년 우리나라에 도입돼 2006년 크게 축소될 때까지 스크린쿼터제는 한국영화의 싹을 키우는 중요한 구실을 했다.

미국의 개방 압력
스크린쿼터제는 영화관에 자국 영화를 일정 일수 또는 편수 이상 상영하도록 규제하는 제도다. 정식 명칭은 ‘한국영화 의무상영제도’다. 이 제도가 한국 영화산업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은 과거 한국영화와 외화 상영에서 얻는 수익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1988년 <위험한 정사>를 시작으로 외화의 국내 직접배급이 허용되면서 외화 수입이 많이 늘어났다. 1984년 25편에서 1987년 84편, 1989년 264편, 1996년 405편까지 늘어났다. 할리우드영화는 내걸기만 하면 관객을 끌어모았다. 극장주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외화를 선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크린쿼터제는 극장 연간 상영일수의 40%인 146일 이상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강제했다. 필요하면 문화부 장관이 20일, 시·군·구에서 추가로 20일을 단축할 수 있어 실질적인 의무상영일수는 106일이었다. 극장들은 이 의무기간을 채우기 위해 미우나 고우나 한국영화 간판을 내걸어야 했다. 한국영화는 수익이 적었지만 이 제도 덕분에 꾸준히 제작됐다.
스크린쿼터제는 국내 산업 보호 정책이었기 때문에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 등 자유무역의 흐름이 거세지면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영화수출협회(MPEAA)는 1980년대 중반부터 끊임없이 스크린쿼터제를 문제 삼았다. 한국 정부는 영화시장을 조금씩 열면서도 스크린쿼터제는 유지했다. 영화산업을 뒷받침하는 이 제도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어서였다. 그러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국에 한-미 투자협정(BIT)을 제안하자 미국 정부는 스크린쿼터 축소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스크린쿼터제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무역규범인 관세·무역 일반협정(GATT)의 예외 조항 때문이었다. 이 협정은 수입상품을 국산품과 차별하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해서는 스크린쿼터제 시행을 허용했다. 동시에 스크린쿼터의 제한 또는 폐지를 위한 협상도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한다는 한국의 주장도, 축소하자는 미국의 요구도 문제가 없었다. 양국 정부의 의지와 여론 등이 제도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었다.
1998년 처음 스크린쿼터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문화주권’을 사수해야 한다는 논리로 축소 압박을 피해갔다. 영화계는 스크린쿼터를 문화주권 문제로 이슈화했다. 문화를 미국 투자와 맞바꾸려는 것은 ‘매국’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폈다. 안성기, 문성근 등 유명 배우와 유명 감독들이 대중에게 직접 호소해 여론을 움직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문화산업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보인 터라 영화계의 주장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당시 한국 영화산업이 튼실하지 못해 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수 없었다. 결국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을 때까지 스크린쿼터제를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유보 조항을 남기고 1차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은 중단됐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의 상황은 사뭇 달랐다. 각종 문화산업 진흥 정책과 투자금융제도가 정비돼 영화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벤처투자자의 한국영화 투자가 시작됐고, 한국영화에서 큰 성공작들도 탄생했다. 무엇보다 씨제이(CJ), 오리온, 롯데 같은 대기업이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세우면서 영화시장 자체가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1998년 관람객이 연간 5천만 명이던 한국 영화시장 규모가 2002년 연간 1억 명으로 두 배 성장했다. 1998년 25.1%이던 한국영화 점유율은 1999년 39.7%, 2000년 35.1%, 2001년 50.1%, 2002년 48.3%를 기록했다. 국민의 머릿속에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나서자 미국은 또 스크린쿼터 축소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영화인들은 다시 반대투쟁에 나섰다. 유명 배우들이 시위에 나서고 각종 토론이 벌어졌다. 하지만 국민의 인식이 이전과 달라졌다. 특히 한국영화 점유율이 40%를 넘어섰다. “문화냐, 경제냐”라는 이분법 논리가 더는 용납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영화가 ‘산업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 소비자 선택지를 늘리고, 보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경제학적’ 처방도 나왔다. 미국이 끊임없이 스크린쿼터를 협상 대상으로 삼아 논란을 반복한 효과이기도 했다.
 

   
▲ 1천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2012~2015년 ‘천만 관객’ 영화가 한 해에 두 편 등장해 2012년과 2013년에는 한국영화 점유율이 60%에 육박했다. CJ엔터테인먼트

늘어난 점유율
결국 스크린쿼터는 2006년 7월 기존의 절반인 연간 73일로 축소됐다. 스크린쿼터가 줄어들자 예상대로 한국영화 점유율이 감소했다. 2005년 58.7%에 이르렀던 한국영화 점유율은 축소된 스크린쿼터가 적용된 2007년 50.5%, 2008년 42.1%, 2009년 48.8%, 2010년 46.5%로 떨어졌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합의된 2006년에는 예외적으로 한국영화 점유율이 63.8%로 올랐다. 영화 배급업자들이 쟁여둔 한국영화를 서둘러 상영하면서 생긴 재고 처분 효과였다.
이 추세는 스크린쿼터 축소 5년 뒤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2011년 한국영화 점유율은 50%대로 다시 늘었다. 특히 2012년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 2013년 <7번방의 선물>과 <변호인>, 2014년 <명량>과 <국제시장>, 2015년 <베테랑>과 <암살> 등 천만 관객 영화가 한 해에 두 편 등장할 정도로 흥행 영화가 쏟아졌다. 2012년과 2013년 한국영화 점유율은 60%에 육박했다.
이런 양상이 나타난 것은 당시 한국 영화산업이 성장 흐름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됐지만 투자금이 밀려들어 한국영화 제작이 계속 늘어났다.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설립이 이어지고 배급 능력이 나아져 영화시장 자체가 커진 영향도 작용했다. 시장 성장세가 부정적인 제도 변화를 압도한 것이었다.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며 많은 제작 경험을 쌓고, 어느 정도 성장동력이 붙었을 때 시장이 열렸다는 점도 중요했다.
특히 한국영화의 기획력이 향상돼 흥행작을 만드는 힘을 기른 공이 컸다. 할리우드영화보다 한국 관객의 눈높이에 더 맞는 영화, 한국 사회 현상을 잘 포착해 대중적 공감대를 위해 꼭 봐야 하는 한국영화들이 등장했다. 영화업계는 때때로 독과점 논란에 부딪혔지만, 배급 등을 효율적으로 하며 시장의 응집력을 극대화하는 능력을 키웠다.
하지만 코로나19 기간 산업의 휴지기를 거치면서 지금은 한발 더 나아가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이제 OTT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해 더 싸고 편하게 영상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보편화했다. 관객은 예전보다 더 검증되고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면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 과거 스크린쿼터제 사수를 위해 싸운 영화 제작자들은 한국영화에 시대적 공감대를 솜씨 좋게 담는 형태로 대응했다. 지금 제작자들은 어떤 해법을 찾아내야 할까. 잘하던 것을 더 키우든, 새로운 것을 찾아내든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김윤지 연구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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