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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세 얼굴, 연꽃·운하·문명
[세계는 지금] 중국 항저우
[161호] 2023년 09월 01일 (금) 송익준 ikesong@kotra.or.kr

 

송익준 KOTRA 항저우무역관장
 

   
▲ 항저우 아시안게임 마스코트인 천천(왼쪽부터), 총총, 롄롄 복장을 한 직원들이 2023년 4월27일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REUTERS


롄롄, 충충, 천천은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마스코트다. 이들을 보면서 어떤 생명체도 연상하지 못했다면 안목이 정확한 편이다. 이 마스코트는 인공지능(AI) 로봇이기 때문이다. 롄롄은 항저우 시후(西湖)에 핀 연꽃잎(蓮葉)을, 충충은 량주(良渚) 유적지에서 발굴된 옥으로 만든 제사용품 옥종(玉琮)을, 천천은 징항(京杭) 대운하 끝단에 있는 석조다리 궁천차오(拱宸橋)를 뜻한다. 이들은 로봇 몸통에 항저우 대표 상징물을 머리에 장착한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절묘한 결합체다.
코로나19로 1년간 연기됐던 아시안게임이 2023년 9월23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다. 중국 정부는 아시안게임 개최에 따른 경제 효과를 79조원으로 추산했고, 새 일자리가 67만 개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지난 몇 년간 항저우에 아시안게임 경기장 건설은 물론 호텔과 랜드마크 빌딩이 들어섰고, 지하철 노선과 간선도로를 확충했다. 지하철 ‘먼저 내리고 나서 타기’와 같이 공공질서 준수 캠페인도 벌어진다. 간편결제서비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에 국외 신용카드를 연동해 편리하게 쓰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얼마 전 시후 주변 상권을 관리하는 호빈가도(湖滨街道, ‘가도’는 우리나라의 ‘동’에 해당) 전시관을 방문했다. 전시관 깊숙한 곳에 대형 화면이 설치됐다. 주요 상권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연령별·성별 유동인구 데이터, 1인당 평균 소비액, 혼잡도에 따른 안전등급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기준 이상으로 인파가 몰리면 위험경보가 울리고, 매뉴얼에 따라 관리 인력이 투입된다고 한다. 호빈가도는 본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인데다, 때마침 토요일 오후에 날씨도 좋아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잘 구축한 관리시스템 덕분에 관계자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 항저우 량주박물관에 들어서면 “량주는 중화민족 5천여 년 문명사를 실증한 성지이다”(良渚是實證中華五千多年文明史的聖地)라는 글귀가 보인다. 송익준 제공

롄롄: 시후와 스토리텔링
연꽃이 아름다운 시후를 빼놓고 항저우를 얘기할 수 없다. 매년 많은 관광객이 시후를 찾는다. 2023년 중국 노동절 연휴 닷새 동안 300만 명이 시후를 찾았다. 중국에는 규모가 큰 호수가 많은데도 유독 시후가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시후 곳곳에 깃든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금나라에 쫓겨 내려온 문치국가 남송의 후예답게 글 재능이 뛰어난 항저우 사람들은 그럴싸한 스토리를 만들어 ‘시후10경’이라 이름 붙였다. 시후10경 중 하나인 단교잔설(斷橋殘雪)은 아치형 다리다. 겨울철에 내린 눈이 다리 가운데 부분부터 녹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다리가 끊어진 듯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백사와 선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백사전>(白蛇傳) 속 백소정과 허선이 이 단교에서 처음 만났다. 시후에는 백제(白堤)와 소제(蘇堤)라는 제방이 있다. 당나라와 송나라 때 각기 항저우 지방관을 지낸 백거이와 소동파의 성에서 따왔다. 두 사람은 가뭄으로 고생하는 농민들을 위해 제방을 쌓아 물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스토리텔링’은 힘이 있다. 전설 속 ‘이야기’와 역사 속 ‘사건’이 시후라는 ‘공간’과 결합할 때 스토리는 사람들 뇌리에 각인된다. 각인된 스토리는 단교잔설 같은 네이밍(이름짓기)으로 강화된다. 사람들은 시후 곳곳에 붙은 이름에서 스토리를 떠올리고, 그 스토리는 다시 네 글자 이름으로 축약돼 불린다.
전설 속 이야기에 매료돼 시후를 방문하는 관광객처럼, 우리나라 드라마에 매혹된 여행자들이 강릉·안동·전주 등 그들에게 아직은 생소한 도시를 찾는다. 강요가 아닌 매력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을 ‘소프트파워’라고 한다. 국가 간 기술 격차가 축소될수록 대표적 소프트파워인 문화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시시(西溪) 캠퍼스. 송익준 제공

충충: 양저유적과 궈차오 열풍
시후에서 북쪽으로 30㎞ 떨어진 곳에 량주박물관이 있다. 이곳에 량주문명의 상징물인 옥종이 전시돼 있다. 옥종은 가운데 구멍이 뚫린 직육면체 옥기(玉器)다. 전문가들은 옥종이 제사와 관련됐고 제사를 집행하는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해석했다. 박물관 입구 중앙에 “량주는 중화민족 5천여 년 문명사를 실증한 성지이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난리통에 생이별했던 자식을 다시 만났을 때 낼 법한 자지러진 환호성이 벽을 뚫고 들리는 듯하다. 량주문명 발견으로 4천 년 중국 문명이 시간상 5천 년으로 늘어났고, 공간적으로 황허강 유역에서 창장강 이남까지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 증거인 량주 고성(古城) 유적지는 불과 16년 전인 2007년에 발굴됐고,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2022년 7월 량주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중국 국가판본관(版本館) 항저우 분관이 개관했다. 예전에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을 태백산·묘향산·마니산·오대산에 나눠 보관했던 것처럼 베이징 본관과 시안, 광저우 그리고 이곳 항저우 분관에 고서적 등 판본 2400만 권(건)을 소장하고 있다. 판본관과 박물관 인근에는 고풍스러우면서도 디자인이 세련된 레스토랑, 카페, 문화공간이 들어섰다. 지방정부는 민간 개발사와 함께 량주 유적지 일대를 새로운 문화중심지로 조성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전통문화를 향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반세기 전에 자행된 광기 어린 전통 파괴 운동의 기억은 아스라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중화민족으로서의 각성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중국 국산품 애용 트렌드인 궈차오(國潮) 열풍과도 맥이 닿아 있다. 고속성장기에 유년시절을 보낸 젊은층은 자국산 제품을 자랑스럽게 소비한다. 기업들도 애국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전문가들은 2018년 미-중 무역분쟁이 궈차오 열풍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본다.
궈차오 열풍은 외국 기업에 분명 위협요인이다. 이에 대해 아디다스가 ‘CHINA’가 프린트된 의류를 출시하고, 펩시콜라도 궈차오 디자인 공모전을 여는 등 글로벌 기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새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다. 궈차오 열풍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 열풍을 주도하는 Z세대의 소비성향을 분석해 상품을 개발하고, 중국 예술가들과 함께 아트 협업 마케팅을 추진하는 등 다각적 대응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징항 대운하는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물길이다. 베이징에서 출발한 배가 항저우 공진교를 만나면 1794㎞의 긴 여정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진시황 못지않게 토목공사에 집착했던 수나라 양제(7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대운하 건설은 명나라 영락제(15세기) 때 완성됐다. 역대 왕조는 대운하를 통해 남쪽에서 식량과 전략물자를 공급받았고, 남북 교류도 확대했다. 대운하가 없었다면 지금의 항저우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항저우의 번영은 대운하로 시작했고, 20세기 초 철로가 수로를 대체하면서 쇠락했다.

천천: 징항 대운하와 전자상거래
중국 전자상거래 발전과 함께 항저우도 오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대운하가 물길을 따라 화물을 운송했다면, 전자상거래는 물리적 공간의 제약 없이 상품을 유통한다. 1998년 마윈이 항저우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하면서 중국 전자상거래 산업이 기지개를 켰다. 불과 24년 만인 2022년 말 기준으로 중국에 전자상거래 관련 기업이 1300만 개 이상 생겼고, 전체 누리꾼의 약 80%에 해당하는 8억4500만 명이 온라인쇼핑을 이용한다.
알리바바는 중국인의 생활양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온라인쇼핑은 물론이고 대중교통 이용, 택배서비스, 공과금 납부, 자산 운용, 여행, 외식,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청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알리바바 디지털 생태계 안에서 해결된다. 최근에는 한국 시장 진출에도 상당히 적극적이다. 핀둬둬, 더우인, 샤오훙수 등 후발 주자들의 부상으로 중국 내수시장 경쟁이 심해지면서 국외 신시장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알리바바 같은 빅테크 기업의 특징 중 하나는 초기에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지만 일단 시스템이 갖춰지면 엄청난 이익을 실현하면서도 추가로 드는 한계비용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첨단기술과 플랫폼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중국 사회의 인프라 구축에 중추적 구실을 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요즘 중국 사회를 보면 마치 빅테크 기업처럼 발전에 가속도가 붙어 질적 변화를 경험한다는 느낌이 든다. 중국 기업이 예전에는 그냥 저렴한 제품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양질의 제품을 여전히 저렴하게 생산한다. 상품 디자인도 구매욕을 자극할 정도로 성숙했다. 서비스 분야 혁신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정보화 서비스, 핀테크, 스마트 물류, 디지털 헬스케어 등 디지털경제와 연관된 서비스 업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지난 20년간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으나, 중국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더구나 세계가 디지털경제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를 생산하는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처음 경험하는 대전환의 시기에 이웃나라 중국과 때로 경쟁하면서도 때로 협력하고 상생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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