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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졸업’하는 그대, 걱정하지 말아요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61호] 2023년 09월 01일 (금) 박중언 parkje@hani.co.kr

 

   
▲ 실업급여 신청자로 분주한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연합뉴스


‘설레며 기다리던 정년퇴직.’ 아직 살날이 몇십 년 남았는데 이렇게 말하면 현실감각이 없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중견기업 P부장에게는 9월 시작되는 정년 이후의 삶에 불안보다 기대가 앞선다. 그럴듯한 다른 일이 있거나 신박한 계획을 세워놓아서는 아니다. 퇴직이 주는 자유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 회사일 없는 일상을 생활화하고 직업과 소득의 소멸에 따른 충격을 줄이는 ‘연착륙’을 꾸준히 준비했을 따름이다.
지속가능한 노후의 첫걸음은 생존력 기르기다. 스스로 끼니를 챙겨 먹고 치울 줄 아는 것이 안정된 노후의 토대다. 벌이가 없는 퇴직자를 위해 언제까지나 그 번거로운 일을 대신해줄 사람은 없다. P부장은 초보 수준의 요리, 간편식, 냉동식품, 배달 등을 조합해 큰 어려움 없이 세끼를 해결하는 정도의 ‘집안일 근육’은 갖췄다. 특히 중요한 게 설거지, 청소, 정리 같은 허드렛일이다. 씻지 않은 그릇과 배달음식·컵라면 용기가 쌓이는 것은 가장 분명한 노후생활의 적신호다.

생존력과 루틴
다음은 그저 그런 하루 보내기다. 별일 없을 때의 루틴한 일상 말이다. 막연히 고민만 하다 퇴직한 사람은 출근 없는 아침에 어디에서 뭘 할지 몰라 상당 기간 방황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일이 없는 것은 사지선다형에 익숙한 수험생의 주관식 답안지처럼 막막하다. 여행, 골프 등 특별행사를 줄기차게 하기에는 남은 인생이 너무 길다. 일상이 흔들리면 쉽게 마음이 동요하고 노후 불안에 잠식당한다.
잠과 식사 등 기본 생존에 쓰이는 시간을 빼면 하루 10~12시간이 남는다.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 자산’이다. 준비되지 않은 퇴직자에겐 버겁기만 할 이 시간을 P부장은 크게 네 덩어리로 나눠 필요성이나 심리적 만족도가 높은 소소한 것들로 채운다. 개인 성향과 여건에 따라 루틴의 내용물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우선 몸 건강에 필수인 운동이다. 운동으로 아침을 여는 것이 그의 습관이다. 몸을 조금 피곤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운동에는 보상도 따른다. 쾌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의 분비가 늘어난다.
다음으로 마음·정신·두뇌 건강을 위한 독서·공부다. 퇴직 뒤 책읽기는 5권 분량의 두툼한 <레미제라블>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문학·역사·철학 분야 고전을 다시 펼쳐 드는 것만큼 느긋함을 만끽하게 하는 게 있을까 싶다. P부장이 평생의 주제로 삼은 나이듦·언어와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은 독서이자 공부다. 스페인어를 비롯한 외국어 공부와 좋은 시 외우기로 치매 예방 효과도 기대한다.
악기를 다루거나 춤을 추는 데도 시간을 들인다. 그동안 도전하지 못했던 스포츠댄스는 동네 주민센터 프로그램으로 입문해 꾸준히 배워볼 생각이다. 일정 수준에 이르려면 상당한 연습 시간과 월 20만~30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비슷한 시간과 돈이 드는 드럼 배우기와 적절히 조율하는 게 숙제다. 집에서 틈틈이 쉬운 애창곡을 기타로 치고, 피아노는 유튜브를 보며 독학한다.
하루의 마지막은 영화, 드라마, 연주를 감상하는 시간이다.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의 콘텐츠 바다에 빠져 메마르기 쉬운 감정의 파노라마와 롤러코스터를 즐긴다. 운동 2, 독서·공부 3~4, 악기·춤 3, 영화·드라마 2~3 정도로 시간을 배분한다. 지켜지지 않는 방학 일과표처럼 비칠지 모르나 P부장에게 오래 익숙해진 루틴이다.

소극적 미니멀리스트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건 좋지만 뭘로 먹고사느냐고? 튼실한 노후자금 계획이 없으면 ‘즐기는 노후’는 신기루일 뿐이다. 핵심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입이 지출을 웃도는 흑자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불확실한 수입을 늘리려 하기보다 씀씀이를 줄이는 게 쉽다. 필요한 생활자금 추산을 위해 P부장은 노후를 두 시기로 나눈다. 75살(60살 퇴직자의 평균수명을 90살로 가정했을 때 절반) 이전의 활동적 노년기와 이후의 수동적 노년기다.
대략 75살이 넘으면 뭔가를 적극 시도할 가능성이 작다. 기본 수입인 국민연금만으로 생활하는 게 바람직하다. 30년 넘게 직장을 다닌 P부장의 연금 수령액은 1인 최소 노후생활비 124만3천원(2021년 조사)보다 많다. 저소비형인 그는 연금 범위에서 생활하는 게 어렵지 않다. 여유가 없어 적게 써야 하는 노후는 되레 그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소유와 씀씀이를 줄이는 미니멀라이프가 지구 환경을 살리는 길이니.
자유롭고 왕성한 60~75살의 황금기를 위해선 자금이 더 필요하다. 우선 퇴직 직후부터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의 소득공백기(크레바스) 대비다. P부장은 이 용도로 퇴직 5년 전부터 월 100만원의 적금을 넣었다. 원금과 이자를 합쳐 7천만원 정도다. 소득공백기 3년 동안 월 200만원 가까이 생활비로 쓸 수 있다.
이후 12년의 생활비는 퇴직연금을 보태 충당할 계획이다. 월 100만원의 퇴직연금을 받는다면 월수입이 1인 적정 노후생활비(177만3천원)를 훨씬 웃돈다. 이를 위해선 단순 계산으로 연간 1200만원, 12년 동안 1억4400만원이 필요하다. P부장은 해마다 적립한 개인형퇴직계좌(IRP)의 운용자금과 퇴직금이 그 액수를 넘도록 설계했다. 퇴직금을 10년 이상 나눠 연금 형태로 찾으면 세금이 30% 줄어든다.
퇴직 직후에는 실업급여를 신청한다. P부장은 최대치인 월 198만원을 9개월 동안 받을 자격이 있다. 이 기간에 요양보호와 남성 헤어컷을 배워볼 생각이다. 실업급여를 둘러싼 논란으로 청년 구직활동에 대한 감시가 강화됐지만 받아주는 곳 없는 정년퇴직자와는 무관하다. 고용보험 누리집에서 실업급여 자격, 절차, 금액, 의무 등 내용 전반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후의 품격
5년 동안 60편을 썼다. P부장은 이 글을 끝으로 ‘노후 실전’에 돌입한다. 그보다 여건이 나쁜 사람도 많겠지만 구체적 서술을 위해 P부장을 사례로 들었다. 글을 꾸준히 읽어준 독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넉넉하지 않고 보잘것없는 일을 한다고 노후의 품격까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나이 드는 것이 행복에 다가가는 길일 터이다. 다들 편안하고 자유로운 노후를 맞이하시길!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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