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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제라고? 바보야, 정체성이 문제야!
[GLOBAL] 극우 포퓰리즘의 잇따른 선거 승리
[160호] 2023년 08월 01일 (화) 마티아스 크루파 economyinsight@hani.co.kr

 
튀르키예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포퓰리스트(대중주의자)들이 경제위기에도 선거에서 연전연승하고 있다. 포퓰리스트들이 승승장구하는 배경을 살펴봤다.

마티아스 크루파 Matthias Krupa 등 <차이트> 기자
 

   
▲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후보(오른쪽 셋째)가 대선을 앞둔 1992년 10월20일 당시 러닝메이트인 앨 고어 부통령 후보(오른쪽 둘째)와 함께 시카고 데일리센터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인사하고 있다. 클린턴 후보는 당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로 현직 대통령을 누르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REUTERS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판도를 일거에 바꿔놓은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참모 제임스 카빌의 이 말은 사회문제의 핵심이 경제에 있다는 의미였다. 클린턴은 조지 부시 현직 대통령과 대선에서 맞붙었다.
클린턴이 대선전에서 강조한 대로 당시 미국은 경기침체기에 있었다. 클린턴은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대선에서 이겼다. 이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는 모든 대선 후보의 신념이 됐다. 자신이 직접 부를 창출했거나 앞으로 창출해낼 것이라고 유권자를 설득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이긴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구호는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아 보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수많은 민주주의국가의 포퓰리즘 정당과 정치인들은 현실이 1992년 당시 미국 대선 구호와 정반대임을 보여줬다. 이제는 “정체성이 경제를 이긴다”(Identity trumps the economy)고 말한다.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023년 5월28일 대선에서 승리한 뒤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부인 에미네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고물가와 심각한 청년실업 속에서도 재선에 성공하면서 경제가 선거에서 중요하다는 오래된 통념이 깨졌다. REUTERS

튀르키예 대선의 함의
지금은 문화투쟁과 종족민족주의(Ethnonationalism)가 경제정책보다 우위에 있다. 사회변화를 거부하자고 크게 외치거나 유권자의 두려움을 꼬집어 표현하는 정치인이 선거에서 이긴다. 경제정책이 부실해도 지지자들의 이해관계에 해가 되는 경제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어도 말이다. 이제 선거 결과를 결정짓는 것은 가치와 정체성이지 경제적 부가 아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재선 성공이 대표 사례다. 튀르키예 유권자의 52.2%는 2023년 5월28일 결선투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표를 줬다. 튀르키예는 2018년 이후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 있다. 주식인 국민빵 ‘시미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청년실업이 심각한데도 에르도안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국가경제를 거덜 내도 선거에서 연전연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튀르키예는 극단적 예외에 불과할까? 그리고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나 독일의 구동독 지역에 칩공장과 배터리공장을 유치해 사회 진영의 분열을 극복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나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체성 정치의 원조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다. 경제 관점에서 보면 당시 정황상 브렉시트는 절대로 뽑으면 안 되는 선택지였다. 그럼에도 2016년 영국 유권자 다수는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다. 브렉시트로 영국이 경제적 타격을 입으리라는 경고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옹호자에게 브렉시트 구호 ‘주권 되찾기’(Take back control)는 중요했다. 영국다움을 지키는 것이 브렉시트 지지자들에게는 경제성장률보다 중요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2016년 대선 승리 이후 경제정책과 관련해 자신을 지지하던 유권자의 이해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 시절 공화당은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세계화 패자들, 뒤처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공화당은 하위 중산층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수백만 명에 이르는 고졸 이하 저학력·저임금 백인 남성들은 2020년 대선에서도 트럼프에게 다시 몰표를 줬고, 지금도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한다.
그런데 2018년 발효된 트럼프의 조세개혁안은 고소득층과 대기업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었다. 또한 미국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 법안을 둘러싼 양당 간의 줄다리기에서 공화당의 정부지출 삭감안은 하위 중산층에 특히 타격을 입힐 것이다. 트럼프가 핵심 지지층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펼쳤는데도 지지자들은 트럼프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2022년 11월 총선 결과는 경제정책적 관점에서 보면 이해 불가의 영역이다. 현재 이스라엘 물가는 위험할 정도로 치솟아 있다.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Israel Democracy Institute)가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민이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걱정하는 주제는 생활비다. 이스라엘 국민의 60%에 이르는 다수가 정부에 고물가의 책임이 있다고 봤다. 그런데도 고물가를 둘러싼 논쟁은 진영 관점에서만 조명될 뿐이다. 한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연정은 민생을 대변하지 못하는 좌파 엘리트 청산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대법원 독립성을 제한하려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
튀르키예에서는 (진영 논리가 경제문제를 압도하는) 이런 경향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튀르키예 대선 1차 투표 전만 해도 진영 간 이데올로기 논쟁과 더불어 심각한 경제 상황이 굵직한 대선 화두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2년 말 65%에 이르던 인플레이션을 잠시나마 누르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했고, 그나마 2023년 4월 인플레이션은 43.7%로 떨어졌다. 하지만 결선투표 전 양쪽 후보는 정체성과 민족주의적 색채를 둘러싼 논쟁으로 전선을 옮겼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 테러리즘 척결을 공약하는 등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결선투표에 오른 두 후보 모두 시리아 난민 추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 피파 노리스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정치학 교수는 포퓰리즘 성향이 짙은 정당이 주류인 국가의 선거에서 경제 상황은 부차적 구실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경제는 선거에서 부차적 구실
지난 수십 년간 포퓰리즘의 원인을 연구하는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피파 노리스 정치학 교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 성공이 전혀 뜻밖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포퓰리즘 성향이 짙은 정당이 주류인 국가의 선거에서 경제 상황은 부차적 구실을 할 뿐이다.”
노리스 교수에 따르면 수많은 민주주의국가에서 1960~1970년대 이후 물질적 가치 대비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한다. 이미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부에 도달했으므로, ‘포스트물질적’(Post-Material) 사안이 수많은 유권자에게 점차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환경보호, 남녀평등, 소수자 평등 문제가 이런 가치에 속한다. 이후 다양한 성적 정체성 관용 등 진보적 가치는 주요한 흐름이 됐고, 반면 종교의 중요성은 점점 낮아졌다.
튀르키예를 포함해 수많은 서구 국가에서 보수적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다. 국가별로 보수 성향 유권자는 최대 45%에 이른다고 노리스 교수는 설명한다. 보수 가치를 충실히 따르는 유권자는 수많은 국가에서 점점 더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느낀다. “유권자의 이런 두려움을 제대로 포착한다면 이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 노리스 교수와 작고한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2019년 출간한 공동저서에서 이를 “문화적 반격”(Cultural Backlash)이라고 칭했다.
국가마다 문화적 반격의 대상은 다르다. 단순화해 말하자면 영국인은 유럽 대륙으로부터 위협을 느낀다. 폴란드인은 낙태 합법화나 동성 결혼 합법화 등으로 전통 가톨릭의 가치가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 국가를 향한 열망이 이스라엘인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튀르키예를 수십 년 동안 통치한 세속주의 엘리트층에 대해 보수적이고 신앙심 깊은 튀르키예인들의 승리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또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비서구 튀르키예 국가를 향한 자부심과 이슬람 신앙을 대변한다.
국가, 정당, 정치인마다 동기는 다르겠지만 결론은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체성이다”로 모인다. 이제는 경제가 아닌 유권자의 정체성이 선거의 가늠자가 됐다.
이는 민주주의에 위기를 뜻한다. 조세정책, 분배 문제, 경기부양책, 노동정책에 관해서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논쟁을 벌이고 타협안을 찾을 수 있다. 반면 가치와 정체성은 절대적인 것이다. 가치와 정체성은 공유나 타협이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물질적 가치가 절대적이었다면, 이제는 가치와 정체성이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또한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적어도 이론상으로 선거는 정부의 국정 성과와 다양한 정책의 성적에 대한 투표이기도 하다. 실업률, 임금수준, 사회에서 부의 분배 등 경제지수는 탈진실 시대에 적어도 해석과 검토가 가능한 닻의 기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경제지수는 부차적 구실만 할 뿐이다.
물론 과거에도 정체성이 투표의 중요 기준이기는 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튀르키예가 금리인하 단행 등 경제 관점에서 터무니없는 정책적 결정을 해도 해당 정당이나 대선 후보가 선거에서 이긴다. 이는 책임의 원칙이 상당히 허물어졌음을 방증한다.
정체성 정치가 경제정책 자리를 슬금슬금 차지하더니 이제는 아예 몰아냈다. 친환경적 경제 전환, 풍력발전소, 태양광발전단지, 도로교통 등의 정책에서 정체성은 주요 기준이다. 콘테츠가 아닌 가치를 기준으로 논쟁이 벌어지는 식이다. 포퓰리즘 정치인만이 아니라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민주적 협상, 즉 타협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중도 성향 정치인들은 하위 중산층을 위한 경제정책을 포퓰리즘에 대항할 수단으로 본다. 자국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 구축에 4천억달러(약 520조원) 투자를 골자로 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바이든 정부의 정치적 길잡이 구실을 한다. IRA는 신규 배터리 공장 건설, 시청 건물의 태양광패널 설치, 탄소중립적 수소 생산 연구, 멕시코만의 대규모 해상 풍력단지 건설 등을 지원한다. 지원금의 대상 지역은 자국 기업들의 아시아 이전으로 직격탄을 맞은 미국 러스트벨트 등 쇠락한 산업지역이다. IRA 지원금은 구조적 패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브렉시트는 절대로 뽑으면 안 되는 선택지였지만 영국 유권자 다수는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다. 브렉시트 투표를 앞둔 2016년 6월21일 “우리나라의 주권을 되찾자”는 구호를 적은 트럭이 런던 의회광장을 지나고 있다. REUTERS

숄츠와 바이든의 행보
숄츠 총리도 빈곤 지역의 ‘재산업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는 작센주와 자를란트주의 신규 칩공장 지역을 방문했고, 브란덴부르크주 테슬라 전기자동차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테슬라 공장의 준공이 글로벌 경쟁력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래 비전과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이나 쇠락 지역의 재산업화는 모두 미래를 향한 베팅이다. 미래 베팅으로 사람들의 분노와 다친 자존심을 회복하고 정치적 안정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경제 활성화는 정체성 정치를 중심부에서 다시 주변부로 밀어낼 수 있을까?
피파 노리스 교수와 다른 정치학자들이 설명하는 트렌드를 되돌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실제로 있다. 최근 영국은 분위기가 실용주의 노선으로 달라졌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유럽연합과 북아일랜드 관련 브렉시트 협약을 수정한 ‘윈저 프레임워크’(Windsor Framework)에 최근 합의했다. 영국 정부는 주권침해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유럽연합과의 무역전쟁만큼은 피하겠다는 계산에서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보수당 우파가 몰려 들어오는 이민자와 좌파 성향이 짙은 교육시스템을 공격하면서 정체성 정치를 부활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국 유권자는 미국 방식의 지속적인 문화투쟁에 흥미를 잃은 기색이 역력하다.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의 터무니없는 경제정책으로 영국 경제가 폭망 직전까지 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정권 국가를 보더라도 포퓰리즘 정당들이 오로지 문화투쟁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폴란드 집권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은 선거전에서 반독일 감정을 부추겨 판세를 유리하게 몰아가려 했다. 하지만 폴란드 유권자는 막강한 독일보다 16%에 이르는 인플레이션을 더 우려했다. 이에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법과정의당 대표는 폴란드 국민에게 인플레이션 완화 지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2024년부터 자녀지원금을 현재 100유로(약 14만원)에서 177유로로 올릴 예정이다.
프랑스 포퓰리즘 정치인 마린 르펜은 현재 이민보다 공정성에 더 집중하고 있다. (2022년 4월 치른) 프랑스 대선의 화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더불어 전통적 경제·사회 정책 사안인 인플레이션과 구매력 상실 우려였다. 즉, 포퓰리즘 정치인조차 중도의 사회·경제 정책을 차용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러나 노리스 교수는 이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복지정책과 케인스주의 경제정책만으로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숄츠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경제가 취약한 지역의 기업 유치 정책을 공통으로 펼치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하위 중산층을 위한 지원을 두껍게 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올라프 숄츠 총리) 사람들을 위한 지원금 등 서민층을 향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 프랑스 포퓰리즘 정치인 마린 르펜은 현재 이민보다 공정성에 더 집중하는 등 포퓰리즘 정당들이 오로지 문화투쟁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분석도 일부에서 제기한다. 마린이 2023년 6월8일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REUTERS

다가오는 선거들이 풍향계
이런 대책이 극우 포퓰리즘 정치세력을 막는 데 충분할지는 조만간 판명이 날 것이다. 미국에서는 2024년 가을에 대선이 열린다.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세력이 막강한 구동독 3개 연방주에서 열린 지방선거에서는 이미 AfD 소속 시장 한 명과 군수 한 명이 당선됐다. 그리고 폴란드에도 2023년 10월 총선이 열린다. 이들 국가에서는 기독민주당, 진보당, 녹색당, 사회민주당이 포퓰리즘 정치인들과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과연 정체성은 좋은 삶에 얼마만큼 중요한 것인가.

ⓒ Die Zeit 2023년 제23호
Stolz und Vorurteil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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