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이 금리를 잇따라 올리면서 빚과 이자 부담이 많이 늘어난 저소득국가의 국가부채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1980년대 남미 부채 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채권자 대부분이 미국 은행이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중국이 ‘큰손’으로 바뀌었고 민간부문 부채도 많아 해결책을 마련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중국이 최대 채권국으로 떠오른 과정과 중국의 참여로 일부 진전을 보이는 국가부채 감면 협상을 들여다본다. _편집자

왕리웨이 王力為 왕스위 王石玉 <차이신주간> 기자
 

▲ 2023년 6월23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프랑스 파리 브롱냐르궁에서 열린 ‘새로운 글로벌 금융협정을 위한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국이 국제 협상에 본격 참여함에 따라 국가부채 감면 논의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REUTERS

최근 개발도상국의 국가부채 문제가 국제기구와 주요국의 경제·통상 관련 논의에서 가장 주목하는 의제다. 지난 몇 년간 주요 의제였던 관세와 보조금을 제쳤다. 국가부채의 구조는 1980~1990년대에 견줘 크게 달라졌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저소득국가의 양국 간 부채에서 파리클럽(Paris Club·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을 중심으로 발족한 채권국가 모임) 회원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었다. 특히 1980~1985년 당시 27.5%에 이르던 미국의 비중이 2016~2021년에는 2.4%로 급감했다. 반면 중국의 비중은 2.1%에서 30.4%로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최근 국가부채 감면 협상에서는 최대 양자 부채 제공국인 중국이 위기에 놓인 채무국의 부채를 감면할지와 구체적인 방법, 다자기구의 역할, 공동 해결 방안 등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중국의 역할에 관심이 쏠려 중국 외교부가 여러 차례 중국의 견해를 밝혔다.

의미 있는 진전
국가부채 감면 논의는 최근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2023년 6월22~23일 리창 국무원 총리가 프랑스에서 열린 ‘새로운 글로벌 금융협정을 위한 정상회담’(Summit for New Global Financing Pact)에 참석했다. 리창 총리의 프랑스와 독일 방문은 총리 취임 뒤 첫 외국 방문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열린 이번 회담은 개도국의 빈곤과 신흥국이 당면한 도전에 공동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중국·프랑스·독일·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채권국의 행정 수반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잠비아·스리랑카·가나·콩고 등 채무국 국가 수반들이 참석했다.
중국 주재 프랑스대사관에서 경제사무를 담당하는 장마르크 퍼네트 공사참사관은 리창 총리가 중국 대표로 참석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부 주요국에서 장관급 대표를 파견한 것을 고려할 때 중국 최고위급 인사의 참석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했다. 이번 회담에 앞서 국제사회의 국가부채 처리에 관한 논의가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 2023년 5월17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아프리카 가나에 3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승인하고 1차로 6억달러를 즉시 지급했다. 가나의 부채 재구성 절차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2023년 4월 세계은행과 IMF의 춘계회의 기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국가부채협상회의(GSDR·Global Sovereign Debt Roundtable)에서 세계은행이 무상 지원 또는 저리 대출로 채무국의 부채를 줄여주기로 합의한 덕분이었다. 이 합의를 기반으로 중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주요 양자 부채 제공국은 IMF의 ‘채무지속가능성분석’(DSA)에 따라 부채를 감면하기로 약속했다.
 

▲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왼쪽)가 ‘새로운 글로벌 금융협정을 위한 정상회담’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부채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2022년 중국 주최 ‘1+6 원탁대화’에 참석해 국가부채 협상의 물꼬를 텄다. REUTERS

새로운 협의 틀
4월 GSDR 회의에는 국가부채 당사자가 모두 모였다. 공동의장인 IMF와 세계은행,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 인도, 6개 채권국(중국, 파리클럽 의장국 프랑스,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미국), 6개 채무국(에콰도르, 에티오피아, 가나, 스리랑카, 수리남, 잠비아), 2024년 G20 의장국 브라질 그리고 민간부문 채권자 대표인 국제금융협회(IIF),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다.
이번 회의가 열리고 중요한 합의에 도달한 것은 어쩌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와 중국 재무부서 공무원의 만남에서 비롯했을 수 있다. 두 사람은 2022년 12월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조치를 완화하기 전 안후이성 황산시에서 리커창 당시 국무원 총리가 주최한 ‘1+6 원탁대화’(중국과 주요 국제금융기구 책임자 회의)에서 만났다. 이어 2023년 2월 하순 인도 벵갈루루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와 데이비드 맬패스 당시 세계은행 총재, 니르말라 시타라만 인도 재무장관이 함께 GSDR을 출범시켰고 중국도 참여했다.
3월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차이신> 인터뷰에서 “모든 공공부문 채권자(파리클럽 회원국과 중국 등 신흥 채권국)와 민간부문 채권자, 채무국이 한자리에 모이면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해결법을 찾아 채무국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채권국이 자금을 회수할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부채 문제 협상은 추상적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하루빨리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채무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고 그래야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국가부채 해결은 채무국은 물론 채권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2020년부터 여러 요인이 중첩돼 새로운 채무불이행 위험이 고조됐다. 지금까지 약 20개 주권국이 국가부채를 상환하지 못했거나 부채 재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 나라의 인구를 합하면 7억1800만 명에 이른다. 적어도 7개 국가는 채무불이행 선언을 한 뒤 1년 넘게 IMF의 구제금융 또는 국가부채 재조정을 기다리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2년 넘게 기다렸다. 잠비아와 수리남은 IMF에서 첫 번째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나머지 자금 지원은 장벽에 막혀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외채 상환을 위한 지출이 정부 수입의 평균 17%에 이른다. 1999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숀 헤이건 전 IMF 법률고문은 “198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국가부채 위기”라고 말했다. 1961년 당시 가장 부유했던 21개 국가로 설립된 주요 채권국 협의체인 파리클럽 단독으로는 새로운 국가부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파리클럽 회원국이 아닌 신흥 채권국의 참여가 매우 중요해졌다. 2023년 3월 정부 주최 국가부채 좌담회에 참석한 루펑 중국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 교수가 정리한 자료를 보면, 지난 몇십 년 동안 저소득국가의 국가부채에서 양국 간 부채는 줄고 다자간 부채와 민간부문 부채가 늘었다. 특히 다자기구 부채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2023년 4월14일 이강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3년 만에 세계은행과 IMF의 춘계회의에 참석해 개도국 부채 문제에 관한 중국의 견해를 밝혔다. “중국은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 노력을 지원할 것이다. 각국이 ‘공동 행동, 공평한 책임’ 원칙을 지키고, 다자개발은행이 부채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고, 민간부문 채권자도 국가부채 재구성에 참여해야 한다. 중국은 다른 나라와 함께 G20의 공동 프레임워크를 이행할 것이다.”
2020년 11월 G20 회의에서 통과된 ‘채무상환유예 이니셔티브’(DSSI·Debt Service Suspension Initiative)를 넘어선 ‘부채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Common Framework for Debt Treatments beyond the DSSI)가 중국이 말한 공동 네트워크다. 국제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더 크고 포용적인 ‘협상 테이블’을 만들고 G20과 파리클럽 회원국이 함께 조율·협력해 DSSI 조건에 부합하는 73개 저소득국가의 부채 문제를 처리하자는 뜻이다.
지금까지 차드공화국, 에티오피아, 잠비아가 공동 프레임워크 절차에 따른 부채 해결을 요청했다. 2022년 11월 중국, 인도, 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G20 채권단과 최대 민간 채권자인 스위스 글렌코어(Glencore)가 차드 부채 문제 해결에 합의했다. 처음으로 공동 프레임워크를 통해 부채 협상을 마무리했다. 가나의 국가부채 처리는 2023년 4월 GSDR 회의가 중요한 진전을 거둔 뒤 타결된 첫 번째 사례다.
기욤 샤베르 전 파리클럽 공동의장은 “지난 2년 동안 모르는 것을 공부하면서 해결책을 찾았다”며 “중국, 인도, 사우디아라비아와 파리클럽 채권국이 처음으로 협력했다”고 말했다. “잠비아, 스리랑카, 가나에 대한 구제금융과 부채 재구성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애쓰고 있다. 우리는 진전을 목격했다. 물론 더 많은 진전이 있어야 하겠지만 희망적이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2023년 6월12일 열린 ‘차이신 아시아비전포럼’에서 말했다. “코로나19가 종료된 뒤 감염병과 인플레이션의 충격으로 여러 나라의 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관해 국제사회가 중국과 협력하길 원한다. 중국은 개도국이 많은 일을 하도록 지원했다. 국가부채 재구성이나 상환유예, 신규 대출, 자본 제공 등 부채외교(Debt Diplomacy)가 미-중 양국이 앞으로 협력할 새로운 분야가 되길 기대한다.”
 

▲ ‘새로운 글로벌 금융협정을 위한 정상회담’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왼쪽). 블랙록 등 민간 채권자 대표들도 2023년 4월 세계국가부채협상회의(GSDR)에 참여했다. REUTERS

새로운 위기국
국가부채란 주권국이 국가주권을 담보로 국제사회에서 빌린 채무를 말한다. 매우 보편적인 것이고 그 경로도 다양하다. 각국은 세계은행 등 다자금융기관, 다른 주권국 또는 민간부문을 통해 대출과 채권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G20이 정한 DSSI 조건에 부합하는 73개국의 국가부채 총액이 2021년 기준 7547억7천만달러로 늘었다. 2006년의 3.92배다. 중·저소득국가(중국 포함)의 부채도 2021년 5조2525억달러로 2006년의 3.07배가 됐다.
2019년부터 아르헨티나, 벨리즈, 가나, 에콰도르, 레바논, 스리랑카, 러시아, 수리남, 잠비아 등 9개국에서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했다. 과거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었던 중·저소득국가의 상황도 낙관할 수 없다. 2023년 4월 IMF는 ‘다른 저소득국 채무 위기로 향하고 있는가’(Are We Heading for Another Debt Crisis in Low-Income Countrie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최근 저소득국가의 국가부채 상황을 IMF와 세계은행이 1990년대 ‘고채무빈곤국(HIPC·Heavily Indebted Poor Countries) 이니셔티브’를 제안하기 직전과 비교하면서 저소득국가의 약 60%가 높은 부채 취약성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2023년 5월 기준 DSA 자료를 보면 73개 중·저소득국가 가운데 11개국이 채무 상환 어려움, 25개국이 고위험 상태로 나타났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이들 73개국의 상환 능력과 유동성 지표는 고채무빈곤국 이니셔티브 시행 직전의 나라들보다 양호하다. 하지만 지금 추세가 계속되고 다른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저소득국가의 부채 취약성이 1990년대 중반과 비슷한 수준에 이를 것이다. 숀 헤이건은 “IMF가 스리랑카와 가나의 DSA 분석을 바탕으로 이들 나라의 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상태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 부채를 전액 상환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의 부채가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헤이건은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먼저 이들 국가의 자체 요인이 있다. 스리랑카가 대표 사례다. “스리랑카는 재정정책이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정부의 과도한 차입을 종용했다.”
최근 국제 자금조달 환경의 변화도 악영향을 가져왔다. 코로나19로 방역 비용이 추가로 발생했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졌으며 부채 비율이 올라갔다. 그리고 2022년 3월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금리인상으로 금융비가 치솟았다.
“지금의 국제 부채 문제는 여러 면에서 1980년대 폴 볼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금리를 인상했던 시기와 비슷하다.” 헤이건은 “그때도 물가상승률이 치솟고 유가가 급등했다”며 “볼커 의장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고 이후 남미 여러 나라에서 채무 위기가 잇따라 불거졌다”고 말했다. 외국 사모펀드 관계자는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구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중단해도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의 저금리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현재 국가부채는 대부분 제로금리 시대에 발생한 것이다.”
 

▲ 2022년 9월 살인적 인플레이션과 부채 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사회개발부 청사 바깥에서 정부와 IMF의 협상에 반대하는 텐트 시위가 벌어졌다. 2019년부터 아르헨티나 등 9개국에서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했다. REUTERS

채권국의 다양성
부채의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진 나라를 돕기 위해 2020년 5월 채권국들은 DSSI 조건에 부합하는 48개 중·저소득국가의 채무 상환을 일부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상환 유예 규모는 약 129억달러로 이들 나라 전체 부채에 견줘 턱없이 적었다. 채무국의 리스크가 계속 누적되는 동시에 국제 부채 문제를 처리하던 기존 체제도 한계에 이르렀다. 채권자 구조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것이 주요 이유다.
숀 헤이건의 지적처럼 최근의 국가부채 리스크가 1980년대와 가장 구별되는 특징이다. “그때는 국가부채가 대부분 미국 대형은행에 집중돼 있었다.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 은행업계의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지금은 부채 상환 압박을 받는 국가가 늘었지만 그에 따른 글로벌 시스템 리스크는 작다. 채권국의 리스크도 그때 수준까지 이르지 않았다.”
채권국의 성격이 다양해진 것도 국제 부채 협상에 어려움을 가져왔다. ‘전통’ 채권국과 ‘신흥’ 채권국의 협력에는 아직도 조율이 필요하다. 전통 채권국은 주로 1950년대 아르헨티나 부채 위기를 계기로 결성된 파리클럽을 의미하고, 신흥 채권국의 대표는 중국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DSSI 조건에 부합하는 73개국 가운데 절반이 넘는 나라의 주요 채권국이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 채권의 비중이 평균 54%, 최고 72%에 이른다. 파리클럽 22개 회원국이 보유한 채권의 비중은 평균 21%이며, 최고 40%를 넘지 않는다. 특히 파리클럽 회원국 채권의 비중은 중국을 제외한 파리클럽 이외 국가들(평균 26%, 최고 52%)보다 작다. IMF 통계에 따르면 25년 전 파리클럽 회원국이 차지한 국제 채권의 비중이 28%였고, 파리클럽 이외 나라들의 비중은 8%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에는 중국 비중이 18%로 늘었고, 파리클럽 회원국의 비중은 10%까지 줄었다.

ⓒ 財新週刊 2023년 제25호
國際減債博弈
번역 유인영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