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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아이돌 사랑에서 찾는 외로움 처방전
[CULTURE & BIZ] 일본 ‘오시 문화’의 배경
[160호] 2023년 08월 01일 (화)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 전세계에서 큰 인기를 끄는 아이돌 그룹 BTS 멤버들. 세계로 퍼져나가는 케이팝은 각국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대상이다. 빅히트뮤직 누리집

스위스 출신의 정신의학자이자 작가인 폴 투르니에는 1962년 발간한 <고독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책에서 현대인이 흔히 느끼는 외로움의 근원을 ‘공포’에서 찾았다. 그는 현대인이 다양한 공포의 방어기제로 많은 것과 의도적으로 단절한다고 봤다. 현대인은 자연스럽게 외부 요인에 의해 평가받고 측정받는다. 직업, 급여, 재산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다.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우리 속에는 이런 것들과 별개인 ‘순수한 본성’이 있다. 그 본성은 더 감정적이며 공동체와의 관계를 통한 욕구의 충족을 갈구한다.
투르니에는 이런 내면과 외면의 간극에서 외로움이 생긴다고 봤다. 빠른 도시화와 관계성을 최대한 간소화하는 디지털 환경이 현대사회를 지배해 사람들은 자의 또는 타의로 다양한 관계에서 ‘격리’당한다. 이런 세상에서 단절로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게 투르니에의 생각이다.
이런 투르니에의 분석은 10·2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 커뮤니티 등 인터넷 공간에서 생기는 다양한 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젊은층의 독특한 문화 현상을 단순한 자기과시나 치기에서 비롯한 행동이 아니라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연결’을 원하고 누군가에게 기대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는 ‘오시 문화’를 들여다보면 젊은층의 연결에 대한 갈망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다.

오시카츠와 도키 문화
일본어에서 ‘오시’(推し)는 ‘밀다, 지원하다, 추천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의 명사형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아이돌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지금 밀고 있는) 그룹 멤버를 ‘오시’라고 줄여 부르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한국에서는 제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의 ‘최애’(最愛)라는 단어로 번역되기도 한다. 하위문화 속어 정도로 쓰이던 이 말이 2021년 들어 그해 일본 사회에 가장 영향을 끼친 단어를 뽑는 ‘일본 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대중적이 됐다. 추종하는 남자 아이돌이 추문에 휘말리면서 무너지는 여고생의 삶을 그린 소설 <오시, 모유>(推し, 燃ゆ)가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 일반인에게도 이 단어가 널리 알려졌다.
오시 문화는 기존 팬이나 한국에서 덕후로 불리는 오타쿠 문화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오시는 자신이 아닌 ‘대상’을 언급한다. ‘나의 오시는 누구’라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오시의 대상은 실존 인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캐릭터나 콘텐츠 속 가상 인물도 포함된다. 거기에 ‘오시카츠’(推し活)라고 부르는 행동이 부가된다. 오시카츠는 자신이 좋아하는 오시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거나 같은 오시를 가진 사람들끼리 온라인 또는 현실에서 교류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렇게 일부에서 쓰이던 오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최근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하나는 오시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의 소비문화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일본소비자원이 2021년 발표한 ‘소비생활 기본조사’에서 유명인이나 캐릭터 등을 응원하기 위한 활동에 돈을 쓰겠는지 묻는 것에 전체 응답자의 10.3%가 ‘적극적으로 쓴다’고 했다.
그렇게 높은 수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질문을 10대와 20대에 국한하면 확연히 달라진다. 10대는 절반에 육박하는 42.1%, 20대는 31.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Z세대에선 오시카츠가 이미 주류문화로 자리잡았다고 하겠다. 특히 오시카츠는 최근 일본 젊은층에서 자주 나타나는 ‘도키 소비’(トキ消費)를 잘 설명해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때’를 뜻하는 도키(時)란 단어를 붙인 도키 소비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소비’를 말한다. 일본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람들의 소비 유형이 과거의 ‘모노(物) 소비’(물건을 소유하는 방식)에서 ‘고토(事) 소비’(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 중시)를 지나 도키 소비로 발전하고 있다. 전체 소비 항목 가운데 도키 소비의 비중이 다른 연령대보다 큰 것이 젊은층 소비 행태의 큰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젊은층에서 도키 소비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외로움과 단절에 대한 공포를 들고 있다. 젊은이들은 SNS 등으로 현재를 즐기는 다른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이나 유행하는 것을 자신도 하는 행위에는 그 흐름에 함께하고 싶다거나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숨어 있다. 게다가 오시카츠의 핵심은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이어지는 교류의 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혼자 즐기는 게 아니라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한데 모여 함께 즐기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오시카츠는 젊은이들이 단절에서 벗어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소비 형태인 도키 소비의 본질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다음은 오시 문화가 담고 있는 이 시대 젊은층의 세대 특성이다. 오시 문화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품 <오시, 모유>나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청 상위권에 든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등에는 오시 문화에 중독돼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일부에서는 오시카츠를 큰 사회문제인 저출생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오시카츠가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아이돌 스타 등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들에게 헌신하는 자신을 보며 만족감을 얻는 ‘가상 연애’ 모습을 띠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가상 연애로 얻는 관계성에 대한 욕구 만족이 연애와 결혼이라는 현실적 관계성에 청년들이 회의를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오시카츠가 아니라도 취미생활에 몰입해 일상의 삶에 지장을 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유독 오시카츠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 한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도 인기를 끈 일본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는 ‘오시 문화’에 젖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왓챠 누리집

스스로 만드는 힐링 문화
오시 문화를 단순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면 안 된다는 견해도 많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로나 격리’나 1인 가구 증가로 많은 젊은이가 이전보다 더 큰 정서적 고통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오시카츠는 무엇보다 안전한 연애’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보다 그들이 겪는 고통의 근원을 찾아 사회적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서적 고통을 안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만든 힐링 문화가 오시 문화라는 견해에 필자도 동의한다. 사회문제로 떠오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나 이전의 오타쿠 문화와 비교해볼 때 오시 문화는 훨씬 건전하다. 투르니에는 현대사회의 도시화가 결국 공동체를 파괴하고 외로움을 낳는다고 봤다. 오시 문화는 이런 도시의 공동체 파괴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젊은이들의 저항이다.
오시카츠에는 ‘포교 활동’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오시를 남에게 알리고 전파하는 행동이다. 자신의 오시를 위해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의 확산을 위해 노력한다. 사회와 자신을 스스로 단절시킨 히키코모리나 숨어서 자신만의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는 오타쿠와 다르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기보다 적극적으로 애정을 쏟을 대상을 만들고 그 대상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사귀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얻는 것이 바로 지금 젊은이의 문화다.
‘오시 과몰입’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오시가 본질적으로 건강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타인과 단절된 젊은이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이 점점 사라지는 가운데 간편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인스턴트 관계를 빠르게 제공하는 것이 오시 문화가 유행하는 최대 원인일지 모른다. 일본의 오시 문화와 비슷한 문화가 다른 나라 젊은층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특히 최근 세계로 퍼져나가는 케이팝(K-Pop)은 각국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오시카츠의 주요 대상이다.
장기 저성장으로 미래가 불투명하고 무한 경쟁에 내몰린 젊은이들에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소비’를 하고, 자신을 위로해주는 대상을 통해 단절을 피하고 그들만의 공동체에 귀속되고 싶도록 하는 것이 바로 오시 문화다. 어떻게 보면 지금 젊은이들은 외로움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처방전을 스스로 찾아내는 전례 없이 ‘똑똑한 세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 문동열 칼럼니스트는 업계 경력 20년 이상의 콘텐츠산업 전문가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콘텐츠 제작과 금융이 전문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졸업하고 LG인터넷과 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방송·게임·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콘텐츠 금융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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