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일할지 내가 결정하고 싶다
Z세대(1995∼2010년에 태어난 이들)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 주4일제, 안식년, 재택근무, 초과노동 불가 등을 내세웠다. 고용시장에서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윗세대는 마뜩잖은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등을 거치며 삶에 지친 윗세대도 서서히 이들의 아이디어에 공감한다. Z세대는 일하기 싫은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단지 자신의 삶과 가치관에 맞게 일하고 싶다고, 언제 어디서 일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고 말할 뿐이다. _편집자

카타리나 횔터 Katharina Hölter 등 <슈피겔> 기자 6명
 

▲ 스페인의 그란카나리아섬에서 원격근무를 하는 독일인 올가 파울(가운데)이 2021년 7월23일 업무를 마치고 해변에서 댄스를 배우며 여가를 즐기고 있다. 젊은 세대는 노동시간뿐 아니라 노동장소의 자율결정권을 중요시한다. REUTERS

제바스티안 부크는 (노동강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글로벌 컨설팅 전문회사 매킨지(McKinsey)의 젊은 직원치고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느긋한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 뉴욕에서 화상인터뷰에 접속한 그는 활짝 웃으며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이야기했다. 박물관도 가고, 브로드웨이 공연도 보고, 친구들과 함께 브런치를 즐기고, 저녁에는 술 마시러 가기도 한단다. 그는 2주 뒤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해 한 달간 파나마와 콜롬비아를 여행할 계획이다. 그럼 일은? 나중에 하면 된다.
이 컨설팅회사에 입사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부크는 벌써 두 번째로 ‘테이크타임’(Take Time) 제도를 이용했다. 매킨지의 컨설턴트는 정기휴가 외에도 각 프로젝트 사이에 연간 최대 2개월까지 휴가를 쓸 수 있다. 한꺼번에 써도 되고 나눠서 써도 된다. 그에 따라 연봉이 삭감되고 삭감분은 1년에 걸쳐 분산된다. 그러니까 부크는 원론적으로 따지면 자유시간을 구입한 것이다.
이 23살 청년은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부크는 현재 기업들이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하는 잠재력 높은 인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킨지는? 감당해야만 한다. 회사 쪽의 말처럼 테이크타임 제도로 동시에 일할 수 있는 컨설턴트 수가 줄었다고 해도 말이다. 젊은 인재가 일하고 싶은 회사가 되려면 어쩔 수 없다. 다른 방법으로 이들을 끌어들이기 힘들다.
부크는 테이크타임 제도가 없었다면 21살에 학사 학위를 받은 후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컨설팅 업계는 과도한 노동시간, 초과노동,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 악명이 높다.
부크는 열심히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기간에는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일을 할 시간도 갖고 싶었다. 여행, 친구, 가족 그리고 전환치료 피해자(개인의 성적 지향을 의도적으로 바꾸게 하거나 억압하는 조치를 당한 사람들)를 돕는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전환치료는 2020년에야 독일에서 금지됐다.
 

▲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독일금속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차량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일금속노조도 Z세대의 요구에 동참하며 2023년 4월 주4일제, 주당 32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발표했다. REUTERS

젊은 세대의 자신감
부크는 언제나 한 가지 일만으로는 성취감을 얻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대학에 다닐 때도 그는 틈틈이 트럼펫을 연주하고, 연기를 하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참여했다. 직업생활을 시작할 때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전일제로 일하면서도 어떻게 여전히 나 자신으로 남을 수 있을까?”였다. 직업이 있어도 여가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까? “부모님 세대는 직업이 곧 그들의 삶이었다. 우리는 이제 직업 이상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고 부크는 말했다.
부크는 Z세대다. 1995∼2010년에 태어난 Z세대는 직업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들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에 자기 삶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에 맞게 일이 바뀌길 바란다. 직장생활에서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에 Z세대는 임금 다음으로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높은 순위에 올려놓았다.
글로벌 인력관리 컨설팅업체인 랜드스타드가 최근 전세계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보고서 ‘워크모니터’(Workmonitor)를 보면 이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18∼24살 응답자의 58%는 ‘직장이 삶을 즐기는 데 방해된다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들은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38%는 이런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부크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조건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기성세대도 우리 요구에 적응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이러한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사회가 그들을 필요로 한다. 독일 노동시장·고용연구소(IAB)와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 경제는 2035년까지만 계산해도 최대 700만 명의 노동인구를 잃을 것이라고 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젊은이는 점점 더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다.
부크의 고용주인 매킨지의 인사책임자 요나탄 슈타인바흐는 이제 지원자들이 유연한 노동시간이나 시간제 노동 모델이 가능한지, 이들이 어떤 주제에 관해 일할지 질문하는 일이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놀라운 변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원자들의 전형적인 질문은 얼마나 빨리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가, 연봉은 얼마인가 하는 것이었다.”
젊은 인재들에게 주어진 이 새로운 힘은 단순한 상황의 반전에서 비롯됐다. 1990년대에는 졸업생들이 그리 많지 않은 일자리 중 하나를 얻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면, 오늘날 자격을 갖춘 인재를 확보할 경우 기뻐해야 할 쪽은 기업이다.
다른 노동 모델을 요구하는 것은 젊은이만이 아니다. “일은 더 적게, 개인 삶은 더 많이.” 이 태평한 슬로건이 주류 사회에 도달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노동과 직업세계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무너지고 있다. 나이와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코로나19로 국가의 절반이 강제로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직원들이 재택근무와 유연한 시간 근무를 할 때도 회사가 돌아간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집과 사무실, 가족과 직업, 일과 사생활이 훨씬 더 가까워졌고 개인의 취향에 맞게 근무를 조정할 수 있게 됐다. 기존 9~6시 사무실 근무의 코르셋이 느슨해졌다. 이후 많은 직원이 스스로 질문했다. 더 많은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달라진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생각이 경제적 현실이 됐다는 것은 2023년 4월 초에 명백해졌다. 독일 최대 산별 노조인 독일금속노조는 철강산업에서 급여 삭감 없이 주4일제, 주당 35시간이 아닌 32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해당 업계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제안은 파장을 일으켰다. 독일 연방의회 사회민주당(SPD) 공동대표인 자스키아 에스켄은 이제 아예 모든 이를 위한 주4일제를 요구한다.

빠르게 형성되는 저항
이 논쟁은 기업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독일상공회의소 계산에 따르면 지금도 기업들은 인력 부족으로 이미 매년 1천억유로의 부가가치를 잃고 있다. 단축되는 모든 노동시간은 많은 기업에 추가적인 위협 요소다. 그래서 Z세대의 아이디어가 부상하는 속도만큼이나 저항도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반대자도 논리가 강력하고, 약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예컨대 이런 말들이다.
“세계 어느 국가의 경제도 성장이 정체되고 노동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단순히 일을 적게 하는 것만으로 번영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마르코 부슈만 독일연방 법무부 장관, 자유민주당)
“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주4일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축구에서 80분만 뛰고 탈의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총리, 기독교사회연합)
“우리는 일에 대한 의욕이 더 필요하다.”(슈테펜 캄페터 독일연방고용주협회 대표)
그래서 서로 할 말이 거의 없는 두 집단이 대립하고 있다. 한쪽은 번영과 성장을 우려하고 숙련노동자 부족으로 입지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쪽은 더 이상 일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약 15년간 모든 사람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온 사회학자 유타 알멘딩거는 이제 전선이 “완전히 굳어졌다”고 말한다. 독일 베를린 사회과학센터(WZB)의 센터장인 그는 자녀, 보살핌이 필요한 가족, 친구를 돌보고 이에 더해 사회 참여 활동도 하고자 한다면 부부가 모두 주 40시간을 일하고 초과노동까지 하는 일상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년 동안 알멘딩거의 요구는 누구에게도 큰 고통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을 흘려들었다. 절대로 실현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 문제는 노조 단체교섭에 포함될 정도로 큰 흐름이 됐고, 알멘딩거는 정치적 격전장에 섰다. “이 주제가 경제 분야에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 공식 만찬 자리에서 고용주협회 관계자가 주4일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알멘딩거에게 씩씩거리며 속삭인 적도 있었다.
단 네 마디로 갑자기 세대 갈등의 중심에 설 수도 있다. 안드레아 날레스 독일 연방고용청장은 이를 몸소 겪었다. 2023년 2월 중순, 그는 지역 일간지 <아우크스부르거 알게마이네> 인터뷰에서 고용시장에 나타난 새로운 힘의 균형에 관해 이야기했다. 많은 시간 인터뷰는 차분하게 이어졌다. ‘일부 젊은이’가 채용 면접을 볼 때 반려견을 사무실에 데려올 수 있게 해달라, 야근은 단 한 시간도 하지 않겠다고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날레스의 장황한 답변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났다. “직장은 조랑말 농장이 아니다.”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쳤다. 2001년생 사민당 당원이자 소셜미디어 스타 인 릴리 블라우츠춘은 TV 코미디 시리즈에 빗대어 날레스의 발언을 비판하는 트윗을 올렸다. 1991년생 독일 연방의회 녹색당 의원 요하네스 바그너는 “베이비붐 세대는 (직장에서) 어떻게 지내지?”라고 비꼬았다.
 

▲ 15년 동안 노동시간 단축 캠페인을 벌여온 사회학자 유타 알멘딩거는 자녀와 가족을 돌보고 사회참여 활동도 하려면 부부 모두 주 40시간을 일하고 초과노동까지 하는 일상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REUTERS

‘조랑말 농장’ 논란
날레스는 사실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1970년생이다. 사회학자들은 그를 실업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성장한 연령대인 X세대로 분류한다. 당시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물리학자조차 졸업 후 택시를 운전했다. 오늘날 누군가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면 그것은 기업일 것이다. 전례 없이 많은 일자리가 비었기 때문이다.
일부 젊은이가 사생활을 소중히 여긴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수년간 독일 평균 노동시간이 점점 감소한 사실이 통계 수치로 나타난다. 이는 고용청장인 날레스에게 중요한 문제이자 질문이다. 이 여성은 오랫동안 답을 찾고 있다.
‘조랑말 농장’ 논란이 나오기 직전에 날레스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의 침대 옆 협탁 위에 어떤 책이 놓여 있는지 공개했다. <세상이 끝나가는데, 나는 여전히 일해야 하는가?>(Die Welt geht unter, und ich muss trotzdem arbeiten?)라는 제목의 책이다. <슈피겔>에도 글을 기고하는 1987년생 디지털 전문가 자라 베버는 이 책에서 “게으른 젊은이들에 대한 끝없는 비난”에 맞서 저항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번아웃(소진)을 겪은 후 워커홀릭 문화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후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했다. 날레스는 이 책이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에 관심이 있고, 피상적으로만 논의하고 싶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흥미로울 것”이라면서 “오늘날 노동환경을 비판해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날레스는 많은 청소년이 아주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얼마 전 그는 마이엔(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도시)에 있는 모교인 실업학교를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하거나 주4일제가 도입될지 묻지 않았다. 어떤 교육이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많은 졸업생이 자신감 있는 협상가가 아니라 불안해하는 15살, 16살 청소년들이었다”고 날레스는 말한다. 즉, 무수한 불확실성에 압도당하고 노동조건을 요구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젊은이들이다. “Z세대는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라고 날레스는 말했다. 그리고 누구나 노동조건을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Der Spiegel 2023년 제22호
Der Neue Arbeitskampf
번역 황수경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