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르슈틴 콜렌베르크 Kerstin Kohlenberg 시팡 양 Xifan Yang
<차이트> 기자
 

▲ 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워진 중국의 섬유·직물 공장에서 산업용 로봇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미국에서 역이민한 중국 엔지니어들에게 창업 기회가 되고 있다. 중국 쓰촨성 쑤이닝에 있는 직물공장. REUTERS

갈색 피부에 짧은 머리의 닐 자오(35)는 흰색 테슬라에 앉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화 홍보 영상에 나옴 직한 내용이다. 그의 이야기는 중국 북부의 빈곤한 소도시 공장에서 일하던 어머니와 17살에 미국 뉴저지주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시작한다.
자오는 이민 초기 영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수양 가족과 지냈다. 어머니는 아시아 식료품 가게에서 고된 노동으로 돈을 벌었다. 자오는 물류회사 페덱스에서 밤마다 아르바이트했고, 방학이면 피자 배달을 하고 수학·화학 과외도 했다. 하지만 두 모자가 밤낮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자오는 반에서 최우수 학생으로 캘리포니아주의 엘리트 대학에 입학해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그는 실리콘밸리 기업들로부터 무수한 구애를 받았다. 흔한 아메리칸드림 이야기처럼 진행됐다면 자오는 실리콘밸리에 자리잡아 승승장구하며 미국에서 부유한 삶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오는 중국 남부의 대도시 선전의 어느 주차장에 주차된 그의 테슬라에 앉아 있다. 선전의 두꺼운 스모그를 뚫고 햇살이 얇게 비치고 있다.
이제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한 자오는 “미국은 살기에 좋은 곳이지만, 무언가를 정말 제대로 해보려면 중국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2016년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치른 직후, 어느 날 자오는 선전 시정부의 고위공무원 한 명을 알게 됐다. 그 고위공무원은 중국공산당 대표단 일원으로 중국 출신 창업자들에게 역이민을 독려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그는 자오에게 창업자금과 임대료 지원금, 낮은 세율을 약속했다. 인공지능 분야 창업을 꿈꾸던 자오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국 선전으로 역이민했다. 주강 어귀에 있는 ‘공장 도시’ 선전은 필요하면 24시간 이내에 각종 드론과 로봇 조립이 가능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급부상했다. 어머니는 자오가 중국으로 역이민한 것을 지금도 납득하지 못한다.
 

▲ 중국 정부에 협력하는 대가로 돈을 받고도 이를 숨긴 혐의로 기소된 찰스 리버 미국 하버드대학 화학·생물학과장이 2020년 1월3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연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희토류 광산을 찾아 헤매는 광산 대기업들처럼 최고의 인재와 전문가를 확보하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REUTERS

제대로 해보려면 중국에서
현대 경제체제에서 기술 전문인력은 누구나 필요로 하지만 희소한 원자재 같은 것이 됐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칩에 필요한 희토류처럼 말이다. 오래전부터 중국과 미국은 희토류 광산을 찾아 헤매는 광산 대기업들처럼 최고의 인재와 전문가 영입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적인 나노·칩 전문가인 찰스 리버 미국 하버드대학 화학·생물학과장은 미국 정부로부터 연구비 수백만달러를 받아놓고도, 동시에 중국으로부터 우한시(우한기술대학)에 실험실을 구축하기 위해 매달 5만달러를 몰래 받았다. 리버 교수는 이 돈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미국에 밀반입하다가 체포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중국 정부에 협력하는 대가로 돈 받은 사실을 숨긴 혐의다.
미국 정부는 중국으로 역이민한 중국 출신 미국인 학자 150여 명에 대해서도 연구 기밀을 중국에 넘긴 의혹을 제기한다. 이 중 일부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체포됐고 미국에서 더 이상 연구활동을 못하게 됐다. 하지만 중국 쪽에 연구 기밀을 넘겼다는 의혹이 입증된 사례는 거의 없다.
<차이트>와 처음 인터뷰하고 몇 주가 흐른 어느 날 오후, 자오는 선전에서 기차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한 공장을 방문했다. 공장 내 공기에 화학약품 냄새가 배어 있다. 공장 안은 먼지투성이에 자신이 하는 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데시벨 수치가 높다. 이곳은 중국이 전세계 의류공장으로 부상하던 2000년 직후 지어진 방직공장이다. 여기서 생산된 실은 다른 공장에서 섬유로 가공된다. 가공된 섬유는 다시 다른 공장과 재봉공장에서 티셔츠·바지·재킷으로 제작돼 아디다스, 유니클로, 나이키, 자라 등 글로벌 브랜드 로고를 달고 전세계에 유통된다.
자오는 마치 수미터 두께의 막대설탕처럼 거대한 폴리에스터 뭉치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기계 옆을 지나갔다. 흰색 폴리에스터 뭉치는 돌다가 실패에 감긴다. 처음에는 굵은 실이 감기다가 점점 실이 얇아진다. 과거 이 공장에서 실이 다 감긴 실패를 교체하고 실을 정리하고 새로운 실을 감는 것은 노동자 10여 명의 업무였다. 오늘날 공장에는 노동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노동자 대신 엄청나게 빠른 금속 팔과 손가락 모양의 로봇이 가느다란 실을 좁은 구멍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한 로봇 옆에 자오가 자부심 어린 모습으로 서 있다. 이 산업용 로봇을 발명한 사람이 바로 자오다. 직원 50명과 함께 자오는 로봇을 개발해 섬유기업들에 팔았다. 섬유기업들은 그가 발명한 로봇 덕에 생존할 수 있었다.
그간 경제 수준이 높아진 중국에서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섬유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어졌다. “여기 공장 안 온도는 38도이고 여름이면 50도까지 치솟는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다.” 중국 섬유기업들은 공장문을 닫든지 아니면 땀 흘리며 일할 필요가 없는 로봇을 쓰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자신을 미국인으로, 아니면 중국인으로 보는지 물어보자 “국적은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자오는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이미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어 사고했다.” 선전 시정부는 독일 언론사가 취재차 젊은 중국 기업인들을 만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중국공산당 관계자는 자오를 <차이트> 인터뷰 전에 만나 서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조심해야 하고, 아예 인터뷰를 거절하면 제일 좋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자오는 인터뷰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는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고귀한 가치로 배웠다. 하지만 그는 기업 창업가로서 중국공산당의 지원도 절실하다. 결국 자오와의 인터뷰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기사에서 그의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됐다.
1960년대 초 미국 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이 펴낸 <자본주의와 자유>는 20세기 영향력 있는 정치 분야 서적 중 하나이다. 프리드먼은 이 책에서 특정 국가는 비민주적인 동시에 자본주의일 수 있고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파시스트 정권을 사례로 들었다. 하지만 미국 외교정책은 오랫동안 이와는 다른 확신 속에 움직였다. 중국 권위주의 정권과 경제적으로 교류하면 미-중 경제 관계는 더욱 밀접해지고, 이를 통해 중국에 자본주의가 확산돼 언젠가는 중국인이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리라는 미국의 계산이 있었다. 늦어도 지금쯤이면 공산당은 정권을 잃으리라는 것이 미국의 기대였다.

미국의 착각
이는 착각이었다. 미국 외교 정치인들이 한때 꿈꿨던 것처럼,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많은 곳에서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쇼핑몰, 세련된 레스토랑, 번쩍거리는 광고판 등 소비와 소유는 중국인들에게 삶의 목표가 됐다. 하지만 가까이서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중국 정부는 여전히 지금도 자유시장경제라는 외피에 정치적 금지 조항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다.
한 예로 2012년 할리우드 영화 <맨 인 블랙 3>(Men in Black 3)이 중국에서 상영됐다. 그런데 오리지널 버전과는 조금 다르게 상영됐다. 미국 뉴욕에 있는 중국 레스토랑의 직원으로 변장한 외계인 2명이 중국 버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 당국은 외계인이 중국인처럼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중국 당국은 2016년 미국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Doctor Strange)에 티베트 승려 대신 켈트족 성자를 등장시켰다. 중국은 티베트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있다. 2019년 중국에서 개봉한, 가수 프레디 머큐리가 속한 록그룹 퀸을 소재로 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에서 게이 커플이 등장한 부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미국 영화계는 중국이 오리지널 버전에 임의로 손대는 것을 모두 묵인했다. 좋은 사업 기회를 놓치느니 차라리 영화를 수정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정말 제대로 사업한 쪽은 중국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평균 미국인은 평균 중국인보다 소득이 여섯 배나 높다. 하지만 미국인과 중국인의 연간 소득 격차는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중국은 점점 부유해지고 자신감이 더욱 붙지만 그렇다고 더 민주적으로 되지는 않는다.
이제 중국은 전세계 국가의 60%에 가장 중요한 무역상대국이다. 수많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은 핵심 부분이다. 애플 앱스토어에서 인기 있는 상위 5개 앱 중 3개는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전세계 인공지능 분야에서 연구작업물이 압도적으로 많이 출판되는 곳도 중국이다. 중국은 최신 모바일 5세대(5G)와 배터리 기술 부문에서 선도적이며, 전기자동차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22년 전기자동차 생산량에서 중국은 350만 대인데 미국은 60만 대 남짓에 불과했다. 이 모든 것은 어찌 보면 임의로 선정한 사소한 사례이지만, 각 사례 모두 미국의 자존감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 Die Zeit 2023년 제21호
Supermacht gegen Supermacht
번역 김태영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