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제
     
‘나쁜 일자리’ 거부 늘어 임금·노동조건 개선 견인
[ANALYSIS] 완전고용 설레는 유럽- ② 구인난
[159호] 2023년 07월 01일 (토) 로랑 자노 economyinsight@hani.co.kr

 
오늘날 유럽 국가의 구직자는 노동조건이 나쁘면 일자리를 거부한다. 그 덕에 고용구조와 임금조건이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고용 불안정을 해소해야 한다.

로랑 자노 Laurent Jeanneau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2년 5월 스페인 마드리드 중심가 레스토랑 문에 웨이터 구인광고가 붙어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뒤 유럽에서는 노동조건이 나은 곳으로 옮기려는 노동자가 늘었다. REUTERS


유럽 나라 곳곳의 식당 유리벽에 노랗게 바랜 구인광고가 보인다. 일하려는 사람이 없다. 가게 주인은 속이 탄다. 숙박·요식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로존 구인구직비율(Vacancy Rate)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연합 통계국(Eurostat) 자료를 보면 2022년 3분기 전체 임금노동자 채용공고에서 미채용 비율은 3.1%였다. 1년 전은 2.6%, 코로나19 위기가 터지기 전인 2019년 말은 2.2%였다.
인력 수급이 유독 빡빡한 나라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이다. 네덜란드는 실업자 1명당 일자리 수가 1.23개다. 독일은 인력난 측정 지수가 정점을 찍었다. 노동연령인구가 해마다 40만 명 모자랄 전망이다.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2022년 7월 공업 분야 회사 가운데 구인난을 겪는다고 밝힌 비율이 67%로 1991년 이후 가장 높았다.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이 비율의 장기평균은 31%다.

잇따르는 이직
구인난을 기회 삼아 노동조건이 나은 곳으로 옮기려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 프랑스에서 퇴직 건수는 2021년 말 이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분기당 퇴직이 약 52만 건이고, 정규직(CDI) 퇴직이 47만 건에 이른다. 전체 노동자 대비 퇴직률은 2022년 1분기 2.7%를 기록했다. ‘대퇴사’(대규모 퇴사)라는 말이 유행한 미국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2021년 12월 미국의 퇴직률은 3%였다. 이탈리아는 2022년 1~9월 퇴직이 160만 건을 넘었다. 전년 동기 대비 22% 늘었다. 실업률이 12.5%에 이르는 스페인도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2022년 자발적 퇴사자가 7만 명 넘어 2001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
이런 현상이 유럽 전반에서 일어나는지는 관련 통계가 없어 알 수 없다. 통계로 파악한 것은 2022년 3분기 역내 퇴직자 350만 명 가운데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회사 도산으로 퇴직한 사람이 54만5400명이라는 점이다. 퇴직자가 1년 전보다 2만3100명 늘어난 사실은 확인됐으나 두 집단의 비중은 미지수다.
프랑스 노동부가 2022년 10월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순환 지표인 퇴직률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떨어지고 회복 국면에 들어서면 오른다. 회복 속도가 빠를수록 퇴직률이 급격히 상승한다. 확장 국면에선 새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늘어나 노동자의 퇴직 경향이 강해진다. 지금 유럽의 노동시장 상황이 좋다. 퇴직자가 늘어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중요한 건 현재 인력난이 퇴직률 증가세를 부추길 것인지다. 인력난이 심할 때 회사는 직원 빼오기 같은 방식을 쓴다. 퇴직률이 높지만 실제 재취업에 걸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에서 2021년 하반기 정규직 퇴직자 10명 가운데 8명은 퇴직 뒤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새 직장을 찾았다.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미국과 다르다. 인력의 ‘대규모 순환’이다. 미국에선 대규모 퇴사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었다. 사람들이 노동시장을 이탈한 것이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자녀를 맡길 데가 없어 일을 그만둔 여성이 많았다. 20살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2023년 1월 58.3%)이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2020년 1월 59.2%)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럽 경제활동참가율은 같은 기간 1.6%포인트 늘었다. 여성의 증가율이 더 높다(+1.8%포인트). 유럽에서 높은 퇴직률은 이직률 증가로 나타났다. 유럽 노동자가 거침없이 회사에 사직서를 던지는 건 일 자체에 회의감이 들어서가 아니다. 예전처럼 아무 조건에서나 일할 마음이 이제 사라졌다. 경기가 좋을 때 노동자는 일자리를 깐깐하게 따질 수 있다. 권력관계가 뒤집어진 것이다.
 

   
▲ 자료: 프랑스 노동부 산하 통계국(Dares)

물가상승 복병
이런 상황은 임금인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은 2022년 12월 보고서에서 유로존 임금이 2022년 4.5%, 2023년 5.2% 증가하리라 전망했다. 인상률이 낮은 건 아니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에 견주면 별로 높지 않다. 2022년 유로존 물가는 평균 8.4% 올랐다. 이 추세가 2023년에도 이어져 물가가 6.3% 오를 것으로 유럽중앙은행은 내다봤다.
실질임금 감소가 불가피하다. 프랑스 상황은 조금 낫다. 프랑스 사회보험료징수공단(URSSAF)에 따르면 2022년 1인당 평균임금이 4.4% 올랐다. 상여금을 포함하면 임금상승률이 5.8%에 이르러 물가상승률(6%)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다. 문제는 상여금이 특성상 지속적으로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시장 상황의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권력관계가 지금만큼 노동자에게 유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노동자는 구매력을 잃는다. 최저임금 추이가 이를 잘 나타낸다. 유럽연합의 유로파운드가 2022년 6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하는 유럽 21개국 가운데 15개국에서 2021년~2022년 물가상승분을 반영한 실질 최저임금이 감소했다. 물가상승이 임금인상 효과를 갉아먹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최근 발표한 세계임금보고서에서 2021년 1~2분기와 2022년 1~2분기 사이 유럽연합 회원국 평균 실질임금이 2.4% 떨어졌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소득구간별로는 저소득층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프랑스 경제전망연구소(OFCE) 분석전망부장 에리크 에이에는 말했다. “일반적으로 구인난이 심해지면 회사는 생산성을 높여 해소하려 한다. 생산성은 실질임금을 올린다. 지금은 정반대다. 구인난이 생산성 위축과 실질임금 하락으로 나타난다. 물가상승 압박이 지나치게 높은 탓으로 보인다. 고물가 시대에는 노동자에게 유리한 권력관계가 실질임금 상승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질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마치 노동자가 사용자와 임금 대신 노동조건을 협상하는 것과 같다.”
실제 유럽연합 기간제 일자리 비중이 2018년 3분기 15.9%에서 2022년 3분기 14.1%로 감소했다. 네덜란드를 제외한 대부분 회원국에서 기간제 일자리가 줄었다. 감소폭이 큰 나라는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으로 나타났다. 프랑스는 불안정 일자리 비중이 약간(0.4%포인트) 줄었지만 유럽 평균치보다 훨씬 높다.
 

   
▲ 2022년 8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안드레아 날레스 전 연방노동청장이 실업률 추이를 설명하고 있다. 독일에선 최근 시간제 일자리 ‘미니잡’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REUTERS

열악한 일자리 기피
일자리 질 개선 징후는 또 있다. 종일제 일자리 증가다. 전체 일자리에서 시간제의 비중은 2018년 3분기 17.9%에서 2022년 3분기 17.4%로 줄었다. 유럽에서 시간제 비중 감소폭이 가장 큰 나라는 네덜란드(-7.3%포인트)다. 네덜란드는 시간제 비중이 매우 높았다. 그리스(-1.5%포인트), 스웨덴(-1.9%포인트), 프랑스(-1.4%포인트)에서도 시간제 일자리가 많이 줄었다.
유럽노동조합연구소(ETUI) 소속 연구원 바우터르 즈비선은 “미국과 달리 대규모 퇴직이 아니라 열악한 일자리를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채용 일자리가 급증한 배경으로 노동자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와 하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가치 재평가가 이뤄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대중과 접촉하는 일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 피하려는 경향도 있다.”
팬데믹 이전부터 노동조건은 구인난 해소의 실마리였다. 경제학자 토마 쿠트로가 2022년 6월 발표한 프랑스 노동부 산하 통계국(Dares) 보고서를 보면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됐을 때 구인난을 겪는 비중이 높았다(89%). 민간부문 사용자의 71%가 구인난을 겪는 것으로 집계됐다. 육체노동자를 비롯한 임금노동자는 노동조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분야일수록 구인난이 심했다. 고중량 운반, 소음이나 화학물질 노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시간 부담이 큰 일과 야간노동을 비롯해 근무시간이 전형적이지 않은 일도 그렇다. 노동조건이 나쁜 일자리로는 채용도 어렵지만 퇴직을 막기 쉽지 않다.
유로파운드 보고서를 보면 유럽연합에서 전반적으로 노동조건이 나아짐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경기회복이 그런 변화에 힘을 실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 연구원 피에테르 고티에는 말했다. “공항에서 수화물을 싣고 내리는 노동자는 돈을 얼마 못 받는다.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은 사람이 많다. 코로나19 이전 사람들은 아무 힘이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공항에서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을 보고 사용자는 이제 깨달았다. 저임금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다른 예는 독일에서 ‘미니잡’(강제 시간제 노동)이 빠르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독일은 2000년대 시간제 일자리인 미니잡을 늘렸다. 이 불안정한 노동은 노동비용을 줄여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의 상징이었다. 독일 연방노동사무소 산하 노동시장·직업연구소(IAB)의 연구원 엔조 웨버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독일 노동시장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드러냈다”고 말했다. “미니잡이 아주 짧은 기간에 수십만 개씩 사라졌다. 단기실업수당 수급자도 늘어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독일 노동시장이 추구할 변화는 ‘양보다 질’이다.” 그는 근로계약에 사회보장제와 직업능력개발훈련을 누릴 권리를 포함하는 방안을 그 예로 들었다. 2023년 3월 말 독일에서는 임금 10.5% 인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더 크게 보면 팬데믹이 유럽에서 일자리 구조를 개선했다고 유로파운드는 다른 보고서에서 분석했다. 2019년 말~2021년 말 고임금 일자리가 특히 많이 늘었다. 이 기간에 임금 상위 20% 일자리가 250만 개 생겨났다. 같은 기간 임금 하위 20% 일자리는 300만 개 넘게 사라졌다. 일자리 질이 ‘현실화’한 결과인지 아니면 한 단계 나아진 결과인지 모른다. 저임금 업종에 종사하던 인력이 임금이 더 높은 업종으로 이동한 결과일 수 있다. 피에테르 고티에는 말했다. “지금 상황은 위기의 심각도 면에서 비슷했던 2007~2009년 대침체 때와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일자리가 양극화했다. 좋은 소식은 저임금 계층의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는 프랑스·이탈리아
흐름이 좋아진 건 맞는다. 하지만 불안정·불완전 고용의 완전 해소까지 갈 길이 남았다. 현재로선 물가상승이 노동자가 얻어낸 임금인상 효과를 없애고 있다. 기간제 일자리 비중이 높은 나라도 아직 많다. 네덜란드·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포르투갈·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에리크 에이에는 “진짜 관건은 일자리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완전고용 상태에 도달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된다. 독일은 완전고용을 이룬 대가로 빈곤율이 훌쩍 뛰었다. 질 좋은 완전고용은 정규직·종일제 완전고용을 뜻한다. 길가에 방치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야 한다. 저학력 청년 노동자도 퇴직을 앞둔 장년 노동자도 외면하면 안 된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모두 이런 우려를 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떤 정부는 권력관계를 다시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바꾸려 한다. 프랑스가 그렇다.
3년 동안 고용보험제도를 두 번이나 뜯어고쳤다. 구인광고 내용을 보지 않고 무슨 일자리든 받아들이도록 실업자를 등 떠민다. 이탈리아에서는 조르자 멜로니 정부가 2022년 12월 시민소득 수급조건을 강화했다. 시민소득은 이탈리아가 2019년 도입한 최저소득보장제다. 그토록 많이 얘기하던 ‘다음 세계’가 오려면 아직 멀었다. 일자리 정책의 혁명을 기다려야 한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3년 5월호(제434호)
La grande disparition des candidats à l’embauche
번역 최혜민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로랑 자노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일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최우성 | 편집인 : 박종생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박종생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