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이슈
     
“세계 급변, 운신 폭 넓혀야” “분열만 초래, 더 약해질 것”
[debate] 유럽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나
[159호] 2023년 07월 01일 (토) 마티아스 크루파 economyinsight@hani.co.kr

 
유럽연합(EU)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마티아스 크루파 <차이트> 기자는 말한다. 유럽이 대서양 동맹의 지원에 영원히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얀 로스 <차이트> 기자는 반박한다. 그 지원이 없다면 유럽은 더 취약해질 것이라고 말이다. 유럽연합과 미국의 관계 정립을 둘러싼 <차이트> 내부의 서로 다른 시각을 소개한다.

마티아스 크루파 Matthias Krupa
얀 로스 Jan Ross
<차이트>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이 미국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앞장서 주창한다. 2023년 4월7일 중국을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광둥성 광저우의 정원을 걷고 있다. REUTERS

찬성
유럽은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들러리가 될 것이다. 유럽이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몇 년 전 바이에른의 ‘맥주 텐트’(Beer Tent)에서 내놓았다. 그는 2017년 5월 그곳에서 “우리가 다른 이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던 시절은 지나갔다”면서 “유럽인은 당연히 자기 운명을 스스로 손에 쥐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했고, 전쟁은 아직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만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선 젊은 남자(에마뉘엘 마크롱)가 막 대통령이 됐다.
현재 독일의 전 총리 메르켈은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가 반미 감정을 품었다는 비난에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모호한 독립선언은 트럼프에 대한 실망감에서 나온 것이자, 냉철한 분석에 따른 것이다. 세계질서를 예측하기 어려울수록 유럽연합이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필수 불가결해진다. 꼭 그래야 한다면 미국 없이 홀로 서야 하고, 유사시에는 미국에 반대하는 태도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메르켈의 발언 이후 6년이 지나고 코로나19 사태를 겪었고,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지금 세계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미국은 다시 한번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임을 입증했다. 아니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임을 입증했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을까?

마크롱이 옳다
미국의 군사지원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의 키이우는 지금쯤 점령당했을 게 확실하고, 유럽연합도 큰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하필 이런 상황에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주장하고 미-중 갈등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미국을 추종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은 역설적이고 심지어 염치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마크롱의 주장은 옳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되살렸고, 모든 것이 다시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험한 환상을 키웠다. 하지만 그 ‘예전’은 오래전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연합과 회원국들은 지난 몇 년간 많은 위기를 겪으며 매번 같은 경험을 했다. 그들 나라가 타국에 얼마나 의존적인지 알게 된 것이다. 금융위기는 미국의 한 투자은행이 무너지면서 시작됐다.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중국은 처음엔 거창하게 유럽에 부족한 마스크를 보내줬지만 나중에는 공급망이 붕괴했다.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침략은 유럽 안보뿐만 아니라 여러 유럽 국가의 에너지 공급도 뒤흔들어놓았다. 유럽연합은 이 충격에 계속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일치단결해 함께 백신을 조달하고, 빚지고, 위기 저항력을 높이려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2020년 12월 전략적 자율성이 “정치적 생존 문제”라고 썼다. 유럽연합의 국가원수와 정부수반들은 (보렐 대표가 글을 올린 날보다) 두 달 전에 이미 이 목표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현 독일 집권여당인 신호등 연정의 연정합의서에도 ‘(독자적인) 행위 능력이 있고 전략적으로 주권적인 유럽연합’을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물론 주권이나 자율성이 절대적 가치는 아니다. 무역 강국인 유럽연합이 자급자족하는 채소 농부처럼 세상에서 물러나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더 자립적이고 독립적이 돼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유럽연합의 전략적 자율성을 찬성하는 쪽은 자강론을, 반대하는 쪽은 대서양 동맹 강화론을 내세우며 맞선다. 2023년 4월5일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러시아와의 최전선 근처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REUTERS

역사의 들러리가 될 것인가
도널드 트럼프만큼 유럽을 자극한 미국 대통령은 없었다. 그러나 지난 20년의 경험도 전반적으로 혼란스럽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국제법을 위반하며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고, 그 전쟁에서 유럽이 미국을 따르기 바랐다. 이로 인해 유럽연합은 분열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차분했지만 유럽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 뒤 트럼프가 등장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조차 대서양 동맹 회복이 아니라 동맹국들과 상의 없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혼란스럽게 철수하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이후 바이든은 유럽연합의 많은 사람이 선전포고로 간주하는 미국 산업의 기후중립적 재건 프로그램을 결의했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미국은 자국 이익을 먼저 추구한 뒤 동맹국을 생각한다. 물론 바이든이 현재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유럽을 지원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이 다행에 의존할 수 있을까?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논의에는 두 가지 오해가 수반된다.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이 나토를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연히 중국과의 거리와 똑같이 미국과도 거리를 두겠다는 소리도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국가들이 현재 유럽 대륙의 안보를 스스로 보장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이는 쓰라린 경험이지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유럽이 이 경험에서 도출한 결론이다. 더 많은 자율성은 재무장이나 독립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유럽이 다른 나라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자국의 이해관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자율은 무엇보다 운신할 수 있는 재량권을 얻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인 프랑스는 안보정책 측면에서 이제 막 깊은 잠에서 깨어난 독일보다 자연히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이 논쟁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촉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지속됐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할수록 유럽인들은 이 논쟁과 관련해 태도를 취하는 것이 시급해진다. 동시에 유럽은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진하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은 선택의 여지 없이 무조건 미국 편에 설 수밖에 없을까? 마크롱은 바로 그런 충동적 욕구를 경고했다.
듣기 좋은 이야기보다 더 유혹적인 것은 없다. 나토는 냉전에서 승리했고, 유럽연합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번영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재편되고, 유럽은 선택해야 한다.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쥐고 미국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날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들러리가 될 것인가? 마크롱이 제기한 질문은 언뜻 미국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핵심은 유럽인이 자신을 얼마나 신뢰하냐는 것이다.
 

   
▲ 유럽연합 내부에서도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국가들, 핀란드 등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본부. REUTERS

반대
‘전략적 자율성’은 필연적으로 유럽연합을 분열시킬 것이다. 유럽이 미국으로부터 더 강하게 독립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들은 두 가지를 말한다. 그런 독립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상당히 다른 가정이다. 어쩌면 둘 중 하나는 맞고 다른 것은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둘 다 틀렸다.
물론 유럽연합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분명히 염두에 둔 것처럼 중국과의 분쟁에서 미국보다 대만을 덜 단호하게 지지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냉전이 한창일 때도 미국 동맹국들은 초강대국의 모든 모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의 가장 충성스러운 우방인 영국조차 베트남전쟁에서는 빠졌다.
이러한 거부 가능성이 있다고 유럽연합이 국제정치적 자율성, 즉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말하는 ‘전략적 자율성’ 또는 ‘유럽 주권’을 확보하거나 가까운 미래에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최근 몇 달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이 미국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잔인할 정도로 명확하게 보여줬다. 미국의 군사장비·정보·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 러시아의 공격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없다면 유럽은 향후 수십 년간 무엇보다 필요한 능력, 즉 러시아의 또 다른 공격을 막을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시대 전환’이라는 수사에도 유럽이 가까운 미래에 이 의존성을 극복하기란 상상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엄청난 압력 속에서도 일종의 초강대국이 되려는 정치적 의지, 역사적으로 볼 때 최근에야 평화를 달성하는 데 성공한 유럽을 재무장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유럽 대륙에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일부가 진지하게 추구하는 ‘전략적 자율성’ 프로젝트가 필연적으로 유럽연합을 분열시키고, 유럽연합 강화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의존성 극복, 비현실적
중부·동부의 유럽 국가, 특히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국가들, 그리고 핀란드도 미국에서 벗어나 앞으로 프랑스나 독일 혹은 유럽연합에서 구원을 찾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수년 동안 러시아와 관련해 잘못 이해했던 유럽연합 주요국과 주요 기구의 방어 의지도, 외교정책적 판단력도 신뢰하지 않는다. 유럽의 절반이 ‘유럽 주권’에 전혀 관심이 없고, 심지어 원칙적으로 거부한다.
이런 질문도 던질 수 있다.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이 현재는 비현실적이지만, 모든 어려움에도 노력할 가치가 있는 목표이지 않을까? 특히 도널드 트럼프 같은 동맹 멸시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이후 미국 자체가 더는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아니기 때문에?
유럽의 연대가 ‘대서양 연대’보다 자동으로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트럼프와 비슷한 ‘정치 이기주의자’이자 동맹 파괴자가 프랑스 대통령이 되어 정권을 잡을 수도 있다. 포퓰리즘과 국가주의를 향한 두려움은 사실 미국에만 있지 않다. 따라서 유럽연합 스스로 독립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런 위험은 모든 곳에 똑같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으로부터의 분리에 반대하는 주장이 더 중요하다. 북미와 유럽,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지금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상황 평가와 위험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공통된 이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 권위주의 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지정학적으로 한 팀으로 움직이고 서로의 세력 확장을 지원해, 오직 단결된 서구만이 그들 나라에 대항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줬다. 특히 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 같은 남반구의 주요 국가들이 상당히 냉담한 태도로 관중석에 앉아 있다.
트럼프가 있든 없든 간에 이런 통찰은 미국 공화당 내부에서 깊이 공유됐고 결실을 맺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렇게 전면적이고 잘 조직된 유럽과 미국의 저항에 부딪히리라고 절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저항은 우크라이나인들의 끈기와 결합해 러시아 대통령이 굳게 믿고 있던 승리를 빼앗아갔다.

굴욕감 떨치려 자주성 주장
미국과 거리를 두기 위해 하필 이 순간을 선택하는 것은 완곡하게 말해도 상당히 희한하다. 1990년대 초 동서 대립이 끝난 이래 사람들은 ‘서구’가 여전히 존재하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신경질적으로 반복해서 제기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정치 실체로서 ‘자유세계’라는 말은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나르시스적인 자아 발견 프로그램으로 유럽은 이를 금세 다시 잃어버릴 수 있다.
이처럼 미국으로부터의 이탈에 반대할 이유가 많다. 그럼에도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아이디어가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동기는 부정적인 것이다. 미국의 우월함 아래 느끼는 고통, 마침내 떨쳐버리고 싶은 굴욕감이다. 유럽의 자주성을 강화하려는 열망의 핵심은 전략이 아니라 분노다. 이것은 정치에서 강력한 동기다. 하지만 좋은 동기는 아니다.

ⓒ Die Zeit 2023년 제17호
Fahnenflucht?
번역 황수경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티아스 크루파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일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최우성 | 편집인 : 박종생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박종생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