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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전산망·전문회사 도입해 신뢰 제고
[CULTURE & BIZ] 영화산업 수익 투명화
[159호] 2023년 07월 01일 (토)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2023년 5월29일 서울의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무인발권기에서 입장권을 사고 있다. 입장권통합전산망 도입 이전에는 관객 수를 입회인이 직접 헤아렸다. 연합뉴스

2000년대 김대중 정부의 문화산업 투자펀드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로 많은 벤처투자자가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투자 이익을 중요시하는 벤처투자자와 영화를 예술로 여기는 영화인의 만남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었다. 벤처투자자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이전 영화계에 진입했던 대기업보다 리스크 관리에 더 철저했다.
반면 촬영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자주 발생했다. 회계에 능숙하지 않은 영화인의 장부는 늘 허술했고, 벤처투자자는 종종 장부에서 누락된 숫자들을 발견했다. 영화인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게 허다한 영화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벤처투자자가 못마땅했다. 상호 불신이 커졌다. 벤처투자자는 제작자가 뒷주머니를 찬 것 같아 불안했고, 영화인은 시시콜콜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투자자가 불편했다.
다만 이들은 갈라서는 게 답이 아님을 알았다. 양쪽은 서로 믿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벤처투자자는 정확한 관객 수와 입장권 판매액 자료를 반드시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한 영화에서 얼마나 수익이 나왔는지 확인되지 않는 사례가 흔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도입한 것이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은 영화계의 숙원이었다. 당시 극장 일부만 전산화돼 정확한 흥행 실적을 집계하기 어려웠다. 중소 도시에선 여전히 ‘단매’ 방식의 배급이 남아 있었다. 배급사가 최소 계약 금액(미니멈 개런티)을 정해 배급권을 판 뒤 흥행 수익에 따라 추가로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 단매다. 극장이 작을수록 정확한 집계가 어려우니 수익을 대략 예상해 판매한 것이다. 전국 관객 수도 배급사 스스로 어림짐작해 집계하는 사례가 많았다. 예를 들어 부산 관객 수는 서울 관객 수에 대략 3분의 1을 곱하고, 대구는 5분의 1을 곱해 산출하는 식이어서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평이 많았다.
 

   
▲ 2006년 문화산업전문회사 제도를 처음 활용해 제작한 드라마 <태왕사신기>. MBC

투명한 매출
관객 수는 필요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고 줄었다. ‘서울 관객 100만 명’을 달성하면 성공작으로 평가받았기에 가짜 100만 관객 영화가 수두룩이 나오기도 했다. 반대로 수익을 덜 나눠주려 관객 수를 줄이는 관행도 흔했다. 2000년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놓고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벌인 논쟁은 이런 환경에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쉬리> 쪽이 직접 배급한 극장 관객 기준으로 전국에서 580만 명을 동원해 역대 최대 흥행작이라는 발표를 했다. 그러자 <공동경비구역 JSA> 쪽이 지방 단매 관객을 서울 관객 수에 비례해 계산하면 전국 관객 583만 명이라고 맞받아쳤다. 최고 흥행 기록을 놓고 벌인 신경전이었다. 양쪽의 계산 방식이 달라 검증할 수 없었다. 서울 관객 수는 <공동경비구역 JSA>, 전국 관객 수는 <쉬리> 쪽이 조금 더 많아 서로 유리한 방식으로 추산했다.
수익 투명화를 위해서도 통합전산망이 절실했다. 영화산업에서는 영화관 입장료 판매액으로 최종 매출액이 결정되면 세금과 필요경비를 모두 제한 뒤 정산한다. 극장과 배급사가 45 대 55로 수익을 나눈다. 배급사 몫에서 배급 수수료와 제작비 등을 정산하고 남은 금액이 투자자 수익이 된다. 영화계의 불투명한 정산 구조에 불만이 많았던 벤처투자자들은 실시간 집계되는 통합전산망 없이는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결국 오랜 진통 끝에 2004년 5월 통합전산망이 구축됐다. 2006년 전국 영화관의 83%, 2007년 97%가 통합전산망에 가입했다. 통합전산망 구축으로 입장권 구매가 편리해져 관객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났다. ‘입회인’ 비용 감소 등으로 영화 배급 비용도 줄었다. 입회인이란 실제 극장에 들어온 관객 수를 직접 세는 사람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고는 극장 지정좌석제가 정착되지 않아 정확한 관객 수가 집계되지 않았다. 일부 극장은 세금 등을 줄이기 위해 이미 관객에게 판 표를 수거해 재판매하는 편법도 썼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영화사들은 입회인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관객 수를 직접 확인했다. 2000년 기준 입회인 일당은 서울·경기 3만8천원, 지방 5만2천원 수준이었다. 영화 <쉬리>의 입회인 비용이 2억원에 이를 정도였다.
 

   
▲ 2000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놓고 <쉬리>와 다툰 <공동경비구역 JSA>. 명필름

프로젝트 단위 회사
무엇보다 통합전산망 도입으로 투자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데이터가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게 공유됐다는 점이 중요했다. 과거 어떤 영화에서 얼마를 벌었는지 알아야 이후 투자할 때도 수익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투자를 위한 기본 통계 자료가 마련되면서 투자도 더 활성화됐다.
금융자본이 영화계에 도입한 또 다른 신뢰 구축 장치는 ‘문화산업전문회사’ 제도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같은 분야에는 개별 작품 단위로 투자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이 흔하다.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보고 투자자들이 모여 사업을 벌인 뒤 수익을 지분 비율에 따라 나눠 갖는 형태다. 해당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과 자산 등을 관리하기 위해 별도 특수목적회사(Special Purpose Company)를 설립하곤 한다. 별도 회사라고는 하나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회사다.
그런데 한 영화사에서 여러 영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이때 영화사가 영화별로 회계 처리 등을 엄격하게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현금흐름이 뒤섞이는 일이 자주 생긴다. 회계 업무에 미숙하거나 급한 마음에 비용을 뒤섞어 처리하기 때문이다. A영화에 투자했는데 투자금이 B영화를 위한 관리비나 마케팅비로 쓰이는 식이다.
투자자에게 이런 상황은 난감했다. A영화가 성공했는데도 B영화의 실패 때문에 수익을 충분히 배분받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벤처투자자들은 영화사에 투명한 회계 처리와 프로젝트별 현금관리를 요구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 단위로 별도 회사를 설립하는 문화산업전문회사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정부도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문화산업전문회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2006년 드라마 <태왕사신기> 제작 때 이 제도가 처음 활용됐다. 2007년 영화계에도 도입돼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문화산업전문회사 형태로 제작됐다. 문화산업전문회사에서는 사업관리자가 전체 프로젝트를 관리하지만, 자금관리 업무는 회계법인 같은 자산관리자에게 위탁한다. 자금관리가 투명해져서 투자자의 불안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 제도가 투자하는 영화 외의 다른 이유로 수익이 줄어들거나 손실 입는 것을 막는 안전망 구실을 했다. 문화산업전문회사 설립이 갈수록 늘어나 벤처투자자와 영화인의 신뢰도 더 높아졌다.

OTT 시대 투자 정보는?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으로 영상산업의 축이 옮겨가면서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많은 투자자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영화와 달리 드라마 시리즈는 OTT 업체 등이 투자와 제작을 전적으로 맡은 탓에 투자 수익이나 정산 등에 대한 정보가 불투명하다. 투자자에게는 다소 미지의 땅인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거대 OTT와 달리 자본력이 취약한 국내 OTT 업체들은 앞으로 영화처럼 외부 자본을 유치해 함께 투자하는 구조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치솟는 제작비에 걸맞은 대작 시리즈를 확보하는 게 더 어려워진다. 국내 업체의 자금조달이 힘들어지면 점점 더 많은 국내 제작자가 제작비를 턱턱 내놓는 외국 OTT로 갈 수밖에 없다.
외부 투자자를 끌어들여 제작하는 구조로 변신하려면 과거 벤처투자자와 영화인이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등을 도입했던 것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드라마 투자 정보가 너무 없어 신뢰가 부족하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입장권 수입을 통한 매출 구조가 아니어서 수익을 정산하는 방식 등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와 투명하게 수익을 나눌 수 있는 제도의 도입, 혹은 정보 공유가 이뤄져야 더 많은 투자자가 관심을 보일 것이다. 신뢰는 서로 믿는다는 말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 정착으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우리 영화산업사가 잘 보여줬다.

* 김윤지 연구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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