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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상징에서 스타트업 허브로
[세계는 지금] 독일 베를린
[159호] 2023년 07월 01일 (토) 윤태현 theo@kotra.or.kr

 
윤태현 KOTRA 함부르크무역관 과장
 

   
▲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가 2023년 5월11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 스타트업 시상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문화·역사의 도시 베를린은 최근 스타트업의 허브로 성장하고 있다. REUTERS

2001년부터 14년간 베를린시장으로 재임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는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다”(Berlin ist arm, aber sexy)라는 구호를 내세운 바 있다. 유럽, 특히 그중에서도 한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8천달러(약 6천만원, 2022년 기준)에 이르는 국가 수도의 시장이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칭하는 게 얼핏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베를린 도시 자체를 자세히 뜯어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유럽의 수도인 영국 런던이나 프랑스 파리와는 다른 모습이 꽤 많다.
베를린은 여러 상징적 의미가 있는 도시다. 현재는 독일 수도이자 정치·외교의 허브 역할을 하지만, 과거에는 미국·영국·프랑스령을 중심으로 한 서베를린과 소련의 동베를린 진영을 가르는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다. 서베를린은 동독 영토로 둘러싸여 ‘육지의 섬’으로도 불렸다.

역사와 예술이 깃든 도시
1963년 6월, 베를린에서 군사적 긴장감이 감돌 때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서베를린을 방문해 쇠네베르크시청 앞에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는 연설도 했다. 이후 1990년 통일을 이루며 독일은 분단국가에서 벗어났지만, 베를린장벽은 여전히 냉전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이런 과거를 배경으로 베를린에는 역사와 더불어 예술이 깃들어 있다. 동·서독 분단의 경계선인 ‘체크포인트 찰리’와 베를린장벽부터 신구 박물관을 포함한 페르가몬박물관과 보데박물관을 모아둔 박물관섬까지. 박물관섬은 서울 노들섬 크기의 절반 정도 되는 면적에 오로지 박물관으로만 이뤄져 있다.
매년 열리는 베를린영화제도 있다. 연간 3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이 영화제는 칸영화제, 베니스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최우수 작품에는 황금곰상이 수여된다. 음악적으로는 베를린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베를린도이치 교향악단 등이 유명하다. 한스아이슬러대학과 베를린예술대학 등 음악 교육 기관에서 매년 수많은 음악인이 배출된다.
최근에는 ‘힙스터들의 도시’라는 이미지도 얻고 있다. 독일 언론매체 <차이트>는 베를린을 ‘힙스터의 성지’라고 칭했다. 서베를린은 1980년대 인구 감소를 겪으며 젊은 인구의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음악, 파티, 술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이를 통해 현재에도 EDM(클럽, 페스티벌, 파티에서 사용하는 전자음악) 계열의 클럽이 즐비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베를린은 문화·관광·역사의 도시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에는 산업적으로 왕성하게 규모가 커지고 있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가 베를린이 스타트업의 허브라는 것이다.
스타트업 연구기관 스타트업블링크(StartupBlink)가 발표한 2022년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 지표에 따르면, 독일은 스웨덴에 이어 유럽연합 국가 중 스타트업에 가장 적합한 생태계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됐다. 유럽연합 내 도시를 기준으로 하면 베를린은 프랑스 파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독일 정부는 2020년 기준 약 41만 명이 독일 전체 스타트업에 종사하고 2030년에는 약 97만 명까지 그 수가 늘어나리라고 본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100억유로(약 14조원) 예산을 투입해 유럽 최고의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한다.
이처럼 독일에서도, 특히 베를린을 중심으로 벤처캐피털 등 풍부한 투자를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의 스타트업이 포진해 있다. 국제 회계법인 언스트앤드영(Ernst&Young)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약 49억유로(약 7조원)가 베를린 스타트업에 투자금으로 유입됐고, 현재 5600개의 스타트업이 사업하고 있다. 독일 전역의 핀테크 스타트업 중 35%가 베를린에 있는 것만 봐도 이곳이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인지 알 수 있다.
 

   
▲ 독일 분단의 상징이던 브란덴부르크문. 매년 전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윤태현

저렴한 물가와 정부 지원
이뿐만 아니라 친외국인 문화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과 글로벌 인력이 풍부하다. 독일에서 창업했지만 회사에서 주로 쓰는 언어가 독일어가 아닌 영어인 곳도 많다. 다국적 인력이 모여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만큼 탄소중립을 포함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천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최근 산업 트렌드를 가장 민첩하게 받아들이고 서비스에 적용하는 스타트업의 메카가 독일 수도 베를린이다.
이렇게 베를린의 스타트업 산업이 활발해진 것은 독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정책에 힘입은 결과물이다. 베를린 인구의 평균연령은 42.6살(2022년 기준)로 독일 함부르크(42.2살)에 이어 두 번째로 젊다. 전체 외국인 수는 약 90만 명으로 베를린 전체 인구의 24.3%(2022년 기준)나 차지한다. 외국인들의 출신국도 190개국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 베를린은 다른 도시들보다 물가가 싼 편이다. 현재는 구동독 지역이 많이 개발되고 외부 투자도 많이 됐지만 10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인 곳이 많았다. 시장조사기관 슈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독일인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 중 하나인 케밥 가격을 기준으로 함부르크가 평균 6.03유로(약 8천원)로 가장 비싸고 베를린은 5.41유로로 전체 도시 중 6위에 그쳤다.
이처럼 베를린은 다른 도시들보다 특히 더 ‘젊고 국제적이며 힙한 도시’라는 이미지를 십분 활용해 돈이 많지 않은 초기 창업가들을 도시로 모으는 유인책을 썼다. 애초에 바이오, 자동차, 금융 등 전통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는 다른 노선을 취한 것이다. 2016년 당시 경제기술에너지부 장관이던 지그마어 가브리엘은 디지털 허브를 도입했는데 이 정책의 덕을 보기도 했다.
디지털 허브는 스타트업, 투자가, 전문가들이 쉽게 네트워킹할 수 있도록 도시별로 특화 산업을 지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중앙은행이 있는 독일의 대표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와 기술공과대학이 유명한 다름슈타트에는 핀테크와 사이버보안, 항구도시 함부르크는 물류가 특화된 도시로 선정됐다. 마찬가지로 베를린은 사물인터넷(IoT)과 핀테크 허브로 선정돼, 독일에서 가장 많은 사물인터넷과 핀테크 스타트업이 있는 도시가 됐다.
독일 전체 핀테크 스타트업의 3분의 1 이상이 현재 베를린에 있다. 독일뿐 아니라 미국까지 진출해 세계 금융시장을 놀라게 한 스타트업 N26이 대표 사례다. N26은 현재 24개국에서 약 800만 명의 사용자가 있다. 이 외에 세무·회계 등 기업의 자산운용을 도와주는 소프트웨어 업체 스맥(Smacc)도 베를린에서 설립됐다. 국내 음식 주문 앱인 ‘배달의민족’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 본사도 베를린에 있다. 이처럼 각 지역을 산업별 허브로 지정해 허브를 통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연결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베를린시 산하 경제진흥기관인 베를린파트너(Berlin Partner für Wirtschaft und Technologie GmbH)도 스타트업에 중점을 둔 사업지원 프로그램 등을 개설해 스타트업의 유치와 지원에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도 아이디어가 많은 창업자들이 베를린으로 모였고, 베를린은 독일에서 스타트업을 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도시가 됐다.

‘ESG 경영’과 ‘디지털 전환’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독일은 2021년 새롭게 구성된 연방 내각에서 이전 경제에너지부를 ‘경제기후보호부’로 변경하면서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부서명에 아예 친환경을 위한 기후보호를 명시한 것이다. 정부 정책에 맞춰 2022년 독일 스타트업 투자액 상위 10개 기업 중 3곳이 ESG 경영 관련 기업이다. 대부분의 벤처캐피털과 액셀러레이터(창업 초기 기업 육성 기관)도 투자 기업을 선정할 때 사업 과정에서 친환경 요소가 얼마나 포함되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재택근무와 화상회의 등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이른바 ‘디지털 전환’(DX)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부분의 기업에서도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생각한다. 스타트업블링크의 2022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내 IT 분야 종사자의 약 23.8%가 사업모델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디지털 전환 플랫폼으로 인공지능을 꼽았다. 사물인터넷과 웹3.0, 메타버스 등이 뒤를 이었다.
베를린은 아직도 성장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폐허가 됐고 분단과 냉전의 상징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젊고 신선하며 국제적이다. 베를린에서 성장한 스타트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베를린은 미래 먹거리 사업이 될 트렌드와 신성장 동력이 나오는 곳이 될 것이다. 국내 스타트업 종사자나 예비 창업자, 혹은 혁신적 기업 투자에 흥미 있는 사람은 베를린을 관심 목록에 넣어둘 필요가 있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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