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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이 손들 때까지 지속될 총성 없는 전쟁
[FINANCE] 미-중 ‘반도체 제재’ 주고받기
[159호] 2023년 07월 01일 (토)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중국 상하이에 있는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지사. 중국은 최근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반발해 마이크론 제품의 사이버보안 조사를 벌인 뒤 제재를 단행했다. REUTERS

미-중 갈등이 심해진다. 총성 없는 전쟁이다. 전쟁터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다. 미국은 군용 칩 생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중국에 대한 반도체칩 제조 기술과 장비의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2022년 말부터 본격화했다.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반도체 기업 다수가 미 상무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미국은 이들 기업의 생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로 중국의 첨단 반도체 분야 진입 기회를 원천봉쇄하려 한다.
중국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2023년 3월 중국 인터넷 감시기구인 사이버스페이스관리국은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중국에 판매한 제품에 대해 사이버보안 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50여 일이 지난 5월21일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마이크론 제재를 실행했다.
불똥이 한국으로 튀었다. 4월23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는 뜬금없지만 의미 있는 보도를 했다. 중국이 자국에서 마이크론 칩 판매를 금지한다면, 한국 업체들이 그 공백을 메우지 않도록 할 것을 미국이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4월24일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 방문차 워싱턴에 도착한 날이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국은 국빈에게 매우 무례한 요청을 한 셈이다. 이런 요청은 미국 의회로 번졌다.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과 마이크 갤러거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상무장관에게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마이크론이 잃은 시장점유율을 가져가지 않도록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중국은 마이크론 제품을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 차량용 반도체는 일본 기업한테 사면 된다. 다만 미국이 일본과 한국에 압력을 가하지 않을 때의 얘기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견제는 필사적이다. 정부와 의회는 물론 학계도 나서 한국과 일본을 압박한다. 마이크론 제재를 틈타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지 말아야 하고 심지어 미국을 도와야 한다는 요구까지 한다.

“반도체는 미국 것”
<파이낸셜타임스>가 2022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반도체 전쟁>(Chip War)은 하필 이 시점에 미국이 중국과의 반도체 전쟁을 불사하는 이유를 잘 설명한다. 책은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저자 크리스 밀러는 미국 터프츠대학에서 국제사를 가르치는 교수다. 당연히 그의 시각은 반도체 산업 역사에 머물지 않는다. 지정학 맥락을 더해 반도체 산업의 향배가 패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추적한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21세기 반도체 산업의 조종간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와 정치 질서가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는 미-중 갈등의 승패 역시 반도체가 좌우한다는 게 요지다.
반도체 역사는 이제 겨우 70년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전 기술을 대체해 새로운 시장과 가치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하는 ‘파괴적 기술’의 정점이다. 오늘날 반도체 없는 일상은 불가능하다. 가전, 디지털, 인공지능, 첨단무기 체계 등 산업 전반을 지배한다. 흔히 ‘4차 산업의 쌀’이라 부르지만, 쌀과 다른 점은 아무나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중요하다.
밀러는 “반도체는 미국 것”이라는 명제를 강조한다. 미국이 개발하고 성장시켰기에 미국 것이란 논리다. 반도체 장비는 유럽, 소재는 일본, 생산은 동아시아가 맡는다. 하지만 미국이 못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필요에 의해 공급망을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고 그는 강조한다. 얼핏 강경 보수론자의 냄새까지 난다. 분명한 것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 하나만이 아니란 사실이다. 미국인 대부분의 공통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말까지 미국은 중국에 마냥 관대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자국 패권에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 판단해서다. 미국 조야의 이런 인식은 20세기 말 발표된 의회조사국의 ‘중국 정세 분석보고서’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엔 ‘중국 분열론’이 힘을 얻었다. 2차 톈안먼(천안문) 사태가 1989년 일어났고,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1997년 사망했다. 1991년 소련도 붕괴했다. 미국은 자본주의 맛을 본 중국이 일본처럼 미국 품에 안길 것이라 자신했다. 심지어 민주화가 성숙되면 중국이 분열하리라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21세기 들어 중국은 시진핑 체제를 공고히 하며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름)를 철회하고 ‘중국 굴기’를 선언했다. 숨겨둔 발톱을 드러내며 자국의 위상을 세계에 공공연히 과시했다. 미국은 긴장했다. 중국은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유일한 국가로 인식됐다. 2021년 8월 발표된 의회조사국의 ‘새로운 미-중 전략 경쟁: 미 국방부에 대한 함의와 의회에 대한 현안’이란 보고서는 양국 경쟁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어 미국이 중국을 사실상 유일한 패권 도전국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거칠게 표현하면 미국은 중국에 집중해 ‘한 놈만 팬다’는 전략을 표면화했다.
 

   
▲ 2023년 4월25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 포럼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이 중국 반도체 제재에 동참하도록 압박했다. REUTERS

왜 지금?
2022년 2월 러시아는 끝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 전쟁은 순식간에 세계를 뒤흔들었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국가 간 전면전의 발발은 불신의 시대가 본격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혼란은 불가피했다. 무엇보다 각국은 기존 공급망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았다.
미국은 패권의 핵심인 반도체 공급망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니 우려스러웠을 것이다. 반도체 대부분이 대만과 한국에서 생산된다. 이들 나라는 중국, 북한, 러시아의 지척에 있다. 이 지역에서 전쟁이나 그에 버금가는 긴장 상황이 생기면 미국 반도체 공급망이 일시에 멈출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미국과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전쟁한다면 미국이 확실한 우세를 확보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이 약해서가 아니라 중국 안마당에서 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홈그라운드 이점을 가진 중국에 견줘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미국의 자세는 비교적 명확하다. 가장 효과적인 중국 제재는 분산된 반도체 패권을 미국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반도체 생태계는 미국에 유리하다. 설계, 장비, 소재, 제조 모두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 미국은 동맹과 우방을 압박해 중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드웨어 면에서 패권은 경제력과 군사력에 의해 결정된다. 그 힘의 우위는 상당 부분 반도체에 달렸다. 군사력은 더욱 그렇다. 현대 무기체계는 일종의 전자제품이다. 각종 유도무기는 반도체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미래 무기체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인공지능(AI) 기반의 무기는 지능형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반도체 덩어리다. 미국은 자국이 개발한 반도체가 미국을 겨눈 중국의 무기에 쓰인다는 점을 실감했을 것이다. 반도체는 냉전시대 소련을 이긴 미국의 동력이었다. 이 경험은 아직도 유효하다.

네오콘 철학
반도체 전쟁은 미국이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점을 상징한다. 미국의 설레발에도 좀처럼 줄지 않는 양국 교역액 추이를 보고 두 나라가 헤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 2022년 양국 교역액은 690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관측은 전체 그림의 일부분만 보고 내린 성급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중국 제재는 반도체 등 핵심 첨단기술에 집중됐다. 이유가 있다. 첨단기술만 막으면 중국이 패권국으로 도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교역을 일시에 끊지는 못한다. 패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중국의 일반 상품이 미국에 필요하다. 다만 장기적으로 미국은 공급망 대부분을 중국 외부에 구축하려 할 것이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이 유력하다. 이들 국가의 공급망이 성공적으로 가동된다면 그만큼 중국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다. 중국의 욕망이 수그러들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그 끝은 ‘결별’이 될 수밖에 없다.
신보수주의로 불리는 네오콘의 철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국제정치는 강자와 자연권이 지배하는 정글이다. 정의는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인류애에 기초한 개념인 공영·평화·번영은 미국 극우에 성가실 뿐이다. 문제는 네오콘이 점차 세를 넓혀간다는 것이다. 공화당만이 아니다. 네오콘의 가치는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미국은 큰 방향이 정해지면 정권이 바뀌어도 쉽사리 달라지지 않는다. 특히 패권에 대해서는 일치단결하는 양상을 보인다. 미-중 갈등이 쉽게 끝나거나 두 나라가 타협하리라는 생각은 그래서 순진하다. 세계는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매개로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한쪽이 항복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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