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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부 다른 목소리가 협상력 높일 수도
[경제의 속살] 미·중 양쪽에서 압박받는 한국 경제
[159호] 2023년 07월 01일 (토) 권순우 soon@3protv.com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 마이클 매콜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2023년 6월2일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일본·한국 기업들이 마이크론이 잃은 시장점유율을 가져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REUTERS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중국을 방문해 사흘간(2023년 5월30일~6월1일) 뜨거운 환대를 받고 돌아갔다. 친강 외교부장, 진좡룽 공업·정보화부장, 왕원타오 상무부장 등 중국 고위 각료 3명을 비롯해 상하이시 1인자인 천지닝 당서기도 만났다.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외신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인 딩쉐샹 국무원 부총리를 만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머스크 CEO는 중국 상하이 공장을 방문해 현지 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기서 생산하는 자동차가 가장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최고 품질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어 마음이 따뜻해진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 기업 CEO들 중국행 러시
비슷한 시각,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에서 반도체를 살 수 없다면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버릴 것”이라며 미국 행정부의 중국 규제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황 CEO는 “중국 시장이 미국 테크 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 수준”이라며 “만약 테크 업계가 중국 시장을 잃으면 우리는 미국에 더 이상 반도체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엔비디아는 글로벌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의 90%를 점유하는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의 최강자다. 전세계에서 주목받는 챗지피티(ChatGPT)는 엔비디아 GPU A100을 1만 장 이상 써서 만들어졌다. 2023년 들어 엔비디아 주가는 174% 급등하며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2022년 가을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견제하기 위해 핵심 반도체인 GPU 수출을 금지했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반도체 A100과 그 상위 버전인 H100을 수출하지 못하게 됐고, 이를 우회하기 위해 성능을 낮춘 H800을 제작해 중국에 공급하고 있다. 젠슨 황 CEO도 중국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황 CEO가 중국을 방문해 중국 최대 게임사 텐센트와 틱톡을 만든 바이트댄스 등 중국 빅테크 업체들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제이피(JP)모건 회장도 최근 중국을 찾았다. 중국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면서도 중국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다이먼 회장은 “시간이 갈수록 중국과 무역이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중국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 메리 배라 회장도 중국을 방문해 상하이 당서기와 만나 현지 투자 계획을 논의했다. GM은 중국에서 15개 이상 전기자동차 신규 모델을 출시하고 2025년까지 전기차 생산능력을 100만 대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 시장에서 애플의 존재감도 날로 확대되고 있다. 2023년 1분기에 애플은 처음으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20%)를 차지했다. 비보(18%), 오포(16%), 아너(16%)를 제쳤다. 한때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는 삼성전자의 자리였다. 지금은 점유율 0%대로 존재감을 잃었다.

   
▲ 중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수요 대체가 기대되지만 미국은 한국 반도체를 중국에 팔지 말라고 압박한다. 연합뉴스


정랭경온, 정랭경랭
미국 기업인들은 마음껏 중국 시장을 활보하며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지만 그렇다고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훈훈한 것은 아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싱가포르에서 2023년 6월2~4일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 앞서 중국과 양자 회담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오스틴 장관은 유감을 표하면서도 “중국 고위 관계자와 대화할 모든 기회를 환영한다”고 언급했다. 결국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미-중 양자 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회담 제의를 거절한 이유에 대해 “미국이 소통을 강화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우려를 외면하고 양국 군의 상호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이는 소통에 임하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정랭경온(政冷經溫), 정치는 차갑지만 경제는 따듯하다. 미국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중국을 상대하고 있다. 정치는 패권을 두고 다투지만 경제는 이익을 위해 웃음을 보낸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방국에 피해를 초래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맞서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명분은 보안 문제라고 하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전세계 디램의 95%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가 생산한다. 중국이 마이크론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제품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은 중국이 미국 반도체를 사지 않을 거라면 한국 반도체도 사지 말라고 주장한다. 마이클 매콜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6월2일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일본과 한국의 기업들이 마이크론이 잃은 시장점유율을 가져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매콜 의원은 서한에서 “일본과 한국의 기업들이 마이크론이 중국의 부당한 보이콧으로 잃은 매출을 가져가 마이크론을 약화하지 않도록 신속히 일본과 한국 정부와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의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해 한국 기업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다.
안 그래도 한국 기업들은 다양한 이유로 미-중 갈등의 유탄을 맞고 있다. 중국에 있는 대규모 반도체 설비에 장비를 반입하는 것도 미국 허락을 받아야 하고 배터리 소재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도 미국이 정해준 기준에 따라야 한다. 중국의 반격에 우리 기업이 반사이익을 보는 상황이 생기자 그것조차 못하게 막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불분명하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마이크론 문제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양쪽을 감안해 잘 판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한국 정부가 마이크론의 공백을 한국 기업이 채워도 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랬더니 재차 입장을 밝히며 ‘원론적인 취지였고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싸움의 당사자는 정랭경온인데, 중간에 낀 우리는 정랭경랭이다. 우리의 오랜 통상 원칙이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안미경중)이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갈등 기준을 잘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산업에 따라 내재화해야 할 부분과 교역을 이어갈 부분을 구분해 수출 규제, 자국 생산 지원, 우방국 협력 등 정책을 펴고 있다. 예를 들어 첨단 반도체 분야는 확실하게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태양광은 중국의 동남아 우회수출에 대해 모른 체하고, 일반 제품은 규제하지 않는다. 배터리 공급망은 우방국을 포함해 지원하고 있다. 산업적으로 단절되는 ‘디커플링’으로 보이지만 정작 2022년 미-중 교역액은 약 870조원으로 전년보다 5% 증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조차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종료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과 분리(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제거(디리스킹)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다변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 2023년 5월31일 중국 상무부를 방문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떠나기 전 왕원타오 상무부장과 인사하고 있다. 머스크는 방중 기간에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REUTERS

각자도생이 함께 사는 길
기업 경영의 자율성 역시 복잡한 통상환경 속에서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대중국 강경책을 쏟아내는 가운데서도 미국 기업들이 친중 행보를 보일 수 있는 것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은 큰 방향을 공유하면서도 기업들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목소리를 내는데, 한국은 기업이 정부 방침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다”며 “기업들의 반발이 오히려 정부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데 경직된 분위기가 아쉽다”고 말했다.
기업 이익보다 국익을 우선해야 하는 건 맞는다. 하지만 지금 어떤 목소리가 국익에 부합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세심하게 정책목표를 설정하고 각 경제주체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도록 지원해주는 편이 낫다. 지극히 혼란스러울 때는 각자도생이 함께 사는 길일 수 있다.

* 권순우는 경력 15년의 현직 기자다. 금융, 산업 등 다양한 영역을 취재하며 생생한 현장을 전한다.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머니투데이방송>을 거쳐 현재는 <삼프로TV>에서 ‘압도적 권순우: 압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격변과 균형>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가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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