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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메아리 넘어 예술적 논의 시작해야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미술품이 화폐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159호] 2023년 07월 01일 (토)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2016년 3월 서울옥션 본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호박’ 시리즈로 유명한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구사마의 <호박> 작품은 최근 초고가에 거래된다. 연합뉴스

미술품은 휴대와 이동이 쉬워 대부분 유동자산일 거라 생각한다. 이런 일반적 통념과 달리 미술품은 대부분 평생 소장한다. 대표적 고정자산인 부동산보다 거래상대방을 찾기 어렵고 수수료도 비싸 그 비용을 포함해 단기간에 원금을 회수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술시장 리포트는 경매시장에 다시 매물로 나온 작품을 근거로 평균 보유 기간이 7년이라거나 최근 더 짧아졌다는 등 미술품이 단기거래에 적합한 자산인 것처럼 자료를 발표한다. 하지만 전체 미술품에서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은 미미하며, 게다가 두 번 이상 출품되는 경우는 극소수다. 따라서 이 데이터로 보유 기간을 계산해 발표하면 극단적인 예외가 평균으로 둔갑한다. 미술품 가격지수가 그렇듯, 이때 통계는 수학이 아니라 마술이고 사실상 사기에 가깝다.
경매회사나 딜러 등 미술시장 종사자들은 고가의 작품을 팔기 위해 고객에게 유사시 단기에 현금화가 가능해 자금이 묶이지 않는다는 환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술시장에서는 판매한 작품을 일정 금액으로 되사주는 일종의 다단계 금융사기(폰지)가 유난히 극성이다. 이미 19세기 말에 프랑스 화가 마네의 친구 에밀 졸라는 소설 <작품>에서 더 비싼 값에 되사주기로 약정하고 작품을 팔아 인위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술시장에 호황이 찾아오면 유사한 방식으로 미술품 구매를 권하는 딜러들이 극성을 부린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가격은 언제나 투자 실패와 비싼 수업료 지급으로 끝난다.

다단계 금융사기 극성
손실로 귀결되는 투자는 계속될 수 없다. 되사주기 약정은 하지 않았지만 단기에 현금화가 가능하다고 홍보했다면 단기에 투자수익을 낼 수 있어야 장사가 지속된다. 그래서 미술시장은 소수의 특정 작가 작품을 억대, 수십억원대로 끌어올린다. 과거와 달리 성장이 정체되고 금리가 낮은데 과다하게 풀린 통화로 시중에 여유자금이 넘쳐날 때, 인위적인 가격 올리기는 화상뿐 아니라 컬렉터의 이해관계와도 일치한다. 인위적 가격은 이제 화상과 컬렉터의 공모와 담합으로 유지되고, 이때 고가 미술품은 예술에서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화폐 기능을 한다.
수억, 수십억원씩 호가하는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최근 한 민간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2021년 기준 순자산 상위 0.1%는 76억원 이상, 상위 1%는 29억원 이상을 보유한다고 한다. 수십억원대의 집값을 고려하면 사실상 억대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인구는 적게는 5만 명에서 많아야 50만 명이다. 수십억원대의 고가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인구는 5천 명(0.01%), 500명(0.001%) 내외로 급격히 줄어든다.
세계 주류 미술시장은 이 극소수를 위한 그들만의 리그다. 2022년부터 프리즈(Frieze)가 국내에서 아트페어를 연다. 프리즈나 아트바젤(Art Basel)의 메이저 갤러리들이 부스에서 판매하는 작품의 가격은 대략 1억원 내외에서 시작해 수십억원에 이른다. 적어도 1억원 정도의 작품을 살 여유가 있는 고객들을 만나지만 사실상 수십억원대 작품을 사는 최상위 부유층이 타깃이다. 상위 1% 계층을 고객으로 상대하지만 사실상 상위 0.01%, 0.001%가 핵심 고객이다.
서울 강남 아파트를 소유한 상위 1%도 가격이 내리면 굳이 집을 팔지 않아 ‘강남 불패’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인데, 상위 0.01%나 0.001%의 경우에는 자기와 유사한 이들끼리 보유한 수십억원대 자산을 가격이 내린다고 굳이 팔 이유가 있을까?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사회에서 최상위 부유층만이 소유한 자산은 사실상 가격 하락의 위험이 없다. 수량에 제한이 있고, 그 시장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관리자(전속 갤러리)가 있으며, 최상위 부자가 아니면 살 수 없어 그들끼리 나눠 함께 보유하는 자산, 이보다 안전한 자산이 있을까?
아시아 금융위기와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따른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팬데믹(감염병 대유행)까지 전세계 주요국들은 화폐 발행으로 경제위기를 막았고, 늘어난 통화량으로 화폐가치는 하락했다. 한편에서는 중앙집권적 화폐 발행에 이의를 제기하며 비트코인을 비롯한 블록체인 기반의 다양한 통화가 발행됐다. 다른 편에선 강남 아파트부터 초고가 미술품까지 안전자산을 화폐 대신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삼으면서 이런 실물자산이 화폐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자본의 목소리 아닌지 의심해야
미술품이 화폐 기능을 대신하는 순간 예술은 변질하고, 예술적 논의는 가치를 보전하려는 보조적 수사로 전락한다. 예술적 가치보다 제작 물량이 얼마나 되고, 작품군 질이 어떤 식으로 범주화되고 각 범주 내에서 얼마나 동질화되는지, 작품 분포는 어떠하며, 관리하는 갤러리의 수와 위상, 주요 소장가의 부와 성향 등 작품의 예술 외적 요소가 훨씬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미술전문가가 아니라 시장전문가가 더 중요해진다.
강남 아파트에 초고가 미술품을 걸어두고, 샤넬과 에르메스 같은 초고가 럭셔리 아이템을 소비하는 이들은 사실상 자신이 사서 비싸게 된 것을 지속적으로 사서 비싼 가격을 유지하는 동어반복의 메커니즘을 실행한다. 이처럼 의식주 전반에 걸친 동어반복적 소비가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이뤄지는 것은 새로운 계급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때 미술품은 가치 저장 수단이자 동시에 계급 표식으로 기능함에 따라, 이 순간 작품에 대한 예술적 논의보다 이 현상에 대한 경제·정치적 논의가 훨씬 유의미하고 중요해진다.
그나마 수십·수백·수천만원 가격대에서는 예술적 논의와 안목이 중요하지만, 수억·수십억원의 한정판 판화 작품이 이 가격대에 나오면서 이 시장마저 잠식한다. 그래서 우리 미술시장에선 예술적 논의도 경제·정치적 논의도 없이 오로지 시장의 소리만 존재한다. 시장은 동어반복이어서 “남이 사는 걸 사라” “제일 좋은 것, 제일 비싼 걸 사라”는 말만 들린다. 화상도 미술관도 심지어 평론가와 기획자도 한목소리로 합창할 때, 예술이 아니라 시장과 자본의 목소리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그리고 이제 한국 미술도 예술이든 경제든 정치든, 메아리가 아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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