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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디스토피아 “이의 있습니다!”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59호] 2023년 07월 01일 (토) 박중언 parkje@hani.co.kr

 

   
▲ 2023년 4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김영선 위원장의 주재로 열렸다. 연합뉴스


중견기업 P부장이 태어난 1963년 전후로 10년 이상 100만 명 넘던 신생아 수가 2022년 25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60년 전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아이의 수(합계출산율)는 0.78까지 줄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으로 낮다. 2021년부터 시작된 인구감소에 가속도가 붙었다. 초고속 압축성장을 달성한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출생과 인구를 줄이는 데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인구절벽’ ‘국가소멸’ 등 저출생 디스토피아 경고는 귀가 따가울 정도다. 하지만 일자리, 주택, 의료, 돌봄, 교육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은 참으로 아이 키우기 힘든 나라다. 번듯한 일자리가 줄고, 내 집 마련의 문이 좁아지고, 일과 삶의 불균형이 심해지고, 사회·경제·문화 불평등이 악화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담도 감당하기 힘든 터에 진학·취업 경쟁 과열로 부모 부양은커녕 제 앞가림조차 자녀에게 바라기 어려워졌다. ‘초등 의대반’ 열풍까지 분다. 지금 한국에선 출산 포기가 매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출산을 가로막는 요인이 종의 번식이라는 본능과 유전자의 명령을 거역하고 남을 만큼 강력하다.

긍정적 부작용
인구의 증감, 출생과 사망 등 인구동태는 노후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국민연금 개편이 대표적이다. 연금을 받는 고령자는 늘어나는데 일하는 젊은이는 급속히 줄어드니 연금 고갈 우려와 미래세대의 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모든 선진사회의 공통 과제이지만 우리의 저출생·고령화 속도가 너무 빨라 위기의식이 더 크다.
그러나 출산율 제고가 연금 문제의 근본 해법은 아니다. 세대 사이의 연대 의식을 높이고 부와 부담을 합리적으로 나누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다른 나라처럼 점진적으로 연금보험료를 올리고 더 오래 일하는 것은 기본이다. 명시적 합의가 나오지 않았을 뿐 이런 개편 방향은 이미 잡힌 상태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 중장년은 사실 일자리가 충분치 않아 더 일하지 못할 뿐이다.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의 대부분을 보유한 중장년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바친 그 부모 세대와 다르다. 노후자금과 자녀 몫 사이에 균형을 잡으려 한다. 최근 발표된 조사를 보면 2021년 기준 65~74살의 53.2%가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중’ 이상으로 생각했다. 이들은 노후자금의 보루인 국민연금이 감소한 만큼 자녀에게 물려줄 자산을 줄일 것이다. 또 소득이 적은 70%의 고령자는 세금으로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늘어 국민연금 감소분을 보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생과 인구감소의 다른 중대한 영향은 소비 감소와 성장 둔화다. 국내총생산(GDP)으로 대표되는 경제성장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대량소비 사회에서 소비 위축은 악몽이나 다름없다. 인구감소로 생산인력과 소비가 줄고 성장률이 떨어지면 일자리와 소득이 줄어 생활수준이 뒷걸음질하고 저소득층 생활고가 커진다는 게 많은 경제학자의 공통된 견해다.
그런데 최근 먼저 선진화·고령화한 사회의 변화를 보면 당연시됐던 이런 주장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실업률이 떨어지고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이 오히려 더 나아졌다. 빈 일자리보다 일을 찾는 사람이 적어 몇십 년 만에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거대 인구집단인 베이비붐 세대가 일터에서 완전히 물러나고 젊은 노동인구가 줄어든 바람에 벌어진 상황이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는 지금까지 줄곧 성장을 추구하고 성장률에 목맸다. 그러나 성장의 결과물은 부유층에 집중됐고 다수에게 돌아가는 부의 ‘낙수’는 찔끔거렸다. 세계 각국이 전례 없이 많은 돈을 풀어 만들어낸 성장조차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소비와 성장을 위해 안간힘을 쏟은들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노후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최근 선진국의 노동시장 변화는 오히려 낡은 성장이론의 반대쪽에 해답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낳는다. 줄어드는 인구가 소비 수요를 떨어뜨리겠지만 일자리 안정과 노동조건 향상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수출의 국민경제 기여도가 절반을 넘어 인구감소에 따른 국내 소비 위축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다. 저출생과 인구감소가 더 나은 일자리와 생활 여건으로 이어져 출산 욕구를 되살리는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인구감소의 역발상
인구가 감소하면 집과 갖가지 시설, 공장, 경작지 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집과 건물은 방치되고, 마을은 폐허로 바뀌고, 논밭은 잡초로 뒤덮인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 대도시는 그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사람을 빨아들여 지방 소멸을 앞당긴다. 지방자치단체의 간절한 노력과 베이비붐 세대의 귀촌 움직임이 그 속도를 조금 늦추겠지만.
폐허나 소멸이란 사람의 관점에서 본 변화다. 동식물, 자연, 지구의 관점은 정반대다. 사람이 떠나는 것이 곧 생태계 복원의 출발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가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친 땅과 더럽힌 바다를 원상태로 되돌리는 길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인구는 지금(약 80억 명)의 3분의 1에 미치지 못했다. 살던 동네가 사라지는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나 온실가스와 쓰레기로 신음하는 지구가 숨통을 틔우는 데 도움이 된다.
현재 인구(이주자 제외)의 감소는 대부분 선진국에서 일어난다. 선진국의 1인당 온실가스와 쓰레기 배출량은 다른 나라의 몇 배에 이른다. 먹지 않고 버리는 음식과 끊임없는 새것의 생산으로 쓰레기가 되는 물건이 홍수를 이룬다.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생활방식 개선과 함께 인구감소는 사람과 지구가 공생하는 시대를 더 일찍 열지 모른다.
그런 시대가 바람직하다면 초고령화에 따른 소비 부족이 그리 걱정스럽지 않을 것이다. 또 저출생과 초고령화는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니다. 인구가 급증한 기간이 50년도 되지 않은 것처럼. 20만 년이 넘는 현생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눈 깜짝할 순간이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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