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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권위·국가주의, 노동계 분열 뿌리 깊어
[ISSUE] 프랑스가 사회적 타협에 실패하는 이유
[158호] 2023년 06월 01일 (목) 기욤 뒤발 economyinsight@hani.co.kr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사회문제는 법으로 다스리거나 길거리에서 바리케이드로 해결한다. 그러나 사회적 타협으로 가는 길이 없지 않다.


기욤 뒤발 Guillaume Duva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3년 4월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 엘리제궁에서 시민 자문기구인 ‘184 프랑스 시민들’과 만나 ‘삶을 끝내는 프랑스식 모델을 담은 법안’ 추진 의지를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연금개혁안을 강행해 사회갈등을 키우고 있다. REUTERS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강행한 연금개혁이 사회갈등에 불을 붙였다. 프랑스에서 이런 사회적 재난이 생길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이 나라는 어째서 사회적 타협을 하지 못하는가? 파업과 시위는 왜 끊이지 않는가? 이웃 나라에서 파업과 시위는 어쩌다 한번 벌어지는 커다란 사건이다. 프랑스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드물게 일어난다. 프랑스에서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다른 방안은 없는가?
이야기는 프랑스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혁명은 많은 사람이 아는 것과 다르게 경제와 노동 분야에서 자유주의가 가장 크게 발전한 순간이었다. 당시 혁명을 주도한 이들이 우선 추진한 과제가 동업조합(Coporation)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그들 눈에 동업조합은 국가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혁명주의자는 동업조합 해체로 만족하지 않았다. 1791년 알라르드 데크레(행정명령)와 르샤플리에법을 만들어 어떤 노동조합이나 교섭단체도 결성하지 못하게 했다. 법안을 발의한 이작 르샤플리에는 입법의회에서 법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누구도 국민(개인)에게 중간이익을 선전하거나, 집단주의 사상으로 국민을 공동의 것에서 분리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공화국은 국가와 국민 사이에 어떤 ‘중간집단’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서방국에서는 노동운동이 서서히 발전했다. 프랑스는 1864년에야 이전까지 범죄로 규정하던 파업과 결사 행위를 허용했다. 노조의 존재는 1884년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어긋난 만남
노조와 노동거래소가 통합해 만든 노동총연맹(CGT)은 1906년 아미앵헌장을 발표하고 사회주의 단체와 단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회주의 세력은 그보다 1년 전 연맹을 결성한 상태였다. 프랑스와 달리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노조와 사회주의 진영이 힘을 합쳤다. 그 기회를 놓친 프랑스에선 노동운동이 분열돼 오랫동안 힘을 잃었다. 노조활동이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날도 그만큼 늦춰졌다.
그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프랑스에서 사회적 교섭은 매우 제한됐다. 조르주 클레망소(제3공화국 총리)를 필두로 정부는 노조활동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노동총연맹은 전시경제 체제에 적응해 발전했다. (당시 노동총연맹은 전쟁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으로 갈렸다. 전쟁을 지지하는 노조원은 조병창 등에서 파업을 주도하며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조의 입지를 확대했다. -편집자)
1917년 러시아혁명과 그 영향으로 프랑스 노동자들은 다시 분열하고 노동운동은 힘을 잃었다. 반대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노조, 사회당, 공산당 동맹이 벌인 대규모 반파시즘 운동과 이후 탄생한 정당인 인민전선, 단체협약·직공장기구·임금인상·유급휴가·주 40시간 근무제 등 ‘사회적 쟁취’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일화는 몇 달 가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정부의 거친 탄압이 이어졌다. 국가레지스탕스위원회(CNR) 프로그램과 노조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계획총국의 국가재건계획은 노조활동을 다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후 시작된 냉전시대는 이를 또다시 분열, 약화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탄생한 프랑스 제5공화국은 노사교섭에 큰 관심이 없었다. 초대 대통령 샤를 드골은 1967년 사회보장제도에서 노동조합을 아예 제외했다. 물론 직후 일어난 68혁명을 계기로 노동자 권리가 다시 확대됐다. 하지만 연이어 집권한 우파 정부와 사용자단체는 사회갈등이 고조되고 경제위기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노사 교섭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 2008년 10월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유럽연합 주요국 정상들이 금융위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프랑스 관료주의 세력이 비상사태 해법으로 국가주의 회귀를 내세우는 구실을 제공했다. REUTERS

제5공화국
1981년 정권을 잡은 좌파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가주의와 과격한 자코뱅주의로 물든 당시 좌파 진영은 노조를 불편하게 여겼다. 그렇게 노조활동이 약해지고 노동자 사이의 분열이 심해졌다. 연대단결민주(SUD), 자율노조연합(UNSA), 단일노조연맹(FSU) 등 새 노조가 생겨났다.
2세기가 지난 지금, 프랑스에서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법으로 다스리거나 길거리에서 바리케이드로 해결한다. 여기에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 멀리서 보면 낭만적이다. 그러나 경제·사회적 효율성을 따지면 북유럽과 독일 같은 이웃 나라의 문제해결 능력이 탁월하다. 이들 나라는 프랑스와 달리 쉽게, 꾸준히 사회적 타협을 맺는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들 나라에선 큰 충돌을 겪지 않고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까닭에 그곳 경제는 프랑스 경제보다 혁신적이고 탄력성이 뛰어나다. 그래서 인건비가 높은데도 제조업이 강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프랑스처럼 구조적 갈등이 심하다. 그러나 프랑스와는 다르다. 노동자가 이념으로 분열됐지만 사회적 계약 문화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사회적 재건’의 비화
2000년대 들어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프랑스 사회에는 긴장이 팽팽했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공감대가 이뤄졌다. 노동에 관한 법규가 많고 협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노사 교섭의 장을 확대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는 당시 ‘사회적 재건’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에르네스트-앙투안 셀리에르가 이끄는 프랑스 경제인연합회(MEDEF)와 니콜 노타가 위원장으로 있던 노동민주연맹(CFDT)이 사회적 재건을 주도했다. 공화당과 분리돼 프랑스 제도권에서 자리를 찾던 노동총연맹(베르나르 티보 위원장) 역시 사회적 재건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2006년 노동총연맹은 노동민주연맹, 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총연맹(CGPME)과 같은 자리에 서서 노조 대표성을 바꾸는 개혁안에 찬성했다. 기업에서 투표 결과로 노조 대표성을 결정한다는 것이 뼈대였다.
이런 개혁 의지는 정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집권 당시 그 의지를 실현하지 않은 좌파는 우파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개혁 시도에 참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라르 라르셰 현 상원 의장은 자크 시라크 정부의 노동장관 시절 개혁으로 가는 법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라르셰법은 정부가 노동자 권리와 관련한 법안을 입안하기 전 노사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노사가 모두 협의안에 동의하면 그 협의안은 법이 됐다. 니콜라 사르코지도 대통령 임기 초에 기업의 노조 대표성을 바꾸는 변화를 지지했다. 모든 단계에서 사회적 합의를 쉽게 할 수 있고 노사협의안의 민주적 합법성을 확대하려 했다. 사실 프랑스 사회의 노동개혁 과정은 참된 열의 없이 뒷걸음질하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라르셰법은 허점이 많고 드물게 적용됐다.
2008년 금융위기와 이후 연이어 발생한 위기는 관료주의 세력이 비상사태에서 벗어날 유일한 해법으로 국가주의 회귀를 내세우는 구실을 제공했다. 그리고 노조 대표성 개혁은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좌초하고 말았다. 개혁의 본래 취지는 노동총연맹과 노동민주연맹을 비롯한 노조들이 단결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협의안이 채택되려면 전체 노조 구성원의 50%가 동의해야 한다는 조건이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노동총연맹이 힘을 잃자 노동민주연맹과 그 ‘개혁주의’ 동맹 노조만으로 필요조건인 50%를 넘을 수 있게 됐다. 노동총연맹은 자연히 반대 진영으로 떠밀렸다. 노조 대표성 개혁이 노조 간 분열을 줄이기는커녕 외려 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임기 초 노동개혁 과업에 다시 힘을 불어넣으려 했다. 그 시도는 마뉘엘 발스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경제장관이 이끄는 자코뱅주의와 권위주의 기관에 곧바로 굴복해야 했다. 두 사람은 누가 더 반사회적이고 경제자유주의적인지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는 동안 좌파 세력이 통째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모두가 목도했다.
 

   
▲ 2023년 4월6일 프랑스 파리에서 노동총연맹과 노동민주연맹 등 주요 노조 지도자들이 단일대오를 꾸려 정부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REUTERS

네 가지 출구
마크롱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노동명령을 발표하고 그동안의 노동개혁 시도와 정반대 길을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것은 국가주의와 권위주의였다. 그는 첫 임기 초반 전례 없이 부당한 조세정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길고 폭력적인 저항으로 기록될 노란조끼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두 번째 임기 시작부터 연금개혁안으로 격렬한 사회운동에 불을 붙였다.
정부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노조들은 처음으로 하나 되어 책임의식을 갖고 비폭력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를 나약함의 신호로 읽은 정부는 노란조끼운동 때보다 더 비타협적인 태도로 개혁안 처리를 강행했다. 프랑스가 이런 뒤틀린 역학관계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힘에 밀린 프랑스는 민주·경제·사회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탈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권위주의 관행과 타협에 대한 거부는 프랑스 역사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하지만 이는 또 그런 역사가 타고났거나 비가역적인 것은 아님을 뜻한다.
출구에는 네 방향이 있다. 첫째, 옛날식 구조에 갇힌 프랑스 기업의 경영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독일 등 게르만계 나라의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면 된다. 그곳에서 기업은 노동자 대표에게 프랑스보다 훨씬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직원 수 5명 이상인 사업장은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 노동자 대표에게 전체 의결권의 50%를 줘야 한다. 이사회뿐 아니라 기업위원회가 광범위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기구에 예외 없이 적용된다.
둘째, 흩어진 노조단체들이 단결 또는 통합하도록 압력을 높여야 한다. 지금과 같이 분열된 환경에서 프랑스 노조는 교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협의안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과반수 규정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50%인 현행 기준을 66.6% 또는 75%로 높여야 한다. 이 방안을 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노동총연맹이나 연대단결민주 같은 노조는 타협을 무조건 거부하므로 이들과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체된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총연맹과 연대단결민주는 자신들의 책임이 중요해지면 비타협적 태도를 고수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소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자 대표의 실질적 존재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지점에 노동자 대표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동네 상가와 서비스업체의 대부분은 프랜차이즈다. 노조운동과 정계 좌파가 쇠락하고 극우파가 성장한 데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를 외면한 탓이 크다. 마지막으로 라르셰법을 직업 단위로 적용해 국가 차원에서 노동민주주의와 정치민주주의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경제사회환경위원회(CESE) 권한을 확대하고 사회보장제 관리 방식을 개혁해 경제부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이들 계획을 이끌 추진력이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는 강경한 순수 자유주의자와 자코뱅파 민중주의자가 오른쪽과 왼쪽 양극으로 갈라져 있다. 이 나라의 미래는 권위주의와 국가주의의 페이지를 넘기고 사회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느냐에 달렸다. 중세 프랑스의 영웅 기욤 도랑주는 이렇게 말했다. “간절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고, 성공하지 않아도 전진할 수 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3년 4월호(제433호)
Pourquoi la France est-elle incapable de passer des compromis sociaux?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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