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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사각지대’가 낳은 주가조작 폰지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삼천리 등 8개사
[158호] 2023년 06월 01일 (목) 찬호 Sodohun@naver.com

 
찬호 공인회계사
 

   
▲ 주가조작 세력이 대상으로 삼은 도시가스 소매업체 삼천리의 최근 1년간(2022년 5월~2023년 5월) 주가 변동. 주가가 매일 조금씩 장기간에 우상향하도록 조작해 의심을 덜 받게 했다.


2023년 4월 국내 증시에 상장된 8개 종목의 ‘신종 주가조작 사건’ 실체가 드러나자 뒤늦게 경험담이 쏟아지고 있다.
필자의 한 지인도 “리딩방에서 ‘삼천리’ 투자를 추천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4월 말 삼천리를 포함한 8개 종목의 주가 폭락 직전에 투자 주식을 처분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중견회사의 지배주주 일가인 한 자산가도 “주변에서 이 종목들을 ‘적금’이라 생각하고 사라더라”라고 했다. 다우데이타, 다올투자증권, 대성홀딩스, 삼천리, 서울가스, 선광, 세방, 하림지주의 시세 조종 의혹을 받는 세력이 얼마나 활개 쳤는지 엿볼 수 있다.
이 사건은 단순 통정 거래 등 주가조작 의혹을 넘어 ‘폰지 사기’에 가까운 구석이 있다. 신규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8개 종목의 주가를 계속 올리는 방식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투자자 모집이 어려워지면 무너질 신기루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이런 초유의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3가지 사각지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관심의 사각지대
먼저 투자컨설팅업체 호안의 라덕연 대표 등이 타깃으로 삼은 8개 종목은 ‘소외주’라는 공통점이 있다. 매년 안정적 이익을 내지만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회사들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삼천리의 7년간 영업이익 합계액은 약 5500억원, 키움증권을 종속회사로 둔 다우데이타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 합산액은 약 4조69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 종목들은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주식거래량이 적을 뿐 아니라 대주주 경영권 승계 작업 탓에 주가가 억눌렸다는 인식도 시장에 함께 퍼져 있었다. 지분 승계 때 대주주가 내야 하는 상속·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가 인위적으로 낮게 형성된 전형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형 종목이라는 의미다. 이런 시장의 무관심은 외려 특정 세력이 가격을 좌우할 텃밭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주가가 매일 조금씩, 그러나 장기간에 우상향하면서 조작 의심을 덜 받았다는 얘기다.

규제의 사각지대
증권사들의 주가 과열 경고도 주목받지 못했다. 한 예로 유진투자증권은 2022년 11월 펴낸 보고서에서 “삼천리는 가스전을 보유하지 않은 가스 유통 업체인 만큼, 세계 가스 가격 상승이 회사의 자산 가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천리는 한국가스공사에서 구매한 천연가스를 배관으로 경기도와 인천 일대에 공급하는 도시가스 소매업이 전체 매출의 약 70%를 차지한다. 가스 가격 변동과 이 회사의 수익성은 직접적 연관성이 없지만 이런 사실관계는 눈길을 끌지 못했다.
이번에 주가 견인 도구로 사용된 건 신종 ‘빚투’(빚내서 투자) 상품인 차액결제거래(CFD)다. 차액결제거래는 투자자가 보증금(증거금)을 내면 증권사가 돈을 보태 주식을 대신 매매한 뒤 향후 차익을 정산하는 장외 파생 계약이다. 국내에선 매수 대금의 40%를 증거금으로 맡기면 증권사가 60%를 빌려줘 내가 가진 돈의 최대 2.5배만큼을 투자할 수 있다. 예컨대 투자자가 4억원을 내면 증권사가 6억원을 더한 10억원을 대신 투자한다.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가 차익을 얻지만, 반대로 내리면 증거금을 추가로 채워넣거나 자칫 투자 원금을 넘는 손실을 본다.
세력이 차액결제거래를 동원한 건 높은 접근성과 익명성이라는 장점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날개를 달아준 건 금융 당국이다. 2019년 말 차액결제거래를 이용할 수 있는 ‘개인 전문 투자자’ 기본 요건을 기존 금융투자 상품 잔고 ‘5억원 이상’에서 ‘5천만원 이상’으로 완화하며 거래가 급증했다.
차액결제거래는 과거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부실 상장사 투자에 이용했던 총수익스와프(TRS)와 같이 거래 내용 정보가 ‘깜깜이’라는 특징도 있다. 실질적 투자자가 아니라 주식을 대신 사주는 증권사 명의만 외부에 공개되고 종목별 거래 잔고도 알기 어렵다. 상장사 대주주에게 과세하는 주식 양도소득세 세율(20~30%)보다 낮은 파생상품 양도세율(11%), 증권사 신용공여 한도(자기자본의 100%)에 차액결제거래가 포함되지 않는 점 등도 다른 금융상품엔 없는 규제 차익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사각지대는 국내 주가조작 사건의 제재와 처벌에 있다. 라 대표와 가수 임창정씨 등이 “우리도 손실을 입은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2023년 2월 1심 재판부가 ‘실패한 시세 조종’이라는 이유로 이 사건으로 기소된 9명 중 6명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2명은 무죄)하는 등 솜방망이 처벌을 한 전례를 의식하지 않았냐는 거다.

처벌의 사각지대
실제 우리 자본시장법은 주가조작 사건의 처벌 수위를 범죄로 얻은 ‘부당이득액’ 규모에 견줘 정하도록 한다. 이 부당이득의 산정 기준이 모호한 까닭에 양형은 물론 벌금도 쥐꼬리만큼만 물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가조작으로 감옥에 가도 남는 장사’라는 말이 생긴 이유는 이런 제도의 허점을 방치한 채 가벼운 처벌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과 닮은꼴로 2007년 발생한 코스닥 상장사 ‘루보’ 주가조작 사건이 회자된다. 루보 사건의 주범인 김아무개씨가 실형을 살고 출소한 뒤 또다시 비슷한 주가조작을 시도하다 덜미 잡힌 걸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그대로 두면 선량한 투자자의 고통은 반복될 것이다.

* 10여 년간 자본시장 언저리에서 밥벌이하는 공인회계사다. 시장 거품을 늘 걱정하지만, 우리가 숨을 거둔 뒤에도 자본시장은 계속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모두에게 공개하는 재무제표 등 공시 정보를 통해 기업의 속살을 톺아보는 글을 독자와 함께 나누려 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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