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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좋은 이웃이자 오랜 적
[집중기획] ‘차이나 리스크’ 새로운 시선 ③ 중-러 접경지역 르포
[157호] 2023년 05월 01일 (월) 게오르크 파리온 economyinsight@hani.co.kr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근 행보만 본다면, 중-러 양국은 역대 최고 밀월 움직임을 보인다. 그렇다면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의 연출된 장면 이면에 중국인들은 일상에서 이웃 국가 러시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여전히 러시아를 향한 과거의 앙금을 가진 중국인들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양국의 과거사 그늘이 짙게 남아 있다. <슈피겔> 취재진이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방문했다.

게오르크 파리온 Georg Fahrion <슈피겔> 베이징 특파원
 

   
▲ 2019년 12월 아무르강 러시아 지역인 블라고베셴스크의 강 너머로 중국 헤이룽장성 헤이허의 화려한 야경이 보인다. 헤이허는 러시아의 ‘컴백홈’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REUTERS

중국 국경경비대 소속 군인 세 명이 지금으로부터 54년 전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뻔했던 지역으로 향하는 도로를 통제 중이다. 이들은 중국 북동부 끝자락의 눈으로 뒤덮인 숲에 있다. 군인 셋은 손에 몽둥이와 플렉시글라스(투명한 특수아크릴 합성수지) 표지판을 들고 있다. 앙상한 자작나무 사이로 얼어붙은 우수리강이 보인다. 강의 다른 쪽은 러시아 영토다. 군인 셋 중 한 명이 강 건너편을 ‘군사통제지역’이라고 주장한다.
공식적으로 중국 헤이룽장성의 전바오섬은 대중에게 개방된 관광공원이기는 하다. 그러나 중국 쪽에서 도로로 연결된 전바오섬의 사진 촬영은 기자에게 금지됐다.
중-러 국경 우수리강에 있는, 면적 0.7㎢에 불과한 전바오섬을 놓고 양국 국경경비대가 1969년 3월 2주간 무력 충돌을 빚었다. 1950년대 말 이후 중-소 이데올로기 대립이 가장 첨예화돼 일어난 사건이었다. 1969년 3월2일 중국 국경경비대가 전바오섬은 중국령이라 주장하며 주둔한 소련 국경경비대를 기습해 31명을 살해하고 점령했으나, 15일 소련의 계획적인 대규모 반격을 받고 패퇴했다. 당시 소련 정보에 따르면 1969년 국경분쟁으로 중국 군인 800여 명이 죽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상황이 진정되기 전까지 철천지원수이던 양국은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다.
 

   
▲ 중국 방문객들이 헤이룽장성 헤이허 근방에 있는 아이후이 역사박물관에서 1900년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자행된 러시아 제국의 중국인 대학살을 그린 벽화를 보고 있다. 이 지역 중국인들에게 러시아는 좋은 이웃이자 오랜 적이다. REUTERS

푸틴, 시진핑 극진히 대접
2023년 3월20~2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양국 정상에게서 과거사로 얽힌 불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 의전을 위해 모스크바 시내 거의 절반을 통제했고, 고위급 연회 전용인 크렘린의 성 게오르기홀에서 시 주석을 위해 성대한 환영식을 열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중-러 신시대 포괄적·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과 ‘2030년 경제협력 중점방향 발전계획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그리고 시 주석은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영토 반환이나 러시아군 철수 등 핵심 쟁점은 다루지 않는 것으로 융숭한 대접에 화답했다.
이번 시 주석의 모스크바 국빈 방문은 양국 정상의 40번째 만남이었다. 양국 정상은 서로의 생일을 챙기기도 하고, 서로를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를 자랑한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서로의 개인적 인연을 강조하는 모습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미국을 향한 적대감으로 중-러는 밀월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실제 양국 관계는 이중적이다. 중국은 과거에 러시아와 변화무쌍한 관계를 맺었다. 적잖은 중국인이 실용주의적으로 러시아와 좋은 이웃으로 남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팽창적 제국주의 국가이자 중국에 전쟁을 일으키고 넓은 영토를 차지한 점령자로 중국인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았다.
3천㎞에 육박하는 러시아 국경선이 지나는 중국 헤이룽장성은 러시아와 변화무쌍한 역사를 공유하는 양국의 이중적 관계를 관찰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다. 헤이룽장성 주민들은 러시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어느 추운 저녁, 후훙(72)이 헤이룽장성의 성도 하얼빈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루스란트’(Russland·러시아) 식당에서 아코디언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 있다. 직원이 연어알을 올린 팬케이크와 오이피클을 손님에게 서빙하고 있다. 벽에는 철도 역장들의 흑백사진과 후훙의 러시아 태생 증조할머니의 유화가 걸렸다. 증조할머니는 1917년 10월 혁명 직후 러시아의 실질적 식민지이던 헤이룽장성으로 피란 왔다. 당시 하얼빈에는 러시아인 10만여 명이 거주했다. 현재 하얼빈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은 기껏해야 200~300명이라며 “어쩔 수 없지요”라고 후훙은 체념한 듯 웃는다.
후훙은 러시아와 헤이룽장성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산증인이다. 그의 어머니는 러시아인이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전만 해도 후훙은 자료를 수집하러 러시아를 자주 방문했다. 하얼빈의 러시아인·중국인 이야기를 담은 그의 책이 출입문 옆 벤치에 판매용으로 진열돼 있다.
 

   
 

중-러의 변화무쌍한 역사
저술 활동은 후훙에게 ‘세컨드 잡’이다. 레스토랑 손님 수로 본다면 요식업 역시 요즘 특별히 경기가 좋지 않다. 후훙이 제대로 돈을 벌었던 것은 일본에서 20년간 건축가로 일할 때였다. 그는 당시 세상에 눈뜨게 됐다.
“나는 푸틴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여러 업적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십만 명이 죽었다. 이것은 명백한 범죄다.” 친구 중에는 자신과 견해가 같은 이도 있고 다른 이도 있다. “시진핑과 중국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은 당연히 러시아도 좋아하지 않는다. 양국 정부가 상당히 밀접하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후훙은 자기 이야기를 기사에 인용해도 좋다고 했다.
중국에는 ‘천고황제원’(天高皇帝遠·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다)이라는 격언이 있다. 지역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중앙정부의 권력이 닿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의 친러 행보가 멀리 떨어진 헤이룽장성까지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을까?
헤이허에서 러시아는 무척 가깝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머나먼 일처럼 느껴진다. 헤이허는 아무르강(헤이룽강) 중류에 있는 도시로, 아무르강은 헤이룽장성 이름이 유래된 강이다. 강바닥에 깔린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을 통해 2019년부터 러시아 천연가스가 중국으로 공급되고 있다. 헤이허 외곽의 한 가스압축 기지에서 가스관이 얼어붙은 땅을 뚫고 지표면 위로 솟아 있다.
택시기사 장하이옌(35)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를 향한 내 생각은 바꾸지 않았다”고 헤이룽 강변 국도를 운전하며 말했다. 이 여성이 애용하는 러시아 브랜드 샴푸 가격이 두 배나 뛰었다고 한다. 이 외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자기 삶에 딱히 영향을 끼친 것은 없다고 한다.
장하이옌 가족은 헤이룽 강변 반대편에 있는 러시아를 자주 방문했다. 그의 오빠는 헤이허의 강변 반대편에 있는 쌍둥이 러시아 도시 블라고베셴스크를 며칠 일정으로 방문 중이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블라고베셴스크에 가본 지 오래돼 그냥 방문했다고 한다. 2023년 2월에야 중국과 러시아 국경이 다시 열렸다.
장하이옌이 마지막으로 러시아에서 휴가를 보낸 것은 2017년이었다. 그는 남편과 함께 러시아의 태평양 섬 사할린에 이민 가서 수박을 재배하는 동창을 만나고 왔다. “나도 기회만 된다면 러시아에서 일하고 싶다. 그러지 못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러시아에서의 삶이 덜 힘든 것 같다. 러시아인은 야근도 하지 않고 정해진 업무 시간에만 일한다.” ‘둘 중 어느 나라가 더 발전한 것 같냐’고 묻자, 그는 의외의 질문이라는 듯 “중국이요!”라고 확신에 차서 답한다. 다른 대답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지금 중국의 경제력은 러시아 경제력의 10배에 이른다. 많은 중국인이 이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경제력으로 추월하기 시작한 이후 러시아를 무시하는 중국인도 생겨났다. 과거에 양국의 권력관계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소련은 중국 공산당을 만들다시피 했고, 1949년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발전을 도왔다.
헤이허 시내 리모델링된 한 박물관은 이러한 양국 역사를 들려준다. 이 박물관에는 레닌 흉상이 전시됐고, 양국 간 선구자적 지원·연구 프로젝트와 스포츠 친선 경기 등의 역사가 설명됐다. 박물관의 마지막 전시 공간에는 악수하는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사진이 황금 사진 프레임에 걸렸다. 박물관은 누구나 입장할 수 있고, 직원들은 외국인 방문객을 친절하게 맞이했다.
 

   
▲ 진바오섬을 둘러싸고 중국과 소련의 갈등이 고조됐던 1969년, 소련 선박이 중국 어선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Dutch National Archives

너무 다른 두 박물관
헤이룽장성의 다른 박물관에서는 양국 관계에 대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후이 역사박물관은 헤이허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현대적 건물에 있다. 장하이옌이 박물관 입구에 택시를 세우자, 박물관 직원이 출입문에서 황급히 나오며 방문객들의 국적을 물어본다. 러시아인은 박물관 입장이 금지됐다. 러시아와 중국의 공식적 관계가 최상인 때, 박물관에 러시아인을 입장시켰다가 가해자 러시아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체면을 구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아이후이 역사박물관은 앞서 나온 박물관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중-러 역사를 들려줬다. 17세기 중반부터 헤이룽장성 거주지역에서 중국 군대는 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던 러시아 코사크 부대와 빈번하게 충돌했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았고, 지형과 지세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확정된 국경선도 존재하기 전이었다.
중국은 과거에 러시아와의 일련의 전쟁과 불평등조약으로 프랑스 면적의 영토를 러시아에 침탈당했다. 박물관 직원이 묻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여하튼 이것이 우리의 역사적 관점”이라며 “블라고베셴스크에 우리와는 다른 역사를 들려주는 박물관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후이 역사박물관에는 러시아의 잔혹한 전쟁범죄를 자세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디오라마(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해 하나의 장면을 만든 것)가 전시됐다. 1900년 블라고베셴스크의 악명 높은 중국인 대학살 사건이다. 당시 러시아 카자크 부대는 주검 수천 구가 둥둥 떠다니던 헤이룽강으로 중국인들을 몰아넣었다.
그렇게 러시아는 1900년께 중국 북동부에서 지배세력이 됐다. 러시아의 차르들은 중국 북동부 지역에 매장된 광석과 석탄에 군침을 흘렸다. 러시아는 중국에 철로를 깔았고, 하얼빈을 철도교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블라디미르 레닌 정권에야 러시아 제국은 황제가 가지고 있던 중국에서의 특권과 이익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 1969년 3월2일 중국 국경경비대가 전바오섬에 주둔한 소련 국경경비대를 기습해 소련 쪽 군인 31명이 사망했다. 2009년 3월 사건 40주년을 맞아 당시 숨진 군인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러시아에서 열렸다. REUTERS

러시아, 중국 북부 자원 약탈
헤이허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불행한 과거사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헤이허는 러시아의 당일치기 관광객과 사업가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과거 매일 러시아인 1천여 명이 헤이허를 찾았다. 이제는 헤이허 중심지에서 러시아인은 코빼기도 보기 힘들다. 러시아와 중국은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다!”고 장하이옌은 말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국경 통제가 공식 해제된 뒤에도 러시아 방문객이 늘어나지 않은 이유를 많은 중국인이 궁금해한다. 장하이옌은 중국이 러시아인의 입국 규정을 까다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틱톡에서 알게 됐다. 강변에서 순찰하는 중국 경찰은 다른 이유를 댄다. “러시아는 전쟁 중이며, 경제가 좋지 않다. 그래서 러시아인이 헤이허를 방문할 여력이 없다.”
빵가게 주인 수바오유도 러시아 직원이 돌아와 다시 일하기를 바란다. 러시아 직원의 베이킹 레시피 덕택에 빵가게가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직원이 만든 티라미수와 에그타르트는 헤이허에서 최고라고 알려졌다.
수바오유는 러시아 직원에게 급여로 1만위안(약 191만원)을 지급했는데 이는 적지 않은 돈이다. 러시아 직원은 그 정도 급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인재였다. “러시아 직원은 국경을 넘어올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과거와 달리 남자가 러시아 국경을 벗어나는 것을 더는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그렇게 헤이허는 러시아의 ‘컴백홈’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명칭의 매장, 푸틴 초상화가 그려진 마트료시카 인형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 등이 입점한 쇼핑몰이 러시아 관광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사와 무관하게 헤이허에서는 누구도 이웃 국가 러시아에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다. 이제 중국이 명명백백하게 더 강하고 러시아는 약해졌기 때문이다. 헤이허에서는 러시아에 동정심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 강변 반대편에서 기다란 깃대에 달린 러시아 국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도 마치 자기 존재를 반항적으로 알리는 듯하다.

헤이허 주민들, 러시아 동정도
헤이허의 한 식당에서 서빙하는 ‘우크라이나 소시지’에 러시아 미니 국기가 꽂혀 있다. <슈피겔> 취재진이 이유를 물어보자 식당 주인은 멈칫하더니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지금까지 이렇게 했다고 답한다. 소시지는 소시지일 뿐, 그냥 러시아 요리라는 것이다. 식당 주인은 “현 상황에선 그래도 우크라이나 소시지에 러시아 국기를 꽂는 건 부적절한 것 같다”며 웃는다. 이제는 소시지에 중국 국기를 꽂아야겠다고 식당 주인은 말한다.

ⓒ Der Spiegel 2023년 제13호
Guter Nachbar, alter Feind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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