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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연결 막는 ‘선택적 장벽’의 후폭풍
[FINANCE] 브렉시트가 말해주는 것
[156호] 2023년 04월 01일 (토)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0년 12월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앞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경제 성장은 정체 상태다. REUTERS


2016년 6월 영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묻는 투표였다. 탈퇴안이 가결되고 2020년 1월 영국은 끝내 유럽연합과 헤어졌다. 영국만이 아니라 세계가 혼란스러워했다. 후폭풍 우려가 빗발쳤고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했다. 하지만 당시 브렉시트를 주도한 이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영국 총리이던 보리스 존슨은 “영국은 수십 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을 재발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리라 기대했다. 탈퇴 확정 뒤 3년 남짓 지났다. 전환기간(유럽연합과 영국이 모든 것을 브렉시트 이전과 똑같이 유지하도록 합의한 기간인 2020년 12월31일까지) 이후부터 따지면 2년2개월 정도다. 과연 영국은 강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영국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영국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가장 낮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은 암울하다. 2023년 영국이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을 허약하게 한 데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가장 부정적 영향을 끼친 변수는 무엇일까? 브렉시트를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브렉시트의 후폭풍을 분석하는 건 단순히 영국 경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는지 이해하려는 것이다. 현재 세계는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려 한다. 초세계화 대신 선택적이고 전략적인 ‘재세계화’를 꾀한다. 기존 질서의 재편이다. 브렉시트로 우리는 간접적이나마 그 부작용을 경험해볼 수 있다.

이례적 영국 물가
2023년 2월 초 영국은 혼란에 빠졌다. 무려 50만 명이 파업에 나섰다.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2011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공공부문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임금인상은 언제나 파업의 주된 이유다. 이번에는 다르다. 영국의 살인적 인플레이션이 노동자를 거리로 내몬다.
영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은 최악이다. 2022년 4월 7%를 넘더니 7월부터는 10%대 물가상승률을 보였다. 11월부터 상승폭이 줄지만 여전히 10%대다. 미국도 물가가 치솟았지만 같은 기간 한 번도 10%대에 이른 적이 없다. 2023년 1월 물가상승률을 보면 영국 10.1%, 미국 6.4%, 한국 5.2%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2022년 5월부터 5%대다. 그런데도 대부분 살기 어렵다고 한다. 10% 넘는 물가상승률 속에 사는 영국인들은 어떨까? 거리로 뛰쳐나오는 게 당연하다.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그런데 영국의 물가는 유로존 지역에 비해서도 높다. 유로존 2023년 1월 물가상승률은 8.6%였다.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으로 위축됐던 경제활동 재개 등의 요인은 영국이라고 특별할 게 없다. 이유가 있다면 브렉시트를 들 수밖에 없다.
섬나라인 영국은 외국에서 많은 재화를 수입한다. 브렉시트는 수입 절차를 복잡하게 하고 관세를 높였다. 파운드화 약세까지 겹쳐 수입물가가 올랐다. 애덤 포즌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영국의 물가상승률이 높은 원인의 80%는 브렉시트와 관련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 무역은 유럽연합이라는 단일시장에서 이탈해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유럽연합에서의 수입이 약 25% 줄었다. 이 흐름은 2021년까지 지속됐다. 이후 약간 증가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현재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 제품에 대한 국경 검수제도 도입을 계속 미루고 있다. 무역장벽이 높이 세워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유럽연합과의 교역은 줄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은 최근 유럽연합과의 무역이 공식 데이터보다 줄어 생산성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경쟁력을 생각보다 심하게 떨어뜨릴 것으로 내다봤다.
 

   
▲ 2023년 3월9일 영국 런던 주민이 동남부 루이셤 시장에서 생선을 고르고 있다. 최근 영국 물가상승률은 10%대로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다. REUTERS

투자 급감
‘토니 블레어 글로벌변화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브렉시트 뒤 영국의 무역개방도는 하락했다. 무역개방도란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개방도 하락은 수출입 비중 감소를 말한다. 2019년과 2021년을 비교하면 주요국의 무역개방도가 일제히 하락했다. 당연하다.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 미-중 무역마찰이 교역을 줄였기 때문이다. 미국 2.9%, 프랑스 3.3% 감소했다. 유럽연합은 2.1% 올랐지만 2016~2018년 상승폭(5.5%)에 견줘 둔화했다. 영국의 감소폭은 이례적일 만큼 큰 -7.7%다. 경쟁국보다 3%포인트 이상 더 크다. 이 연구소는 브렉시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교역 감소, 각종 무역장벽, 파운드화 가치 하락이 더해지면서 영국 물가는 천정부지를 치닫고 있다.
브렉시트는 교역만이 아니라 투자도 줄였다. 팔고 사는 양이 줄었으니 투자 감소가 불가피하다. 이를 부채질한 것은 불확실성 증대다. 브렉시트로 기존 질서가 무너지자 기업들은 영국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 영국의 기업 투자 현황을 보면 브렉시트에 따른 충격을 잘 알 수 있다. 영국 국가통계국(ONS) 자료를 보면, 2009년 이후 증가세이던 영국 내 기업투자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반전한다. 2022년 1분기 기준으로 국민투표 이전보다 31%나 줄었다.
반대로 유럽연합 지역의 기업투자는 2016년 이전보다 2% 정도 높다. 브렉시트로 타격을 입은 것은 영국이지 유럽연합이 아니었다. 투자가 줄어든 유일한 원인이 브렉시트는 아닐 것이다. 팬데믹으로 대부분 국가에서 투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영국의 투자 감소 규모가 다른 나라보다 크다. 브렉시트 요인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영국은 유럽연합 진출을 노리는 글로벌 기업들의 본사가 많이 포진한 국가이자 금융 중심지였다. 섬나라지만 유럽대륙과 터널로 연결돼 있다. 글로벌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영어를 쓸 수 있고 유럽연합 진출이 자유로운 영국으로 몰린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과 영국 사이엔 장벽이 세워졌다. 투자 유인이 사라진 기업들은 영국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영국병의 귀환
그 혜택을 입은 나라는 어디일까? 영어권이자 유럽연합에 속하며 낮은 법인세를 매기는 아일랜드다. 실제 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급상승했다. 2021년 약 8만9천달러였다. 2016년 6만2천달러이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영국에서 탈출한 기업들이 대체지로 아일랜드를 선택한 덕분이다. 아일랜드의 성장은 영국의 쇠퇴 이유를 말해준다.
영국 경제는 크게 흔들린다. 브렉시트의 부정적 충격은 예상보다 크다. 상품 수출만 빼고 거의 모든 부문이 2016년보다 나빠졌다. 경제성장은 2007년 이후 정체 상태다. 브렉시트로 반전을 노렸지만 외려 악화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0.6%를 예상했지만, –1.5%를 전망하는 투자은행도 있다.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의 성장률 전망치가 0.3%인 것을 보면 영국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팬데믹과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영국에만 특별히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독 영국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브렉시트의 충격이 더해졌다는 추론을 뒷받침한다.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로 가장 가까운 거대 시장을 가로막는 장벽을 세웠다. 그것이 가파른 물가상승을 낳았고 영국 경제의 개방도를 떨어뜨렸다. 영국 경제의 취약성을 악화했다. 생산성 저하, 기업투자 감소를 불러왔다. 경쟁력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적 무능까지 더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병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60년대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영국이 다시 고비용 저효율 경제로 돌아가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 병을 치료하는 법은 간단하다. 브렉시트의 부정적 충격을 인정하고 유럽연합과의 무역 관계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이 갈라파고스의 섬으로 남을 가능성은 없다. 다만 타국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번영의 기초라는 사실을 무시하다가는 영국병이 치유 불가능한 만성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브렉시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뭘까? 초연결 세계를 인위적으로 깨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얘기다. 현재 세계는 퇴행하고 있다. 세계화 재편을 내세우며 기존 틀을 깨고 있다. 재세계화는 기존 질서 파열과 새로운 장벽의 탄생을 뜻한다. 이를 통해 이득을 얻는 국가와 세력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손실이 더 크다. 벽은 언제나 갈등을 상징한다. 갈등이 커지면 경제는 열병을 앓는다. 브렉시트란 벽은 자발적 선택이었지만 재세계화 벽은 강요되고 있다. 후유증은 더 클 수밖에 없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4월호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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