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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자가 날마다 집으로 온다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56호] 2023년 04월 01일 (토) 박중언 parkje@hani.co.kr

 

   
▲ 2022년 10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2 로보월드’를 찾은 관람객들이 치매예방 인지훈련 로봇과 돌봄로봇 시연을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크게 재무(돈), 건강, 관계, 권태의 네 갈래로 나눠볼 수 있다. 이들 위험 요소는 긴밀하게 얽혀 있다. 가난하면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병을 얻기 쉽다. 건강을 잃으면 사는 게 고통스럽고 애써 모은 노후자금이 거덜 난다. 노후자금도 충분치 않으면서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다간 편안한 노후가 물 건너간다. 골프 대신 등산, 쇼핑 대신 공부를 좋아하면 적은 돈으로 넘치는 시간을 어렵지 않게 보낼 수 있다.
노후를 불행으로 이끄는 가장 큰 불안 요소가 고통과 비용을 동반하는 질병이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인 암과 치매다. 둘 다 나이 들수록 발병률이 급증하고 간병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나마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로 치료비 부담은 크게 줄었다. 본인 부담률이 암은 5%, 중증치매는 10%로 내려갔다.

전지적 치매환자 시점
나이 든 사람 대부분은 암보다 치매를 더 두려워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양쪽의 가장 큰 차이는 불확실성 정도다. 모를수록 불안이 커진다. 암은 끝이 분명하다. 완치되지 않으면 얼마나 더 살지 예측 가능하다. 자기 생각대로 그 끝을 준비할 수도 있다. 반면 치매는 기억을 잃어간다는 정도만 스스로 눈치챌 수 있을 뿐이다. 일단 ‘치매 궤도’에 오르면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일찍부터 노후 준비를 시작한 중견기업 P부장에게도 치매 대비가 가장 어려운 과제다. 여전히 기억이 또렷한 80대 후반 노모의 상태에 비춰 유전에 따른 발병 우려는 없어 보인다. 꾸준한 외국어 공부와 운동 등 그의 예방 노력을 고려한다면 치매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치매 연구가 발달해 치매 관련 자료가 풍부하다. 정상적인 건망증과 치매 사이의 과도기인 경도인지장애(가벼운 인지능력 저하)부터 중증장애까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중앙치매센터 누리집 등에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치매 환자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나 방법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치료법이나 치료제가 언제 개발될지 알 수 없다. 현재 처방되는 네 종류의 치매약은 아세틸콜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해 뇌의 정보 전달 효율을 높이지만 치매 진행을 얼마나 늦추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 정부는 2018년 이들 치매약의 건강보험 적용을 중단했다. 만약 치매에 걸린다면 그런 상태로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하는지도 미지수다.
치매에 걸린 치매 전문 의사가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도 했지만, 치매 환자의 정신·심리·감정 상태를 충분히 드러내지는 못했다. 최근 기억부터 사라지니 누군가 돈과 물건을 훔쳐갔다고 생각하거나 길을 잃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격적 양상을 보이고 ‘벽에 똥칠’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치매 조짐이 나타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인지능력이 사라지기 전에 내 의사를 어떻게 밝혀둬야 나와 주변 사람이 덜 힘들까? 해답에 이르지 못한 궁금증투성이다.
일본 에세이 작가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치매 환자의 관점으로 서술한 책 <낯선 여자가 매일 집에 온다>(오르골, 2023)는 그 궁금증을 푸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간접이나마 치매 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치매에 걸렸을 때 자신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지 유추해보게 한다. 또 치매 환자를 더 깊이 이해하고 환자 돌봄이 주는 고통을 받아들이기 쉽게 도와준다.
작가의 시어머니는 치매가 제한해버린 기억과 판단력 안에서 최선의 삶을 산다. 그러기에 날마다 집으로 오는 낯선 여성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탐색한다. 환자인 자신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라는 기억이 사라졌으니 거리낌 없이 집 안을 누비는 그를 ‘남편과 사귀는 여자’쯤으로 ‘합리적 의심’을 한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적이 있는 남편을 주간보호센터에 데려다주니 여직원을 보고 헤벌쭉 웃는 것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사실은 남편이 보호자로 센터에 따라가는 것인데도. 자신을 치매 환자처럼 ‘바보 취급하는 흰옷 입은 사람(의사)’과 자신이 때렸다고 아들에게 거짓말하는 남편에게 분노를 느낀다.
남편 침대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환청) 이불을 확 젖히며 호통친다. “여자를 어디에 숨겼어!”라고. 남편이 속고 있다는 생각에 남편의 재활훈련을 위해 함께 집을 나서는 며느리의 차에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든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누군가가 돈과 영양제를 훔쳐간다고 생각하며, 남편의 바람기가 심하다고 여기고, 이따금 침실에서 여자의 말소리를 듣는다.

영양 공급의 갈림길
치매 환자의 이상행동은 당사자 관점에서 보면 수긍이 갈 만하다. <뇌과학자의 엄마, 치매에 걸리다>의 저자는 치매 환자가 인지능력이 퇴화돼도 고통, 행복, 수치, 두려움, 분노 등 감정은 온전히 느끼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을 보호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그런 행동이라고 말한다. P부장도 치매가 깊어지면 비슷한 양상을 보일지 모른다. 그럼 어떻게 할까. 그 끝은 어디인가. 암을 비롯한 다른 질병은 회복되지 않는 말기 상황에 대비해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혀둬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치매는 조금 다르다. 병이 악화한다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거나 인공호흡기를 다는 등의 연명의료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 생기지 않는다.
결정적 순간은 스스로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상태가 될 때다. 그냥 두면 삼킴장애로 영양실조 또는 흡인성(기관지나 폐로 이물질·세균이 들어가 생기는) 폐렴이 발생하고 악화하면 자연스레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코를 통해서나 위장에 구멍을 내 인공적으로 영양을 공급하면 생명이 계속된다. 수분과 영양 공급은 연명의료에 해당하지 않는다. 말기 치매 환자의 영양 공급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회색지대’에 있다. 이 때문에 P부장은 ‘치매로 음식을 먹지 못할 때 인공적 영양 공급을 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문서로 밝히고 가족에게 확실하게 주지시키는 것을 무의미한 삶, 고통, 비용을 줄이는 마지막 치매 대비책으로 삼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4월호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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