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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노동으로 쌓은 초콜릿 제국
[SPECIAL REPORT] 달콤한 지옥 페레로- ① 튀르키예-헤이즐넛
[154호] 2023년 02월 01일 (수) 라우라 회플링거 economyinsight@hani.co.kr

누텔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페레로(Ferrero)그룹은 달콤한 초콜릿 제품으로 수십억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세계적 대기업이다. 그런데 아이들 입맛을 노리는 이 기업이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노동을 시킨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초콜릿의 재료인 헤이즐넛(개암나무 열매), 야자유, 코코아를 수확하는 과정에서 아동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얼마나 심하게 착취당하는지 취재했다. 심한 ‘단가 후려치기’로 인부를 고용한 농부들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_편집자

라우라 회플링거 Laura Höflinger 닐스 클라비터 Nils Klawitter
<슈피겔> 기자

   
 

먼발치에 바다의 수면이 반짝거린다. 13살 소년인 사바스는 바다를 볼 수 없다. 개암나무(헤이즐) 덤불을 살피느라 상체를 늘 구부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언덕 저 아래쪽으로 흑해의 해변이 펼쳐져 있다. 튀르키예(터키) 땅이다. 해변까지는 불과 몇㎞ 거리지만 사바스는 지난 3주 동안 한 번도 그 해안에 가본 적이 없다.
이 소년은 튀르키예 남동부 출신이다. 여름방학 기간이지만 사바스는 물놀이를 하러 갈 시간이 없다. 그는 오르두시 내륙에 자리잡은 이 가파른 언덕에 매달려 개암나무 열매(헤이즐넛)를 손가락으로 골라낸다. 매일 10시간씩 작업한다. 몸을 굽히고 기어가고 큰 자루를 지고 나른다. 사바스란 이름은 ‘대단한 노력’이라는 뜻이다.
저녁 6시가 조금 못 된 시각, 2022년 8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사바스는 22일 동안 휴일 없이 일했다. 회색 플라스틱 샌들을 신고 티셔츠는 땀에 젖은 채로 말이다. 오른쪽 팔뚝에는 작은 상처를 입어 붕대를 감았다. 이제 더는 감당해낼 수 없다. 창백한 얼굴로 사바스는 자신이 일하는 농부의 집, 다 쓰러져가는 건물 앞 잔디에 앉아 있다. 커다란 방수포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헤이즐넛을 바라보던 사바스가 돌연 구역질을 한다. 대부분이 어린 15명의 계절노동자와 함께 사바스가 거둬들인 저 대량의 헤이즐넛을 농부는 몇 주 뒤 페레로 재료 공급 회사에 팔 것이다.

   
▲ 페레로 초콜릿의 원료인 헤이즐넛 채취에 아동노동이 자행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European Food Agency/트위터

전세계 생산량 4분의 1 매입
페레로는 초콜릿과 견과류 과자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제과업계의 거인이자 브랜드 제국이다. 이탈리아에 적을 둔 이 기업의 헤이즐넛 소비량은 세계 어느 회사보다 많다. 로셰 눈사람초콜릿을 비롯해 듀플로(Duplo)와 하누타(Hanuta)를 생산하기 위해 페레로는 전세계에서 수확하는 헤이즐넛의 거의 4분의 1을 사들인다. 이 중 대부분은 해마다 4억 병이 넘는 누텔라 생산에 사용한다. 튀르키예의 헤이즐넛 연간 수확량은 70만t인데, 페레로는 그중 약 3분의 1을 확보해놓았다.
농부의 손에서 공장까지 이어지는 헤이즐넛의 이동 경로는 복잡하게 꼬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중간상인과 가공업자가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과정을 추적하기가 매우 힘들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빵에 바르는 초콜릿’(누텔라) 생산 공장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불공정한지 밝혀내기는 불가능하다.
페레로그룹은 3대 주요 원료인 헤이즐넛과 코코아, 야자유에 관한 회사 나름의 ‘헌장’을 만들어냈다. 선한 의도로 가득 찬 헌장이다. 지속가능한 생산, 가치, 존중, 사회참여 같은 말이 등장하고 공정한 노동조건, 수천 명의 아이가 농업노동에 동원되는 것을 막는 사회 프로젝트도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이 페레로의 거창한 약속이다. 이 약속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사바스 같은 아이들은 드물게도 이 프로젝트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애석한 사례여야 한다. 과연 그럴까? 누텔라 생산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착취는 어느 정도일까?
<슈피겔>은 누텔라의 원료가 있는 코트디부아르로 취재를 떠났다. 페레로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페레로의 규정을 그대로 준수해 코코아 제품을 공급한다는 코트디부아르의 협동조합을 비롯해 야자유 생산 공장이 있는 페레로의 파트너 회사를 찾아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을 방문했다. 취재는 2022년 여름, 튀르키예의 흑해 연안에서 시작했다.

   
 
   
▲ 페레로 로셰 초콜릿. REUTERS

계절노동자 4만 명이 아동노동
사바스는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주인 없는 농가에서 얇은 매트를 바닥에 깔고 잠을 잔다. 그는 쿠르드족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튀르키예 북부에 위치한 도시 바트만 출신이다. 농장에서 자동차로 13시간 걸리는 거리다. 바트만 사람들은 여기서 환영받지 못한다.
작업반장 이브라힘이 “우리는 적대국이니까”라고 말문을 연다. 이 지역 사람들이 튀르키예 남부 자동차 번호판을 단 차에 침을 뱉는 일이 요즘 들어 종종 일어났다고 한다. 사바스의 나이를 묻자 그는 한동안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던 끝에 그는 쿠르드족 가족들에게는 아이가 계절노동자로 일하는 것이 일종의 생명보험 같은 것임을 솔직히 인정했다. 사바스 역시 돈을 벌어 부모를 돕고 싶다고 했다. 만약 시험에 합격한다면 나중에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튀르키예에서는 아동노동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14살부터는 경우에 따라 가벼운 노동이 예외적으로 허가되기는 한다. 하지만 헤이즐넛 수확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르면 최악의 아동노동으로 분류된다. 이 일을 하는 상당수 아동이 학교를 일찌감치 포기한다. 수확 기간에 가족이나 일자리 중개인들과 함께 몇 달씩 집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통계청이 발표한 수치를 보면, 2019년 튀르키예에서 5~17살 나이로 시골에서 노동을 한 아동 수는 약 72만 명에 달한다. 헤이즐넛 수확에 참여하는 계절노동자 40만 명 중에서 아동 수는 최소한 약 10%를 차지할 것이라고 비정부기구(NGO)들은 추산한다.
메흐메다히프는 19살이다. 12살 때 헤이즐넛 수확 일을 시작한 뒤로 그는 매년 여름 여기로 온다. 기계전기공학을 전공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큰 희망을 가진 건 아니다. “제대로라면 사실 난 지금 연필을 들고 도서관에 앉아 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라고 그가 말문을 연다. “누텔라요? 그건 사치품이죠.” 자기는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이 청년이 일당으로 받는 임금은 280리라(약 1만8천원) 정도인데, 인플레이션으로 떨어진 돈 가치를 고려해 계산해보면 계절노동자가 11년 전에 받던 임금만도 못한 액수다. 이 돈에서 10%를 작업반장인 이브라힘에게 직업소개비로 주었고, 또 일부는 교통비로 내야 했다. 자기가 벌어들이는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는 건 메흐메다히프뿐 아니다. 그 옆에 앉은 18살짜리 세나도 마찬가지다. 노동계약서, 건강보험 같은 건 어떨까? “웬걸요, 그런 건 그냥 서로 믿고 하는 것”이라고 세나는 대답했다.
 

   
▲ 초콜릿 원료 중 하나인 헤이즐넛. fruitsofturkey.com
   
 

농장 주인마저 밑바닥 삶
노동자, 작업반장, 농부. 여기서 과연 누가 희생자고 가해자인지, 누가 누구를 착취하는지, 아니면 모두가 다 같은 고난을 겪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이들이 일하는 농장의 주인인 툰케이는 “바닥 인생”이라는 점에서 자기도 앞의 두 청년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헤이즐넛을 팔아야 비로소 자기 밑에서 일하는 인부들에게 임금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툰케이는 줄담배를 피운다. 손가락 끝이 담배 필터의 노란색으로 물들었고 콧수염도 비슷한 색깔이다. 그가 농장의 개암나무 덤불 그늘 아래 다리를 끌어모은 자세로 앉아 있다. 앞으로 몇 주 뒤 결과가 나오겠지만, 2022년 수확량은 4천㎏ 정도 될 것이다. 다른 해보다 좀 적어 비싼 농약과 비룟값을 댈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열매를 다 팔면 대략 1만유로(약 1300만원)가 들어올 텐데, 그 돈으로 중간거래상에게 진 빚부터 갚아야 하고 계절노동자들에게 임금도 지급해야 한다. 그는 인근의 다른 농부들과 함께 이 노동자들을 공동으로 고용했다. 그러고 남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그의 가족은 겨울을 나야 한다. “겨우 기아만 면하는 것”이라고 툰케이가 한숨을 쉰다.
쿠치 야사르는 기레순과 오르두 지역 중간 지점에서 작은 농산품 가게를 운영하면서, 소농들의 조합인 ‘농부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 부채를 진 농부들과 매일 대화한다는 그는 “자기 자녀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는 처지에 어떻게 이 농부들이 아동노동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겠는가?”라고 기자에게 묻는다.
페레로 같은 기업의 사회사업은 그저 알리바이에 불과하다고 야사르는 일축한다. “그들이 염두에 둔 것은 오로지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그들이 어떤 가격을 부르든 그대로 헤이즐넛을 팔아넘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농부가 많다. 그런 상태로 농가를 방치하는 게 그들의 목표다.” 헤이즐넛 장사는 소수를 부자로, 다수를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그는 결론 내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헤이즐넛은 미래가 보장된 평생의 사업처럼 보였다. 정부는 최저가 보장 정책을 내놓았다. 심지어 헤이즐넛을 경작하는 농부는 자녀에게 대학 공부를 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격이 보장되고 정부의 헤이즐넛 수매가 확실시되자 헤이즐넛 과잉생산으로 이어졌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압력으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이 분야를 자유화하면서 지원정책이 2009년 광범위하게 중단됐다. 그러자 자유시장이 이 분야를 점령했다. 결국 남은 것은 국가가 제시하는 ‘권장가격’뿐이었다. 정치권은 이것으로 ‘농부들을 위해 싸운다’고 생색낸다. 하지만 국영 무역기관이 매입하는 물량은 전체 생산량 중 제한된 일부일 뿐이다.
헤이즐넛 시장의 준독점자인 페레로가 2022년 9월 초 업계에 돌린 ‘페레로 가격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표에 따르면, 헤이즐넛 가격은 ㎏당 48리라(약 3만1800원)로 정부가 발표한 가격보다 훨씬 낮다. 그리고 농부들은 유통 과정에서 그들 앞에 자리잡은 중간상인들 때문에 실제로 이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손에 쥐게 된다. 페레로그룹의 권력을 향한 농부들의 좌절감은 대단히 크다. 아이딘데레 마을의 한 담벼락에는 얼마 전에 “페레로는 헤이즐넛의 죽음이다! 우리 마을에서 나가라!”라는 문구가 적혔다.
그러나 이 빈약한 헤이즐넛 가격은 페레로의 권력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았다. 노동조건도 변한 것이 없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버스와 숙소는 과밀로 악명이 높고 그나마 방이 있으면 다행인 실정이다. 많은 노동자가 임시수용소나 천막에서 생활한다. 들판에는 화장실도 온수도 없을뿐더러,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은 걸어서 일터로 가야 한다. 페레로가 비용을 내고 진행한 조사인데도 결과가 이렇다.

ⓒ Der Spiegel 2022년 제52호
Die Nutella-Macher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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