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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혁신가의 세 가지 공통점
[세계는 지금] 미국 실리콘밸리
[154호] 2023년 02월 01일 (수) 김욱진 renew@kotra.or.kr

김욱진 KOTRA 미국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

   
▲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사용자의 가슴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명확히 하자고 직원들을 설득한다.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본부에 전시된 애플 특허들. REUTERS

많은 사람이 실리콘밸리를 배우러 온다. 십수 년 전에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개혁과 갱신을 추구하는 이에게 분명 더할 나위 없는 탐구 대상이다. 실리콘밸리 근무를 만 2년 넘게 한 결과,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빅테크(구글, 아마존, 애플 같은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로 대변되는 혁신기업에 다니는 직원이라고 해서 모두 회사의 가치를 내면에 구현한 채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기름기를 빼고 담백하게 이해하자면 실리콘밸리도 결국 직장인 사회다.
여기서 가장 대우받는 직장인은 엔지니어다. 구글, 애플, 아마존, 미터, 엔비디아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업의 티셔츠를 입고 커피숍에서 코드를 짜고 있는 그들을 보면 어쩐지 위축될 때가 많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 실리콘밸리에서 설 자리는 매우 좁지만, 그렇기에 탑재할 수 있는 시각도 있다.
내가 실리콘밸리에서 배우려는 대상은 세상을 뒤흔든 탁월한 기업가들이다.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매년 연봉협상에 골몰해야 하고 스톡옵션 가치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빅테크의 엔지니어는 논의 주제에서 제외한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상상했던 큰 인물의 흔적과 자취를 좇으며 무엇이 그들을 탁월하게 만들었는지 살펴보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탁월한 기업가들의 마음에는 공통으로 몇 가지 특성이 있다. 나는 이를 크게 셋으로 정의한다. 첫째는 영속하는 가치 찾기다. 둘째는 다름에 대한 천착이다. 마지막은 끝없는 진리 추구다.

영속하는 가치 찾기
그는 한 손을 턱에 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 앞에는 애플의 은색 맥북이 놓여 있다. 한 입 베어 문 사과 문양이 선명한 노트북컴퓨터가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순간 나는 저 자리에 다른 노트북이 놓여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한다. 지금 내가 원고를 쓰고 있는 검은색 싱크패드였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레노버가 인수하기 전 IBM의 로고가 싱크패드에 박혀 있다면 또 어떨까. 한국 대기업의 제품을 대입하기도 하고, 중국과 대만의 노트북을 넣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죽음을 앞둔 스티브 잡스를 떠올린다.
삶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잡스가 몰두한 작업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애플이 표상하는 가치가 영속되도록 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애플이 상징하는 무언가가 세대를 넘어 지속할 수 있도록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각별히 애쓰고 공들였다. 기업활동으로 자신의 철학을 구현하려던 잡스에게 애플 제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눈에 보이도록 하는 도구이자 수단이었다.
애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일생을 선불교 수행자로 살아온 잡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단도직입’이자 ‘정문일침’이었다. 그의 철학에 따라 지금도 애플 제품은 극단적으로 단순한 디자인을 고수하며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잡스는 쿠퍼티노 본사에서 직원들에게 마케팅에 대해 강연한다. 7분 남짓한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강연에 따르면 잡스에게 마케팅은 ‘가치’에 대한 것이다. 그는 확신에 차서 말한다. 제품을 출시하는 기업으로서 사용자에게 수많은 정보를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기업이 표상하는 가치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하러 돌아온 창업자는 애플이 사용자의 가슴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명확히 하자고 직원들을 설득한다. 기업가로서 영속하는 가치를 찾고 회사 내에 심기 위해 평생 몰두한 사내의 젊은 시절이 새로이 다가온다. 잡스는 떠났지만 그가 새겨놓은 가치가 여전히 애플에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마케팅 강연에서 잡스는 나이키의 사례를 든다. 나이키는 마케팅을 하면서 에어매스나 에어조던이 얼마나 뛰어난 신발인지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위대한 스포츠맨을 향한 존경심을 지속해서 표현한다. 사람들이 나이키 신발을 신고 생활하고 운동하면서 그들처럼 일상에서도 위대함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2022년 12월2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미식축구를 관람하고 있다. Orlando Ramirez-유에스에이투데이 스포츠

다르게 생각하라
사실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대학 시절 실패한 육상선수였다. 어쩔 수 없이 스포츠맨의 삶을 포기하고 스탠퍼드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남다른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취직하지 않고 회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리본스포츠를 설립하기 전 그가 품었던 비장한 마음가짐은 2016년 발간된 자서전 <슈독>(Shoe Dog) 도입부에 잘 나타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필 나이트는 나이키 창업자로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미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단언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이트 자신이 시작부터 그랬다. 1962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배낭여행한 다음 신발 회사를 세우겠다는 구상을 주변에 밝히자 사람들은 다들 ‘미친 생각’(Crazy Idea)이라고 말했다. 미국인의 90%가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던 시절의 일이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탁월한 혁신가는 남다른 길을 포기하지 않고 색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때 탄생한다. 필 나이트의 미친 생각이 1964년 나이키를 낳았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나고 1997년 스티브 잡스가 내세운 애플의 슬로건은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다. 다름, 색다름, 남다름에 대한 끊임없는 천착을 혁신 기업가들의 마음에서 반복적으로 읽을 수 있다.
필 나이트는 신발 회사를 세우기 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통시적으로 인류가 지속한 위대한 탐험에서 신성함을 찾으려 했다. 그는 동양의 도(道), 그리스의 로고스(Logos), 힌두교의 즈냐나(Jnana), 불교의 다르마(Dharma), 기독교의 정신(Spirit)과 같은 개념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생각보다 짧고 그 한정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였다. 세상에 태어나 흔적을 남기는 것이 그의 인생 전체를 꿰뚫는 목표였다. 나이트는 창업으로 이를 이루려 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전기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생 대부분에 걸쳐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이 우리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꼈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또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자신의 목표가 아니었다고 못박는다. 기업가로서 잡스는 끊임없이 나아가기를 원했다. 인간애가 흐르는 제품의 진화만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잡스는 엔지니어를 예술가와 동일시했다. 훌륭한 전자제품은 탁월한 예술작품처럼 계속 진일보해야 한다고 믿은 그는 기업활동으로 진리를 추구했다.

끝없는 진리 탐구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이조스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의 철학은 ‘첫날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베이조스는 아마존의 건물 이름을 ‘데이 원’(Day 1)으로 명명할 정도로 첫날 정신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아마존 설립 초기부터 호기심 넘치는 탐험가의 문화를 만들겠다는 확실한 비전을 품고 있었다. 2018년 4월 주주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도 “진정한 탐험가는 전문가가 되어도 처음 시작하는 때의 초심을 잃지 않는다”고 썼다.
베이조스는 항상 오늘을 첫날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크게 성장한 조직 전체에도 가장 중요한 과제는 첫날의 활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봤다. 그에게 둘째 날은 무엇이었을까. 베이조스에 따르면, 둘째 날은 정체이고 무관심이며 극심한 쇠퇴로 이어질 뿐이다. 이후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는 베이조스의 말에서 구도자의 결기가 느껴진다. 기업활동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초심자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남다름을 추구하는 게 실리콘밸리의 본질이라면 우리는 그저 실리콘밸리의 현상을 답습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실리콘밸리를 배우려는 까닭은 또 하나의 아류를 지향해서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와 달라지고 궁극적으로 뛰어넘기 위해서일 것이다. 영속하는 가치는 결코 누가 제시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탁월한 기업가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자신만의 가치를 찾기 위해 일평생 여정을 계속했다.
그렇다고 기업활동을 통해서만 진리를 갈구할 필요는 없다. 실리콘밸리가 태동한 1960~197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의 모토는 ‘일상생활의 혁명’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여기에서 혁신을 실현할 수 있다. 직업인으로서 내게도 ‘여생의 첫날’이 시작됐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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