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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엘리트와 ‘사업보국’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154호] 2023년 02월 01일 (수) 조계완 kyewan@hani.co.kr

조계완 <한겨레> 기자

   
▲ 한국 기업 엘리트들은 ‘위로부터의 산업화 과정’에서 성장해 국가 의존적 집단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 한겨레 자료

“철강왕 카네기의 행운을 설명하는 데는 그의 어머니가 현실적인 인물이었다는 것보다 그의 청년기에 사회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유리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철도왕 밴더빌트가 아무리 냉혹한 인간이었다 하더라도 만약 당시 정치가 전혀 부패하지 않았더라면 미국 전역의 철도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설적인 석유재벌 해롤드슨 헌트의 심리적 자질보다는 석유의 지리적 분포와 당시 조세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한층 더 중요하고, 존 록펠러의 경우 그의 유아기보다는 미국 자본주의의 법률적 구조와 법률 기관의 부패를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하며, 헨리 포드에게서는 그의 무한한 에너지보다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기술적 진보를 이해하는 편이 더 중요하다.”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의 책 <파워 엘리트>(1956)에 나오는 이 인상적인 대목은, 재벌기업가를 이해하려면 기업가적 자질이나 열정·품성·행운보다는 그가 부를 이룬 사회의 정치·경제적 구조를 우선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 저널리즘은 이런 독점 대기업가에게 ‘강도 귀족’(도둑놈 같은 남작·Robber Baron)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1953년 당시 제너럴모터스(GM) 사장이던 찰스 윌슨이 배포 두둑하게 내뱉은 “국가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은 것이고, GM에 좋은 것은 국가에도 좋은 것”이라는 말도 미국 독점자본과 국가의 긴밀한 결속을 상징한다. 여기서 결속은 로비와 결탁을 포함한다.
그런데 국가를 상대로 을러대는 듯한 말투까지 느껴지는 GM 사장의 두둑한 배짱과 달리, 삼성·현대차·SK·LG·한화 등의 한국 기업가들이 새해 신년사마다 흔히 내거는 기치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이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선대 창업 1세대들의 설립 이념이라 해도,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났고 저마다 글로벌 기업이 된 지금 ‘국가에 보답한다’는 일성은 신년사치고는 새로움이 없다. 혁신·도전보다 무언가 자긍심이 부족한 의존적인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대표 기업들이 잇따라 설립된 건 1968년 무렵이다. 현대자동차(1967년)·대우실업(1967년)·포스코(1968년)·삼성전자(1969년)가 앞뒤로 탄생했다. 한국은행 국민계정(2015년 기준년 편제)에서 1인당 국민총소득은 1968년 178달러36센트다. 필리핀·베트남·캄보디아보다 빈곤하거나 엇비슷했고, 아프리카로부터도 원조를 받던 나라였다. 2022년 말 삼성전자 회장직에 오른 ‘엘리트 기업인’ 이재용도 이때(1968년) 태어났다.
이제 2021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5373달러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기적을 만들어냈지만 국가와 시민사회에서 한국 기업가의 도덕적 리더십은 취약한 편이다. 그 까닭을 두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신 ‘네이버 열린연단’ 강연(한국에서의 자유주의)에서 “역사적으로 서구에서는 기업 엘리트(신흥 부르주아)들이 자유주의를 선도한 반면 한국의 기업 엘리트들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가 전면적으로 지원하고 주도했던 위로부터의 산업화 과정에서 성장한 한국 기업 엘리트들은 국가 의존적 집단이 됐고, 그래서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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