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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창의적 구상, 기술·정책 뒷받침 미흡
[TREND] 프랑스 전자제품 수명 늘리기
[153호] 2023년 01월 01일 (일) 마리옹 페리에 economyinsight@hani.co.kr

마리옹 페리에 Marion Perrier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프랑스 전자제품 업체 단테크(Daan Tech)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소형 식기세척기. 2020년부터 판매한 이 식기세척기는 오래 써도 고장 나지 않고 조립도 쉽다. 단테크 누리집

‘고쳐 쓰는 다기능 스테인리스 커피포트, 메이드 인 프랑스.’ 2019년에 생긴 회사 키핏(Kippit)의 약속이었다. 단테크(Daan Tech)는 프랑스 서부 방데에서 2020년부터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소형 식기세척기를 판매하고 있다. 시험 결과 내구연한이 10년 넘는다. 조립도 쉽다. 2016년엔 랭크르바블(L’increvable)의 두 설립자가 평생 쓸 수 있는 세탁기를 고안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두 사람은 현재 고쳐 쓰는 다기능 주방도구 놉솔레트(Nobsolete)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지속가능 전자제품으로 시장의 빈틈을 노리는 스타트업이 늘었다. 목표는 제품 수명을 늘리고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것이다.

두 토끼 잡기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의 에르완 팡자는 “전자제품 수명주기를 분석했더니 생산단계의 환경 영향이 전체의 55~70%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전자제품을 오래 쓸수록 좋다고 하는 이유다. 수명주기 분석은 물건의 생애 단계와 여러 환경 기준을 고려해 그 환경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추출하고 수명이 다한 제품의 폐기물을 처리하는 단계까지 수명주기에 포함된다.
전자제품 수명이 늘어나면 가계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환경에너지관리청에 따르면 11가지 전기·전자 제품을 바꾸지 않고 1년 더 쓰면 10년간 963유로(약 132만원)를 절약할 수 있다. 필리프 모아티 사회소비연구소(ObSoCo·옵소코) 공동설립자는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기 위해 물건을 더 비싸게 파는 전략은 소비자에게 경제적 이득이 있어야 통한다”며 “지속가능 전자제품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고 말했다. 키핏의 커피포트는 234유로(약 32만원)다. 비슷한 저가 제품과 비교하면 가격이 10배 넘게 차이 난다. 소비자에게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크라우드펀딩 기간에 진행한 사전판매에서 1천 개의 커피포트를 판매했다.

재정과 제조의 한계
지속가능 기기 사업은 하기 쉽지는 않다. 랭크르바블은 2020년 백기를 들었다. 회사 공동설립자이자 공동디자이너인 크리스토퍼 상테르는 “실제 작동하는 시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지 못했다”고 말했다. “계획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제조기술을 프랑스에서 찾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키핏은 커피포트 모양의 스테인리스 틀을 납품해줄 회사를 찾느라 제조업체 160곳에 연락했다. 그러는 동안 계획은 계속 미뤄졌다. 재정난에 빠진 회사는 2022년 9월 말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투자자 모집 등 다른 장애물을 잘 넘겼지만 헛수고로 돌아갔다. 키핏 공동설립자인 카린 마야 레비는 “모두 파란불이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프랑스는 제조기술을 잃었다. 쓰러진 산업을 일으키려면 시간과 돈이 든다. 중국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15주 만에 납품해줄 수 있다는 업체가 있었다.” 그러나 카린에게 ‘메이드 인 프랑스’는 환경과 사회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야 할 원칙이었다.
단테크는 현 최고경영자인 니콜라 라발렉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는 중국 전자제품 제조업체에 밀려 문을 닫은 공장에서 생산부장으로 일했다. 니콜라는 “공장에 있던 기계공학자와 플라스틱가공 기술자를 영입했다”며 “모두가 방데 지역에서 제조업이 탄탄하던 시대를 산 전문기술자들”이라고 말했다.
2020년 10월부터 판매된 식기세척기는 모두 6만5천 대다. 그중 60%는 수출됐다. 색상이 다양하고 작지만 알차다. 식구가 많지 않은 가구에 적합하다. 회사는 현재 친환경 구상에 따라 다기능 오븐을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환경에너지관리청이 계획을 지원한다. 단테크의 앙투안 피셰 회장은 그런 지원이 반갑다. “메이드 인 프랑스의 가치와 제조업을 살리려면”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 프랑스 가전업체 지팜이 수리하기 쉽다고 홍보하는 드럼세탁기. 지팜은 ‘의도적 노후화’ 비판에 세탁기 평균수명이 10년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반박한다. 지팜 페이스북

저가 경쟁
단테크 사례는 이례적이다. 예외는 보편의 원칙이 있어야 생길 수 있다. 지속가능 전자제품 업계에도 거스를 수 없는 원칙이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의 원칙이다. 그런 시장은 생산비를 아끼는 것이 목표다. 2021년 프랑스 전자제품 매출액은 전년도보다 8% 증가해 99억유로를 기록했다.
2019년 시민단체 ‘의도적 노후화 중단’은 세탁기 평균수명이 8년 동안 10년에서 7년으로 줄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가정용 전자제품 제조업체 지팜(Gifam)은 세탁기 평균수명이 10년으로 유지된다고 반박한다. 이 시민단체의 레티시아 바쇠르 대표위원은 “이 문제에 관해 신뢰할 만한 자료가 없다”며 “확실한 것은 제품 수명이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길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가격경쟁이다. 고장 난 기기를 고쳐 쓰는 것보다 새 제품을 사는 게 더 싸다. 환경에너지관리청의 에르완 팡자는 이렇게 말했다. “새 제품 가격이 몇 년 전부터 떨어지고 있지만 부가가치세와 인건비가 변하지 않아 수리비는 그대로다. 수리비가 새 제품 가격의 3분의 1을 넘으면 프랑스 소비자는 새것을 사려고 한다.”
저가 압박은 수리 과정에서 기술적 장애를 낳기도 한다. 랭크르바블의 크리스토퍼는 “세탁기 제조 과정을 단순화하려고 통째로 된 거푸집을 쓰는 사례가 많다”며 “노후 부품만 꺼내 고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바꿔야 하는 부품이 없거나 부품 가격이 너무 비쌀 때도 있다.

한발 느린 법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와 유럽 차원에서 법률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정된 법률은 주로 소비자의 알 권리와 문제의 사법적 해결에 초점이 맞춰졌다. 2015년 프랑스는 기업이 일부러 제품 수명을 짧게 하는 ‘의도적 노후화’를 범죄로 규정했다. 이후 관련 소송이 세 번 있었다. 그중 애플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서 애플은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사유는 의도적 구식화가 아닌 다른 것이었다.
‘순환경제를 위한 낭비방지법’이 2020년 제정돼 소비자에게 제품 수리비를 지원하는 ‘수리기금’이 조성됐다. 하지만 기금 예산이 너무 적다고 시민단체 ‘제로 웨이스트 프랑스’는 비판한다. 2022년 수리기금은 2천만유로(약 275억원)로 책정됐다. 2028년까지 1억200만유로로 늘어날 전망이다. 애초 계획은 2022년 초 수리비 지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정부 인증 수리업체망 구성을 마무리 짓지 못해 계획이 지연됐다. 지팜의 카미유 뵈르들레 대표위원은 “소비자 인식을 바꿔야 하는 과제도 있지만 수리업체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2021년부터 소비자는 수리가능성지수를 보고 제품을 비교할 수 있다. 수리가능성지수는 기술사양서와 부품을 구할 수 있는 기한, 부품 가격, 제품 해체 난이도 등을 평가해 제품에 매기는 점수다. 처음 평가 대상은 드럼세탁기, 잔디 깎는 기계, 스마트폰, 노트북, 텔레비전(TV)이었다. 2022년 11월4일 진공청소기, 통돌이세탁기, 식기세척기로 확대됐다. 시민단체 ‘소비자연맹-무엇이 좋을까’는 점수 산정 방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현재 수리가능성지수는 평가 항목별 배점이 모두 동일하고, 제조사가 직접 자사 제품에 점수를 매긴다. 레티시아 바쇠르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훌륭한 지표”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그 변화가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일어나는 건 아니”라고 바쇠르는 안타까워했다. 그는 규제를 강화하기보다 소비자의 알 권리에 집중하는 점을 변화의 한계로 꼬집는다. 처음부터 제품을 고쳐 쓸 수 없게 만드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품 사용기간 동안 소비자에게 부품을 제공할 의무를 제조사에 부여해야 한다.
필리프 모아티는 “경제모델을 완전히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법은 기능경제(제품이 아니라 제품 이용권이나 대여권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제도)로 전환하는 것이다. 제조사가 기기를 소유한 주인이면 제품 수명을 늘리려고 할 것이다.”

활발한 중고거래
기기 수명을 늘리기 위해 소비자가 해야 할 역할도 작지 않다. 환경에너지관리청에 따르면 품질보증 기간에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맡긴 기기의 50~70%는 소비자가 관리를 부실하게 하거나 잘못 사용한 탓이라고 한다. 물가상승으로 가계지출이 크게 늘었다. 집에 있는 물건을 오래 쓰는 노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많은 소비자가 중고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경제연구소 ‘제르피 프레셉타’(Xerfi Precepta)에 따르면 2020년 중고시장 매출액(자동차 제외)이 74억유로(약 10조원)를 기록했다. 전자제품 중고시장에선 ‘에마위스’나 ‘앙비망’ 같은 단체가 일찍이 자리잡았다. 웹사이트 ‘르 봉 쿠앙’은 몇 년 전부터 소비자 간 중고거래를 활성화했다.
재활용 스마트폰과 전자제품 시장에 뛰어드는 스타트업도 많다. ‘프낙-다르티’ ‘불랑제’를 비롯한 전통 전자제품 유통업체도 중고거래 열풍에 올라탔다. 프낙-다르티의 2021년 중고품 매출은 전년보다 50% 늘었다. 불랑제는 프랑스 북부 앙글로 지역에서 다양한 재활용 기기를 판매하는 ‘초록 매장’을 시범 운영한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2년 12월호(제429호)
Électroménager: dur, dur d’être durable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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