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바움게르트너 Maik Baumgärtner 등 <슈피겔> 기자 11명

▲ 2019년 핀란드만에서 잠수정에 타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REUTERS

2015년 이래 지금까지 나토는 주요 케이블 선로 주변에서 러시아 잠수함의 활동이 강화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러시아 정부가 나토 회원국들의 해저 인프라 시설에 부쩍 관심을 보인다는 나토 고위 간부의 발언도 보도된 적이 있다. 폭발이 일어났던 날, 독일 해군총감(중장) 얀 크리스티안 카크는 <벨트>(Welt)와 한 인터뷰에서 해저 전투를 치르는 것이 어떤 전략적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이 사건에서 크렘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러시아는 해저에서도 어마어마한 면적을 차지했다. 발트해뿐만 아니라 대서양에도 (에너지 수송을 위한) 파이프라인이나 해저 통신케이블 같은 주요 인프라 시설이 여러 군데 건설돼 있다.”
독일 연방정보부(BND)의 전문가들은 러시아 군대가 해저에서 군사작전을 펼 만한 전문지식과 군사시설을 확보했다고 본다. 서구의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해저 로봇을 보유했다는 첩보를 갖고 있다. 로봇의 임무는 러시아에서 시작하는 파이프라인을 따라 공격 목표 지점까지 도달한 뒤 폭발물을 장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로봇들이 제일 마지막에 머물렀던 장소가 어디인지 파악하려는 추적 조사가 진행 중이다. 독일 연방정보부가 2022년 1월1일까지 거슬러 올라가 발트해에서 일어났던 모든 움직임을 조사한다는 이야기도 정부 인사들 사이에 돌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2022년 여름,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향한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독일에 경고했다. CIA가 도청한 러시아의 통신 내용에 “우크라이나가 서구 인프라 시설을 공격할 우려”가 포착된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이를 위해 스웨덴에서 배 한 척을 임대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CIA는 우크라이나가 서구의 인프라 시설을 공격한다는 시나리오는 신빙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인프라 시설 공격 가능성이 러시아 쪽에서 언급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CIA가 독일 정부에 그런 시나리오에 대비하라는 경고를 보내기에는 충분했다.

계약 불이행 처벌 피하려
최근 독일 정보부는 총리를 비롯한 관련 책임자들에게 이번 사태에 관한 브리핑을 했다. 이 비밀회의에서 가스관 폭발 사건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볼 만한 이유가 더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시설을 파괴해 가스 시장을 혼돈에 빠뜨리고 가스 가격을 치솟게 할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자기 소행임을 숨길 수만 있다면 이런 일을 단호하게 결정하고 감행하는 나라임을 전세계에 과시하려 한 것 같다는 이야기다. 일종의 경고사격으로 말이다.
크고 작은 가스 전쟁이 러시아 역사에 늘 수반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공황이 닥쳐도 러시아는 변함없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이며 믿음직한 원유·가스 제공자라는 주장이 수십 년에 걸쳐, 그리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사실로 통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서구, 그중에서도 특히 독일과의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주장이었다. 동유럽, 즉 소비에트연방이던 국가들은 가스 공급 중단이라는 협박을 받으며 정치·경제적으로 늘 억눌려 살아왔다. 특히 많이 시달린 나라가 우크라이나이지만 벨라루스와 조지아, 몰도바 등 발트해 연안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2년 9월26일 월요일 새벽 2시3분과 저녁 7시4분, 두 차례 폭발로 가스관 벽이 갈라졌고, 가스가 수면을 향해 솟구쳤다. 압력이 충분히 가라앉고 나면 바닷물이 큰 구멍으로 들어와 파이프라인을 안에서부터 망가뜨릴 것이다. 대관절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좀 복잡하지만 꽤 설득력 있게 ‘러시아의 동기(모티브)’를 주장하는 이론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독일 정보부도 숙고하는 내용인데, 러시아 쪽은 가스관이 파괴됐다고 주장함으로써 가스 공급 중단에 따른 손실 보상을 모면해보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가스 밸브를 잠그거나 에너지를 수단으로 응징이나 보상 정책을 펼 때면, 책임자들이 기술적·경제적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유로 대곤 했다.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를 논증하기 위해서 말이다.
‘자기들이 건설한 파이프라인을 부숴버렸다’는 러시아 정부의 동기는 ‘손상된 가스 파이프라인으로는 가스를 공급할 수 없다’는 검토 결과에 기반을 두었다고 이 이론은 설명한다. 공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러시아도 계약 사항을 이행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러시아는 법률적 난관을 벗어나게 된다. 달리 말하면, 강제로 어떤 사실을 만들어낸 다음 불가항력 상황이었다고 논증한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러시아 출신 에너지 전문가 미하일 크루티친도 ‘계약 불이행에 대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건 개연성이 아주 높은 동기라며 동의를 표했다. 그는 러시아가 범인이라고 의심한다. “가스프롬이 오래전에 지시받은 것이 분명하다.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줄여라, 그러나 계약 불이행으로 처벌받지는 않도록 해라’라는 지시 말이다. 그러려면 불가항력 상황이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볼 때 가스프롬은 ‘피그렛’(Piglets) 같은 것을 이용해 수송관을 스스로 훼손할 수 있다고 크루티친은 설명한다. 피그렛은 그대로 번역하면 ‘새끼 돼지’라는 뜻인데, 수송관을 통과하면서 정비와 점검을 담당하는 소형 로봇이다. “이 로봇에 폭발 장치를 고정해놓는 건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는 사보타주가 가스프롬의 영업 방침 중 하나라고 확신에 차 얘기했다.
이 모든 것이 상당히 설득력 있음에도 러시아가 범인이라는 설에 정반대되는 강력한 주장도 있다. 한 고위 관리는 자국의 파이프라인을 복구 불가능하게 파괴하는 것은 러시아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냈다. 무엇보다 러시아 정부가 앞으로 언젠가는 유럽에 다시 천연가스를 공급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면, 그리고 에너지를 계속 압박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자국 파이프라인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개통한 2011년 11월8일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 셋째)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왼쪽 다섯째) 등 각국 대표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국가 차원에서나 가능한 범행
에너지 리스크 연구자인 페터 부르크헤어는 스위스의 파울셰러연구소(Paul Scherrer Institut)에서 근무한다. 그는 미국의 한 학자와 함께 1980년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일어난 에너지 인프라 훼손 사례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1만 건이 넘는 자료를 수집한 그에게도 이번 노르트스트림 공격 사건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다. 이 공격은 유럽의 통합된 범국가적 에너지 수급의 본령을 파괴하려는 행위로, 복합적인 작전이 배경에 자리잡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파이프라인은 해면에서 80~110m 아래 놓였다. 파이프라인을 둘러싼 철강주물은 두께가 몇㎝나 되고, 이 관은 또다시 몇㎝ 두께의 콘크리트 원통 안에 들어 있다. 이렇게 탄탄하고 두꺼운 설비를 파괴하는 건 “국가 차원에서나 가능한 범행”이라는 것이다.
그가 알기로는 에너지 분야 설비를 목표로 한 공격은 지난 몇 년간 많이 발생했다. 또한 공격자들의 양상도 변해왔다. “전에는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하고 파손하는 주체, 이를테면 콜롬비아의 게릴라 같은 그룹은 비국가적 행위자였다. 오늘날에는 국가적 행위자가 연루됐다. 이들은 자금과 인력을 동원할 능력이 월등하고, 훨씬 전문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이에 비례해 위험도 증가한다. “요즘 우리는 대참사 시나리오까지 놓고 토론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로 간주했던 사태에 대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공격자가 가압 스테이션이나 변전소 같은 “신경망 핵심 연결점”을 공격해 단시간에 수리가 어려운 막대한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부르크헤어는 강조한다. 이런 시설물에는 흔히 사전에 포괄적인 보호 조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수백㎞에 이르는 장거리 에너지수송관이나 통신케이블의 경우 보호 조처가 훨씬 어렵다. 이제 우리는 노르웨이에서 중부 유럽으로 이어지는 북해 가스 파이프라인처럼, 특히 중요한 수송관의 감시가 지금보다 더욱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주요 기간시설이 공격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나토의 걱정거리였다. 2021년 6월 나토 회원국 수장들은 ‘회복력 강화’를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 읽어보면 마치 러시아의 에너지 전쟁을 내다보듯 예언하는 음울한 글이라고 느껴진다. 이를테면 “우리는 에너지 공급망 보호와 다양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하며, “기간산업 설비의 회복력을 개선”하는 한편, “에너지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에 대비해 무장해야 한다”고 하는 대목들 말이다.

유럽, 대처 뒤처져
유럽은 특히 해저 수송관과 케이블 보호라는 분야에서 많이 뒤처졌다. 이 문제를 주요 주제로 다루는 정도가 회원국마다 아주 상이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2022년 6월 발표한 분석을 보면, 프랑스에서 군사정책 입안의 ‘핵심 주제’인 이 사안이 덴마크에서는 민간 영역에서 처리되기 일쑤라고 한다. 가벼운 손상을 입은 경우라면 유럽 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아주 심하게 훼손될 지점이 많다는 것, 그리고 유럽연합의 데이터망을 공격할 능력이 충분하고 또 그럴 의도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 국가가 다수라는 사실이다. 물론 유럽연합의 전략서에는 케이블이라든가 수송관 같은 말이 거듭 등장한다. 하지만 “이 사안을 해결할 방법이나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 분야의 학자들은 케이블을 대규모로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곧장 전쟁 행위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상황이 변화된 지금, 어디부터를 전쟁 행위로 봐야 하는가 하는 물음과 대답은 그만큼 더 시급한 문제로 등장했다.
이 문제의 해답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2021년 봄에 발행된 유럽연합의 한 기밀문서에 잘 나타난다. 이 문서에는 유럽연합 국가들의 책임자들이 채택한, 하이브리드(복합·비대칭) 공격에 대한 방어 지침이 포함됐다. 여기에는 공격들이 “의도적으로 모호성을 취한다”는 말이 나온다. 공격자는 상대방의 대응을 불러올 임계치 바로 아래만큼의 강도로만 공격해 “자기들의 진짜 목적을 은폐”함에 따라 공격받은 쪽의 대응을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설명을 참고하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사보타주는 하이브리드 공격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구 국가들은 모두 이마를 맞대고 공격을 시도한 범인과 동기를 두고 이런저런 추측만 할 뿐, 적절히 대응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기밀문서는 한 가지만큼은 간결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공격에 대응해 이쪽도 ‘전통적 억지 정책’, 다시 말해 군사적 타격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 때문에 “하이브리드 공격자들도 신중히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문서는 밝혔다. 그런데 발트해의 범행자들은 이 말에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언젠가 이 가스관을 공격한 범인들의 이름이 밝혀져 체포, 처벌까지 당할 개연성은 별로 없다. 2022년 6월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군사담당 참사관으로 근무했던 덴마크 장교 카르스텐 라스무센은 하이브리드 전쟁의 특별한 점이 “전투 행위를 설득력 있게 부인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본다. 발트해 파이프라인 사건이 분명한 예가 된다. “러시아는 이미 이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 입장을 유지할 것이다.”

▲ 2022년 8월30일 독일 루브민의 산업단지에 있는 노르트스트림1 환승 기지. REUTERS

미국 공격설도
폴란드 외무장관을 지낸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는 발트해의 바닷물이 부글거리는 사진에 ‘고마워요, 미국!’이라는 제목을 붙여 트위터에 올렸다. 삐딱한 이 트위트를 친미 성향의 시코르스키가 ‘미국이 범인’이라는 뜻으로 올렸을 리는 없다.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보면, 미국이 가스관을 폭파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주장을 하는 쪽의 논리는 이렇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러시아에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폭파함으로써 “여기까지만, 더는 안 돼!”라는 경고신호를 보낸 것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이 폭파 행위는 해당 수신인, 곧 블라디미르 푸틴만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은 은밀한 연락문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처음부터 이 파이프라인 건설을 완강하게 반대해왔다는 것도 사실이다. 발트해 지역에서 미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자국에서 생산되는 에너지 정책상 이익관계도 함께 반영된 것이다.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가스 제공이 중단되는 일은 백악관으로서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스관이 파괴되면 독일 입장에선 이 공급로를 다시 이용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니 말이다.
‘범인은 미국이었다’라는 가설의 추종자는 요즘 소셜미디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스관을 언급하는 오래된 비디오 클립 하나를 보면서 즐거워한다. 이 비디오에서 바이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진입한다면”이라고 말문을 연 뒤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은 더 이상 (추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걸 가능하게 할 계획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약속한다”고 답한다.
발트해를 가로지르는 이 가스관이 지나는 길은 크루즈 선박의 항로를 복사한 것처럼 보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탈린, 헬싱키, 스톡홀름 해안을 차례로 보면서 항해할 수 있다. 핀란드만을 거쳐 바다로 나아간 뒤, 스웨덴의 고틀란드와 보른홀름 내항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뱃길이다. 원래는 그랬다. 그러나 요즘 발생하는 사건들을 보노라면 발트해는 담수와 해수가 섞이는 하구라는, 그간 잊고 있었던 사실이 다시 떠오른다. 그렇지 참, 여기엔 대구와 청어만 많은 게 아니었다. 햇빛을 꺼리는 위험한 물고기들도 간간이 출몰했다!

ⓒ Der Spiegel 2022년 제40호
Ausweitung der Kampfzone
번역 장현숙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