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안자리 Benjamin Ansari
마르쿠스 데트머 Markus Dettmer
코르넬리아 슈메르갈 Cornelia Schmergal <슈피겔> 기자

▲ 독일 뮌헨 근처 아이헤나우에 있는 노인 주택에서 휠체어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연금 수급자들. REUTERS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노동으로 가득 찬 삶이 있다. 마리야 슈미트는 1948년 슬로베니아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가 1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셨다. “먹을 것보다 맞는 매가 더 많았다”고 슈미트는 말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5살 때 그는 짐을 꾸려 집을 나와 류블랴나(슬로베니아 수도)로 도망쳐 옷걸이 공장에서 일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항상 내 빵을 스스로 벌었다.” 20살에 이 여성은 독일로 왔고, 난민캠프에서 20마르크를 받았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흘렀다. 비스바덴(독일 헤센주의 주도) 시내의 오후, 오래된 건물의 닫힌 창문으로 교통 소음이 들려온다. 슈미트는 짙은 색 참나무 붙박이장 앞 식탁에 앉아 있다. 둥글고 상냥한 얼굴에 머리를 짧게 자른 73살 여성이다. 커피와 함께 애플파이, 초콜릿머핀이 나왔다. 은색 케이크 집게가 접시에 기대고 있다. 슈미트는 그의 옛 고향을 연상시키는, 굴리는 듯한 ‘R’ 발음으로 말한다. 거칠고 강한 억양은 마치 그의 인생처럼 들렸다.
“나는 어떤 일도 피하지 않았다. 항상 돈을 벌었다.” 음식 나르기, 건물 청소, 기업인 가정의 가사도우미, 공장의 보조인력, 자신이 지금까지 사는 건물의 관리. 35년 이상 일하면서 연금보험액을 납부한 슈미트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연금 513유로(약 68만원)다.

월세는 600유로, 연금은 513유로
슈미트의 두 번째 남편은 20년도 더 전에 사망했다. 남편은 그에게 약 482유로의 유족연금을 남겼는데, 슈미트의 노령연금이 더해진 금액이다. “기초생활보장을 받기에는 너무 많고, 그 돈만으로 살기에는 너무 적다.”
슈미트는 자신의 한 달 지출액을 계산해 보였다. 월세 600유로, 난방·전기·보험을 합해서 150유로. 옷에는 많은 돈을 쓰지 않지만 신발은 한 켤레 100유로짜리 비싼 제품을 산다고 했다. “나는 깔창이 있는 스니커스가 필요하다. 다른 신발은 더 이상 신을 수 없다.”
슈미트는 9년 전 65살로 공식 은퇴했지만, 여전히 인근의 개인병원에서 하루 두세 시간 건물관리인으로 일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5층짜리 구식 건물의 계단을 청소한다. “계단이 쉽게 더러워지는 겨울에는 더 자주 청소한다.” 건물 안쪽 마당에 바퀴 달린 대형 쓰레기통 10개가 나란히 있는데, 2주마다 슈미트는 청색(종이류)과 노란색(재활용품) 쓰레기통을 밀고 나가 길가에 세워둔다. 녹색(유기물) 통은 매주 내놓아야 한다. 13번의 수술을 받았고, 스텐트 2개를 삽입했고, 류머티즘을 앓고 무릎이 아픈데도 슈미트는 일해야 한다. 복도의 전구를 교체할 경우,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사다리를 타고 3m를 기어 올라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슈미트는 파트타임 일을 해서 한 달에 450유로를 받는다. “그 이상은 벌 수 없다. 이 돈이 내 연금에 가산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족연금에서 한 달에 60유로가 공제되고 있다. 슈미트는 벌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사실 나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 슈미트는 충분히 일했다.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원할 때 어디든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그는 얼마나 더 계단을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밀어야 하는가? “모른다. 나는 그저 해야 한다”고 슈미트는 대답했다.
한부모가정이나 이민 배경이 있는 사람들에 비해 독일의 연금 수급자들은 수급 연령까지 살아남을 경우 국가 지원에 의존하는 일이 드물다. 그럼에도 기초생활보장을 받아야 하는 노령연금 수급자의 비율은 2010년 이후 3분의 1가량 늘었다. 특히 여성과 법정 연금 시스템 밖에 있는 경우가 많은 자영업자가 이런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가장 큰 위험은 신체장애다. 장애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에게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생길 수 있다. 뼈가 더는 일을 버틸 수 없을 때, 장기간의 스트레스로 정신이 파업할 때, 질병이 사람을 직장생활에서 밀어낼 때 말이다.
2020년 독일에서 대략 140만 명이 이른바 근로불가연금(Erwerbsminder ungsrente)에 의존했다. 남녀 비율은 비슷하며, 2021년 말에 이 연금의 평균수령액은 약 989유로로 비교적 낮다.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몇 가지 작은 개선을 추진했고, 현재의 올라프 숄츠 정부도 추가로 이 제도를 손봤다. 하지만 여전히 병으로 조기에 은퇴하는 사람은 노후 보장에 상당한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해야 한다.

▲ 서울의 한 대학교 청소노동자들. 주로 은퇴 연령이 지난 노인들이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장애로 인한 조기퇴직자의 고통
65살 카린 슐츠는 미래에 대해 명확한 계획이 있었다. 은행 업무 교육을 수료한 뒤, 그는 30년간 저축은행에서 일했다. 저축은행이 슐츠를 갑자기 해고했을 때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 돈 걱정 없는 노후생활을 누리기를 희망했다. 슐츠는 함부르크로 이주해 콜센터에서 일했다. 삶은 어떻게든 계속됐다.
슐츠의 노후 계획을 망친 것은 갑작스럽게 생긴 신경병이었다. 그는 다발성신경병증을 앓았다. 왼쪽 다리는 거의 감각이 없다. “더 이상 어떻게 걷는지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53살에 걷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고, 60살에 직장을 그만뒀다.
근로불가연금 결정 통지서를 처음 봤을 때 슐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세전 1065.67유로라고 적혀 있었다. 저축은행 직원으로 30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정규 퇴직 연령인 66살까지 일할 수 있었다면 그는 연금으로 1400유로를 받았을 것이다.
지금 슐츠는 질병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한다. 관련 법에 따르면 그는 하루 3시간 이상 일할 수 없고, 1년에 6300유로(약 843만원) 이상 벌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근로불가연금이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는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슐츠는 말했다. “나는 항상 많이 걷거나 물건을 운반하지 않아도 되는 ‘미니잡’(Mini Job·한 달 수령액 450유로 이하 일자리 또는 1년에 70일 이하 일하는 업무)을 찾는다.”
슐츠는 시간제 일자리 회사에서 간병인으로 고용돼 시니어들에게 압박스타킹을 입혀줬다. 동시에 소득 제한을 우회하기 위해 자영업자인 배달원으로 일했다. 일요일도 포함해 하루에 3시간 정도 세금 서류와 실험실 약품병을 여기저기로 배송했다. “이 일은 재미있었다. 밖에서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배달일이 없어지자, 슐츠는 업종을 바꿨다. 2021년 봄, 그는 가판대에서 과일을 팔았다. “딸기를 상자에서 꺼내, 무게를 측정한 뒤 매대에 차려놓았다.” 현재 슐츠는 휠체어를 타는 93살 여성을 돌보고 있다. “나는 그녀가 가끔 외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안경원이나 약국에 가는 일이다.
슐츠는 지금도 쉽게 일을 그만둘 수 없는데 여기에 인플레이션이 더해졌다. “7% 물가 인상은 평균값일 뿐이다.” 예를 들어 오트밀 한 봉지 등 슐츠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의 가격이 훨씬 올랐다. “얼마 전에 계산해보니, 현재 식품 구매비가 이전보다 25% 증가했다.”
그래서 슐츠는 미니잡에서 미니잡으로 계속 옮겨간다. 5월부터 그는 다시 딸기 가판대에서 일한다. 가장 힘이 덜 들기 때문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이 일이라면 70살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동시장에서 노인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독일은 가치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 정치권과 기업체 사장은 오랫동안 노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높은 실업률 때문에 1970년대에 이들은 나이 든 노동자를 체계적으로 조기퇴직과 명예퇴직으로 내보냈다. 기업은 이로써 더 젊고 생산적인 노동력을 확보하려 했다.
오늘날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현재 취업시장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뒤를 잇는 젊은이 수가 너무 적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신생아 수는 연간 136만 명을 정점으로, 2000년대 초반에는 약 70만 명으로 거의 절반이 줄었다. 그래서 지금은 고령자들의 퇴직을 최대한 늦추려 한다. 고령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에 숙련된 인력이 고갈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Der Spiegel 2022년 제23호
“Bis ich tot umfalle”
번역 황수경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