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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키가 보내는 암호
[경제사 산책]
[11호] 2011년 03월 01일 (화) 박종현 economyinsight@hani.co.kr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는 경제학자에게조차 생소한 인물이었다.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러시아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채권운용사 ‘핌코’의 펀드매니저 폴 매컬리를 통해서였다.폴 매컬리는 투자자가 보유 자산을 헐값에 투매해 자산 가격이 폭락을 거듭하던 당시 상황이 어느 죽은 경제학자의 이론으로 잘 설명된다는 점에 착안해 ‘민스키 모멘트’라는 용어를 만들었다.이후 민스키의 이름은 잊혀졌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본격화된 2007년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대부분의 경제지에서 다시 거론되었다.대형 투자은행의 부실 및 파산으로까지 이어진 2008년에는 <뉴요커>까지 민스키에게 관심을 보이게 된다.<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 따르면, 전세계 대표적인 이코노미스트들은 지난 10년간 세계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제학자로 벤 버냉키 연준 의장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뒤를 이어 민스키를 꼽았다.이제 민스키는 전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경제학자 자리에 오른 셈이다.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오늘날의 민스키는 없었을 것이다.시카고대학을 거쳐 하버드대학에서 학문의 세계에 들어섰지만 1996년 77살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무명으로 평생을 보낸 민스키가 월스트리트의 뜨거운 관심을 얻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른바 ‘민스키 모멘트’로 유명한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 그는 현장과 실무를 중시하고 금융을 주시한 인물이었다.버클리대학 재직 시절에는 통화신용위원회,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연방예금보험공사와 활발히 접촉하면서 연구를 진행했다.워싱턴대학으로 옮긴 후에는 마크트웨인 은행과 오랜 기간 인연을 유지했다.민스키는 이 과정에서 은행업과 금융시장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주기적 금융위기의 양상은 어떠했는지, 금융 혁신이 금융 방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 생생하고도 구체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민스키는 이윤을 향한 충동이야말로 변화를 이끄는 큰 동인이고, 혁신과 기업가 정신이 가장 왕성한 곳이 바로 금융계이며, 금융 혁신이 금융 시스템과 경제 전반의 불안정을 가져오는 요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월스트리트가 가장 좋아한 경제학자 민스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경제적 대상은 ‘투자’였다.그는 학창 시절 케인스에게서 자본주의 경제가 밟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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