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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달러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FINANCE] 거침없는 환율 상승의 배경과 전망
[150호] 2022년 10월 01일 (토)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 미국 수도 워싱턴 마운트플레즌트 지역의 슈퍼마켓에서 주민이 물품을 고르고 있다. 미국의 2022년 8월 물가상승률은 8.3%로 둔화 조짐을 보였으나 전문가 전망치를 웃돌았다. REUTERS

킹(King) 달러 시대다. 미국 달러가 폭주하고 있다.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상대적으로 강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긴축 때문이다. 자산 구매 중단, 보유 자산 매도, 금리인상 등 전방위적이다. 미국이 이런 긴축을 할 수 있는 배경은 경제가 나름 굳건해서다. 반면 유럽, 일본, 중국은 경기둔화 우려에 휩싸였다. 통화정책 운용에 한계가 있다. 유럽은 2022년 9월 들어서야 긴축 발걸음을 서두르고, 일본은 여전히 완화정책을 유지한다. 중국은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돌아갔다.
환율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수없이 많다. 가장 큰 변수는 뭐니 뭐니 해도 금리다. 물론 주요 통화의 금리를 말한다.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다. 이런 통화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긴축하는 상황에서 가격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외려 이상하다. 통화시장은 이런 점을 너무 잘 안다.
2021년 2월은 매우 의미 있는 시점이다. 주요 통화에 견줘 약세이던 미국 달러가 강세로 돌아섰다. 당시 유로 대 달러 환율은 1.2였다. 달러가 계속 올라 2022년 7월15일 유로와 달러가 일대일로 교환되는 패리티(Parity) 상태가 됐다. 8월 들어서는 1 아래로 떨어졌다. 2002년 이후 볼 수 없었던 현상이 20년 만에 재현된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은 2022년 9월8일(현지시각) 주요 정책 금리인 예금금리를 0%에서 0.7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7월에 0.50%포인트 인상으로 마이너스금리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지 한 달여 만에 자이언트스텝을 밟은 것이다. 그 덕분일까? 간신히 패리티를 유지하는 수준까지 일단 미약하게 반등했다. 엔은 어떤가? 2021년 2월 102엔이면 1달러를 샀다. 2022년 9월8일 현재 1달러를 사려면 143엔이 필요하다. 달러 대 엔 환율 차트를 보고 있자면 그 가파른 기울기에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다.
특정 통화를 지목해 달러 가치가 얼마나 올랐느냐 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세계 대부분의 통화에 견줘 달러는 초강세다. 연준은 22개 무역상대국 통화에 가중치를 부여해 달러지수를 산정한다. 2006년부터 집계한 실질광의달러지수(Real Broad Dollar Index)다. 이 지수가 집계 이래 최고 수준이다. 2011년 7월 약 83으로 바닥을 찍은 뒤 계속 올라 2022년 8월 말 117 수준에 이르렀다. 이게 중요하다. 달러 오름세는 1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사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은 통화가치에 치명적이다. 인플레이션 자체가 구매력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구매력 저하는 통화가치를 낮춘다. 잘 알다시피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매우 높다. 그런데 유로와 엔에 비해 달러의 가치가 오르는 이유는 뭘까?

인플레이션의 동인
인플레이션이 미국에서만 생기는 현상이라면 달러 약세를 피할 수 없다. 현재 인플레이션은 지구적 현상이다. 유로존의 2022년 8월 물가상승률은 9.1%였다. 미국보다 더 높다. 2월까지 물가상승률이 0%대였던 일본마저 지난 몇 개월 2.5%에 이르렀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구매력을 훼손하는 현상이 미국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모든 통화가 거의 동일한 압력에 놓인 상황이다.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이 달러 약세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다.
시카고 연준은 2022년 8월 인플레이션에 관한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급속히 악화하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속 미국 인플레이션의 동인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다. 내용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1. 물가는 산업화한 국가에서 급등하고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2. 유럽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식품류와 에너지 가격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미국 인플레이션에 끼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다.
3. 미국에선 내구재 가격의 오름폭이 다른 국가보다 크고, 인플레이션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4. 노동시장 조건과 재정 확대는 인플레이션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시카고 연준이 분석한 26개국 중 20개국에선 인플레이션 원인 가운데 식품류와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이었다. 상품 가격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에는 그보다 내구재 등 근원물가 오름세가 더 큰 영향을 줬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상품 가격은 미국 달러로 매겨진다. 글로벌 통화 절하로 세계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졌다. 하지만 달러 강세는 미국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에 도움을 준다. 그뿐이 아니다. 미국은 곡물, 에너지 등 주요 상품을 자급한다. 반면 주요 국가 대부분은 이를 수입에 의존한다. 상품 가격 상승이 물가 압력에 끼치는 영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에너지나 곡물 가격 상승이 미국에 충격을 주지 않은 게 아니라 다른 요인의 영향이 더 컸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자제품 등 내구재의 물가상승률은 미국에서 더 가팔랐다. 이유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뿌려진 달러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확대가 클수록 인플레이션 가속도가 컸다. 미국은 조사 대상국 중 두 번째로 재정을 많이 늘렸다. 막대한 현금이 뿌려지면 소비지출과 고용이 늘어난다. 든든한 호주머니는 수요를 늘리고 가격을 올린다. 순조로운 고용 상황 역시 물가상승률을 높였다. 팬데믹 전에 견줘 실업률이 양호할수록 물가상승률이 높았다. 미국 실업률은 역사상 최저치다. 내구재 인플레이션이 다른 나라보다 더 가파른 이유다.
달러의 본격적 상승은 2021년부터다.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 저하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를 내고 2022년 1분기에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강세는 수입품 가격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 국제 상품 가격과 함께 수입품 가격이 올랐지만 달러 강세가 완충작용을 했다. 지난 몇 달 물가상승률은 8% 이상이다. 달러 약세였다면 두 자릿수를 넘었을 것이다.

   
▲ 2022년 9월14일 미국의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로 높은 금리인상이 예상돼 원-달러 환율이 13년5개월 만에 달러당 1390원을 돌파했다. 전날 미국 증시 폭락에 이어 한국 증시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연합뉴스

극단적 패권
달러 강세가 함축하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등 주요국의 긴축이 가시화하면 달러 강세가 약간 수그러들 수 있다. 하지만 달러 강세 기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달러 가치 추세는 2011년부터 달라졌다. 왜일까? 미국이 달러를 세계에 공급하는 채널 자체가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20세기까지 미국은 중동에서 석유, 아시아에서 공산품을 수입하며 달러를 공급했다. 현재는 어떤가? 미국은 에너지 자립국을 넘어 수출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속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 흐름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이 상황은 모두 달러를 세계에 공급하는 게 아니라 블랙홀처럼 미국으로 빨아들이는 데 기여한다.
이 추세는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미국산이 대체한다. 일본·한국·중국에서 들여오던 공산품 중 부가가치가 높은 자동차, 반도체 등의 미국 내 생산에 불이 붙었다. 달러 유통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미국 달러 강세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달러 강세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일반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상품 가격이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에너지 등 주요 상품이 미국산으로 대체되기 시작하면 세계는 달러 강세로 물가상승 압력을 받는다. 자국 통화가치 절하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미국 안에서 생산된 상품은 애초 달러로 가격이 매겨져 달러 강세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도 사라진다. 제조업 부흥에 따른 미국 고용시장 호조가 노동 가격 상승을 불러와 미국 내 생산품 가격을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세계화를 버렸다. 대신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극단적 패권을 추구한다. 그것이 불가피하든 아니면 강제됐든 에너지 자원이 미국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주요 첨단 제조업도 미국으로 몰린다. 이 흐름이 장기적으로 미국 패권과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자국 이익 극대화 전략은 다른 나라들의 반발을 부르고, 글로벌 달러 공급 축소는 기축통화 지위를 흔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 관점이다. 중요한 것은 중단기적 전망이다. 글로벌 긴축 드라마는 달러 가치 상승에 제동을 걸 수 있다. 그것이 지속적 달러 약세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당분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연준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과 사투를 벌인다. 그 덕에 미국 등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지나고 있다. 다만 인플레이션의 여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기축통화국이 뿌린 씨앗이 인플레이션으로 발화했다. 중국 덕에 누렸던 물가안정 시대가 가고, 그 자리를 미국발 인플레이션 시대가 대체하고 있다. 세계는 이제 불붙기 시작한 서비스 부문의 물가상승과 자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기나긴 인플레이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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